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1932년 7월 11일 생으로 윤자 병자 순자 를 쓰십니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느라 허리 한번 못펴고 고생하셨지만 마음 고생은 몸 고생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060970상병. 아버지의 군번입니다.흔히 6.25라고 일컫는 한국전쟁에서 목숨걸고 지킨 이 나라 대한민국의 발전이 누구보다 기쁘고 점점 더 살기좋은 세상이 올거라고 믿는 아버지.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버지의 짝사랑만 받을뿐 아버지의사연을 들어주지않습니다. 아니 인정해주지도 않는겁니다...다음은 아버지의 사연입니다.
1951.4.8일 제주도 제일훈련소에 입소하여 56일간의 교육을 받고 부산 보충대를 거쳐 51.6월 말 경 9사단 29연대 1대 4중대로 발령받아 51.7월 초순 금화 603고지전투에 참가하였다. 주야 6일간의 전투로 아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하였고 약 20여명남은 병사가 마지막으로 돌격하여 나는 전면 복부와 대퇴부에 부상을 당한채로 고지를 탈환과동시 중공군 1명을 생포하여 일계급 특진과 더불어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예비연대로 후방 포천에서 약2개월정도 재교육을 받은다음 51.10월 중순경 백마고지전투에 참전하였다. 51년 11.6일 엉덩이에서 항문까지 관통상을 입고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실신하여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어 5일간 있다가 서울36육군병원에 11월 11일 재후송되었다. 그러나 수술 장비도 없었고 의약품도 부족했으며 수술자체를 해주지 않아 약 4개월간을 엎드려 살다시피했다. 그와중 상처가 자연적으로 치유되면서 파편이 대변을 볼때마다 나왔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없었다.그러다 갑자기 심한 두통과 고열로 혼수상태가되어 이틀만에 깨어나니 반신불수가 되있었다. 이날이 1952.2.28이다.3월 중순경 (12일경으로 생각됨) 대구 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담당 군의관은 최대위라는 분이었다.그분은 좌측발을 우측발위에 포개놓고 무릎을 고무망치로 두드려도 반응이없자 반신불수라는 진단을 내리고 병상일지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치료제가 없어 그대로 방치된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리라고 어린마음에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침 다른 동료가 그대로 있으면 영원히 병신이된다며 침술원을 알아봐주어 침을 맞게되었다.다행히 다소 효과를 보았고 그때 제대신청을 했는데 내 병명 즉 반신불수로 위생병상사가 제대하는것을 알았다. 군의관 최대위는 이번엔 누락되었으나 다음번엔 꼭 제대를 시켜준다고 했지만 나는 외과로 넘겨 달라, 부산 5육군병원으로 가서 명예제대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약 8개월간 그대로 방치시켰다가 외과로 넘어갔는데 조금씩 걸어 다닐 수 있다하여 강제퇴원하고 다시 전방으로 가게 되었다.때는 52년 12월경이다. 전방 수도사단으로 간 나는 며칠 후 연대 의무대를 갔다가 의무대장으로 있던 최대위를 다시 만났는데 그분은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느냐며 반신불수병명으로 후송 시켜주어 서울36병원을 거쳐 경주 18육병으로 후송되었다.그런데 경주 18육군 병원에 있을때 병상이 기관지염으로 감쪽같이 바뀌어 있었다.1주일 후 퇴원당하고 53년 1월 논산훈련소 26연대 52중대근무중 다시 혼수상태로 대전 63병원에서 입원치료도 받았다.나는 1955년 4월 8일 만 4년만에 제대하였다. 지금 현재 육군 본부 문서 보관실에서온 병상일지는 내가 입원한 날짜와 기록이 맞지않을뿐만 아니라 27육군 병원에서 약 8개월정도 방치되었을때의 기록이 없다하여 나의 국가유공자예우는 정말 말뿐인 예우에 그친다. 나와 같이 6.25에 참전했던 많은 전우들이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있다면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나처럼 기록이 없다거나 또는 너무 오래되어 몸에 흔적이 희미하다거나 기타등등의 이유로 합당하지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젊어서는 먹고사느라 바쁘고 무지해서 그냥 지나가고 이제와서 70이 너머 갑자기 무슨 일을 벌이느냐고 질책하는 사람도 주위에 많지만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한 나는 포기할 수 없다. 국가보훈처에 상이등급 신체검사를요청하여 등급 미달을 받고 또 사회에서 다친것을 우기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전쟁은 아직 끝난것이 아니다.내 팔에는 1952년 2월 28일이란 문신이 새겨져있다. 바로 반신불수가 된 날이다.그때 당시 죽을때까지 잊지말자고 평생 기억하자고 새겨놓은 것이다.나는 6.25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부상을 당했으며 그래서 지금도 온전치 못한 내 몸을 서류가 미비하다며 국가가 인정하지않는 그날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아버지의 사연입니다.아버지가 일찍부터 국가유공자에 관심을 갖고 신검을 받았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조금더 편한 삶을 사시고 우리들 역시 원호대상자혜택을 받았겠지요.이제와서 너무 늦은감이 들긴하지만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져 정부에대한 욕? 원망 더이상 듣지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그리고 나이 40이 너머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보겠다고 서툰솜씨로 글을 쓰는 내가 다른 어떤 도움도 드리지못해 이러고 있는 내가 덜 미안해지길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