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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테러, 現在진행형

satellite |2007.03.10 02:43
조회 78 |추천 0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美국무부는 3월5일 이틀간 일정으로 시작된 北美관계정상화 회담과 관련,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금지법에 의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크리스토퍼 힐 美국무부동아태차관보는 7일 美北회담을 마친 이후 美NPR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회담에서 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이유와 무슨 일을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면서 『북한이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나면 그 문제를 풀 것』이라고 말했다.

 

對南테러의 목적은 공산화

 

북한은 1987년 KAL858기 폭파테러사건 이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왔다.

북한 테러의 대표적 사례는 「납북(拉北)」이다. 납북, 즉 민간인 강제납치는 「현재진행형」 테러로 불린다. 9만6013명에 달하는 전쟁(戰爭)납북자와 485명의 전후(戰後)납북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단체들이 「납북자 송환 이전에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9명의 자국민이 북한에 납치당한 일본의 아베 수상 역시 『납치는 테러이며, 납치 문제 해결 없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도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테러는 「한반도공산화」라는 체제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테러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은 역저 「국제테러리즘연구」에서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의 부당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북한의 對南테러리즘은 한국의 자유민주체제를 폭력으로 와해하고 남한에 친북연공정부를 세운 후 연방제통일을 통해 전국토를 赤化한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2000년 이후에도 북한은 일련의 새로운 對南테러리즘과 납북자 억류인질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아래는 북한의 6·25이후 주요 테러를 정리한 것이다. 무력도발의 사례는 워낙 방대하므로 제외했다.

 

1. 요인(要人)암살

-1968년 1월21일 ; 북한의 124군부대 소속 31명의 테러리스트들이 박정희 前대통령 암살을 위해 청와대를 기습. 김신조 제외 전원사살.

-1970년 6월6일 ; 북한 간첩 3명이 현충일 방문 중인 朴 前대통령 암살을 위해 현충문에 원격 조종폭탄을 설치. 폭탄이 사전 폭발해 한명이 죽고 나머지 2명은 사살됨.

-1974년 8월15일 ; 서울 국립극장 기념사를 하던 朴 前대통령을 조총련이 포섭한 문세광이 권총으로 암살 기도. 육영수 여사 피살됨.

-1981년 7월 ; 親北캐나다 교포 최중화의 전두환 前대통령 암살계획이 사전 적발돼 캐나다 경찰에 체포됨.

-1983년 10월9일 아웅산 묘소 폭파테러 ; 북한이 파견한 정찰여단 정규군 소속 3명의 테러리스트가 전두환 前대통령 등 정부요인 암살 기도. 각료 4명을 포함한 17명의 한국인이 피살됨.

-1997년 2월15일 ;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인 이한영氏가 북한이 파견한 2명의 테러리스트에 권총 암살됨.

 

2. 항공기 테러

 

-1958년 2월16일 ; 북한 간첩들이 부산에서 서울로 오던 KAL기의 전신(前身) KNA를 납북. 32명의 승객은 송환 기체는 未송환.

-1969년 12월11일 ; 북한 간첩들이 강릉에서 서울로 오던 KAL기 납북. 탑승자 51명 중 39명만을 송환하고, 나머지 12명과 기체는 未송환.

-1970년 4월3일 ; 일본 적군파 9명이 일본JAL보잉727여객기 납북, 김포공항 거쳐 평양으로 감. 북한은 적군파들을 영웅으로 환영하고 피난처 제공.

-1971년 1월23일 ; 북한 간첩이 대한항공 소속 F-27 항공기 납북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침. 간첩이 사살되고, 조종사는 간첩이 떨어뜨린 폭탄을 몸으로 막고 순직.

-1987년 11월29일 ;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김승일, 김현희가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KAL858기 공중폭파 테러. 『88올림픽 방해와 저지가 목적이었다』고 바레인에서 체포된 김현희가 고백.

* 1988년 1월 美국무성, 1979년 수출관리법에 따라 『북한은 국제 테러 행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지원을 제공한 국가』로 판정.

 

3. 납북

 

1950년 6·25남침 이후 「소개(疏開)작전」이라는 명칭 아래 9만6013명을 납치. 남침 직후 석 달(7~9월)간 전체 납북자의 88.2%인 8만4659명이 납북되고, 20~30대 전문직·기술자 등을 중심으로 남성들만 집중적으로 납북(여성은 1.9%)되는 등 철저한 사전 기획 아래 진행. 1958년 이후에는 어로 활동 중인 어부 등 485명을 납치.

-1969년 12월11일 KAL 기장 유병하, 女승무원 성경희氏 등 12명 납북.

-1977년 7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남한부부(윤정희·백건우 부부) 납치 미수.

-1978년 2월7일. 영화배우 최은희·영화감독 신상옥 부부 납북.

-1978년 4월13일 유학중인 고상문氏 납북.

-1978~1979년 한국 홍도, 선유도 여름 해안가에서 이민교, 최승민, 김영남, 이명우, 홍진표 등 고교생 5명 납북.

-1987년 7월20일 미국 유학생 이재환氏 납북. 李씨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다가 2001년 2월16일 통일부에서 사망 통보를 받음.

-1995년 7월24일 안승운 목사 납북.

-1999년 9월17일 중국 단동에서 사업하던 장세철氏 납북.

-2000년 2월 중국 연길에서 선교활동 해온 한국국적의 美영주권자 김동식 목사 납북.

*1978년 日本해안에서 다구치 아예코(이은혜. 훗날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로 일함)를 납치하는 등 19명의 일본인 납북(일본 정부 공식 인정 10명 + 피랍자가족협의회 주장 9명)

 

4. 심리 테러

 

-2000년 6월23일 조선중앙통신 ; 김영삼 前 대통령에게 「인간쓰레기」,「반통일역적인 김영삼놈」, 「시라소니」, 「추악한 민족반역자」, 「인간퇴물」, 「무뢰한 폐륜아」 등으로 비방하며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김영삼 놈과 같이 우리 체제를 해치려는 자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단단히 결산할 것이다』라고 공갈.

-2000년 7월10일 조선중앙통신 ; 이회창 前한나라당총재에게 「리회창 놈의 악의에 찬 망발」, 「첫째가는 민족반역자」,「무지몽매」,「청맹과니」,「대권을 노리는 개꿈을 꾸고 있다」 등으로 비방하며 『역사는 민족대업에 훼방질하는 리회창의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행위를 반드시 계산할 것이며 민족을 반역하는 자들은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공갈.

-2001년 6월10일 한민전 구국의 소리 ; 이회창 前한나라당총재에게 「역적중의 역적」, 「인간추물」, 「극악한 反통일분자」 등으로 비방하며 『조국통일의 앞길에 밝은 전망이 열리고 있는 오늘 리회창과 같은 매국역적, 통일의 걸림돌은 가차 없이 제거해버려야 한다』『비참한 파멸과 죽음뿐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공갈.

-2007년 1월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 『한나라당의 再집권책동은 북남관계를 대결국면으로 몰아세우고 조선반도(한반도)에 전쟁의 참화를 몰아오는 등 민족적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죄행...우리 민족이 핵전쟁의 참화를 입게 될 것이라는 너무도 명백하다』며 『우리 민족의 누구도 이 땅에 재앙을 몰아올 《한나라당》의 재집권책동을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고 공갈.(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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