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내공을 잘 갈무리했다하여도 전음술인 어기충소 같은 무공을 시전하려면 기의 흐름이 감지되게 마련이고 아무리 잘 숨겨도 고수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기 흐름을 숨기기는 어려웠다. 헌데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무공이 약하다면 이해가 되지만 차기 소림의 장문인으로 주목받을 정도의 무공실력에 자부심도 많았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머리를 흔드는 전음이 끝나자마자 그자의 경고대로 갑자기 기혈이 뒤틀리며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흐트러져있기 때문인가? 하기야 그의 후예라면…! 그래도 이놈을…. 에고, 아직도 내 수양이 부족하구나!’
대정은 끓어오르는 분기를 잠재우며 운기에 전념했다. 다시 한 시진이 흐르고 어느 정도 내상을 회복한 대정은 사당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사당 주변 이곳저곳을 살피며 사람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고, 둘러봐도 사당 주변에 사람의 흔적은 단 하나, 자신의 것밖에는 없었다.
‘허어, 참으로 고단하고 황당한 하루로고나…! 저, 저거…?!’
대정은 한숨을 쉬며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쳐다보다가 잣나무의 가지 끝이 부자연스럽게 휘어 있는 것이 분명 누군가가 딛고 서있었던 흔적으로 보였다. 흔적을 발견했다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잠자리가 앉아도 휘어질 것 같은(?) 가지 끝에 서있을 수 있는 고수가 몇이나 될지 헤아려보았다. 자신도 그럴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불과 약관을 갓 넘긴 사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 분명 그는 천부정검과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산파 조 장로의 말이 아무래도 걸리는군. 하지만 분명 그가 본건 실혼인이 아니면 강시였다고 했지 않은가. 천부의 맥은 완전히 끊어졌다, 분명히….’
대정은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최상의 경공술을 발휘해 숭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에고, 저 스님이 소림사 스님이란 말이군! 그런 줄 알았다면 그렇게 심하게 손을 쓰진 않았을 텐데. 하여간 미안하오!’
대정이 서있던 자리에 정민의 모습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실 정민은 멀리 간 것이 아니라 바로 대정의 곁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무공을 익히는 자들은 - 단, 분심양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정민을 비롯해서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최강의 고수들을 제외하고 - 운기를 하는 동안이 제일 취약하다. 그래서 운기를 하는 동안은 호법을 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호법을 정민이 서주었던 것인데 대정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럼 이제 저놈들을 풀어주고 내 갈 길이나 가야겠다.’
정민은 대정의 뒤를 쫓던 흑사대를 모두 제압해 두었던 것인데 그 수법이 아주 철저해서 대정은 불과 오 장 거리에 있는 그들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열다섯 명의 흑의복면인들을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딘가 모르게 보면 볼수록 언젠가 본 것 같은 복장이었기 때문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어디서가 본 것 같은데…. 깨워서 물어볼까?’
한 놈 정도 깨워서 이들의 정체를 알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더 이상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에 그냥 돌아서기로 했다. 짝퉁선녀에게 무공을 만들어 주면서 깊이 깨달은 것(?) 때문에 모든 일을 대할 때 조심스러워지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을 잃고 있는 자들의 수혈을 뺀 나머지 혈들을 풀어준 정민은 쓴웃음을 짓고 소림 승려가 사라진 방향으로 터덜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저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지도 모르고 깨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괜히 승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신 이런 일에 말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아무도 없는, 아니 풀벌레와 들짐승의 울음소리와 기척을 벗 삼아 걷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건들이면 쏟아 질것 같은 은하수를 바라보며 걷는 기분은 문자 그대로 죽여주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긴 꼬리를 남기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빨리 내 정체를 알게 해달라는 것과 짝퉁선녀와의 행복한 재결합을(?) 빌었다.
‘후후, 웃기는군! 부부도 아닌데 재결합이라니….’
얼마를 걸었는지 별빛이 흐려지고 먼동이 터왔고, 마부에게서 들었던 것 보다 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흠, 작은 마을 이라고 했는데…. 혹시 내가 길을 잘못 잡았나?’
정민이 마을에 들어서자 낮선 기척에 여기저기서 개짓는 소리가 들렸다. 걸으면서도 계속운기를 했기 때문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유가장을 나서기 직전에 음식을 먹은 후로 먹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뱃속에 음식을 달라는 아우성 계속되기 시작했다. 새벽이라 문을 연 식당은 없을 거란 생각에 객잔을 찾았다. 하지만 성이 있는 것도 아닌 보통의 시골 마을에 따로 객잔이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비교적 큰 마을이기 때문에 객잔은 없더라도 음식을 파는 집은 있겠지.
‘제기랄, 책에 보면 필요할 때 여기저기 객잔도 많이 나오더니만, 실재로는 눈 씻고 찾아도 없네!’
마을의 중심을 관통하는 대로를 지나 마을의 끝이 보일 때쯤 해서 대문 양쪽에 빨간 등이 매달려있는 집을 발견했다.
‘어, 불이 켜진 홍등이라! 객잔은 없어도 기생집은 있단 말인가?’
사극에서 보면 붉은 등이 걸려있는 곳은 주로 주루로 나온다. 때문에 정민은 대뜸 기생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간 술파는 곳이니 음식도 팔라면 되겠지.’
마침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술 냄새와 함께 쾌쾌한 냄새도 풍기는 것으로 보아 분명 주루라는 오해를 하고 거침없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다 멈칫했다.
‘어, 아닌 가봐…!’
대문 안의 풍경은 술집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꽤나 넓은 마당에 천막이 쳐져 있었고, 거기에는 작은 소반들 위에 먹다 남은 음식과 술을 담았으리라 짐작되는 자기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물론 술에 곯아떨어진 듯 보이는 사내들도 눈에 띄었다.
‘에고, 잔칫집 이었군!’
당황한 정민은 다시 홍등을 살펴보고 술집이 아닌 잔치를 알리는 글자가 쓰여 있는 걸 발견하고 고개를 저었다. 실망한 정민은 괜한 오해를 받기 싫었기에 바로 발길을 돌렸다.
‘어, 등잔 밑이 어두웠구나! 바로 코앞에 두고 엉뚱한 곳에 들어갈 뻔했군.’
바로 길 건너편에 객잔이 보였다. 이른 새벽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객잔 안에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럴 때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어 좋군. 좀 더 연습해서 박쥐 수준이 된다면 누구에게든 기습을 당하진 않겠다. 이 시대에 총알 보다 빠른 무기만 없다면 나에게 피해를 줄 암기는 없겠지, 후후!’
- 쿵쿵!
“누구 없소!”
정민은 문 앞에 다가가 두드리며 사람을 불렀다.
‘어라,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뭘 하려는 거야?’
객잔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정민은 귀를 기울여 객잔 안을 살펴보았다.
‘오호, 이것들 봐라! 숨바꼭질이라도 하겠다는 얘긴가? 그렇게 숨으면 내가 못 찾을 것 같으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객점 안에는 이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셋을 빼곤 몸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내공이 상당한 고수도 다섯 명이나 있었다. 내공이 강한 자들을 빼곤 모두들 적당한 엄폐물을 이용해서 몸을 숨기며 약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정민의 귀에만 그렇게 들렸지, 웬만한 고수들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정도의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 쾅쾅!
“누구 없소! 그냥 요기만 하려고 하니, 문 좀 열어주시오!”
내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그냥 갈까 했지만, 어제 저녁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욕구가 결국 판정승을 했다. 시비만 붙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더 큰소리로 두드리고 소리도 질렀다. 몇 번 더 문을 두드리고서야 비로소 객점 안에서 반응이 있었다.
- 거참, 끈질긴 놈이네! 안 되겠소, 이렇게 있다간 더 의심 할지 모르니 대답을 하고나서 적당히 쫓아 보내도록 해야겠소.
- 그럽시다. 이봐, 늙은이!
“예에!”
- 쉿, 조용히! 대답은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았나?
‘어라, 그렇게 한다고 내가 못들을 줄 아는 모양인데, 난 조금 틀리다고.’
- 대충해서 쫓아버려라. 엉뚱한 짓을 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보장 못한다.
‘오호, 인질극까지! 이것들이 골고루 하는군. 갈등생기네!’
누군가의 지시를 듣고 노인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문 앞으로 나섰다.
“누, 누구요!”
노인은 말까지 더듬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민은 잠시 망설였다. 이쯤에서 그냥 물러나 모른척하고 말 것인가, 아님 원래의 계획대로 모른척하고 음식이나 먹고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냥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의 반을 넘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거, 어떻게 생긴 놈들인지 낯짝이나 봐야겠다.’
“밤새 걸어왔소이다. 잠시 쉬었다 가려하니 문 좀 열어주시오!”
- 뭐해, 어서 대답해! 적당히 쫓아 보내란 말이야.
“으흠, 사정이 있어 손님을 받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시오.”
‘제기랄, 괜히 열 받네! 성질나게 하지 마라. 난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단 말이야.’
“노인장, 그러지 말고 간단한 요기라도 할 수 있게 해주시오! 배도 고파서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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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