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과 함께 방중선의 몸에서 내품는 살기에 위연은 순간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곁에 있던 총관 왕방 역시 방중선의 기도가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달리 몇 십 배 강력함에 놀랐다. 결코 방중선이 공자님이라고 불렀던 사람과 비교했을 때 결코 한 치도 뒤지지 않는 강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위연은 처음 방중선이 왕방과 함께 혼자 들어섰을 때는 또 다른 실력자가 어딘가에서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방중선의 실력이 자신을 이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들어왔던 터라 방중선이 아닌 제삼의 인물이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부하들을 박살낸 자는 이미 자리를 떠났고, 이 자리에는 방중선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왕방의 태도도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그렇다면 저 별 볼일 없는 방중선을 이 자리에서 죽이고 난후에 시간을 가지고 전열을 정비한 후에, 더불어 자기가 직접 재정후원을 하고 있는 무림맹주를 비롯해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력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꺼져가는 불씨를 살릴 수도 있을 거란 야무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 방중선이 보이고 있는 기도는 무림맹주의 그것에 비견될 수 있는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너는 필요이상으로 말이 많은 놈이구나!”
잠시 강력한 예기로 위연을 노려보던 방중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다. 지난 십오 년 동안 왜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 가셨어야 했는지 참으로 궁금했었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것은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떤 분의 것이지, 결코 아버지의 유품은 아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결코 자신이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고, 때문에 그물건의 진정한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내게 주시지 않고 어머니가 보관도록 하셨다. 그리고 내게는 ‘이것의 탐나느냐? 하지만 결코 이것은 너의 것이 아니다. 너의 할아버지도 이걸 나에게 주시면서 똑같이 말씀하셨다.’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 뒤로는 그 물건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지냈다. 왜냐고?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제 것이 될 수 없는 물건에 욕심을 부리는 건 말이야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방중선은 말을 마치고 천천히 검을 빼들었다.
“바, 방 사범!”
“왕 총관, 넌 남아서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나서지 마라!”
방중선의 말투는 완전히 변해있었다. 그만큼 분노에 차 있다는 소리였다.
“해, 해보겠다고!”
방주 위연은 온몸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방중선의 기세에 소름이 돋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세워 보고자 했으나 말소리부터 떨리며 그의 생각을 배반했고, 방중선이 겨누고 있는 검의 예기에 오금이 저려 쉽게 냉정을 찾을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어서 잘못을 빌고 목숨이라도 구하라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내가 여기를 어떻게 이룬 건데! 이것으로 상대해 싸운다면 쉽게 패하진 않는다.’
위연은 손에 들고 있는 접부채를 고쳐 잡았다. 상대가 가진 무기 보다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허, 이것 봐라!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생겼군. 에고, 그게 아니네! 그때보다 방 사범의 내력이 한층 높아졌는데, 저놈은 뭘 믿고 저렇게 설쳐대는 거야? 그냥 ‘살려줍쇼.’하고 무릎 꿇고 비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이야!’
대들보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던 정민은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전개가 아주 흥미로웠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품에서 물건들을 하나씩 빼들고는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이어서 방중선이 화를 내며 칼을 빼어들었다. 왕방이 끼어들려다 방중선의 한마디에 찔끔하여 멀찌감치 물러났고, 위연의 주위에 있던 자들도 모두 눈치를 보며 뒤꽁무니를 뺐다. 자연스럽게 맞선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거의 방중선의 일방적인 기세에 위연은 밀리고 있었다.
‘저거 방주 맞아! 기껏 저따위가 그렇게 큰소리쳤단 말이야?’
조금 전까지 흥미롭게 바라보던 정민은 실망했다. 그래도 명색이 무림방파의 우두머리인데 저렇게까지 형편없는 내공을 가진 자일 줄 몰랐다. 한심하기까지 한 내공을 가지고 이런 단체를 이끈다는 것이 도대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민의 생각일 뿐이었다.
정민이 깨어난 이후로 만난 무림인은 방중선뿐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이 가진 내공과 비교할 상대는 방중선이 유일했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방중선이 가지고 있는 내공은 거대문파의 장로급이상이었다. 거의 일 갑자 반, 즉 백년 이상에 이르는 내공을 가진 방중선이 일개 가문의 호위무사 사범으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방파의 우두머리쯤 되면 적어도 자신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민자신이 가진 내공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대충 따져보면 방중선의 두 배는 넘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몸을 숨기고 지켜보는 이유도 혹시 방중선이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상황은 아이와 어른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처럼 결과가 훤히 보이기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자신이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켜보자니 영 내키지 않았다.
‘에고, 저놈도 참 불쌍하게 됐군!’
정민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위연은 왼손에는 그의 특기인 응조수를 쓰기위해 철갑피를 끼고 있었고, 오른손에 쥐고 있는 부채에 기가 주입되자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돌기 시작했고, 냉기가 정민이 있는 곳까지 전해왔다.
‘햐, 저것 봐라! 신기한 부채로군. 저 부채로 부치면 무지 시원하겠는걸. 냉풍기가 필요 없겠는데’
두 사람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상하게 방중선이 제대로 공격을 못하고 번번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부채를 쥐고 있는 위연의 오른손이 휘둘러 질 때마다 냉기로 인해 흰 연무가 발생하며 방중선의 시야를 방해했고, 검과 부딪힐 때는 냉기가 검에 전해져서 손이 저려올 정도였기 때문에 방중선을 제대로 된 공격도 못했다. 신병이기의 이점을 살린 공격과 수비로 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위연은 시작 전의 위축된 모습과는 달리 원래가진 힘 이상으로 위력을 발휘하였다. 싸움이 생각과는 다르게 전개되자 흥미를 잃었던 정민은 관심을 갖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뭐야 저건!’
지켜보고 있던 정민은 싸움에 대한 생각보다는 위연의 손에 잡혀있는 부채에 눈이 갔다. 접부채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원래 고려시대 때 만들어져 중국에 전래되었고, 합죽선에 그림과 글씨가 더해져 풍류와 멋을 더하게 되면서 귀족들의 신분과시용으로 빠르게 전파 된 것이다. 위연의 손에 있는 접부채는 겉으로 보기에 검은색을 띠고 있었지만 기를 주입하면 푸른색으로 변했고, 휘둘러 질 때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정민의 눈에는 그림이 보였다. 정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 그림이었다.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동물 같기도 했으며, 때로는 오래된 기형 목처럼 보였다. 부채가 만들어 내는 그림을 정민은 신기한 듯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저런 부채 특허내서 팔면 벼락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림이 휘둘러지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다니. 색도 수시로 변하고…, 완전 대박 상품인데!’
지켜보던 정민은 위연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위연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방중선의 다분히 의도적인 움직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윽, 왜…?’
위연은 자신의 기가 무언가에 이끌려 한없이 빨려나가는 것에 놀라 방중선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대결 중에 공세를 거두고 물러나는 자에게 역습은 필수다. 하지만 방중선은 물러나는 위연을 공격하지 않고 검을 거두었다.
“이제야 알겠는가? 네 것이 아닌데 욕심을 부렸으니 그 정도는 각오 했어야지. 그건 신병이기(神兵利器)라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면 가진 자에게는 해가 있기 마련이다. 왜 내가 적극적으로 너와 싸우지 않은 이유를 아는가?”
“크윽, 풋…!”
말을 하려고 위연이 입을 열자 지독한 내상을 입은 듯 검은 피가 품어져 나왔다.
“마로 그거다. 난 지금까지 네가 그 부채의 진정한 주인 될 자격이 있나 시험해보았다. 네가 부채의 진정한 주인 될 자격이 있다면 그걸 쓰면서 그런 내상을 입을 리가 없겠지. 지금 너는 네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린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부채를 버려라. 그렀지 않으면 회복 못할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읍, 이, 이런 제기랄! 내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아느냐. 자 받아라!”
다시 목을 타넘어 오는 핏물을 삼키고 부채를 펼쳐 방중선을 겨누었다. 부채에 차가운 기가 서리더니 주위에 있는 공기속의 수증기가 응결되어 안개처럼 서렸다.
“음, 죽음을 자초하는군!”
“으, 으윽!”
방중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위연의 몸은 흰 연무 속에 완전히 싸여 보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어허, 결국…! 왕 총관, 방주의 목숨을 살리려던 당신의 노력은 실패한 것 같소.”
“그, 그렇군요!”
두 사람의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흰 연무에 가려 졌던 위연의 몸이 들어났다. 머리엔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성에가 끼어 있었고, 입가에 흐르던 피가 고드름이 되어 턱에 매달린 채 방울방울 녹아떨어지고 있었다. 정민은 보고도 믿지 못할 현상을 일으킨 부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연이 죽는 순간 생긴 연무 때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부채를 잡고 있는 손끝에서부터 얼기 시작해서 몸 전체가 얼어버리는 특수효과가 삽입된 영상 같은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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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