한낮의 햇살이 자연스럽게 창가로 스며든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그녀들의 수다와 맞딱드린다. 대학에서 발견한 친구들, 4년간 외면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더 가까워진 정윤이, 고등학교때부터 알아서 같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들어가자마자 잘나가는 C.C.로 유명해져 나와는 틈이 생기고 급기야 그 명맥을 이어 얼마전 결혼까지 했는데 입에서 나오는건 어제 바가지 긁은 거 때문에 남편하고 맨날 싸운경력밖에 없는 경숙이, 대학을 일찌감치 휴학하고 유학갔다가 돌아와보니 조금 허무해서 대학이나 졸업할 생각으로 친구들이 다 졸업하자마자 복학한 기영이 등등등 여자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그게 사실이었다면 오늘 이 레스토랑 망한다. 우리가 모인 것이 대략 대 여섯에서 일곱은 되니까.
"그래? 그게 정말이야? 민기가 정말 교수님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걸 했다구?"
난 이미 대화의 흐름을 놓쳐버렸다. 다들 왜이렇게 수다쟁이가 되버린 걸까? 그저 창밖을 좀 바라보다가 앞을 응시할뿐인데 갑자기 다들 놀라는 표정이기에 듣다보니 내 얘기를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것도 정민기 그 지구상에서 내가 제일 증오하는 인간이 되버린 그의 가면쓴 모습에 대하여...
지금 입을 여는건 기영이다 "그래 교수진에선 소문이 파다해...의견도 갈렸대.. "
경숙이는 입을 못다물고 놀라서 환상인 눈빛을 한다. "이야...지유야 너 정말 좋았겠다. 우리남편도 교육 좀 시켜야겠어.." 교육시켜서 또 싸울려구? 아서라~~~
정윤이는 분위기 업시키려고 벼르면서 말한다
"야 우리 민기랑 경숙이 신랑이랑 내 남자친구 불러다가 놀래? 얼마전에 회사앞에서 만났거든. 5살 오빠야.."
기영도 찬성하는 눈치다."어 좋아~~~야야 다 불러."
내가 빠져나갈구석을 찾고있는데 주부9단의 경숙이가 치마를 주물러 뜯다가 잠시 주스를 마시기위해 테이블위에 올라온 내 오른손을 보고 경악한다 "야너 손이 왜그래? 왠 붕대야..." 일제히 다른 눈들이 나를 향한다.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저기 얘들아 나 비즈미팅 있는거 깜빡했다.. 나가볼게.." 난 도저히 민기와 헤어졌다고 그리고 이 붕대는 헤어짐에서 비굴하지 않게 행동했다는 영광의 상처임을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 자식에게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별을 슬퍼할만큼 감성이 남아있지도 않다. 그러나 쪽팔린다. 그녀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분명 내얘기를 들으면 두갈래로 나뉠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입으로 "어떡하니 어떡하니"를 외치면서 내가 불쌍한 듯 슬그머니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이중적 동정녀형 다른 하나는 "야~야~걱정마라 그자식이 아니면 너 데려갈 사람없을가봐"이런식으로 힘을 주는 척하면서 속으로 딴말하는 아수라 백작형, 둘 다 내가 당하고는 못참을 성격인 탓에..내가 나올수밖에 없다. 나와서 시게를 보니 3시가 넘어있었다. 아휴. 저것들 일찍이나 보내줄것이지...ㅡㅡ;;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붕대가 한겹 벗겨져 있었다. 아까 치마를 너무 열심히 뜯었나?;;;;;
붕대를 너덜너덜 해가지고 상처를 살피는데 붕대 안쪽에 이상한 글씨같은게 적혀있다. 분명히 일부러 적어둔 것이다. 난 상처가 아프긴하지만 그 글씨가 궁금할만큼 심심했다. 손에선 다시 피가났지만 이젠 도리어 아깝다는 생각보다 스릴이 있다. 지연이 말이 맞다. 난 살인끼가 다분한가봐. 붕대를 반즈음
벗기고 나서야 글씨의 실체가 드러났다. "XX 대학병원" 난 약간 실망했다. 겨우 병원이름이라니...너무 허무한 나머지...이놈의 손이 더 아프다. 그자리에서 난 비명을 질러버렸다 "아...아야야야야 아후..."
그런데 이 병원 여기서 택시로 한 15분거리에 있는 병원이다. 난 더 생각할것도 없이 택시를 잡아서 탔다. 내 입이 머리와는 상관없이 목적지를 말한다. "XX 대학병원이요"
병원앞에 내리고보니 어느 병동을 찾을지 은근 착잡해졌다...손을 다쳤으니..외과로 가야할까보다..일단 들어선 병원은 대학병원치곤 꽤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보니 복도중앙에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엘리베이터가 1층부터 4층까지 운행되고 있었고,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천정을 올려다 보면 둥근 복도가 양쪽으로 갈라져 각각의 병동이 올려다 보인다. 복도에 안내된 팜플렛에는 소아과에서 물리치료과까지 갖춰져있다고 되어있었다. 난 일단 마침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외과 병동이 있는 3층을 꾸욱 눌러버렸다. 외과 복도한켠의 게시판에서 '현재영'이라는 이름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 달의 우수 인턴으로 뽑혀 그의 이름이 맨 위에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저주받은 기억력의 한계가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를 한참 생각하고 있을 그 찰나 내 옆에 선 의사를 보고 놀라자빠져버렸다. 자빠진상태에서 놀래 눈을 들면 명찰이 보인다. '외과 인턴 현재영'
새하얀 가운 안쪽으로 파란 와이셔츠에 노란 넥타이를 멋스럽게 차려입고, 뿔테 대신 금테를 두른 안경을 살짝 들어올리는 눈은 크고 뭔가에 빛나고 있었다. 조각상에서 떼어낸 듯한 코를 보고 나오는 감탄사는 조각이었고, 올백으로 부드럽게 넘긴 머리, 이마엔 애교처럼 한가닥 앞머리가 보기싫지 않게 내려와있다. 자빠져있는 나를 향해 가운과 맞먹을 만큼 새하얀 이를 내비치며 웃어보이는 그 환한 미소,
내가 아침에 이런 꽃미남을 못알아보고 꽃무늬 반바지라는 별명을 붙인 나 자신을 증오하며, 멍해져 있는데 재영이 내손을 잡아 살피면서 말한다 "누가 이렇게 만들랬어요? 갑시다. 붕대갈러."
그러고는 손을 놔버리고 따라오라는 듯 저만치 가버리는 재영 ㅡㅡ;; 뭔가? 그 다음순간 난 일어서지도 못하고 주저앉은채 내 입과, 내 정신이 제대로 된건지 의심하게 하는 내 한마디가 병원안에 가득 울려퍼진다.
"야~너....너.... 그 꽃무늬 반바지?!!"
접수처의 간호사들은 물론 그 앞에 환자, 환자가족, 그리고 복도에서 커피한잔하던 의사들까지 전부 내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재영이 한걸음에 달려와 내앞에서 소리친다.
"죄송합니다. 어제 제가 제 애인한테 못된짓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복수하는 거예요.^^;;;"
뭐? 뭐라고? 애인? 기가막혀 어벙벙한 채로 있던 나를 일으켜 재영은 손목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재영의 걸음이 멈춘 곳은 간이침대가 있는 외과 진료실이었다.들어서며 부터 꼬인 내 표정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그가 입을 연다 "붕대감을때 일부러 안쪽에 병원이름을 적어뒀는데 봐줬네요?" 기분나빠!!내가 칠칠치 못하게 붕대나 풀리고 다닐 인간으로 보였나봐...그러나 그런인간 나 맞다.ㅡㅡ;; 나를 간이 침대에 앉히고는 반대편에 의자를 하나 갖다놓고 앉아서 붕대를 풀어주며 그가 말한다. "이 상처가 걱정됐어요. 이만큼이나 나왔거든요" 그러더니 내 살점과 피가 묻은 유리조각 여러점을 담아 놓은 거즈를 가운 겉주머니에서 빼어 펼쳐보여준다. 난 놀라서 물었다. "도대체 그런걸 왜 가운 겉주머니에 넣어서 갖고 다니는거야?" 그는 당연하단듯이 말한다 "나 의사예요. 환자를 돌보는게 내 일이라구요. 아픈사람을 돌보려면 그 환자의 모든걸 여기 담아야 돼요. 그게 기본이예요. 그리구 ..." 그는 내 손을 자세히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말한다. "유리는 안좋거든요. 입자가 작아서 살점에 박히면 아프긴 한데 빼내긴 힘들어요. 아무리 화가나도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뭐 뭐야? 이 인간 그럼 아침에 그 얘길 들었단 말인가 ?? 으으 쪽팔려!!!! ㅡㅡ;;; 그가 소독을 하고 다시 새 붕대를 감아주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그리고 앞으론 병원에서 꽃무늬 반바지는 좀 삼가해주세요.^^;;"
끄으으으 내가 맘껏 민망해 하고있을때 병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외과의 현재영선생님 현재영선생님 제2 수술실로 가주세요 외과의 현재영 선생님 현재영 선생님..."
재영은 붕대를 깔끔하게 메김하고 일어서며 소리지른다 "아차...오늘 오후에 수술있다그랬는데 .. 그 꽃무늬 반바지때문에 잊어버릴 뻔했네..." 그러더니 서랍에서 자신의 수술복과 마스크를 갖고 나가며 말한다. "여기 있어요...꼭 여기 있어야 돼요" 더이상 쪽팔릴래야 쪽팔릴것도 없었다. 난 재빨리 말했다. "대신 이 누나 맛있는거 사줘. 알았냐? "
빙긋 웃으며 나가버리는 재영...
난 심심해서 이리저리 그 방을 살피고 있었다. 의학 서적과, 각종 모형들, 그리고. 재영의 학위노트들. 의학 관련 스크랩 등의 두툼한 학위노트를 살피던 중 노트 중간에 툭 하고 떨어진 수첩하나를 보았다. 그냥 다른것들보다 조금 오래되고 조금 큰 수첩일 뿐인데.. 난 제목을 보았다
"dr. hyun's diary."
-작가의 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구요. 오늘이 제 스물두번째 생일이예요.ㅎㅎㅎ^^
이 스토리를요 앞으로 민기를 좀 등장시켜서 더 재밌게 쓸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