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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중의 명품

은하철도 |2005.12.26 08:45
조회 613 |추천 0

명품 중의 명품



환갑을 넘긴 사촌누님의 집에 가면 각종 음료수가 냉장고에 가득 있고, 베란다를 들여다보면 개봉도 안 된 휴지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오랫동안 간병인 생활을 하다보니 환자가 퇴원할 때에 남긴 음료수, 과자, 휴지, 등을 몽땅 주워오게 되는 모양인데, 여자란 역시 잔욕심이 매력이다. 추운 날씨에 얇은 가죽잠바를 입고 누님 집에 들어서니 고개를 갸웃하던 누님이 방구석에서 또 뭐를 부스럭거리다가 비닐봉투 안에 들어있는 오리털잠바를 꺼내었다. 새것처럼 보였는데, 입어보라고 해서 입으니 몸에 딱 맞았다. 아유, 몸에 딱 맞네, 따듯하지? 그것을 입으니깐 잘 어울리네, 하며 누님은 마치 자기 옷처럼 기뻐했다.


연한 색깔이 고급스러워보였다. 그런데 왼쪽 가슴에 메이커의 상표처럼 보이는 모양이 찍혀 있는데, 그것 참 마크도 요상했다. “밥퍼”라는 빨간색 글이 마치 한자의 전서체나 예서체처럼 구불구불 도안이 되어 찍혔고, 그 아래는 파란색의 영문으로 “Bobper"라고 써 있었다. 그런 상표를 처음 대하는 것이기에 ”밥퍼“라는 메이커도 있냐고 물었다. 누님은 킥킥 웃었다. 사실 그 옷은 남에게 얻어온 것인데, 교회의 목사가 노숙자에게 급식해 주는 아주머니를 위하여 단체로 구입하여, 봉사원들을 상징하는 의미로 ”밥퍼, Bobper"라고 가슴에 도안을 새겨 넣은 것이라고 했다. 아하, 그래서 “밥퍼”구나. 추운 길거리에서 쭉 줄을 선 노숙자를 바라보면서 아주머니들이 “이제 밥 푸자.”라든가, “국이 다 끓었으니 얼른 밥 퍼,”하고 대화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 옷을 받은 아주머니가 옷이 너무 크니 갖다 입으라고 했고, 누님은 내 생각이 나서 얼른 받아왔던 것이다.


하루 종일 그 옷을 입고 다녔는데, 저녁에 친구가 내 왼쪽 가슴에 새겨진 “밥퍼, Bobper"를 유심히 보더니, 그런 메이커도 있냐고 물었다. 나는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친척이 불란서에 갔다가 사왔는데, 국내시판을 전혀 안하고 순전히 외국에 수출되는 물건이란다. 불란서나 런던, 또는 뉴욕의 명품가게에만 가야 이 옷을 살 수 있는데, ”밥퍼, Bobper"라는 상표를 모르면 부유층이 아니지. 미국의 부시대통령이나, 럼스펠드 국무장관이 가끔 추운 날에 입고 나오는 잠바가 바로 이거야, 가슴에 “밥퍼”라고 찍혀 있는데 못 봤어? 전에는 영국수상도 이 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던데,“


시치미 뚝 떼고 말하는 나를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 잠바는 시시한 오리털이 아니라, 북극에 사는 물새 가슴털로 만든 거야. 옷 한 벌 만드는데 갈매기를 수백 마리 잡아야 한데, 그래서 명품 중에 명품으로 소문난 거야. 얇지만 아주 따듯하거든. 얼마주고 샀더라...... 아, 우리나라 돈으로 이백 육십 만원 줬다던가, 그러더라고.”

친구는 손가락으로 옷을 비벼보더니 말했다.

“역시 비싼 게 좋긴 좋아. 명품이라서 그런지 디자인도 고급스럽다.”

흐흐, 명품이긴 명품이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노숙자들이 봉사하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속으로 얼마나 외쳤을까,

“빨리 밥 퍼, 밥 퍼, 배고파 죽겠어.”



글 / 은하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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