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따..
자식들에게 남 부럽지 않은 그런 엄마..
아이들이 항상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고 고민도 들어 주고 엄마가 이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그런 인상을 키워 주고싶었따..
우리 부모님... 자식에게 무엇 하나 소홀하지 않을 만큼, 정말 잘 하신분들이었따..
누가 봐도 일등 엄마 아빠로써.. 최선을 다하신 분이지만..
세상엔 완변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르는 사람들이 몇번씩 저녁때 찾아 오근 했다
그럼 엄마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사람을 맞고는 안방에 들어가서 아빠랑 엄마랑 그 손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안방 문을 닫은채, 우리는 공부하라고 하곤..
난 그냥 어른들의 대화라 궁금해 하지도 않았따
그러던 어느날. 집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는 연보라색 보자기에 (진짜 그랬음 ㅡㅡㅋ) 옷을 주섬 주섬 쌓다..
그리곤 보자기의 기준을 동, 서 , 남, 북으로 잡아서, 동쪽과 남쪽의 모서리를 모아서 묶고, 서쪽과 북쪽의 모서리를 잡아서 묶었다..
그리곤 앞문도 아닌 뒷문으로 나가시면서 엄마는 우리(나.동생)에게 그랬따..
(왠지 언니에 대한 기억은 없다..)
엄마: 아가.. 미안해.. 엄마가...미안해.. 집에 빚쟁이들이 찾아와서..못있울꺼 같아.. 미안해..
라며 울면서 말씀하셨따.
난 그 때 엄마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지도 못하고 뭐라고 말도 못하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 있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 보면서.. 그렇게 바라보면서,, 떨리는 손으로 뒷문을 잠그면서,,, 태곤이를 쳐다 보며 우린 그렇게 마니 울었다.
금방 돌아오시길 바라는건 단순한 내 기대 였을까??
엄마는 꽤 오랜 시간(몇 달간) 집에 들어 오지 않으셨다.
난 자연히 성격이 많이 기가 죽어졌다
소심해지고 얌전해 지고 말수도 적어지고 조용해 지며 혼자 있는것을 좋아하게 되었따,
난 혼자 있을때 혼자 잘 부르던 노래가 있었따
제목은 모르고. ' 엄마가 섬그늘에..' 로 시작하는 동요이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배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럼 이 노래를 혼자 작사를 해서 부르다가 잠이 들곤 했다
' 엄마가 집싸들고 집을 나가면 나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외로움이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배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학교에서도 어울리지 않았으며 점심도 집에 가서 먹었따
(운동장 걷는 시간의 제외하고 도보 2분거리)
근데 유독 나를 괴롭히면서도잘 챙겨 주는 한 아이가 있었따.
그 남자아이는 얼굴이 좀 시커멓고 너무 장난꾸러기 였으며, 정의의 사도 같은 남자 애 였따.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반 아이들 괴롭히면 맞짱 떠서 이기구.. 그런 아이였다.
근데 그 아이에겐 마음을 조금 열은거 같다.. 지금 생각에..
그 때 그 아이네 집은 단대 근처였눈데. 거기로 놀러가서 밥을 먹었떤 기억이 난다..
언젠가 “사랑은 TV를 타고”에 나간다면 꼭 찾고 싶은 남자아이다.
아빠는 아침에 출근을 할 때 나와 태곤이에게 항상 오백원씩 주고 가셨따
근데 문제는 그 동전은 시꺼멓고 무슨 기스 나거나 동전이 까무잡잡하고 좀 오래되 보이고 이상한 동전이었따
사실 가게에 가서 돈을 내기 창피할 정도여서 나는 왠만하면 사먹지 않고 돼지 저금통에 모아 놓거나 아니면 조금은 책상 서랍에 비상용으로 남겨 놓거나 했다
아뻐의 절약정신을 본받아서도 그렇지만 왠지 창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런 동전을 가지고 농협에 갔다
700원을 가지고..
나: 언니.. 저기요.. 7백원 저금 해도 돼요?
농협직원언니: 당연히 돼지^^* 그렇게 주먹에 꼭 쥐고 있지말고 언릉 주렴 ^^*
나:…근데… 언니….. 동전이 시커머쿠….. 이상해요..(주먹을 펴서 주면서)
농협직원언니:(동전을 쳐다 보면서) 괜찮아^^ 이건 돈 아닌가..
해서 700원 저금했던 기억이 난다..
난 가끔 엄마 없는 빈자리를 대신해서 청소를 한다..
서랍 정리를 할라 치면 서랍 전체를 다 끄집어 내서 속에 있는 내용물을 차곡차곡 정리한다..
근데 서랍에서 아빠의 월급 봉투를 보고야 말았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우와……돈이 꽤 만네..
어느 정도 냐면 그때 당시 내가 6학년이니깐 13살이구 지금 나이가 24살이니깐 약 10여년전의 아빠 월급 봉투의 금액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의 과장님보다 50만원이나 더 많았다
약 10년전 월급이…
우린 운동회를 했따
6학년은 부채춤을 췄다
분홍색 부채를 한 손에 하나씩 쥐고 춤을 추는거 였눈데
분홍색 부채 끝에 달린 하얀 깃털이 춤을 출때마다 정말 아름다웠고 분홍부채 속에는 하얀색으로 한문으로 뭐라고 써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거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았따..
그리고 선생님은 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머리에 쓰는 부채춤 코디용 갓을 사서 써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6학년 모두는 빨간 갓을 썼다.
하지만 난 혼자 유독 검은색 갓이었따.
이유는 아빠에게 말하기도 싫었고 만사 귀찮았따.. 어린 나이에..(근데 솔직히 왜 그랬눈지 나도 잘 모르겠따,, 굳이 사면 되는걸 왜 안 샀었눈지.. 지금와서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그리고 친할머니가 어디서 알으셨눈지 사촌언니가 운동회 때 쓰던거라고 검은 갓을 주셨다
자연히 학교가 틀리니..(사촌언니는 남산초등학교 난 신안초등학교) 갓이 틀릴수 밖에 없었따
난 춤을 추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엄마는 없었따.. 혹시 하는 기대는 큰 절망으로 그리고 실망으로 느꼈다..
난 세상에 혼자 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따..
그러케 눈물을 머굼고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난 눈물 나오는 것을 아랫입술을 굳게 깨물어서 참았따..
근데.. 저기 어디서 많이 보던 분이신데…
눈망울에 맺힌 눈물이 시야를 가려 잘보이지 않았찌만.. 춤을 추면서 한바퀴를 돌 때 분명 내가 아는 얼굴..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따..
친할머니 였따..
친할머니… 어떻게 알고 오신걸까??
춤을 다 춘후 친할머니에게 다가 갔다..
친할머니 손에는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야구르트 천원치가 쥐어져 있었따
난 야구르트를 먹으면서 혼자 생각애..
나중에 내가 크면,, 부자가 되면 할머니에게 백만원을 용돈으로 드리겠다고 나름대로 자기와의 약속을 했따.
그러나 난, 결혼후 맞벌이 하면서. 설날 보너스(2004년 설날) 받은거 갖고 친할머니5만원, 친할아버니 5만원 드린 것 그리고, 추석(2004년 추석)땐 생활용품선물세트 (우리도 어디서 받은 거지만 치사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드린게 다였다..
할머니는 야구르트를 먹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씀 하셨따..
“ 에휴` 불쌍한 내 새끼~”
난 크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따 동화책도 읽어 주고 직접 이유식도 만들어 주고 동요도 불러 주고 내 자식 정말 잘 키울 자신 있었따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따
난 결혼 후 상처를 많이 받았다 ..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내 힘으로,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음을 결혼하고도 알았고,
당연히 자식을 보살피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게 엄마의 도리라고 생각했떤 나는.
그런 당연하다는 생각을 큰 실망으로 바꾸어 놓는 데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따.
엄마의 일기..
나는 과부의 딸이다..
아빠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엄마(나한텐 외할머니,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는 아빠 엄는 빈자리를 마니 채워 주셨고, 혼자 7남매를 뒷바라지 하셨다.
그러나 7남매를 뒷바라지 하는건 무리 였따.
자연히 학교는 고등학교, 대학교는 졸업을 못했따
(난 엄마의 학력을 정확히 모른다. 단, 중학굔가 거기까지는 알겠따)
배우지 못한거에 대한 한 맺힘, 그것은 자식들에게 물려 줘서는 안되는 거였따
나의 식구는 어머님, 아버님, 남편, 나, 은정, 은경, 태곤이가 있다.
나는 신랑과 10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다르다는건 누구보다 뻔한 일이었다
우리 남편은 낚시터를 한다.. 부대동 낚시터를 하며, 그것은 실외 낚시터고 좌석은 80개가 있따.
낚시터 앞에 보이는 전경은 산이며, 가을에 피는 밤을 몰래 몰래 주서 먹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경제권은 전부는 넘겨 주진 않지만 대략 난감 몇십만원은 준다..
은정이 유치원을 보낼 나이가 되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천안에는 복자유치원이 최고 잘 가르친다고 하였따
그래서 은정이를 복자 유치원 보내고 연연생인 은경이 역시 복자 유치원에 보냈눈데,
은경인 거의반년밖에 다닐수 없었다
2단지로 이사 왔기 때문이었따..
남편은 유치원같은거 굳이 안 보내도 상관 없다며 만류 했찌만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리고 아버님은 대전 큰아버지댁 (남편의 형), 어머님은 원성동 광성장 부근 작은아버지댁(남편의 남동생)에 각각 계시게 되고 난 더 이상 시부모님을 모시지 않게 되었따
그리고 얼마후 남편은 친구가 사장인 천안종합폐차장에 상무로 근무하게 됐다
남편 말로는 친구가 픽업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낚시터도 팔고 낚시터에서 한정거장 정도 가까운 폐차장에서 근무를 하게 된것이다.
나는 사실 교육에 대한 열성이 대단한다..
우리 아이들 피아노학원 보내고, 물론 피아노도 집에 비치해 놓고, 속셈학원도 보내고, 국민학생인 아이들에게 과외도 시켰다.
그러기엔 돈이 역부족이었고, 이집 저집 꿔서 가르치다가.. 결국 빚이 생기고 말았다.
오늘 아침에도 빚쟁이 들이 집으로 찾아 왔따…
휴… 대체 몇번째 인지….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기엔….. 너무 큰 아픔과 희생과……… 걸림돌이 있었따……….
내가 집을 나간다고 해서……. 해결되는건 없지만……… 이게 마지막 방법 같았따……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집을 나가고 싶지만….. 아이들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보고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기다렸따……….
짐을 싸는 내내 눈물이…… 시야를 가렸찌만,…….. 내가 집을나간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지만..
아이들을…….. 쳐다볼수가 없었따……….
엄마: 아가.. 미안해.. 엄마가...미안해.. 집에 빚쟁이들이 찾아와서..못있울꺼 같아.. 미안해..
나는 뒤를……… 돌아볼수가 없었따……. 자꾸 떨어지는 눈물방울에.. 아이들이 불쌍해서…. 안 스러워서 ..
가는 내내 난 울고야 말았따……… 연보라색 보자기를 한손에 지고서…….
아빠의 일기..
나는 건국대 학교 법학과를 나왔따..
그래서 나는 마음만 먹고 조금만 더 공부했으면 법무사나 변호사 정도 할수 있었따
그러나 나는 하지 않았따.
왜냐면 내가 나중에 인생을 정리할 때 쯤이 되면, 내 지인 중에 법무사나 변호사사무실을 차린 동창들보다 내가 더 많이 돈을 모우고 싶었다.
자영업을 해서 그들보다 돈을 더 많이 모우고 싶은 욕심은 나의 자존심이 걸린, 또 한 평생이 걸린 내 자신과의 약속이었따
그래서 나는 자영업을 많이 했고 남 밑에서 일한건 몇 년에 불과했으며,
돈 모우는 것에 치중을 두었따.
은정이가 풀을 사달라고 하면 밥풀로 붙이라 했고, 은경이가 음료수 먹고 싶다면 물 먹으라고 했으며, 태곤이가 펜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 펜을 줬따
어짜피 난 회사에 펜이 있으니깐..
근데 얘 엄마는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무슨 과외 까지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피아노 학원에 속셈학원 까지 보낸다..
내가 미치겠따.
난 유치원도 안 나왔어도 건국대 법학과 까지 나와따고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류를 해도 그 열성적인 교육을 하더니 끝내 빚을 지고 만다
몇번씩 사람들이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하더니.. 끝내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에휴….
난 내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천안 종합 폐차장에 상무로 픽업 되어서 거기가 일하고 있었고 그 전엔 부대동 낚시터를 했지만 낚시터는 남에게 인수 인계를 했따
친구는 나에게 꽤 많은 돈을 주었고 나는 월급 봉투를 서랍에 차곡 차곡 모아 두었따
폐차장에서 차를 폐차 시킬려고 보면 발판 밑이나 시트 속에 동전이 생각보다 많다
아마도 사람들이 떨어뜨리고 찾다 찾다 못 찾은거 아니면, 소액이라 그냥 넘어갔던 돈이었나 보다..
근데 문제는 거기서 몇년을 묵었눈지 동전의 색깔이 꺼머줍줍 이상하다
그래서 거므케 그을리거나 혹은 앞뒷면이 다 녹이 슬고
어떤건 동전이라는 형태와 크기만 봐서 족히 얼마다 라는것만 느끼게 되는 동전이다
뭐 그런건 돈이 아닌가???
엄연한 돈이다 그것도...
그 동전으로 아이들에게 500원씩 주고 출근을 한다
오늘도 역시 내가 아침밥을 아이들을 챙겨 주었따
졸린 눈을 괜신히 뜨면서 꾸역 꾸억 먹는 아이들..
어찌 보면 안스럽고 어찌보면 불쌍하다..
나는 자꾸만 오는 빚쟁이들이 교육상 좋치 않아 빚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따
그 결심을 하기엔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정말 열심히 그러케 아끼던 돈인데..
미래를 지향하기 위해 꾸준히 모아 두었던 돈인데
아내 때문에 한순간에.. 돈이 날라 갔따..
하지만 후회는 안한다..
내 부인을 믿기에.. 내 가족을 사랑하기에..
그리고 내 자식을 위해 쓴 돈인 것을 알기에..
친할머니의 이야기..
은정이 엄마가 얼마전부턴가 집에 안들어온다는걸 알고 있다..
그래서 운동회 때 아무도 안 올꺼란걸 알고 있다
분명 다른 아이들은 김밥에 치킨에 피자에 그런 맛있는거 돗자리에 깔고 앉아 먹고 있을테고 또한 아빠는 그렇다 쳐도 엄마는 와서 구경할텐데..
은정이랑 은경이랑 태곤이가 불쌍하다..
나는 광성장 그 부분이 집이라 거기 부터 오룡경기장 쪽으로 쭉 올라가 신안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야구르트를 천원치 사 갖고 운동회를 보러 갔따
은경이 머리에 쓴 코디용 부채 춤 갓만 유독 눈에 뛴다..
저거 내가 준건데..
혼자만 틀리구나...
다른 아이들은 다 빨간색인데 혼자만 검은색이기 때문에 늙어서 잘 안 보이는 내 눈에도 혼자 튀어보였따.
부채 춤을 추면서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아무래도 오지 않을 엄마를 찾는 모양이었다.
난 아이들을 위해 해 줄수 있는건 이것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은경이는 너무 좋아한다..
그래도 내 며느리라고 어디서 무얼 하는지 걱정 된다.
내 앞에서 야구르트를 먹는 은경이를 보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에구 불쌍한 내 새끼.."
정령 이 아이들에겐 엄마 손이 필요할텐데..
그로부터 약 1년전….
언니랑 나는 연녕생이기 때문에 같은 학교를 다닌다
난 5학년이고 언니는 6학년이며, 같은 학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리적 안정이 되며,
운동회 때도 언니가 반대표 달리기 선수로 나가면 긴다리로 언제나 일등을 하곤 했따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그런 언니가 무척 좋았고 부러웠따..
나: 엄마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엄마: 은경이 오늘 몇시에 끝나니???
나: (시간표를 보더니) 00시쯤 끝날꺼 같아요 왜요?
엄마: 엄마 오늘 언니 일로 학교에 갈일이 있는데, 너 끝나는 시간에 맞으면 너랑 같이 집에 올려고 그러지.
나: 어머? 그러구 보니.. 언니 어디 갔어요?
엄마: 오늘 학급 발표회가 있다고 준비해야 된다고 아까 일찍 갔어
나: 그래요 그럼 엄마 이따 00시에 6학년 7반 앞으로 갈게요..
엄마: 그래. 그때보자..
리쁠이 하나라도 잇음 올릴라구 했눈대 ,,;;
내가 글을 잘 못쓰나보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