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공항은 나에겐 흥미로운 곳이다. 눈물을 보이며 출국장 앞에서 이별하는 사람들, 그런가 하면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에 기쁨과 희색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공항이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아무런 감흥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이렇게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언제나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곤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공항 안에 있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있던 내 앞으로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갑자기 나의 시야를 가린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기 위해 고개를 위를 올였다.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썬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예..?"
아가씨라 부르는 호칭이 왠지 조금 미묘하게 들리긴 했지만, 일본이라 한국말에 뉘앙스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금 뒤에 대답을 했다.
그러자 이 남자는 얼른 내 여행가방을 챙기더니
"실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갑시다."라는 말을 남겨두곤 내 캐리어를 끌고 가버렸다.
순간 당황한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그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저기요~! 저기요~~!! 잠깐만요!!"
그 남자는 나를 한 번 힐끔 돌아보고서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한 뒤에 문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앗! 사라졌어!"
순식간에 가방을 빼앗겨버린 나는 당했다 라는 생각에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나 방금 사기 당한거야...???'
갑자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는 세상이야. 너 정신 좀 차리고 살어'를 맨날 외치던 정수의 말이 생각났다.
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아까 보았던 그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혼자였다. 내 가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 가방은 어디있어요?"
"트렁크에 있습니다. 기다려도 안 오시길래 다시 와 본 겁니다."
'뭐...?' 상황 정리는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가장 중요한 가방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우선, 제 가방을 돌려주세요. 조금 있으면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란 말이예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남자의 입이 열렸다.
"못 갑니다."
"네...??????"
"......"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남의 가방도 자기 맘대로 가지고 가놓고.. 내 돈주고 내가 가겠다는 못 간다는 게 말이나 돼요?"
"지금 이 상황에서 아가씨 혼자만 생각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얼른 따라오세요. 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겨두고 아까 갔던 길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저 사람의 차에 내 가방이 있다. 따라가야 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그 남자를 얼른 쫓아갔다.
문 밖으로 따라 나와보니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꽤 좋아 보이는 차를 향해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정신 없이 달려서 그 남자가 운전자석 문고리를 잡는 순간 그 남자의 옷깃을 잡았다.
"잠깐만요. 얼른 제 가방 주세요."
하지만 그 남자는 내 말을 무슨 개가 짓나 하는 표정으로 듣더니 그대로 운전자석에 앉아버렸다. 내가 잡고 있던 그 남자의 옷깃이 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그 남자의 옷깃을 잡고 있던 내 손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거야..'
또 멍해지려는 찰나, 그 남자는 창을 내리더니 "얼른 타세요"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창을 다시 닫아 버렸다.
비행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더 지체를 하다가는 정말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체크인도 했는데..
나는 뒷 좌석 문을 열고 말했다.
"가방 주세요. 시간이 이제 얼마 없어요. 이렇게 실랑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예요."
"안돼요."
"안되긴 뭐가 안되요. 체크 인까지 전부 했고, 그럼 이번에 못 탄 비행기 표값은 아저씨가 줄꺼예요?"
아저씨는 잠시 황당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것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비행기 표값 때문에..?? 그래요. 드릴게요 드려요! 그러니 얼른 타세요. "
나는 비행기 표값을 드린다는 말에 안심하고, 비행기 표값까지 변상해 준다고 하면서까지 나를 급히 데려가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호기심이 발동해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이 차가 나를 곤란한 상황으로 데려 가고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고급차의 안락함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편안한 모습의 나를 보자 그 남자도 백미러를 통해 나를 힐끔 힐끔 관찰하는 대신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