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극 공연씬 중에서...]

칠득
(경극 톤으로)
오~늘 밤~엔 만~나려나.
꿈~에나 보는 홍~등.
팔복
오~늘밤이 삼~백일째.
독~수공~방 외~롭구나.
칠득
오~늘 밤도 공 쳤구나.
팔복
송~곳이나 꺼내시오.
칠득
얼마~나 찔~렀는지 송~곳 끝이 무~디구나.
<중략>
칠득
태~후 마마. 억~울하오.
육갑
못~난 년들.
칠득/팔복
(칠득과 팔복, 육갑에게 달라붙어)
소~근 소~근, 쑥~덕 쑥~덕.
육갑
말~을 해라. 이년들아
<아마 이장면에서 웃지 않은 관객이 없었을 듯...이들의 감초연기는 자칫 어둡게만 흘러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간간히 살려주는데 큰 공헌을 했다.>
[장생이 눈이 먼채 감옥에 갇혀 간수에게 넋두리를 하는 씬]

장생
저기, 재미난 얘기가 있는데 함 들어 볼래요?
내 어려 종살이 할 때 일인데,
누가 겁 없이 안방마님 금붙이를 훔친 적이 있었어요.
주인 양반이 종놈들 죄 모아놓고 호통을 쳤지.
근데 나서는 놈이 없더라구.
엄동설한인데 좀 추웠겠수?
근데, 거 참 이상하지.
꼭 그 금붙이를 내가 훔친 것만 같더라구.
“어르신, 제가 훔쳤어요...”
그 금붙이를 어쨌냐고 묻길래 "내가 먹어치웠소."
그랬더니 몽둥이가 날아오는데 그걸 입으로 막아버렸지.
그때 입이 뜨끈뜨끈 했던것처럼 지금 눈이
아주 뜨끈뜨끈하구먼.
(사이)
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진짜 맹인이 되서는 맹인 연기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게 정말 한이네.
진짜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데 말이요. 허허허.
공길, 하염없이 장생을 바라본다.
<앞을 볼 수 없는 막막함을 오히려 맹인 연기 한번 못해보고 죽는다는 아쉬움 섞인 한탄으로 풀어내고 있는 장생의 대사. 어렸을 적 주인 마님의 금붙이를 가져갔던 범인이 바로 공길이었음을 영화 종반 연산의 처소에서 공길이 독백처럼 읊어대던 인형극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고...>
[사냥이 끝난 후 공길에게 활을 쥐어주며...]
연산 : 날 쏴...어서 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활시위를 당기던 공길, 연산이 서있던 옆 기둥에 화살을 쏘아 맞힌 후 그대로 혼절하여 쓰러진다.

쓰러진 공길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연산, 공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찧는다.
그렇게 여러번 머리를 찧던 연산,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갑자기 공길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원래 시나리오상에 없었던 장면이라고 한다. 이는 정진영씨의 즉흥적인 연기였다고 하는데 촬영전 이준기씨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눈을 떠서는 안되다는 당부를 했다고...어쨌든... 참 인상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공길이 연산 앞에서 인형극을 마치고 자살을 시도하던 씬]
낮은 병풍.
그 앞에 연산 앉아 있다.
병풍 뒤에서 구슬프지만 아름다운 풀피리 소리 들려온다.
풀피리 소리 멈춰지고,
병풍 위로 손 인형 하나가 올라온다. 장생 인형(a)이다.
장생 인형, 병풍 위에 털썩 걸터앉는다.
공길 인형(b), 병풍 위로 고개를 삐죽 내민다.
공길 인형, 주춤거리며 다가와 장생 인형 옆에 와서 앉는다.
나란히 앉은 두 인형 화면 가득 잡힌다.
공길(off-sound)
(b)미안해.
(a)뭐가?
(b)주인마님 금붙이 내가 훔쳤단 말이야.
(a)상관없어. (사이) 그 금붙이 어딨어?
(b)여기.
(a)나랑 도망가지 않을래.
(b)어디로?
(a)어디든!
두 인형 병풍 위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실젠지 환청인지 광대패들의 신명나는 장단 들려온다.
공길(off-sound)
(b)광대다!
(a)가보자!
두 인형, 병풍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춤을 추다 병풍 모서리에서 공길 인형이 외줄을 탄다.
공길(off-sound)
(a)아래를 보지 마.
(b)무서워.
(a)줄 위라고 생각하면 안돼.
줄 위는 반 허공이야.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
두 인형, 외줄을 타듯 병풍 모서리를 겅중겅중 걷는다.
갑자기 멈춘다.
두 인형 병풍 아래로 사라진다.
인형이 다시 올라온다.
장생 인형의 눈이 칼로 찢겨져 있다.
장생 인형, 병풍 아래로 풀썩 내려간다.
연산, 의아해 쳐다본다.
병풍 밑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연산 놀라 달려들어 병풍을 거칠게 제친다.
쓰러져 있는 공길의 손목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장생에 대한 공길의 미안한 마음과 공길에 대한 연산의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던 같다. 공길을 향해 "왜-?" 라며 울부짖던 연산의 슬픔이 느껴지던...>
[마지막 장생과 공길의 외줄타기...]
칼을 든 의금부 나졸들 도열해 있다.
궁 후원 하늘 위를 가로질러 외줄이 높게 설치되어 있다.
연산과 녹수 앞에 장생이 말뚝이탈을 쓰고 앉아있다.
그 옆에 공길이 서있다.
어디선가 장단소리 들려온다.
연산
시작하라.
공길, 장생 옆에 늘어져 있는(외줄로부터 이어져 있는) 줄을 잡아 그 끝을 장생의 손에 쥐어준다.
장생, 공길이 전해 주는 줄인 줄은 모른 채 줄을 잡고 일어난다.
장생 줄을 잡고 외줄을 향해 걷는다.
장생, 경사진 줄을 올라 외줄 위 끝에 선다.
장생
어허~ 내, 눈이 멀어 줄 위에 올라서니,
이 색다른 맛일세!
장생, 줄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금방 떨어질 듯 휘청거린다.
공길, 불안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장생을 본다.
장생
(아슬아슬하게 줄 위를 걸어 나가며)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들 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패를 첨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짓 할 때는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울컥 하는 걸 겨우 참으며)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사이)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장생, 말을 멈추며 걷는 것도 함께 멈춘다. 위태롭게 흔들린다.
공길, 자기도 줄에 오르고 싶어 연산을 돌아본다.
연산, 막지 않는다.
공길도 각시탈을 쓰고 걸어가 줄 위로 오른다.
장생
(억지 신명을 내며)
그건 그렇고!
이렇게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이 맛을 알았으면 진작에 맹인이 될 걸.
공길, 줄 위에 올라서 장생을 바라보고 있다가
공길
(울먹임을 참으며)
이 잡놈아, 맹인이 되니 그리 좋으냐?
장생, 공길의 목소리에 놀라 휘청한다.
공길, 흔들리는 장생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장생, 금방 다시 균형을 잡고 공길의 목소리를 찾아 예민하게 집중한다.
장생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이년아!
공길
(장생을 한동안 바라보다)
저...
(울먹임을 참으며)
저 겁대가리... 없는 놈 좀 보소.
눈깔도 없는 놈이 게가 어디라고 거길 올라가 섰냐.
냉큼 내려가라, 이놈아.
장생, 환희에 찬다.
장생
(신명이 나기 시작해서)
저 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이년아!
공길
(울먹임을 참으며)
그래?
안 그래도 내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든 왕의
상판때기 한번 보고 싶었는데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이놈아!
[인서트]
궁으로 향하는 어느 길을 달리는 반정군들.
장생
(탈을 벗어 아래로 던져 버리며)
저 년이! 내 상판이 어디가 어떤데?
공길
(공길도 탈을 벗어 허공으로 던져버리며)
네 놈이 두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 놨구나.
장생
옛끼, 이년!
자, 이승의 왕인 내가 한번 놀아볼 것인데,
이 모습을 한번 보면 저승에 가서도
못 잊으니 잘 봐라. 이년아.
장생 첫걸음을 떼는데 발을 헛딛고 휘청한다.
공길 깜짝 놀란다.
장생 다시 균형을 잡고 줄 위를 걷는다.
공길도 걸어 나간다.
[인서트]
궁궐 안 어느 다리, 다리를 건너오는 근위병들을 물리치고 다리를 건너는 반정군들.
장생, 반동을 멈추고 줄 위에 바로 선다.
공길도 선다.
공길
넌 죽어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프냐?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장생
아니, 싫다!
공길
그럼 왕으로 태어나면 좋으련?
장생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태어날란다.
공길
이 놈, 그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장생
그러는 네 년은 뭐가 되련?
공길
나야, 두말할 것 없이.
광대, 광대지!
사람들, 연회장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인서트]
연회장으로 닿는 산자락을 넘어 연회장으로 밀려 내려오는 반정군들. 이를 보는 연산.
장생
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
공길
(허리춤을 풀며)
지금 한번 맞춰보면 안될까?
연산, 웃음을 터뜨린다.
연회장의 사람들 모두 도망가고 연산과 녹수만 남는다.
홍내관 다급하게 달려와 녹수를 끌어내려 하지만 녹수, 그대로 앉아있다.
공길과 장생, 줄을 힘껏 튕기더니 높이 몸을 띄운다.

시간이 멈춘 듯 화면 정지한다.
멀리서 꽹과리 소리 들리며.
장생 : 나 여기있고 너 거기 있냐?
공길 :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흥겨운 꽹과리 소리와 함께 광대패들 저 멀리 언덕을 돌아 사라져가고...
<몽환적 느낌으로 다가왔던 이 마지막 씬... 다들 광대로 살고 싶어하던 그들의 바램처럼 이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상상속의...바램...다시 태어나도 광대로 살고싶어 하던...>
위에 적어놓은 장면들은 시나리오 원본을 그대로 옮긴 장면도 있고 시나리오 내용에 덧붙인 내용도 있으며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은 제가 임의로 적은것임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