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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2부 6막 : 치세 #01~#04

J.B.G |2005.12.14 01:12
조회 104 |추천 0

영웅 2부 5막까지 연재하고, 사정상 중단했었습니다.

공식 사이트(www.nojbg.com)에 연재가 완료 되어서, 이제 이곳에도 연재를 할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이제 '2부 : 복수자'의 연재를 마무리 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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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6막 : 치세

#01

용의 황도.

적룡은 지금 자신의 앞에 쌓인 처리해야 할 문서들을 보며 매우 지쳐 있었다.

 

“하나의 제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흩어진 제국을 통일하는 일 보다 더 힘들구나…”

“너무 무리하시면 곤란해요. 몸을 챙겨야죠.”

“나도 조심하고 있다. 내가 쓰러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미란과 황제 적룡은 지금 집무실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사안들을 일일이 살피고 있었다.

 

“이 제국은 어찌도 이리 넓은지… 작은 용을 다스릴 때는 이리 벅찬 일인지 미처 몰랐었다.”

“그래서 많은 신하가 있잖아요.”

“그래… 하지만 아직 이 나라는 반쪽이야. 옛 목진을 따르던 많은 인재를 나는 아직 얻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때가 되면 그들이 스스로 폐하께 나아올 거예요.”

“내가 이 제국을 잘 다스리면… 그러면 그들이 스스로 출사해 줄까?”

“네. 틀림 없이…”

“나는 지금 당장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들이 끝내 출사하지 않아도 이 제국이 향후 10년 동안 이대로 안정의 길을 걷는다면 새로운 인재들이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요.”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난 그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조금이라도…”

“지난날의 타국 인재를 쓰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해요.”

“그것은 나도 겪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한 인재들을 구하기도 힘든 일이니…”

“폐하는 이미 최대의 선정을 베풀고 있어요. 출사를 희망하는 타국의 인재들을 모두 등용하고 있잖아요.”

“그래도… 모두 내 뜻을 알아주지는 않지 않느냐?”

“욕심이 너무 과해요.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내가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아요. 절대로…”

“정말 그럴까…”

 

바로 그때 집무실에 제상 무린이 들었다. 그는 한 꾸러미의 두루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무린이 예를 갖추자 황제가 물었다.

 

“그것들은 다 무엇인가?”

“상소 입니다.”

“그래… 매일 이리 많은 상소가 쌓여가고 있으니…”

 

황제는 근심과 한숨을 섞어 말하면서 무린이 내어주는 상소를 받았다.

 

“검열과정에서 폐기될 뻔한 것들을 수급해 온 것입니다.”

“폐기라니?”

 

황제가 이리 묻자 미란이 답했다.

 

“모든 것을 폐하가 관장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다만…”

 

용에서는 제국을 통일한 이후로 너무나 많이 쌓여가는 상소를 모두 황제가 검토할 수 없기 때문에 검열관들이 그것을 보고 사안별로 판단해 상소의 내용에 해당하는 기관에 배정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검증되지 않은 것은 폐기했으며, 사안에 따라 황제의 윤허가 필요한 내용만을 황제에게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무린은 살상 검열기관에서 폐기하려 한 상소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건…”

 

무린이 가져온 상소의 내용을 보던 황제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황제의 표정을 보고 미란도 쌓여있는 상소 중 하나를 잃었다.

 

‘염창군…’

 

지금 미란은 상소를 보고 난 후의 황제의 태도에 대해 제상 무린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황제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상소를 덮으며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직접 금위군장을 보내 확인한 연후에 결정하겠소.”

“폐하!”

“그리 정했소.”

“…”

“두 사람 다 그만 물러가시오.”

 

무린은 굳은 얼굴로 집무실을 물러났고, 미란도 곧 집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가자 황제는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하던 적룡이 내관을 불렀다.

 

“내관 있는가?”

“네! 폐하!”

“지금 당장 금위군장을 불러들이게!”

“알겠습니다.”

 

황제는 그 즉시 금위군장을 불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도록 했고, 그 시각에 미란은 무린의 저택에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린에게 굳이 폐기하려고 분류해 둔 염창군을 참 하는 상소를 가지고 들어온 것을 따지고 있었다.

 

“어찌 그런 상소를 가지고 들어오신 것입니까?”

“그럼, 이 일을 묵과하란 말입니까? 그래서야 법도가 서겠습니까?”

“그 뜻은 잘 알겠지만… 굳이 폐하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실상 제상 무린은 미란의 말 뜻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가 국사를 처리하는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의 책략으로도 가능함은 나도 잘 압니다. 허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폐하 모르게 할 것입니까? 그래서야 그분이 진정한 군주가 되시겠습니까?”

“제상? 지금 저를 책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

“군사가 너무 폐하를 아끼기 때문에 폐하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음입니다.”

“…”

 

제상 무린의 이 책망에 미란은 아무런 할 말이 없었기에 침묵하고 말았다. 그의 말의 의미를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면, 제상께서는 이 일을 어찌 처리하실 것입니까?”

“군사의 뜻대로 되길 바랍니다. 허나, 그것은 폐하 스스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폐하는… 차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

 

한 달간의 조사 끝에 이루어진 금위군장의 보고가 있은 후에도 며칠 동안 황제 적룡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상소에 있는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금위군장을 파견해 조사를 해 보았지만, 금위군장은 그의 기대와 달리 지금까지 올라온 상소의 내용이 단순히 염창군을 참소하는 내용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염창군은 황족이라는 지위로 많은 백성뿐 아니라 관료들에게 군림하면서 갖은 횡포를 일삼고 있었으며, 자신이 다스리는 성에서는 이미 황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숙부…’

 

황제 적룡은 지금 국법에 따라 자신의 숙부를 참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러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어찌한다…’

 

고민 끝에 그는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어전에 대신들을 모두 불러 들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염창군의 일을 아는가?”

“…”

 

적룡은 지금 대신들에게 염창군의 죄에 대해 묻고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침묵할 뿐 아무도 감히 대꾸를 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적룡은 미간을 심히 일그러뜨렸다.

 

“어찌 대답들이 없는가?”

“…”

 

그러나 그들은 이미 모두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었다. 적룡은 그들이 대답이 없음으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자신만 까맣게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모르고 있는가?”

 

마침내, 적룡이 화를 참지 못하고 노기를 드러내자 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

 

“폐하! 그는 지난날의 제국을 연 개국공신입니다. 작은 허물로 그를 벌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한 신하가 이리 말하자 제상 무린이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습니다. 법도는 평등한 것입니다. 지난날의 공에 대한 상은 이미 내려졌고, 죄를 지었다면 그 벌 또한 명료하게 내려져야 합니다.”

 

사태가 이리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제 앞에서 갑자기 대신들간에 한참 동안 설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사태를 보며 적령은 매우 침통했다.

 

‘모두… 정녕, 모두 알고 있으면서 내 앞에서만 숨겼단 말인가?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적룡의 노기가 더해가고 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대신들의 논란을 지켜보던 적룡은 이 일의 처리에 관해 미란에게 묻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자리에 미란이 없다는 것을…

 

“군사 미란은 어디 있는가?”

“…”

 

그러자 갑자기 소란스럽던 어전이 조용해지더니, 이번에도 모두 침묵으로 일관해 버렸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중요한 물음에는 모두 벙어리가 되는가?”

 

황제가 대노하여 대신들을 책망하자 제상 무린이 입을 열었다.

 

“폐하! 군사 미란은 지금 이 자리에 나아올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그녀는 지금 옥사에 있습니다.”

“뭣이? 지금 옥사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황제는 제상의 그 말에 크게 놀라면서 더욱 노했다.

 

“누가 감히 사매를 옥에 가둔다는 말이냐?”

 

그러나 노기가 충천한 황제 앞에서 역으로 제상 무린은 담담했다. 사실 그는 지금 큰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만 두시오! 죄라니? 당치않소! 제국을 통일한 일등공신을 감히 누가? 사매를 옥사에 가둔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적포청의 수장인 무영이라는 장수 입니다.”

“무영? 그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또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인가?”

“음모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적포청의 수장은 자신의 직무를 다 했을 뿐입니다.”

“닥치지 못하겠소! 내 당장 그 자를 만나보겠소.”

 

이리하여, 황제 적룡은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곧바로 궁을 빠져 나와 적포청으로 향했다. 그는 지금 미란의 일로 화가 치밀어 올라 지금까지 어전에서 염창군의 일을 논하고 있음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적포청에서 수장 무영을 대면했다.

 

“네 어찌 감히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 목숨이 몇 개인 것이냐?”

“어찌 이런 하찮은 사건에 폐하께서 직접 걸음을 하시는 것입니까?”

“네 이놈! 네가 감히 날 가르치려는 것이냐?”

“폐하! 소신은 폐하께서 소신에게 주신 지위로 그 소임을 다 했을 뿐입니다.”

“사매가 제국을 통일한 일등공신임을 모르느냐?”

“폐하께서 제정하신 법에 일등공신은 그 죄를 사면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그러한 법을 제정하신다면 군사는 방면될 것입니다.”

“뭣이라?”

 

무영의 이러한 태도는 적룡은 더욱 크게 노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영의 말이 틀림없이 모두 옳은 것 또한 사실 이었다.

 

“그리 하시겠습니까? 폐하!”

“…!”

 

제상의 이 물음에 적룡은 그만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내 사매를 만나보아야겠다.”

 

이리하여 어처구니없게도 적룡은 미란과 옥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폐하?”

“예는 되었다.”

“폐하께서 어찌 이런 곳에…”

“도대체, 무슨 죄를 진 것이냐?”

“그것 때문입니까? 사실은 사냥을 나갔다가 그만 실수로 활을 잘못 당겨 백성이 기르는 개를 한 마리를 죽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보상을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 개가 주인의 어린 아들이 매우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 아이는 그 개를 잃고 너무나 슬퍼 앓아 누었다 합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보상을 거부하고 그 개의 값에 해당하는 법이 정한 기간 동안 제가 벌을 받기를 청했습니다.”

“그자는 네가 누군 인지 모른다는 것이냐?”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뭣이?”

 

미란의 이 뜻밖의 반문에 적룡은 그만 말 문을 닫아 버렸다.

 

‘너…’

 

적룡이 말 문을 닫자 미란이 계속 말했다.

 

“그 백성이 제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감히 이러지 못했겠죠. 지금 폐하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 바로 현재의 용입니다. 이것이 폐하의 제국 입니다.”

“…!”

 

미란의 이 말 이후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 적룡은 매우 침통했다.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일부러 죄를 진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폐하를 잘못 모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폐하의 눈과 귀를 막았기에 벌을 청하는 것입니다.”

“…미안하다. 또 나 때문에…”

“이 제국은 아직 갓난아기 입니다.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아가면 되는 일입니다.”

“미란…”

 

그 사건 이후로 적포청에서 나와 궁으로 돌아온 적룡은 즉시 군대를 보내어 염창군의 영지를 몰수했다. 황제의 군대는 거세대 대항하는 염창군의 사병을 흩었으며, 그를 잡아들였다. 염창군은 그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에 의해 옥사에 가치게 되었고, 그 내용은 그대로 황도로 보고 되었다.

 

“폐하!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염창군은 선대황제의 아우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폐하!”

“폐하! 어명으로 숙부를 사면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도의에 어긋나는 처사입니다. 폐하!”

 

그러나 그리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황족들이 벌떼같이 궁으로 몰려들어 염창군의 사면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적룡의 또 다른 숙부인 창원군만이 그의 편을 들어 주었다.

 

“폐하! 만약 소신이 같은 죄를 지으면 소신을 참해 주십시오.”

“숙부…”

“폐하는 이 제국의 지존입니다. 감히 누가 그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숙부님.”

 

적룡은 황족 중의 가장 큰 어른인 창원군의 힘을 등에 엎고 결국 어명으로 염창군에게 참수형을 내렸으며, 염창군은 그날로 참수되었다. 사태가 이리 급박하게 전개되자, 이에 분개한 황족들은 앞다투어 일어나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황제는 한번 뽑아 든 칼을 칼집에 넣지 않았으며, 반기를 드는 황족들을 모두 토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편에는 항상 창원군이 있었다.

 

“제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 나라는 법치국가 입니다. 폐하는 그 법도를 바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황족간의 변란 아닌 변란이 벌어지자 황제와 창원군의 편에 서지 않고 염창군의 편에 선 황족은 모두 참수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감히 그 법도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황족을 참수하는 마당에 우리야…”

“이제 이 일도 그만 두어야겠군. 자칫 뒤를 밟히면 삼족이 멸한다고…”

 

친족을 참한 것은 황제로서 어떨 수 없는 결정이었음에도 적룡은 스스로의 자신의 죄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지 그 사건 이후로 황족의 선산에서 한달 동한 식음을 전폐하고 참회했다.

 

미란의 저택.

지금까지의 일련이 사태에 대해 미란과 제상 무린이 논의하고 있었다.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네. 저도 창원군이 그리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허나, 그자가 진심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를 갈고 있을지도…”

 

창원군의 저택.

그는 지금 자신의 방에서 아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아버님! 정말 이리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닥치지 못하겠느냐? 정녕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것이냐?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버님! 아버님을 따르는 수천의 사병과 제후들이 있습니다. 또 그들을 따르는 군사가 수십만 입니다. 어찌 이리 몸을 사리시는 것입니까?”

“그들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용에는 지금 수백만의 대군이 있다.”

“군사가 많은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는 말이다. 나의 군사가 백만이고 황제의 군사가 십만이라도 나는 지금 그를 당할 수가 없다. ”

“어찌 그리 유약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닥치거라! 어리석은 놈 같으니… 넌 그들의 두려움을 모른다. 황제를 따르는 맹장들에 대해서…”

“…”

“나는 지난날 그들과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는 아군인 그들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말았다. 그들은 마치 불을 품는 용과 같았다.”

 

아들을 앞에 두고 창원군은 손을 떨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를 보며 창원군의 아들은 미란과 제상을 비롯한 황제의 측근들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02

황제가 친족을 참하면서까지 법도를 세운 일은 부작용도 심상치 않았다. 그것은 바로 제후들이었다. 그들이 법을 어겼다 하여 친족조차 참수하는 황제를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염창군의 사건을 계기로 이미 그들도 작은 잘못으로 언제 참수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제후들은 자칫 죄를 짓지 않고도 작은 누명으로도 참수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찌하자는 것인가?”

 

무린은 지금 황제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칫 그 두려움에 반발하여 나타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황제에게 진언하고 있었다.

 

“제후들의 여식들을 후궁으로 맞으심이…”

“지금 나에게 정략적으로 혼인을 하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상! 난 이미 황후가 있소.”

“그것은 소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국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럴 수는 없소.”

“폐하!”

“아니 된다 하지 않았소. 그만 물러가시오.”

“…”

 

자신의 진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황제를 보며 무린은 그만 깊은 시름에 빠지고 말았다.

 

‘이를 어찌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역시 군사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미란의 저택.

무린은 황제가 자신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고민하다가 결국 미란을 찾게 되었으며, 그는 지금 그녀를 만나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사형들은 둘 다 의외로 순수하시다니까…”

“군사?”

“후훗… 여자들 문제는 여자들에게 맡기시죠.”

“…”

“미덥지 못한 것입니까?”

“황후 마마를 만날 생각입니까?”

“그럴 수 밖에요.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면 폐하는 절대로 제상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거예요.”

“무엇을 내 걸 것입니까?”

“황후마마는 지금 태기 중 입니다. 그러니…”

“음… 그것이라면 저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이 잘 해결 된다면야…”

“그럼 제게 이 일을 일임한 것입니다.”

“군사만 믿겠습니다.”

“맡겨 주시지요.”

 

황후전.

미란는 지금 선물을 들고 황후전에 들어서 황후를 알현하고 있었다.

 

“평안하신지요? 황후마마!”

“그렇습니다. 군사께서도 평안 하신지요?”

“이 제국이 다 평안합니다.”

“그렇군요.”

 

간단하게 예를 갖춘 미란은 들고 온 선물을 황후에게 내어 주었다.

 

“이것은…?”

“의복입니다.”

“의복?”

“네 바다 건너 남방의 호국에서 건너온 비단으로 짠 것입니다.”

 

그러나 미란의 선물을 받아 든 황후는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심히 난감한 표정 이었다.

 

“군사께서 준 선물을 받지 않을 수 없으나… 이런 것을 받으면 폐하께 책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심히 난감합니다. 군사.”

“그런 걱정은 마시지요. 폐하께는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야…”

 

미란의 말에 안심하고 선물을 받아 열어본 황후는 그러나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건…”

“태자전하의 의복 입니다.”

 

미란의 이 말에 황후의 마음은 좀 더 보다 더욱 무거워졌다. 큰 의도가 숨어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태중의 아이를 태자라니요.”

“그리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아이가 황제의 제목인지 보고 결정할 일입니다.”

“제가 그리 되게 해 드릴 것입니다.”

“…!”

 

황후는 크게 놀라 얼굴빛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의례적인 인사치레는 역시 아닌 듯 하군요.”

“…”

 

미란이 말이 없자 황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태중의 이 아이가 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가 군사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마마의 지혜에는 저도 탄복하겠습니다.”

“지금 저를 기만하는 것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서 말하시죠. 무엇을… 원하십니까?”

“폐하를 설득해 주셔야겠습니다.”

 

이야기기 여기까지 진행되자 황후는 어떠한 연유로 미란이 자신을 찾은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후궁들에 관한 일인가요?”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궁중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지 않습니까?”

“그럼, 어찌 결정하실 것입니까?”

“폐하께서 태중의 아이를 태자로 맞도록 허락해 주시는 조건으로 저도 폐하께서 제후들의 여식을 후궁으로 맞도록 허락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절대로 아니 됩니다. 자칫 폐하께서 크게 노하실 것입니다.”

“그럼…”

“그냥, 순수하게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 후궁의 일을 자발적으로 승낙하시면 됩니다.”

“그럼, 태중의 이 아이가 어찌 태자가 되는 것입니까? 폐하께서 많은 후궁을 맞으시면 그 자제들로 인하여 태자자리를 놓고 많은 다툼이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은 폐하도 잘 아실 것입니다.”

“허면…”

“마마는 마마의 약조한 일을 해 주시지요. 저는 제가 마마께 약조한 일을 하겠습니다.”

“그냥… 군사를 믿으면 되는 일인가요?”

“그렇습니다.”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 황후는 숙고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마! 저도 여인 입니다.”

“…”

“마마의 아픈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여인은 지아비보다도 자식을 더 사랑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이 목숨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마마의 태중의 아기씨를 반드시 태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 군사만 믿겠습니다.”

 

며칠 후.

황후전에 든 황제에게 황후는 후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황제는 그 일로 화를 드러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얼마 전 사매가 황후를 만난 것을 알고 있소.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오.”

“미란 군사는 태중의 아이를 태자로 만들어 주겠다 했습니다.”

“뭐라?”

 

이 고변에 황제 적룡이 크게 노기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고얀… 그래서 황후가 이리 나서는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뭐요?”

“태자는 그 재목을 보고 책봉하는 것. 어찌 태중의 아이에게 그런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군사는 제가 꾸짖어 돌려 보냈습니다.”

“황후…?”

“군사는 자신이 사명을 다 하기 위해 그런 제안을 한 것일 뿐. 그녀에게 죄를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녕 죄가 있다면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해 군사가 그런 일을 하게 만든 폐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 하나의 제국을 다스리는 주군이 자신의 작은 일에 연연하여 국사를 그르치려 하는 것입니까? 폐하에게는 지금 황후인 저에 대한 의무보도 제국에 대한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제국을 지키기 위해 어찌 작은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찌 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 중책을 외면하려 하십니까?”

“…”

“통일 이후의 제국은 아직 그 기틀을 제대로 잡지 못해 불안한 실정입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제후들과 인척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맺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폐하는 범부가 아니라 제국의 황제 이십니다.”

 

황후의 이 말에 황제 적룡은 그만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황후… 그대마저 나를 부끄럽게 하는구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다른 여인의 품에 계셔도 저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황후…”

 

황후는 황제의 품에 안겨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보였다.

 

그 후 몇 개월 동안 황제는 전국 각지의 제후의 여식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였으며, 그 후궁들을 맞이하기 위해 황궁은 연일 분주했다.

 

황후전.

미란과 황후가 몇 개월 만에 다시 독대를 하고 있었다.

 

“궁이 연일 소란스럽게 되었습니다.”

“네… 내일 또 새로운 후궁이 든답니다.”

“그런데 폐하는 어찌 설득하신 것입니까?”

“폐하 앞에서 솔직해졌습니다. 다만 그뿐입니다.”

“…”

“그런데, 약조한 일은…”

“태자전하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

“폐하는 그리 만만한 분이 아닙니다. 후궁들이 자식들을 낳아 궁 내가 후계문제로 소란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그래도 되는 것인가요?”

“다른 폐하의 자제들과 지혜를 겨뤄 그 자질을 증명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그러다 혹…”

“제가 마마와 태자전하께 지혜를 빌려드릴 것입니다. 너무 심려 마시지요.”

“군사만 믿겠습니다. 이미 그리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뜻을 같이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03

제상의 저택.

미란과 무린이 만나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독점권을?”

“그렇습니다.”

“제상.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미란이 크게 놀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자 제상 무린은 그녀의 폐부를 들쳐냈다.

 

“군사가 조부 때부터 목경부와 친분이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제상?”

 

그리고 무린의 이 말에 미란은 심히 불쾌해 했다. 그러나 한번 사안을 꺼낸 이상 무린은 전혀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굽힐 것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지금 제국을 위해 드리는 말 입니다.”

“…”

“어찌하시겠습니까?”

 

무린이 전혀 뜻을 굽히지 않는데다 미란 자신도 언젠가는 상업의 독점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무린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동의했다.

 

“저는 그저 눈을 감고 있으면 됩니까?”

“전혀, 군사답지 않군요.”

“네?”

“두 마리 토끼를 잡을까 합니다.”

“그럼…”

“천 년을 넘게 이어져 온 정치와 경제의 유착의 고리를 자를까 합니다.”

“제상? 그건…”

“너무 큰 일이며, 또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님은 저도 잘 압니다. 다만, 지금의 이 시대가 그 출발점이 되고자 합니다.”

“…”

 

무린의 이 말에 미란은 더욱 심각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지금 재상이 하려는 일은 자칫 큰 정치싸움으로 번질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결정을 못 한 것입니까? 군사.”

“아닙니다. 제상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군사께서 직접 목경부와 유해수를 만나 보시지요.”

“알겠습니다.”

 

한번 뜻을 정한 미란은 그 길로 말을 달려 중림에 있는 목경부를 찾았다. 그리고 무린도 황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사에 바쁜 군사께서 어찌 이리 어려운 걸음은…”

“일단 안으로 드시죠.”

 

중림의 자신의 저택을 찾은 미란에게 목경부는 언제나처럼 환대를 했다. 그러면서 곧 두 사람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러나 한참 동안 술만 마시고 말이 없는 미란의 모습에 심기기 불편해진 목경부가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죠? 안색이 어둡습니다.”

“고민 중이에요.”

“무슨 일로…”

“달래야 할지… 협박을 해야 할지…”

“…”

 

그녀의 이 말에 목경부는 더 이상 묻기를 그만 두었다. 그는 지금 긴장한 채로 침묵하면서 미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또 무슨 폭탄선언을 하려고…’

 

그러나 그 기다림이 길수록 목경부는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얻고자 하기에 그러한 것을 결정하지도 않은 채 여기에 발걸음을 한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질 않아서 아저씨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던 거에요.”

“무엇이죠? 군사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실은… 명부…”

“…”

“내주세요.”

“…!”

 

그녀의 이 한마디 말에 목경부는 심히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

“없다고 말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

 

미란이 먼저 그의 말을 자르자 그는 곧  다시 침묵했다.

 

“어서… 결정을 해요.”

“거절한다면… 무엇으로 협박을 할 요량이죠?”

“거절한다면… 독점권을 거두어들일 거예요.”

“흠… 그런 것이 없어도 내상은 천년 전부터 독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벌여도 다른 대신들이 가만 있겠습니까?”

 

그의 이 말에 미란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 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후…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방금 전 까지고 고민 중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어쩔 거죠?”

“어찌하다니요? 결정은 아저씨가 해야죠.”

“네?”

“어느 쪽 줄에 설 것인지 결정해요. 당장…”

“…”

 

목경부는 내심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실상은 배신행위였으나,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당근도 내어놓지 않고 채찍만을 드는 것입니까?”

“…”

“자칫 제 목숨이 위험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 명단에는 군사의 사람들도 많습니다.”

“곪은 상처는 도려내지 않으면 온 몸이 썩기 마련이죠.”

“저도 그 곪은 상처 중 하나인 것입니까?”

“그러기에 이렇게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제가 군사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저도 아저씨게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전 제국을 반석 위에 세워야만 해요. 단지, 그뿐이에요.”

“단지 상인일 뿐인 내게 선비의 절개를 요구하는 군요.”

“아니 되는 것인가요?”

“제가 거절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제 목을 치고 이 집을 다 뒤져서라도 그 명부를 얻어가겠지요?”

“아마도…”

“허면, 그 명부를 보고 그 주모자인 저를 폐하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아마도 참 하려 하실 거예요.”

“…”

“허나, 제가 구명해 드릴 거예요.”

“과연… 그것이 당근인가요?”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다음날.

미란은 외상의 우두머리인 유해수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목경부와 같은 거래를 하고 있었다.

 

“답을 주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아마도…”

“헌데… 어떠한 방법으로 저를 구명해 주실 것입니까?”

“그것은 제게 맡겨 주시죠.”

“…”

 

침묵 속에 유해수는 장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결정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시지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유해수는 미란에게 비밀 장부를 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장부를 받아 든 미란은 곧 두 개의 장부를 들고 황도로 향했다.

 

제상의 저택.

그들은 지금 목경부와 유해수로부터 받은 명부를 보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고발하면 어찌되는 것인지… 이 중에는 제상과 나와 같은 정치철학을 가진 자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거짓 입니다.”

“제상?”

“그들이 거짓된 자들이 아니라면 이 명부에 이름을 올려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

“군사께서는 이 명부를 얻었는데도 아직도 고민입니까?”

“알겠습니다. 전적으로 제상의 뜻을 따르지요.”

“그럼, 내일 저와 같이 폐하를 알현하도록 하시죠.”

“알겠습니다.”

 

다음날.

두 사람은 목경부와 유해수에서 입수한 명부를 들고 황제를 알현했다. 그리고 그 명부를 황제에게 내어 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명부 입니다.”

“명부?”

“그렇습니다.”

 

적룡은 제상과 미란이 내어준 명부를 받아 보았다. 그 명부에는 유해수와 목경부가 각종 이권을 얻기 위해 관료들에게 준 뇌물이 그 사안별로 명단과 함께 날짜와 그 액수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건…”

 

적룡의 굳어가는 낯빛을 보며 제상 무린이 말했다.

 

“놀라실 일이 아닙니다. 이미 폐하도 다 아시는 일 입니다.”

 

황제는 읽던 장부를 덮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지금 두 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그대들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면, 그대들 마음대로 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 요량인가?”

 

그리고 그의 이 말에 무린이 짐짓 놀라며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적룡이 그리 물을 것이라는 것을 실상은 예상하고 있었다.

 

“폐하! 소신은 이 나라가 한 길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법도가 바로 선 국가 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평안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이 명단에 있는 자들을 모두 벌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자신의 권력으로 탐한 재물은 모두 백성들의 것입니다. 그 죄를 물으셔야 할 것입니다. 관료란 무릇 백성에 봉사하도록 폐하의 명을 받은 자들 입니다. 그런 자들이 상인과 유착되어 백성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반발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래서 군부가 있는 것입니다.”

“제상!”

“폐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법도를 지키기 위해 그 위엄을 보여야만 할 때입니다. 그것은 이 나라에 아직 법도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군부의 수장들이 폐하의 윤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생각이 있는 것인가? 지금 이 나라에는 유능한 인재가 부족하다. 그런데 뇌물을 조금 취했다 하여 그들을 모두 벌한다면 누가 백성을 돌보겠는가?”

“그래서 전국에 학습기관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나오려면 아직이다. 시간이 너무 이르단 말이다.”

“그래서 이미 준비된 학사 연의자의 제자들을 등용할까 합니다.”

“어허! 점점 더 안하무인이 아닌가? 조정을 온통 그대들의 색깔로 물들이려는 것인가?”

 

황제 적룡이 크게 노하자 이번에는 미란이 제상을 거들었다.

 

“폐하! 그것은 폐하의 색깔입니다. 법치국가를 지향하는 집단입니다.”

“미란!”

“이 기회가 아니면 폐하의 통치를 받들 선비를 어찌 등용하겠습니까?”

“난! 내가 전적으로 옳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도 때로는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강력한 지도자를 따라 하나의 길로 가야 할 때 입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틈이 없습니다. 폐하를 중심으로 만 백성이 따라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왕도정치는 폐하의 몫이 아닙니다.”

“미란?”

 

미란의 이 말에 적룡이 놀라 반문하자 미란은 간절히 그를 부르며 말했다.

 

“사형!”

“…”

“그것이 진실입니다. 인정 하셔야 합니다. 폐하가 제국의 기틀을 닦으면 태자전하께서 이 나라를 위대한 제국으로 만들 것입니다.”

“…”

 

미란의 이 뜻 밖의 말에 적룡은 크게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말은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이것 참… 또 다시 이들에게 휘말려야 하다니…’

 

적룡은 깊은 침묵에 빠져 들었고 두 사람은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긴 침묵 끝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미란! 하나만 더 묻겠다.”

“네. 폐하!”

“너는 이 명부를 얻기 위해 목경부와 유해수에게 무엇을 약속 하였느냐?”

“그 지위와 목숨을 구명해 준다 했습니다.”

“뇌물을 받은 자들을 전부 벌하면서, 준 자는 벌하지 말자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미란!”

 

황제는 미란의 말에 다시 크게 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란은 계속 말을 이었다.

 

“폐하!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한번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상업은 무너집니다. 다만, 할 수 만 있다면 그들의 목숨을 구명해 주는 조건으로 그 독점권을 거두어 들일 생각입니다.”

“법도를 세우고자 하면서 스스로 그 법을 어기라니…”

“…”

“제상! 그대는 사매의 말에 동의하는가?”

“…”

“동의하는가 묻지 않는가? 이것이 정말 그대가 말하는 만민이 평등한 법도인가?”

 

적룡의 물음에 제상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침묵한 두 사람에게 적룡이 말했다.

 

“그만들 물러가라!”

“제 말을 더 들어보시지요.”

“미란! 너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폐하?”

“내 뜻대로 결정하겠다. 너의 말을 듣고 목경부와 유해수를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숙고해서 어명을 내리겠다.”

“…”

“둘 다 물러가시오.”

“…”

 

두 사람은 그렇게 어전에서 쫓겨나듯 물러나 나오고 말았다.

 

며칠 후.

마침내 어명이 내려졌다. 황제 적룡은 적포청의 무영에게 명부를 주어 그 진상을 밝히도록 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전국에서 수 천의 관료들이 파직되거나 참수 되었다. 그리고 그 발벌은 당파를 가리지 않는 것이었다.

 

미란의 집.

지금 그녀의 집에는 제상 무린이 있었다.

 

“군대의 움직임은 어떠한지요.”

“장수들이 철통같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변괴는 없을 듯 합니다.”

“허나, 언제까지 힘으로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어찌한다…”

“저도 걱정입니다. 일파만파로 번진 이 일이 어찌 되는 것인지…”

 

황제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크게 일을 벌이면서 모든 죄상을 발벌하고 나서자 두 사람은 깊은 고민에 빠져 들었다.

 

“폐하께서는 이 일 만큼은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으십니다.”

“폐하는 그리 아둔한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마저 경계를 하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

“조금은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군사…”

“…”

“그나저나 폐하께서 목경부와 유해수의 일을 어찌 처리하실지…”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 이대로라면 그들은 참수형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

“법도에 어긋나 그들을 사면할 수 없으니… 폐하로서는 지금 하시는 발벌이 오히려 형평성 때문에 그분을 사면초가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큰일이군요…”

 

이미 자신들의 손에서 벗어난 이번 사태로 두 사람은 깊은 고민에 빠져 들었다.

 

어전.

황제 적룡은 지금 자신이 직접 뇌물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도록 명한 무영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내 너에게 청이 있어 불렀다.”

“폐하께서 일개 관리에게 청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이번 조사에 관한 것이다.”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이 일의 주모자는 어찌 되는 것이냐?”

“목경부와 유해수의 죄는 이미 명백합니다.”

“그래…”

“폐하?”

“사실은 내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

“…”

“내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

“무영!”

“네. 폐하!”

“너에게 어명으로 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가 그들이 죄가 없음을 밝혀내면 폐하께서는 두 마리 토기를 잡으실 것입니까?”

“글쎄다… 다만, 덫은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날 적룡은 무영에게 아무것도 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영은 이번 뇌물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며칠 후.

무영에 의해서 모든 조사 결과가 보고 되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목경부와 유해수는 관리들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주었으며, 또한 관리들에게는 어떠한 이권도 청탁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목경부와 유해수는 참수를 면했으며 그 지위도 지켜졌다. 다만, 황제는 차후의 이러한 대규모 비리를 막기 위해 어명으로 천년 동안 이어져 온 내상과 외상의 독점권을 박탈했다. 그래서 중앙대륙의 상업을 자유무역으로 개방시켰다.

 

무린의 집.

그곳에는 제상과 미란 그리고 무영이 있었다.

 

“영아!”

“네. 누님!”

“폐하와 무슨 밀담을 한 것이냐?”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그래…”

“저는 법대로 공명정대하게 만사를 처리했을 뿐입니다.”

“당연히, 그랬겠지…”

“…”

 

미란은 차를 마시며 미소를 지었으며, 제상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폐하도 못 말린다니까… 결국, 영이를 앞에 내세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니…’

 

모든 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흐르고 있음이었다.

 

 

#04

여러 가지 큰 사건을 치른 이후 사실상 제국에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그 동안 목의 가시였던 선대 황제의 세력과 친인척들을 대부분 숙청하므로 황제의 자리를 감히 넘볼 수 없도록 했으며, 지방 제후들의 자녀들을 황도의 관리로 임명해 불러들이거나 그 여식들을 후궁으로 맞으면서 그들을 회유하거나 제압했다. 또한, 아직도 제국에 머리를 숙이지 않은 지난날 전란의 시대의 타국의 신하들을 그 중추인 목진의 황제를 참함으로써 모두 제거해 불란의 씨를 말렸으며, 천 년을 이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자르면서 곪은 관료사회를 혁파함과 동시에 오랜 특권계층인 내상과 외상의 독점권도 붕괴시켜 버렸다.

 

그러나 오랜 숙원들이 하나, 둘 해결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음에도 실상은 그것은 파괴였을 뿐이었다. 황제는 필연적으로 그 빈 자리를 채울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으며, 그것은 현재의 용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제세력을 혁파하며, 대부분 자신의 정치 사상을 따르는 자들로 모든 자리를 채워 나갔다. 그리해서 무린과 미란 그리고 학사 연의자의 제자들이 대부분 관료로 등용 되고, 또 그들이 새로이 선포 될 법전을 제정하는 작업을 전담하기에 이르렀다.

 

황제는 가장 먼저 천 년을 이어온 노비제도를 없앴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신분제도를 대대적으로 혁파했다. 물론, 이러한 것은 강압적인 것이었다. 그때마다 반발하는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국시대를 평정한 적룡의 맹장들 앞에 반대세력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법치를 내세우는 통치는 불란의 씨를 필연적으로 안고 있었다.

 

적룡은 그 동안의 개혁으로 반대 세력이 대부분 모습을 감추자 곧 군제를 개편했다. 무린과 선경을 황도로 불러 군부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좌, 우에 두었다. 그리고 군대를 중앙군, 북부군, 동부군, 서부군, 남부군, 수군으로 편재해서 중앙군 사령관에 정찬우를 북부군 사령관에 요적란을 서부군 사령관에 이서기를 동부군 사령관에 자현룡을 남부군 사령관에 함덕을 임명했으며, 수군 총 사령관에는 유란을 임명했다. 그는 모든 제국의 요직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웠던 것이다.

 

군대가 개편되자 황제는 행정제도를 개편했으며, 그 후에는 각 구역마다 국고를 들여 국립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이 글을 배우도록 어명으로 명했으며, 그 막대한 비용은 내상과 외상의 세금에서 충당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으나, 지난날 거대한 뇌물비리사건으로 이미 그 목이 잡혀버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세제에 복종하고 있었다.

 

황제는 또한 그 동안 오랜 관행이었던 천거로 인재를 받아들이는 일을 금했으며, 시험을 통해서 관료를 임명하도록 어명을 내렸다. 그리고 그 시험에는 그 출신에 무관하게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법전에 명시해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그 법을 어기는 자에게는 그에 따르는 형벌이 명시 되었다.

 

어전.

황제와 미란, 무린 그리고 이미 군부에서 정계로 들어선 무위와 선경이 그 자리에 이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

“네 사람은 내 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개혁은 선포만 했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실행에 옮겨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는 나의 개혁작업으로 인해 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다만, 수년 후에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는 지금 나와 그대들이 어떻게 하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

“참고 견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지금까지 누린 특권도 모두 내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대들만 믿겠습니다.”

 

그렇게 용의 땅은 굳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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