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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시위 무엇이 문제인가?

나도 몰라 |2005.12.31 16:45
조회 299 |추천 0

이 글을 올리는 나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군대에 가지 전까지 농민의 아들로 살았으며
한 동안 외도를 한 외에는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
농민으로 살다가
I.M.F와 두 번의 태풍으로 농지까지 압류 경매로 잃고
지금은 잠시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내 년 에는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하고 있는 보통 사람이다.

나는 농사를 통해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농사가 모두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 농사를 잘 하다가도 한 번 강한 태풍을 맞으면
그동안 좋았던 농사마져 무위로 돌아가고
다시 농사를 위해서는 새로운 농사 자금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농협의 대출을 받아야만 한다.
농협의 대출을 받아 열심히 일 해서 피해를 복구하고
이제 어느 정도 살만하다 해도
다시 한 번 태풍이 오거나
가뭄이 들고 홍수가 덮치면
아무리 근검 절약하며 성실하게 일을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농사라는 것이 매월 일정한 월급을 받는 직업도 아니어서
한 번 농사를 실패하면 그 피해를 복구하기가
한 두 해 수고와 노력을 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또 하나 문제는
어느 해 농사가 잘 되고 가격이 올라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되더라도
이 나라 정부는 어떻게 된 정부인지
농부들의 형편은 아랑곳 없이
서민 생활을 위해 가격 안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외국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바람에
서민 생활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농민의 기대와 희망을 무참하게 꺽어버리고
농산물 수입 기업의 배만 불리는 작태를 서슴치 않아 왔다.

지금 우리 농촌에서는 재배할 마땅한 작물이 없다.
W.T.O 체제 출범으로 농산물 시장이 무차별 개방되고
우리 농민들의 생활이야 어찌 되었든
돈벌이에 눈 먼 기업들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값싼 외국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일반 가정보다 더 많은 농산물을 소비하는 음식점들이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 값싼 외국의 수입 농산물을 사용하면서
높은 인건비와 해 마다 오르는 각종 농자재 값으로
수입 농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일 수 밖에 없는 우리 농산물은
차츰 경쟁력을 잃은 채 하나 둘 자취를 감추면서
농민들이 재배할 수 있는 농산물의 품목도 다양성을 잃고
농민들이 재배 할 수 있는 농산물의 품목도 차츰 제한되어
재배하는 품묵마다 과잉 샌산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외국의 값싼 수입 농산물에 밀려
우리의 농산물이 가격 경쟁력을 잃으면서
농민들이 제배할 수 있는 농산물의 종류도
해가 거듭될 수록 줄어들어
이제는 불과 서 너 가지에 지나지 않는데
마땅히 제배할 품종이 없는 농민들은
그나마 농사를 짓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 할 수 없으므로
해 마다 같은 작물 제배와 과잉 생산으로 각격이 폭락해
대부분 농민들은 적자 농사를 계속하고 있다.
거기다 해 마다 인상되는 공공 요금과 공산품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농산물의 가격을 하락케 해
농사는 하면 할수록 손해가 늘어가지만
대부분 나이가 많은데다
특별한 지식과 기술을 갖지 못한 농민들이
기존의 잘 나가던 사람들도 직장에서 쫒겨나는
무한 경쟁의 직업 전쟁에서
새로운 직업을 구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한국이 미국을 지배하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해온 농사 밖에 없는 농민들이
그래도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손해가 나더라도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으며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소해로 적자가 늘어가는 것이
오늘 우리 농촌의 비참한 현실이다.

지난 61960년 박정희의 반란과 독재가 시작되면서
박정희의 장기 집권과
이어진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 정권은 물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영삼과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 나라 농업과 농민은
소위 수출 산업을 위한 희생 재물로 전락해
계속해서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해 왔으며
중상과 살농을 기반으로 하는 이 나라 역대 정부의 경제 정책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변함이 없음은 물론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되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조금도 개선될 기대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농민들의 마지막 생존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쌀 시장마져 정부의 중상 살농 정책에 의해
세계화라던가 글로벌이라든가 하는
하여튼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이름의 추세라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간신히 지탱해온 농민들의 생존 기반을
송두리 채 뒤 엎는 쌀 시장 개방을 두고
농민들이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신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너무 당연한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빠진다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사활을 건 투쟁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농민들의 계속되는 시위와
농민들이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와 당위성이 인정된다.
농민 시위를 더욱 부추기고 과격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농민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무리한 정책도 있지만
농업과 농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재벌들이
농업과 농민의 희생에 따른 고통과 아픔을 외면한 채
농업과 농민의 회생으로 얻어지는 막대한 이익을 독식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에만 급급해 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농업과 농민을 죽이는 외국 농산물 수입에도 앞 장 서
농업과 농민을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는
비뚤어진 기업 윤리도 한 몫을 한다는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과 급박한 현실에서
계속되는 농민 시위에 대한 이해와 당위성을 인정하고
농민들의 시위에 이해와 동정을 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위가 과격화 하고 폭력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의 한계를 넘어 수긍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 농업을 말살하고 농만의 생존을 위협해온 것은
농민들과 맞서 일진 일퇴를 가듭해온 시위진압 전경이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자신의 생존 기반을 위탁해온 정치인들과
그런 정치인들과 결탁해 농업과 농민을 죽이기에 나서는 재벌들이다.
지금까지 우리 농민들은 권력과 거대한 자본에 의해
이용되고 착취를 당해 왔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선거 때만 되면 갖가지 화려한 구호와 몇 푼의 돈에 자신을 팔아
자신을 포함해 이 나라 농업과 농민을 죽이는 범행을 해왔다.

지금은 많이 늦었지만
아직도 농민들이 자각해 우리 농업과 농민 스스로를 살리려면
자본과 결탁해 농업과 농민을 수탈하는 권력지향적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참으로 우리 농업을 살리고 우리 농민을 대변할 사람들에게
농촌의 행정과 정치를 맡겨야 한다.
농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평생을 고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복함 없이 호의 호식하며 자라
고위 관료와 대기업의 임원으로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농촌에 내려와
자기 아니면 우리 농업을 지키고 농민을 살릴 사람이 없기라도 하다는듯
온갖 감언 이설로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고
고통하는 농민의 아픔을 해결하겠다며 기염을 토하는데
그런 위선과 가식이 가득한 사이비들이
어찌 자기와 관련 없는 농업이 죽어감을 관심하며
어찌 고통하는 농민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농민들의 시위를 막는 전경들 역시 시위를 막는 것이
그들의 자의적 의사에 따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에 이용당해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며
농민 시위를 막는 전경들은 농민을 해하려는 적이 아니라
더물어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아들이며 동생들이다.
더우기 아직 세상 경험과 삶의 경륜이 미흡하고 어린 전경들에게
시위대의 진로를 방해한다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전경들에게는 무조건 참고 견디라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리 절박한 농민들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쉽게 납득 할 수 없는 무리며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전경들이라고 해서 각목과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심지어는 화염병이 폭발해
심하면 부상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시위에 나가
부모의 연배거나 부모의 연배를 넘은 시위대에 맞서
살벌한 난투극을 벌이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농업을 죽이고 농민을 약탈한 권력과 재벌에는 맞서지 못하고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동원되는 어린 전경들과
감정을 앞세운 폭력적 난툴르 계속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런 와중에 다친 농민들과 전경들에 대해서는
누구이 첵임이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시위를 하는 농민들이나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전경들이나 모두
권력과 재벌에 이용 당하는 피해자들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권력과 재벌이 아닌 농민과 전경들 간의
명분과 실익이 없는 시위와 진압을 반복할 것인가?

농민들도 이제는 생존을 위한 투쟁 방법을
각목과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화염병이 날으는 폭력 시위를 자제하고
선거를 통해 직업적인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고 고통하는 농민들의 아픔을 함께 할
농민의 대표를 지방 정치와 국회 의원으로 선출해
지방 자치를 통해서는 농민에 의한 농인을 위한 농민의 정책을 실현하고
중앙 정치에 있어서도 농민의 대표들로 하여금
무분별한 권력과 자본의 결탁에 따른
농업의 희생과 농민 죽이기 입법을 제한하고 봉쇄함으로
죽어가는 우리 농업을 살리고
고통에 신음하는 농민들의 아픔이 덜어 질 수 있도록
투쟁 방법의 전환과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의 폭력적 시위와 진압은
위기에 처한 농민과 진압 전경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계속되는 농민과 진압 전경들 간에 벌어지는 폭력과 폭력에 따른 부상은
무신경한 권력과 돈에 미친 재벌의 권력과 배만 키워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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