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추락, 이대로는 안 된다
며칠 전 현직 경찰관이 청와대에 경찰모를 보낸 일이 있다. 그 경찰관의 말에 따르면, 시위 진압중 농민 2명이 숨진 책임을 물어 허준영 경찰청장을 사퇴시킨 것에 대한 항의표시라고 한다.
경찰관이 불만이 있다 하여 국가원수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그 경찰관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시위진압 경찰관이 불법시위대로부터 몰매를 맞아 불구가 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마당에 불법시위는 그대로 두고, 이를 진압하다가 발생한 결과 책임만을 물었으니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우리나라의 시위는 세계적으로 화제거리였다. 군사정권 시절 화염병이 난무하면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학생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은 신기한 구경거리였으리라. 그러면서도 나라가 망하기는커녕 고도성장을 하는 점도 신통하게 보였을 것이다.
시위가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다 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반정부 시위는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됐으므로 폭력으로 경찰의 방해를 밀어내지 않고는 의사표시를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시위 자체가 군사정권에 대한 투쟁이었으니 우리 사회가 폭력시위를 용인하는 분위기였음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지 않은가. 폭력을 써서라도 타도해야 할 군사독재정권은 사라졌다. 이제는 경찰이 시위를 원천봉쇄하는 일도 없고, 내 손으로 뽑았으니 정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설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런 정권에서 동학농민군도 아닌데 죽창으로 경찰관의 눈을 찌를 이유가 어디 있는가. 로마병정처럼 중무장한 경찰관들이 중상을 입고, 시위 농민이 사망할 정도로 폭력적일 이유는 없다.
시위대만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국민이 경찰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다. 한때는 경찰이 ‘민중의 몽둥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민중의 샌드백’이 됐다. 자정 쯤 동네 파출소를 가보면, 취객에게 얻어맞는 경찰관, 부서지는 전화기도 간혹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됐다는데 왜 이 지경인가. 정부가 시위대나 시민에게는 온정적인 반면, 경찰에는 추상같은 자세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번 허 경찰청장의 사퇴가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소수라고 해서 죽창으로 경찰관을 공격해도 경찰은 당하고만 있으라고 하니 공권력에 대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터이다.
경찰에 대들었다가는 뼈도 못추린다는 미국 얘기는 하지 말자. 우범자들이 총을 들고 있어서 과잉대응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우길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제대로 된 나라 치고 경찰관이 시위대나 취객으로부터 얻어맞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불법 폭력시위 와중에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불법시위를 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이를 진압한 경찰의 총수가 쫓겨나는 나라는 또 어디에 있는가. 정부가 얼마나 경찰의 인권을 등한시했으면, 전경·의경 부모들이 시위에 나서서 “우리 아들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외치겠는가.지금 어떤 시위대도 군사독재 시절처럼 공권력을 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지금 시위가 폭력적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함이다. 하지만 불법 폭력시위로 주목을 끄는 이익을 얻었다면, 그 대가는 치르게 해야 한다. 더 이상 애꿎은 경찰관들이 대신 대가를 치르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매듭을 지을 때다. 공권력의 추락을 더 이상 방치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항상 서민을 내세우는 현 정부는 이 점을 알아야 한다. 공권력이 무너져 법치주의가 실종된 사회에 번영이 있을 수 없고, 그런 사회에서 가장 힘든 계층은 바로 서민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재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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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일자 200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