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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울어 주실래요? 사랑하는 어머니...

슬픔이 |2005.12.09 22:48
조회 831 |추천 0

안녕 하세요....

매일 네이트에 접속하면 어쩌다 오늘의톡 이란 글을 간혹 읽고는 합니다.

오늘은 저의 사연을 올려 봅니다.

 저는 아주 어렵게 자랐더랍니다. 제 나이 올해 24살 늠늠한 청년...

 

중학교 2학년 되기까지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불과 10년전이네요. 초등학생 때 이미 피해의식에

 

있었나 봅니다. 친구가 집에 놀러가자고 하면 괜히 할아버지, 할머니 오셨다고 하고 회피했더랍니다.

 

그나마 체구라도 작아서 아버지,어머니,누나,저 이렇게 4식구가 정자세로 잠을 이루면 잘수 있었습

 

니다. 중학생이 되니 덩치도 커지고, 방이 쫍아 부엌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잤습니다.

 

 한번은 연탄가스에 질식에 죽을뻔한 것을 어머니께서 퇴근하시고 오셔서 살았습니다.

 

출입문은 다 떨어져 문걸이가 필요없고, 비가오면 어김없이 비가세고, 쥐가 돌아다니며 X과 오줌을

 

누어서 얼룩진 흔적들이 산재하고... 이런 제 인생에도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2학년 .. 딱 10년전 방 2칸짜리로 옮길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비록 거실도 없지만 2칸이라면

 

어디가도 부끄럽지 않겠다는 어린 생각이 많았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할 때는 인문계를 가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마음 아프시겠지만...

 

실업계 가줬으면 하고 말씀하시길래, 실업계가서 열심히 다녔더랍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할 때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저렴한 국비 전문대로 진했더랍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은걸 접고 또 접었습니다.

 

자식이 하고 싶은데 못해주는 부모님의 마음도 알지만 스스로에 대한 후회감이 많았더랍니다.

 

대학 2학년 취업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보건소에 건강검진 다녀 오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자궁 경부암"    가슴이 덜컹 거렸습니다.

 

 통장에라곤 단돈 몇십만원... 대출도 해보고 아버지께서 직장도 다니시면서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했

 

습니다. 그렇게 2002년 가을쯤 항암 치료를 하셨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금방 다 빠지

 

더군요. 빛바랜 얼굴과 백구로 계시던 어머니..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하지만 살릴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아픔을 참고, 감추었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수술을 하셨습니다.

 

 몇 시간 동안의 대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계시던 어머니.. 의식 없이 계시는데 입에는 피가

 

한가득 묻혀있었습니다. 출혈이 심하게 이뤄졌더랍니다. 그 때는 눈물을 감추질 못하고 훔쳤습니다.

 

점점 회복을 하시더니 방사선 치료를 하셨습니다. 움직임이 둔해지시고, 언어 장애가 오셨습니다.

 

여러가지 합병증과 부작용... 

 

 모든 사람이 어머니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실 겁니다. 어머니께서는 왼쪽 볼에 성인남성 손톱만한

 

큰 점이 있으셨습니다. 한 평생 너무 부끄럽고 빼고 싶다고 하시기에 대학시절 겨울에 공사판에 가서

 

수술비 마련도 하고, 치아관리도 못하셔서 이빨도 다 썩어 10개정도 새 치아를 해드렸습니다.

 

 이제 잘살아 보자고,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남 부끄럽지 않게 해드릴려고 하는데,,, 계속 아프십니다.

 

돈도 아깝지 않고 까먹어도 좋지만 계속 아프십니다.

 

2003년 중순에 모든걸 끝내고 완쾌하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2005년 9월쯤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눈물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후회감만 남았습니다. 방사선 끝나고 향후 관리가 더 중요한데 내 미래만, 성공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잠시 소홀했고, 암이라는 것에 무뎌졌습니다.

 

 지금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엇이 옳은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실직하셨다가 몇일전에 일자리 구하시고, 누나는 직장 다니다 어머니 간병한다고

 

퇴직하고 있다가 생활고에 부딪혀 다시 지방에 올라갔다가 호전의 여지가 없어 또 내려오고...

 

 병역특례하면서 번 작은 돈으로 가족의 생활비로 썼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 저도 압니다. 얼마 오래 계시지를 못한다는걸.......

 

인간은 태어날 때의 기쁨속에 죽을 때의 슬픔속에 살다가 가는가 봅니다.

 

 외할머니도 외숙모 자식 돌본다고 아프시지만 외삼촌 가정을 위해 일하시면서 가끔 어머니 뵈러

 

오십니다. 그러시고는 울고 가십니다.

 

 저는 울지 않습니다. 슬퍼서 우는 모습마저 어머니께 상처가 될까봐서요..

 

올해 7월쯤에는 급성맹장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수술동의서에 부모님란이 있는데

 

의사분께 그냥 혼자서 수술하고 처리하겠다고 하니 보호자가 필요하다더군요.

 

 누나에게 조용히 말하고, 행여나 어머니께서 걱정이 되실까봐 조용히 수술하고 지난 날에 말씀 드렸

 

더니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모든게 추억으로 되돌아 가야하나요? 좋은 추억보다 아픈 어머니의 모습이 많이 아른 거리네요.

 

저번 주말에는 어머니 간병을 했더랍니다. 24시간 간병비만 6만원... 병원비도 있고, 여러가지 치료비

 

가 부담스러워 제가 거동할 수 없는 어머니의 용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 나는 괜찮은데.. 자식에게 용변 받는 어머니의 마음... 상처가 될까봐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궁 앞에 붙어있는 손바닥만한 종양을 떼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직장과 방광쪽으로 암세포가 전이되고 있나봅니다. 내성이 생겨 완치는 불가능하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병원에 계시게 해야하는지.. 아니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호스피스로 옮길까

 

고민만 하다가 오늘 결정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아들의 이런 행동이 가슴 아파하실 어머니께 불효하는건 아닌지 용서 드립니다.

 

월요일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샘물호스피스로 옮길 예정입니다.

 

냉정하지만 똑바로 결정을 해야하는데,, 무엇이 옳은 길인지...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네요...

 

 어머니 모시고 올라갔다가 돌아서는 길에 울지나 않았으면 좋겠네요. 어머니나 저나........

 

영원히 사랑합니다..... 어머니... 꼭 성공해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에게 힘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2005년 12월 09일       저녁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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