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신의 딸이었다.
3.
나는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술장사하는 여자가 취중에 던진 사랑의 언어와 몸이었다고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공격에 가까운, 그리고 만취된 상태에서 던져진 하나의 돌이지만 자꾸 그녀에 대한 망상이 꼬리를 물었다. 파문은 크게 원을 그리며 퍼져갔다. 현장사무실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와, 대관령 줄기가 쏟아내는 개울물이 솨솨 소리를 내며 흐르는 바위 옆에 앉았다. 너무 허약한 것이다. 내가 너무도 외로웠던 것이다. 남들은 격류처럼 소용돌이치고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사랑을 하지만, 나는 말갛게 하늘만 바라보며 메말라 가는 한 줌 웅덩이의 물 같았다. 흔한 것이 남녀의 만남이지만 막상 닥치면 그다지 흔치도 않은 것이 사랑이다. 최소한도 나에게 만큼은 그랬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동그랗게 뜬 눈으로 빤히 쳐다보며 “여자란 할 수 없는 존재에요. 나도 여자거든요.”하며 말했을 때에 나는 습격당한 느낌이었다. 바로 곁에서 아내가 치밀한 공격준비에 몰두할 적에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혼이유로 갖다 붙인 그 나름의 정당한 논리에 설득당하기 보다는 배신감이 더 앞섰다. 믿었던 사람에게 떠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모멸감에 순순히 이혼에 합의했고, 돌아설 때에 아내보다는 내 자신이 더 미웠다.
그녀로부터 전화는 오지 않았다. 삼일 째 가게에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잠시 스쳐간 감기몸살인가, 흔한 하룻밤의 남녀정사를 너무 깊게 가슴에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조할수록 담담해지려는 반감이 쌍벽을 쳤다.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었다. 사랑이라는 상자에는 그토록 많은 감정이 겹겹이 들어있어서 그 뚜껑이 열리자마자 제각각의 색깔과 모양으로 하늘로 솟구친다. 맛보지 말아야 할 맛을 봤다는 후회의 빛과 그림자가 수없이 내 표정에 스친 일주일이었다. 한 통의 전화도 하지 않은 그녀의 무심함처럼 나도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대충 자제정리가 끝나자 밤늦게 건설현장을 떠나서 서울 사무실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샛길을 빠져 나와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서울로 올라가도 그녀의 가게 근처도 어른거리지 않고 조용히 그날 밤의 정사를 잊기로 마음먹었다. 둔내를 지나서 원주부근에 도착할 무렵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장이 또 무슨 소리를 지껄일지 모르지만 늦은 밤에 오는 전화는 쉬어빠진 듯한 사장의 잔소리였던 것이다. 서서히 핸드폰을 열어서 귀에 대는 순간에 숨이 턱 막혔다.
“나에요.”
여릿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찌르르 흘러내렸다.
“응......”
거의 신음소리에 가까웠을 것이다. 토하듯 응이라는 대답을 던지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오늘 가게 열었어요. 그 동안 무척 아팠어요.”
그녀는 아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다. 아파서 가게를 열지 못했고 나에게 전화조차도 하지 못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기운이 불끈 솟아오르며 목이 앞으로 꺾어질 듯 휘청했다. 내 차의 속도가 별안간 느려졌는지 뒤에서 빵빵하고 경적을 울려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핸드폰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 핸들을 돌려 차를 갓길에 세웠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기에 차를 세웠을까, 현기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 서울로 올라오세요? 보고 싶은데......”
나는 조그마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올라가는 중이야.”
끼기긱 하는 소리가 뒷바퀴에서 들렸다. 핸드폰을 접자마자 조수석에 휙 던지고 가속페달을 꾹 밟았다. 급가속에 뒷바퀴가 미끄러지며 앞으로 튀어나간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애증의 나무를 바치고 있던 냉철한 나무가 두 동강으로 부러졌다. 기웃뚱 하던 애증의 나무는 천둥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전조등을 상향으로 올리고 앞서가는 트럭 사이를 빠져나가며 서울로 질주했다. 서울이라 했는가, 아니다 서울이 아니라 바로 그녀를 향해 질주한 것이었다.
간판의 불이 꺼진 그녀의 가게였다. 숨이 턱에 찬 자동차가 가게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거칠게 정차하자마자 내 몸이 앞좌석에서 쑥 밖으로 나왔다. 어둑한 계단을 툭툭 걸어 올라가며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텅 빈 실내는 어둑했다. 홀을 쭉 훑어보는 내 시선이 구석에 있는 주방에 딱 멈추었을 때 내 호흡도 정지했다. 긴 머리를 찰랑대며 하얀 티셔츠차림의 그녀가 방실방실 웃고 서 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의 공기를 뚫고 초롱초롱한 그녀의 눈빛이 나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태양보다 더 밝은 눈빛이었다. 나는 그 빛에 시선을 맞추고 얼어붙었다.
“어머, 아까 원주부근이라더니 벌써 왔어요?”
고개를 숙이고 턱이 낮은 주방문을 빠져나온 그녀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상긋한 냄새, 화장품 냄새가 아닌 덜 익은 과일의 풋 내, 어쩌면 오이를 썰다만 손을 내 코에 갖다 대는 것 같은 야채의 속 냄새, 그리고 아주 얇은 두께로 짤랑짤랑 은방울 소리를 내며 스치는 바람이었다.
“어머나, 여기서 어쩌려고......”
한 손으로 홀의 문을 잠그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발그레 달아오르는 뺨과 뺨 사이에서 더 붉은 색으로 달아오르며 꼼지락대는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로 꽉 눌렀다. 가늘게 떨던 그녀의 눈꺼풀이 피곤한 듯 내려지더니, 감은 눈으로 그녀는 내 입술을 받아 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과 혀에 끌려 나도 눈을 질끈 감았다. 일주일 동안 그녀 때문에 얼마나 초조하고 애처로웠던가, 이혼한 후에 꼭꼭 발로 밟으며 자꾸 열리려는 내 가슴을 그토록 눌렀는데, 하룻밤의 천둥번개로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어버려서 얼마나 숨겨진 남자의 가슴에 피가 흘렀는가, 내 손이 그녀의 청바지 단추를 풀고 있었다.
“아이, 여기서 뭐 하려고......”
잠시 입술을 떼는 순간에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하는지 알 필요는 없지. 나도 뭐 하는지 몰라.”
그녀의 청바지를 아래로 내리며 나는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를 벽에 붙어있는 긴 소파를 향하여 몸으로 밀어갔다.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던 그녀가 소파에 턱 걸리며 주저앉는 순간에 허리를 감았던 내 팔이 그녀의 엉덩이를 바치며 길게 그녀의 몸을 쓰러뜨렸다. 별안간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킥킥 웃었다.
“지금 밖에서 당신 차를 빼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요.”
그녀의 가게 앞에 세워둔 내 차는 골목을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그녀의 옷을 벗겨 내리는 내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냥 놔 둬, 지금 내 몸에 붙은 불을 먼저 끄는 것이 더 급하니깐,”
나는 급하면서도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몸 위에 내 몸을 실었다. 전에 만취했을 때보다 그녀의 몸은 더욱 적극적이고 뜨거웠다. 거친 숨결을 토하며 나는 말했다.
“내가...... 내가 말이야...... 너를 사랑해도 되는 거지?”
그녀는 황홀한 기운이 가득한 실눈을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또 물었다.
“정말 사랑해도 되는 거지? 나라는 사람이 너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야.”
뜨거운 숨결 때문에 대답조차 하기 힘들었음일까, 이번에는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이며 그녀는 두 팔로 내 목을 꼭 조여 왔다. 이렇게 나는 그녀에게 빠졌고,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때문에 슬픈 길을 가야 했다.
4.
“아이, 정말 좋은 번호를 뽑았네.”
내가 사다준 핸드폰을 받아들며 그녀는 좋아했다. 즉석에서 삑삑 다이얼을 누르며 나한테 전화 걸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내가 전화를 받자 재미있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깔깔 거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맞으시죠? 호호호.”
“네네, 그렇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전화하신 것이 분명하군요.”
“호호호, 네네. 그렇습니다. 당신의 여자가 전화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며 가슴에 안은 핸드폰은 일종의 절충지대였다. 핸드폰은 그녀의 표정처럼 맑고 투명한 뜻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끈질긴 인내력을 가진 내 의도가 포함된 검은색이었다. 그녀를 받아들이면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그녀가 술장사하는 여자라는 점이었다. 미끈한 외모에 어울리는 옷으로 치장한 후에 짙게 화장한 얼굴로 그녀가 조명아래 서 있으면 허한 가슴을 가진 남자들이 불나비처럼 몰려들었다. 어떻게 하든 한번이라도 그녀를 자빠뜨리려는 남자들이 돈을 뿌리며 추근추근 대면 그녀는 노련하게 그 사이를 여우처럼 빠져 다녔다. 때로는 축축한 목소리로 아양을 떨고, 마음을 빼앗긴 척 하고, 쌀쌀맞게 토라지기도 하고, 밤에 몸을 허락하겠다는 듯 은근한 태도도 보이며 재주를 부렸다.
내 생활은 변함없었다. 그녀의 가게나 방에 불쑥 들리지 않는 초연함은 기다림이 내포된 행동이었다. 일단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그녀의 상태를 짐작한 후에 가게에 들려 저녁을 먹거나 영업시간 끝난 새벽에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 하고, 그녀가 내 수중에 얼마나 들어왔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노련하게 남자 다루는 솜씨로 봐서는 그녀를 스친 남자가 한 둘이 아니었겠고, 지금도 역시 내가 모르는 누구를 사귀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느 날 영업시간이 끝난 후에 불쑥 그녀의 집에 들렸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방에 없었다.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하고 어디를 갔을까, 아니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모텔에 들어앉아 몸을 불태우고 있을까, 캄캄한 그녀의 창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며 생각했다. 겨우 손끝만 붙잡고 나머지 몸이 다 내 수중에 들어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으려 내 의식은 노력했다. 서서히,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내 삶으로 들어올 것이고, 언젠가는 오직 나만 사랑해 달라는 묵시적인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 믿었다. 일단 그녀와의 사랑은 내 문제였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바 없이 내 사랑이 얼마나 그녀에게 향하는가만 주시하여 열정을 발휘할 문제였다.
다음날 그녀가 저녁 식사하러 가게에 오라고 전화했다. 그녀와 밥을 먹으며 나는 어젯밤에 어디 갔었냐고 일부러 묻지 않았다.
“이 생선 말이에요. 당신에게 싱싱한 것을 해 주려고 일부러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가서 펄펄 산 놈으로 사온 것이에요. 맛있죠?”
마치 신혼부부인양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생선 살점을 뚝 떼어 입에 넣어주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반짝거리는 눈빛은 해맑았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는 빛이 온통 하나로 뭉쳐 흔들렸다. 가슴이 쩍 갈라지며 그 한 가운데로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제발 사랑만 자라다오. 질투는 자라지 말아다오. 상대가 나에게 심복하여 오직 나만 바라보며 살 때까지 질투는 참아다오. 고개를 슬쩍 돌리며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재혼이란 조심스런 일이다. 그녀는 석녀였다. 이십 대에 결혼생활을 한 경력을 가진 그녀는 원래 아기를 갖지 못했다. 자식이 딸리지 않은 여자와의 재혼은 부담 없는 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불안정해 보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술장사도 집어치우게 해야 했고 처녀총각의 결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한 틀을 잡아서 결혼식은 올려야 했다. 아파트 전셋돈이라도 마련하고 살림살이를 들여놓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몇 개월이 걸릴지는 몰랐지만 그 동안에 얼마나 그녀를 내 수중으로 끌어들일지 장담할 수 없었다. 혹시 술장사하는 여자에게 미쳐서 나만 껍적껍적 대다가 그냥 고꾸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말한 사랑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물론 사랑의 허상일 수도 있다. 내가 만들어낸 사랑의 허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제정신을 차릴 것이고 그때까지 그냥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헛발질이라도 좋다. 내가 좋으면 그냥 내 사랑일 뿐이라는 오기가 생겼다.
며칠 동안 건설현장에 있다가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에 취해 있었다. 잠결에 들리는 벨소리에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자기야, 나야. 나 오늘 술을 많이 마셨어.”
새벽 두 시쯤에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흐느적흐느적 거렸다. 그냥 방에서 푹 자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잠에 떨어지는 순간에 희미한 기억 속에 그녀가 나를 처음으로 방에 끌어들인 날 밤이 생각났다. 그때에 바로 이런 목소리였다. 사정하는 듯, 내가 불쌍해 죽겠다는 듯 처연한 목소리로 내 옷을 빨아주겠다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나를 꼼짝 못하게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그녀가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일부러 24시간 슈퍼에 들려 콩나물과 파를 샀다. 아침에 뜨겁고 시원한 국물이라도 끓여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자동차를 그녀의 골목 입구에 세워놓고 처벅처벅 막다른 곳까지 걸어가 그녀의 방 앞에 섰다. 아직 잠을 안 자는지 그녀의 창문에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문고리를 잡아 살짝 돌리자 맥없이 그냥 돌아갔다. 문을 쓱 열면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몸은 우뚝 굳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낮선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알몸으로 붙어있던 두 사람이 쩍 갈라지며 굳어진 내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어떤 판단을 내리려 나는 애썼다. 저 여자가 말한 사랑의 현주소는 도대체 어디인가, 낮선 남자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얼른 옷을 찾아 입는 중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몸을 돌려 나오려는데 그녀가 술에 만취한 목소리로 여보 하며 나를 불렀다. 못 들은 척 한 발을 문지방 너머로 내딛는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달려오더니 내 옷자락을 확 잡아끌었다. 그 순간에 낮선 남자는 그림자처럼 내 곁을 스쳐 밖으로 후다닥 튀어 나갔다. 찰싹 하는 소리가 채찍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뺨따귀를 날린 것이었다. 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방바닥에 쿵 나가떨어진 그녀는 꾸물꾸물 몸을 뒤틀고 있을 뿐 울지도 않았고 말도 없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왈칵 앞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여자를 때린 것이었다.
왜 그녀를 버려두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별안간 닥친 혼돈에 어찌 할 바를 몰랐는지 아니면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가 너무 애처로웠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알몸으로 쓰러져 반쯤 눈을 내리뜨고 하얗게 질린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쌍년이...... 정말 내 속을 다 뒤집어 놓을 년이......”
이를 갈면서 내뱉어지는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그녀를 끌어안아 침대에 눕혔다. 부엌에서 물수건을 만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초점이 흐려진 눈을 반쯤 뜬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치 정말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목을 끌어안으려 했다.
“자기야, 사랑해. 정말 사랑해.”
이것은 뻔뻔함도 아니었고 거짓말도 아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혼돈이었다. 만취하여 비몽사몽 내 품을 찾아드는 그녀를 밀치며 나는 밤새도록 서성거렸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