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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축구역사 속 명문클럽 노팅엄 포레스트

에릭 칸토나 |2007.02.28 14:41
조회 296 |추천 0
1978년은 잉글랜드 축구로서는 잊을수 없는 한해였습니다.

바로 노팅엄 포레스트라는 절대강자가 있던 해였죠.

42경기 무패행진을 이뤄내며 리그우승을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른 노팅엄 포레스트

그리고 79년과 80년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뤄내며

세계 최강의 자리에 우뚝 섰었죠.

실제로 이 대단한팀은 좀 어이없는 일로 팀이 망하게되죠

그 이유는 비행기사고로인해 주전선수가 전부죽어서 그렇게 됩니다.

리즈같은경우는 파산으로인하여 강호의 자리에서 내려오게되죠

그당시 노팅엄이 리그우승을 할 당시에 2위는 리버풀이였습니다.





정식명칭 : Nottingham Forest (노팅엄 포레스트)
창단년도 : 1865년
연고지 : 잉글랜드 노팅엄셔주 노팅엄

홈구장 : City Ground

프리미어리그 우승 : 1회 (1978)

FA 커뮤니티쉴드 우승 : 1회 (1978)

FA컵 우승 : 2회 (1898, 1959)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 2회 (1979, 1980)


노팅엄 포레스트는 줄여서 노츠 포레스트라고도 하는데 노팅엄 포레스트 팬들은

그런 줄임말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번 예술 작품(?)도

노팅엄 포레스트라고 포기하도록 한다. 잘 유의하시도록.



노팅엄 포레스트는 1865년에 창단되었다.

비교적 빠른 연대에 창단되었고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팀 노츠 카운티 창단 3년 후에 창단 된 것이다.

그 때 우리 나라는 경복궁 중건을 시작하고 대전회통이 편찬되고 만동묘가 철폐되었던 시기였다. 필자의 엄청나게 부족한 국사 시간 때 배운 역사 지식(?)을 잠시 동원해보았다.



운하 강변에 '시티 그라운드'라는 작은 구장을 짓는 공사를 시작, 1898년 9월 3일 완공, 그 후, 리그에 가입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시민을 위한 구단으로 도약하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바딜이 중요한 일을 하였다. 해리 래드포드가 최초로 감독을 맡았다.



현재 시티 그라운드는 리그 1 소속 팀의 경기장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시티 그라운드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규모 증가에 따른 대대적인 좌석 증가로

현재 30,602명이 수용이 가능하다. 매니아들은 일단, 노팅엄 포레스트의 초기에 대해서는 다 알 것이다.



그 후 꾸준한 발전을 해오면서 선수 영입에도 박차를 들였다.

초반에는 성적이 다소 안 좋았으나 점차 노력해 가면서

드디어, 노력의 결실을 얻는다. 1966/1967 시즌 맨유가 우승하고노팅엄 포레스트는 준우승을 차지한다. 역시 노력의 결과였다.



1966/1967 시즌 준우승으로 당시 규정으로 챔스 리그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후 계속 상위권에 대한 열망을 보이면서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리버풀이 독주였던 1970년대 결국, 1977/1978 시즌 우승으로 챔스 티켓을 따냈다.



그들의 선수진이나 감독은 놀라웠다. 당시 최고의 감독인 클로 감독을 앞장 세워서 골키퍼 실튼, 수비수 안더슨, 번, 클락, 로이드, 미드필더 측면을 맡았던 보이어, 휘젓기에 강했던 프란시스, 중앙 돌파는 최고였던 고벤, 측면의 브리틀즈, 공격수는 로버슨, 우드쿡 등 쟁쟁한 스타들이 많이 있었다.



1978/1979 챔스에서 1차전 상대는 그 당시 챔스와 리그 전 우승팀이자 세계 최강이였던 리버풀, 하지만 그들은 기적을 예고하듯이 1차전 2 대 0으로 가볍게 승리하고 2차전 0-0으로 비겨 종합 2-0으로 2차전으로 진출했다.

이 때. 많은 팬들이 노팅엄 포레스트를 응원했고 극찬했다. 2차전은 AEK와 붙게 되었다. 하지만, AEK는 너무 당시로선 약체였고 허약햤다. 그래서 인지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1차전 1 대 5 2차전 1 대 2로 패배하여서 종합 2 대 7로 노팅엄 포레스트가 8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8강전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를 간신히 꺽고 올라온 그라스호퍼스, 하지만 노팅엄 포레스트의 전형적인 전법인 초반 공격에 그 팀도 무너졌다. 1차전 4 대 1 2차전 1 대 1로 종합 5 대 2로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당시 독일 최강 쾰른과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쾰른은 최강이였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힘들었다.

1차전을 3 대 3으로 비긴 이후 힘든 상대를 만났다고 클러프 감독은 말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 1 대 0으로 승리하였다.

이렇게 해서 결승에 진출하게 된 노팅엄 포레스트~!

창단 처음으로 챔스에 진출해 처음으로 결승가는 순간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분전은 결승전에서 이어졌다.1979년 5월 30일 현지시각 오후 8시 15분,

뮌헨의 올림피아 스타디움에서 펼쳐졌다.

결승전은 오스트리아를 꺽고 올라온 스웨덴의 말뫼와 붙게 되었다.

하지만, 노팅엄 포레스트의 초반 공격 작전은 먹혀들어갔다.

전반 7분도 안 돼 프란시스가 골을 넣었다.

말뫼는 분전에 나섰지만 그들의 수비작전을 뚫지 못 하고 무너져 결국, 노팅엄 포레스트가 챔스 우승을 차지한다.

말뫼의 호그튼 로베르트 감독은 허탈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한편 1978/1979년 시즌에는 리버풀이 우승한 가운데 준우승을 차지해 다시 한 번 챔스에 진출하였다.



그들은 1979/1980 챔스에서 1차전 상대인 외스크르를 맞아 1차전 2 대 0, 2차전 1 대 1로 종합 3 대 1로 가볍게 승리하였다.

2차전 아르게스와의 경기에서는 1차전 2 대 0, 2차전 2 대 1로 종합 4 대 1로 가볍게 승리하였다.



그들은 전문가의 의견과 달리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초반 공격과 수비작전을 써서 많은 팀을 잡았다.

8강전에서 헤르타 베를린을 만났는데 1차전 홈에서 0 대 1로 패배해 노팅엄 포레스트 팬들에게 챔스 사상 첫 패배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2차전에서 3 대 1로 간신히 이겨 종합 3 대 2로 준결승전에 진출한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준결승전에서 네덜란드 최강이였던 아약스와 붙는데 1차전 2 대 0, 2차전 0 대 1로 간신히 또 한 번 결승에 진출한다.



그들은 좀 더 실속있는 축구를 하여 세계 최강에 올랐다. 1980년 5월 28일 현지

시각 8시 30분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결승전이 열렸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스페인 최강 레알 마드리드를 꺽고 올라온 함부르크와

싸운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당시, 건, 오닐, 오하레, 그레이, 밀스를 영입,

더욱 보강하기에 이르렀다. 함부르크의 제빅 브라니슬라브 감독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들은 또, 전반 11분, 로버슨의 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것이 결승골이 되고 말아 또 한번 노팅엄 포레스트는 우승을 차지한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또한,

전 우승팀 다음 시즌 출전 기회로 다음 시즌에도 진출한다.

이 때까지가 노팅엄 포레스트의 최고 전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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