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결혼한지 1년 반정도 된 일하며, 공부하며 살림하는 주부예요.
결혼전 포악한 성격의 시누때문에 고민하다. 여기에 글올려 톡에 오른적이 있어요.
그 때 읽으신 분들이 다들 오빠가 여동생을 잡아야한다고 충고해 주신적이 있어요.
이제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우선은 사건의 정황부터 진술서작성한걸 토대로 옮겨적을께요.
글이 좀 길어서 죄송해요.
2005년 7월 24일
(오후5시경)
시누로부터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겠다는 얘기와 욕설이 가득한 문자를 남편의 핸드폰을 통해 받았다. 기분이 상해 그 뒤로 걸려오는 시누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아봐야 또 욕을 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오후6시경)
그 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시누가 엄마를 만나러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고,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께 시누를 말려달라고 전화를 드렸으나 시어머니는 시누를 말리시지 않으셨다. 남편과 난 단지 시어머니께서 시누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해주시기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그 뒤로 친정엄마에게 여러 번 전화를 받았다. 시누가 4번 정도 전화를 했는데 막말을 하더라고 친정엄마는 많이 화가 나 계셨다. 시누가 ‘그 애미에 그 딸년이구만’이라고 말하고 또한 ‘딸을 시집보내려면 교육을 똑바로 시켜서 보내라’고 말했다고 친정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신 친정엄마는 이런 얘기는 나이 어린 아가씨가 할 얘기가 아니라 집안 어른들이 하실 얘기라고 타이르시다가 시누의 태도가 너무 당돌하고 버릇이 없어 한마디 안 좋게 한마디 하셨다고 하셨다. ‘사돈처녀나 잘하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항상 내 마음을 아신다고 이해하신다고 하셨던 시어머니께서 어떻게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고 자신더러 어쩌란 얘기냐는 말씀을 하시는게 서운하고 시누에 대한 감정이 더 나빠졌다.
전화 내용을 함께 들은 남편이 화가 나서 시누와 통화를 했다. 나 또한 많이 화가 난 상태였다. 결혼 전부터해서 지난 2년 동안 시누와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각났고 그때마다 시어머니께서 내게 참으라고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며칠 후(2005년 7월 27일) 무릎관절에서 종양제거수술을 받으실 친정엄마의 컨디션도 걱정되고 앞으로 어찌 친정엄마 얼굴을 볼 지 이래저래 걱정스럽고 화가 많이 났다.
남편이 시누와 통화하고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던 시누가 차를 돌려 공주 집으로 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시누가 공주로 오는 동안 난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친정 오빠와 통화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시누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시어머니께 전화 드려 이런 상황을 설명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왜 시누의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우리를 탓하셨지만 그 동안 시누가 어떻게 했는지를 안다면 그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오후7시가 조금 지났다)
그러는 동안 시누는 공주에 왔고 남편에게 신관동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남편은 여기가 신관동인데 어디로 나오라는 말이냐며 정확한 장소를 말하라고 했다.
시누는 잠시 후에 다시 전화 해서 신관동 술집이 있는 거리로 오라는 것이다.
남편은 이런 상황에 술집에서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냐며 남편은 화를 냈다.
시누는 다시 잠시 후에 ‘난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온 거지 너랑 얘기하러 온 거 아냐’라는 전화를 했고 남편은 알았다고 말하며 하고 싶은 애기가 있음 아파트 근처로 오라고 했다.
잠시 후 시누는 다시 아파트 근처에 가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오후7시 30분경)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남편에게 시누는 아파트 상가로 오라고 했다. 남편은 그 전화를 받고 나갈 준비를 했고 나 역시 시누에게 할 말이 있어 함께 나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남편은 먼저 가겠다고 뒤에 오라면서 상가쪽으로 빨리 갔고 난 우체통확인을 하고 나오는데 우리동 주차장으로 언덕에 시아버지차가 보였다. 평소에도 차에 관심이 많아 차의 어느 한부분만 봐도 그 차가 무엇인지는 대강 알아볼 수 있는 내가 앞쪽 헤드부분이 특이한 EF소나타를 알아보는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또한 그 차가 시아버지 차라는 느낌이 들었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상가 쪽으로 간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난 남편에게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시누가 관리실을 돌아 5-6라인 현관오른쪽(내 입장에서)에 주차를 했다. 그 때 난 5-6라인 현관에서 3-4라인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중간쯤에 있었는데 시누가 운전석 유리창을 내리며 살짝 비웃으면서 ‘야! 넌 인사도 안하냐?’라며 내게 말을 했다 내게 ‘야’라고 부르거나 욕을 하는걸 들은 건 한 두번이 아니지만 이 날은 친정엄마에게까지 그런 상식적이지 못한 일을 했다는 것에 화가나 ‘닥쳐’라고 대답을 하고 남편을 찾으러 상가 쪽으로 걸어가는데 3-4라인쯤 갔을 때 시누가 차문을 열고 ‘너 오늘 디져봐라’면서 뛰어와 내 머리를 잡아끌었다. 난 5-6라인 현관 옆 화단까지 끌려갔고 시누는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고 주먹으로 왼쪽 머리를 쳤으며 어깨도 주먹으로 치는 등 그렇게 폭력을 휘두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난 그 때 많이 어두운 상황은 아니였지만 안경이 폭력상황에 날아간 상태에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것 같다고 느꼈다. 그냥 남편만 불렀다. 남편이 와서 얼른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랬다. 남편도 내 비명소리와 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맞고 있을 때 남편이 왔고 남편은 말리려고 했으나 시누와 함께 온 친구 두 명에게 양팔이 잡혀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누를 구타했고 남편이 시누를 구타할 때도 시누의 친구들은 남편의 양팔을 잡고 다른 쪽으로 끌어내려했고 그러는 와중 시누는 다시 내게 달려들어 폭력을 휘둘렀다. 이런 상황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시누를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되자 친구들은 시누와 남편사이를 말리기 시작했고 난 시누로부터 풀려나 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순간 난 친정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내려와 달라고 했다 무섭다고 죽을 뻔했다고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친정오빠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당장 내려오겠다고 했다. 난 그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을 말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남편을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남편이 올라왔고 시누와 친구들은 그 후로도 계속 1층 현관을 떠나지 않고 계속 왔다갔다 거리고 시끄럽게 했다. 폭행을 당한 후라 공포스러워 내 눈에 안보이기를 원했다.
(오후8시경)
112에 신고를 했고 시누에게도 신고했음을 알렸다. 난 경찰을 불렀다고 하면 그냥 갈거라 믿었다. 그런데 시누는 경찰이 올 때까지 아래에 있었고 경찰이 오자 더 시끄러워졌다. 남편이 내려갔고 소란스러운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상황이 더욱 시끄럽게 되어 남편은 사건 처리를 하기로 하여 파출소로 이동을 하게 되었으며 경찰이 날 설득해서 내려오라고 했다. 내려가서는 경찰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고 시끄럽게 소란피우는 시누를 어쩔 수 없어 지구대로 가게 되었다.
시누와 시누친구들은 경찰과 함께 갔고 나와 남편은 화단에서 안경을 찾고 만약을 위해 뽑힌 머리카락을 들고 갔다. 지금까지도 시누는 거짓말로 날 당황스럽게 했던 일이 자주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휘말리지 않으려고 모든 증거물을 다 들고 갔다.
신관지구대에 도착하니 시누는 폭행당했다며 욕설을 퍼부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찰은 내게 맞으셨냐고 질문하였고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정황을 경찰에게 다시 설명했다. 난 내가 당했던 일과 본 것을 그대로 말했다. 그러던 중 건너편에서 욕을 하던 시누가 일어나 내게 걸어오며 다시 내게 폭력을 행사하려하자 경찰이 말리며 시누에게 음주측정을 할 거니 측정기를 불으라고 했다. 시누는 술을 안마셨다고 했고 경찰은 술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멀 안마시내고 했다. 난 그때까지도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몰랐다. 경찰은 내가 시누가 운전석에서 주차를 할 때 창문 내려며 그렇게 말했다고 진술한 부분을 음주운전 정황증거로 택했고 내게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내가 경찰 옆에 앉아 그 진술서를 쓰기 시작하자 시누는 ‘저년이 날 음주운전으로 몰아간다‘며 소리를 질렀다 자긴 운전을 안했는데 내가 거짓말을 하는거라며 소리를 질렀다. ’저년은 원래 거짓말을 잘한다‘ ’항상 거짓말로 날 곤란하게한다‘며 소란을 피웠다. 경찰은 내게 고소할거냐 물었고 난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종용했지만 난 시간을 좀 더 끌었다. 시누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거나 그러면 고소하고 싶지 않았다.
시누는 남편을 폭력협의로 고소를 하겠다고 하여 남편이 그때부터 피의자조서를 받았다. 그러면서 시누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자기를 고소했다고 빨리 와달라고 했고 큰아버지께서 오실 거라고 ’니들은 고 난 긴장이 풀려 두피부분의 통증과 목이 아파 누워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청심환을 2개나 먹고 예전에 처방받았던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운전을 할 수 없어 남편이 날 청주로 출근을 시켜주고 남편도 출근을 했다. 난 학교에서 복지사의 양해를 얻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복지실 쇼파에서 쉴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친정엄마와 정형외과를 찾았고 경추 염좌와 다발성 좌상, 두피부 좌상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이 고소된 상태에서 어찌될지 몰라 진단서 발부를 요청했다.
이모님의 도움으로 시누에게 합의서를 받았느나 받는 과정에서 시누는 자기가 합의 해주는거에 감사하라는듯한 문자를 남편에게 계속 보내 남편과 나의 자존심을 짓밟고 마음의 상처를 줬으며 합의를 안 해주면 전과가 생기는 거라고 화나면 합의 안해줄거라는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그런 문자에는 대꾸를 하지 않았고 합의서를 받아본 우린 정말 힘이 빠졌다. 합의서 내용은 ‘2005년 7월 24일 8시경 송00의 언어적폭력에 화가 나 송00에게 달려가 폭력을 행하려 할때 이00이 폭력을 행하였지만 민형사상 아무런 이의를 제시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써 있었다. 자신이 날 폭행했다는 사실을 왜곡했으며 자신의 몰상식한 행동은 제외되고 나의 ‘닥쳐‘라는 한마디를 언어적 폭력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럼 그동안 시누가 보낸 욕설이 가득한 문자와 죽이겠다는 문자는 다 폭언이며 협박인 것이다. 우린 아직 그 문자를 지우지 않았다.
저런 합의서에 남편이 도장을 찍는다면 저런 모든 거짓을 다 인정하는 것이 되며 민사부분에서는 합의서로 해결이 되나 형사부분에서는 단순폭력범이 되는蹈?난 긴장이 풀려 두피부분의 통증과 목이 아파 누워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청심환을 2개나 먹고 예전에 처방받았던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운전을 할 수 없어 남편이 날 청주로 출근을 시켜주고 남편도 출근을 했다. 난 학교에서 복지사의 양해를 얻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복지실 쇼파에서 쉴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친정엄마와 정형외과를 찾았고 경추 염좌와 다발성 좌상, 두피부 좌상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이 고소된 상태에서 어찌될지 몰라 진단서 발부를 요청했다.
이모님의 도움으로 시누에게 합의서를 받았느나 받는 과정에서 시누는 자기가 합의 해주는거에 감사하라는듯한 문자를 남편에게 계속 보내 남편과 나의 자존심을 짓밟고 마음의 상처를 줬으며 합의를 안 해주면 전과가 생기는 거라고 화나면 합의 안해줄거라는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그런 문자에는 대꾸를 하지 않았고 합의서를 받아본 우린 정말 힘이 빠졌다. 합의서 내용은 ‘2005년 7월 24일 8시경 송00의 언어적폭력에 화가 나 송00에게 달려가 폭력을 행하려 할때 이00이 폭력을 행하였지만 민형사상 아무런 이의를 제시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써 있었다. 자신이 날 폭행했다는 사실을 왜곡했으며 자신의 몰상식한 행동은 제외되고 나의 ‘닥쳐‘라는 한마디를 언어적 폭력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럼 그동안 시누가 보낸 욕설이 가득한 문자와 죽이겠다는 문자는 다 폭언이며 협박인 것이다. 우린 아직 그 문자를 지우지 않았다.
저런 합의서에 남편이 도장을 찍는다면 저런 모든 거짓을 다 인정하는 것이 되며 민사부분에서는 합의서로 해결이 되나 형사부분에서는 단순폭력범이 되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맞고 있었고 몰상식한 행동을 한 시누의 행동을 훈계하려 때린 것이었을 뿐이다. 시누는 나와 2살이나 차이가 나고 손아래시누가 어떻게 자신의 오빠와 내게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시누는 결혼 전부터 나와 사이가 안 좋았다. 시누와의 문제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상황까지 진행되었다. 이 상황은 시부모님은 물론 친정엄마도 알고 계신 상황이었다. 남편의 설득으로 결국 결혼을 하였다. 그 뒤로 시누의 폭언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나의 원망을 들어야했다.
시누는 내게 욕을 하고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시부모님은 내말보다는 시누의 말을 신뢰하셨다. 그러는 동안 난 시부모님과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난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결혼할 당시에도 부모님과 함께 천안에서 생활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이사할 집을 알아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결론은 시누의 반대로 우리는 공주에 따로 살고 부모님은 그냥 현재 신부동 아파트에 살기로 하셨다.
생활비 문제 또한 부모님과 의견이 달랐다. 남편과 나는 우리 힘으로 살고 싶었다. 결혼을 하면 경제적 독립이 되어야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누가 어떤 꼬투리를 잡을지도 내심 걱정이었다. 그 때 시아버지께서는 그냥 받으라고 하셨고 시어머니께서는 그냥 받아서 적금을 들던지 멀하던지 상관하지 않으시겠다며 받으라고 하셨다. 또한 농담으로 하신 말씀인지 진심이셨는지 현재는 헷갈리는 말씀이지만 우리아들이 돈 못 번다고 니가 구박할까봐 걱정되니까 받으라고 하셨다. 그 당시 남편은 대학원생이었지만 연구비를 받고 있었고 나 또한 직장이 있어 둘이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수입이 있었다. 난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도 그냥 받자고 해서 남편에게 ‘난 상관하지 않을테니 오빠가 알아서 해라. 또한 이후 돈 관리는 오빠가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부모님께 돈 받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기에 돈 관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돈이 얼마나 어떻게 오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또한 시어머니께서는 ‘우리아들이 원래는 공부를 잘해서 00대 갈 정도가 아니였다’ 하시면서 ‘00대 안 갔으면 너 못 만났을거야’라고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 시누가 ‘엄마가 그러는데 오빠가 00대만 안 갔어도 저딴 년 안 만났을거라고’ 했다며 친정엄마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시누가 결혼 전에 내가 시누 핸드폰 명의로 막말을 했다는데 그 자리에는 남편친구와 함께 3명이 있었고 3명 모두의 기억이 똑같다. 난 다만 남편이 시누핸드폰 명의가 시어머니로 되어있으니 어머니께 명 자체를 본인 걸로 돌리게 해야겠다고 말하길래 ‘그래? 어머니 명의야? 핸드폰쯤은 보통 다 자기명의로하지 않나?’ 이런식의 발언을 했었다. 시누는 이런 나의 발언을 왜곡해서 시부모님께 전했고 이 일로 난 또 다시 곤란한 처지에 처한 적이 있었다.
시누는 결혼이후에도 나와 사이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다. 시누는 내가 밤새워 제사음식 준비를 할 때도 나가서 술 먹고 들어오고는 했다. 음식준비 혼자하는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다 허나 ‘간이 짜네 싱겁네 이런 얘기를 하며 할려면 좀 취향에 맞게 좀 하라‘고 말하고 티비를 보거나 자기 방에서 자거나 시동생과 컴퓨터게임을 했다.
그나마 내가 제사음식을 할 때는 욕설도 하지 않았고 내 행동에 괜한 시비도 걸지 않아 난 차라리 그게 편하다고 느꼈다.
시누와의 관계를 그렇게 악화되어가면서 난 시댁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는데 시누가 받은 적이 있는데 시어머니께 전화를 바꿔주며 ‘오빠마누라여‘라고 하며 바꿔주거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바꿔주곤했다. 그 다음부터는 전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전화할 때 그냥 바꿔 달라고 해서 통화를 했고 어머니는 항상 아무 일도 없다고 하셨고 괜찮다고만 하셨다.
시누 생일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다음에 돌아왔고 난 그때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도 졸업과 취업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시누생일에 연락 안했다고 시누는 그게 서운하다고 어떻게 자기생일에 연락 안하냐며 폭언을 하였다.
지난 시어머니 생신날이 나의 졸업논문 자격검정시험일과 겹쳤다.
대학원 전체에서 잡는 일정이라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해도 개인이 일정을 조절 할 수는 없었다. 난 한달 전부터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시험일이 그 날이라고 어머니께서도 시험 잘 보라고 하셨고 시험공부 할 시간이 적어서 어쩌냐고 염려를 해주셨다.
난 시어머니께 생신엔 시험마치고 천안 가서 가족끼리 식사를 하던지 아니면 제가 미역국을 끓여드리겠다고 얘기를 했다. 시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지도 얼마 안되고해서 요란스럽게 생일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나와 남편은 그냥 선물을 해드리고 시험 끝나고 가서 저녁을 가족끼리 먹는 걸로 생각했는데 어머니 생신 전날부터 시누의 전화와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당장 와서 음식해라, 그깟 시험이 엄마생일보다 중요하냐 당장 와서 하라’고 난 시험 때문에 못 간다고 어머니께도 양해를 구했다고 얘기했다.
그 후로는 욕설을 하며 자기가 생일상 차릴거니까 오지 말라고 문자가 왔다. 또한 문자로 ‘오빠만 오면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데 그년(나) 보면 줬던것도 뺐고 싶은 심정이라고 오빠만 집에 왔음 좋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기분이 상할 데로 상했다. 그 날 남편은 먼저 시댁에 그 날 갔고 난 시험이 끝나고 오후 5시경에 전화를 드렸다. 지금 시험이 끝나고 나왔는데 어머니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더 이상 아가씨가 하시는 폭언을 참을 수가 없다고 마주쳐서 싸우고 싶지도 않고 모욕스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차라리 다음에 보자고 하셨다.
시누는 내가 시험공부를 한다거나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더 많은 욕설과 모욕스러운 언행과 문자를 보내왔다.
시누는 현재도 무직 상태이고 고등학교 졸업후(8년, 생일이 빨라서 80년생이지만 79년생과 함께 학교를 다님) 아르바이트 조차 해본적이 없이 부모님게 용돈 타서 친구들과 술마시고 놀러다니며 세월을 보내고 있어요. 폭력전과가 있어서 취업도 안되는 상황이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 생각 조차 없여요. 2년동안 이력서를 냈다거나 면접을 봤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없어요.
시댁 어른들 중 어느 분도 시누와 얘기하는걸 꺼려하시고 작년 11월에 시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시고는 시누가 점점 더 포악해져 가는거 같아요.
시누는 처음부터 저를 싫어했어요. 함께 술마시거나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기를 원했는데.. 저는 술이 원체 약하구 또한 직장생활(파트타임)을 하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시간적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요. 시누와 저는 무엇하나 비슷한 취향이나 삶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처음부터 제가 시누를 그냥 무시하거나 방관한건 아니예요 처음에는 친해보려고 술자리도 가져보고(전 탄산음료)했지만 결국은 남편과 시누의 싸움으로 끝나더군요. 명품을 좋아해서 선물도 해줘봤지만 선물의 효과는 2일정도 지속되요.
어제 시댁어른들과 상의하여 모여서 의논하기로 했으나 시누는 일이 있어 집에 있을수 없다며 밖으로 나가 만날수 없었어요.
이 상황에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시누에 대한 얘기가 부족한것 같아 좀더 추가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시누때문에 결혼전에 썼던 글을 찾았습니다. 9902번 글이더군요..하나하나 페이지를 넘겨가며 찾았는데..이글 보시는 분들께 그거까지 찾아서 읽어달라고는 못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