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네이트에 들어가 댓글 한 번 못쓰고 님들의 글을 읽는 게 고작인 제가 드디어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전 27살 직장여성입니다. 3년전에 저보다 6살 많은 오빠를 연구소 비서로 첫출근하는 날 만났습니다. 오빠는 그 당시 30살로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들어온 연구원이었고 전 24살 대학 4학년 졸업식을 앞둔 어설픈 사회인이었죠. 제가 졸업하는 날 오빠가 꽃을 들고 찾아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절 좋아해주고 있던 박사님이 계셨는데 오빠와는 대학원 선후배 사이셨어요. 저 때문에 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오빠는 연애에 서툰 사람이었어요. 연애를 해본 적이 대학원 1학년 때 딱 한번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딱 한번 뿐인 연애로 우린 참 많이 다퉜어요. 과거의 여자, 물론 저도 연애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라서 어느정도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 일년 정도 사귄 여자를 잊지 못해 매일 찾아가고 기다리고 결국엔 수면제 50알을 먹고 자살을 선택했었다는 걸 듣는 순간 전 몸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잊지 못해서 매일 술을 먹고 힘들어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자살이라니요...
한동안 기분이 안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빠가 예전에 좋아한 여자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귄 게 아닌 대학 1학년 때 첫눈에 반한 상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분은(언니라고 할게요)오빠를 싫어했다고 해요. 그래서 연애는 하지 않고 그냥 가끔 연락하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빠가 대학원 1학년 때 그 여자분이랑 사귈때 언니가 결혼한다는 전화가 왔대요. 그래서 오빠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절 만나기 전 언니가 이혼을 했대요. 딸도 낳은 상태에서 이혼을 하고 오빠를 만나러 왔다고 하네요. 오빠는 그 당시 언니에게 이성의 감정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농담으로 '이제 내가 아빠역할 해야 겠네'라고 했답니다. 그 이후에 절 만났어요.
전 옛 사랑이나 헤어진 연인에 대해서 민감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한동안 혼란스럽더군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인데 한 여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남자, 예전에 좋아한 여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남자.. 사귀면서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런이유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미 지난 일일 뿐인데.. 이성은 이해하면서도 감정은 조절이 안되더군요. 전 이혼한 언니한테 연락을 끊으라고 했습니다(가끔 연락하는 사이여서)오빠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오빠네 집에서 그언니의 이름이 적혀있는 계좌번호를 적은 메모를 봤어요. 물어보니 언니가 가게를 하려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꾸어달라고 전화가 와서 입금시켜 줬다고 했습니다. 전 이말에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저의 이런 태도를 오빠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의 난 널 사랑하는데 니가 그렇게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다가 오빠의 태도였습니다. 저도 처음엔 제가 이상한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저희의 싸움 원인이 그녀들인걸 안다면 그런 태도를 보이면 안되는 거 아닐까요..
헤어질 생각을 하고 연락을 끊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오빠가 찾아와 다시는 그 언니에게 연락이 와도 받지 않겠다고 말하더군요. 사랑했기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2004년. 저희 집에 아주 안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드라마 처럼 집안이 망했어요. 매일매일 빚쟁이들이 찾아왔고 문을 열어주지 않아 유리창을 돌로 깨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 출퇴근을 할 땐 아침일찍, 밤늦게로 되었습니다.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전 언니와 동생과 허름한 판자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은행빚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있었고(가족 중 누군가의 실수가 있었습니다)그걸 갚기 위해 전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어요. 소위 가장이 되어 빚갚고 생활비를 대며 생활했습니다. 그 당시 오빠는 해외 출장중이었습니다. 일년에 6개월은 외국에 있었어요. 한달에 한번 꼴로 내려와 얼굴을 보는 게 다여서 전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전 집안 사정을 다 얘기하고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연인사이에 돈 얘기를 하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힘들었기에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언니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 빚은 안갚더라도 언니를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거 있죠. 이만큼 얘기하면 알아듣겠지 하는거요. 결론적으로 오빠는 저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너무 힘든 저한테 오빠는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럼 힘들지 않겠냐고요.. 하지만 전 가장입니다. 제가 시집을 가버리면 언니(몸이 불편해서 집에서 살림을 합니다)와 동생은 어떻게 되나요... 시집을 가더라도 집을 돕겠지만 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나한테 결혼밖에 선택의 여지는 없는지 오빠한테 야속한 마음도 들었어요. 제가 나쁜 걸까요...
전 지금 헤어지려고 합니다. 오빠한테 생각을 시간을 갖자고 한게 2,3달 전이었고 이번주 주말에 만나서 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 제가 이상한건지 오빠가 이상한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하고 있는건지, 오빠한테 서운한게 많아서 이러는건지도요. 하지만 헤어지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오빠와 결혼을 하기에 그 언니와 여자분은.. 잊혀질 것 같지가 않아요. 표현은 안하겠지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힘든 걸 알았음에도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 오빠한테 서운한 감정이 없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따끔한 충고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