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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변했습니다

우츠보츠 |2006.01.19 12:52
조회 838 |추천 0

아이가 예쁘다고 느꼈을때부터

내 아이를 가졌으면 엄마가 되었으면했을때 부터

한번도 꿈속의 내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닌적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남들 흔히하는 소개팅 한번 안나가고

선배들의 작업에도 동기의 구애에도 끄덕인적 없어

열녀 났다고 남원엔 춘향이가 서울엔 너냐? 하면서

조롱인지 칭찬인지 헷갈리는 말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를 만난건 제가 중학교때 였습니다.

 

고등학교 준비에 바쁘던 해 학원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하다 미국으로 다시 유학을 가기 위해

잠시 귀국한 터였습니다. 그러다 작은 사고로 생각지 않게 오래 머물게 되었지요.

 

그동안 그와 오빠 동생 하며 지내다가 정이 들었습니다.

그해 겨울 제가 연합고사를 보던날 그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메일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갔고

오빠의 여름방학이 유일하게 서로를 볼수 있는 기간이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3년 양가 부모님이 삼년수절이면 옛날엔 열녀문 내렸다면서

조촐한 약혼식을 치러주셨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따듯한 봄날이였습니다.

 

그러다 그의 건강조심하라는 말에 무심코 건강진단을 받고 위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말이 암이지 악성종양이 씨부린거라고 생각 하면 된다더군요 완치98%라고

다행히 무개복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걸로 불행은 끝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일년뒤 집에 불이 나게 되어 지울수 없는 흉터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오빠는 잠시 유학생활을 접고 제 곁에 있어줬습니다. 비록 이유가 내가 다쳐서 이라지만 기쁘기 그지 없었습니다. 제가 기운을 차리고 학교에 복학하겠다는 의지를 비추자 오빠도 마저 공부해서 인턴쉽 마치고 한국 들어오면 결혼하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 때문이였는지 괴로울줄만 알았던 바뀐 생활도 즐거웠습니다.


방학마다 제가 연수를 받기도 하고 오빠가 들어오기도 하며 자주 만나고 틈나는대로 연락을 했었고

양가 부모님이 하시는 결혼준비에도 아무 탈이 없어 보였죠. 그러던 중에 오빠가 한인 모임에 나갔다가싸움에 휘말려 칼에 찔려 도망치듯 운전해 병원을 가던 길에 음주단속에 걸려 한국에 나올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해 여름방학에는 오빠를 볼수 없었고 가을 내내 법정에 불려나가고 봉사활동시간을 채워 겨울에는꼭 들어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고 연락도 안되는 이사람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크리스마스가 지난지 한달이 다되갑니다. 그 사람 미니홈피에 여자 이름 많아집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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