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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검은 진주 - 빈첸초 시포

에릭칸토나 |2007.04.10 15:01
조회 269 |추천 0
우리 국가대표팀의 공식 서포터즈의 명칭은 붉은악마(Red devils)이다. 전통적인 붉은색 유니폼
에 악마라는 이름까지 덧붙이니 강력한 느낌을 주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맘에 든다. 하지만, 경기
력 면에서도 상대방에게 붉은악마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기력면에서나 모
습에서나 한때 진정한 붉은악마로 불리우는 팀이 있었는데, 바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
까지의 벨기에이다. 클레망스와 시포를 중심으로 하는 벨기에는 86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면서 전유럽을 전율케한다. 유럽의 붉은악마 벨기에를 10년여간 지휘했던 시포에
대해 이제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RSC앤더헤르트 유소년팀에서 폭발적인 득점감각을 보여주던 시포는 17살이 되던해에 프로무대
에 데뷔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18살의 나이로 벨기에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해 벨기에는
물론이고 전유럽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특히 시포가 보여주는 슈팅감각은 도저히 10대의 그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정도였는데, 이 특유의 슈팅력은 전유럽의 축구팬들의 머리속에 빈
첸초 시포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해 시포는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고, 84
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벨기에 팀의 일원으로 출전하게 된다.


이후 시포는 벨기에의 명문 앤더헤르트와 함께 축구인생에 있어 황금기를 맞게된다. 2년동안
앤더헤르트의 중원을 지휘하던 시포는 86년 벨기에와 함께 아르헨티나 땅을 밟는다. 약관의
나이로 벨기에의 플레이메이커를 맡게 된 시포는 벨기에의 "검은진주"라는 별명에 걸맞는 활
약을 펼친다. 자로잰듯한 패스와 넓은시야, 그리고 특유의 슈팅력은 벨기에를 4강으로 이끈다.
게다가 당시 그의 나이가 겨우 20세 였다는 점은 축구팬들을 다시한번 경악의 도가니에 빠지
게 하는 요소였다. 아직 선수로서 성장의 정점기에 도달하지 못한 사태에서 그정도의 기량을
보여줬다면 10년뒤에는 어떤모습으로 나타날것인가를 자연스레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6년 월드컵에서 아쉽게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 결승행 티켓을 내어주고 돌아온
그에게 시련이 닥치기 시작한다. 20살이라는 어린나이와 월드컵에서의 활약, 그것은 빅클럽
들의 구미를 당기게하는 요소임에 틀림없었다. 때문에 유럽의 빅클럽들이 너나할것없이 앤더
헤르트에 오퍼를 날리기 시작했고, 그는 월드컵이 끝난후 인터밀란으로 이적한다. 하지만
인터밀란과 이어서 이적한 보르드에서 그는 벤치워머로 전락하고 만다. 불과 22세의 나이로
잊혀진 선수들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86년월드컵에서 전세계 축구팬들
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가 불과 2년만에 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살아있는 레전드 기 루가 그를 수렁속에서 구해낸다. 평생을 옥세르 감독
으로 지낸 기 루는 시포를 영입해 재기를 돕는다. 옥세르에서의 한시즌은 그에게 지난 2년여
간의 굴욕을 깨끗이 잊어버릴 정도의 명성을 안겨다 준다. 옥세르에서 성공적으로 재기한
시포는 유럽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칭송받기에 이른다. 이후 다시한번 세리에A로 진출해
유벤투스에 몸담게 되고, 인터밀란에서의 아픈기억을 잊고 성공적으로 적응한다.

그리고 그 생애에 두번째 월드컵인 90년 월드컵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벨기에가 속한조는
네임밸류는 약간쳐질지 몰라도 실제 전력상 죽음의 조나 다름없었다. 시드배정국 스페인
을 비롯해 프란체스콜리와 루벤소사가 버티는 우루과이, 그리고 전대회 4강팀이자 시포와
프뢰돔, 반더엘스트등이 포진한 벨기에, 그리고 한국이 으로 짜여져 있었다. 시포는 예선
내내 유럽최고의 플레이메이커 다운 모습을 보이며 한국을 2-0, 우루과이를 3-1로 완파하
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마지막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PK를 실축해 동점기회를 날리
게되고 벨기에는 조2위로 16강에 진출한다.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난 벨기에는 경기내내
파상공세를 퍼부으며 경기를 지배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잉글랜드의 전력이 훨씬
강했을거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당시 벨기에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강호였다. 시포는
후반 회심의 슈팅을 날리지만, 골포스트를 맞추게 되고 경기는 연장에 접어들게 된다.
연장에서도 벨기에는 계속해서 잉글랜드를 몰아부치지만, 연장 후반 잉글랜드의 "철인"
데이비드 플랫의 감각적인 터닝슛에 무너지고 만다.

90년 이후 벨기에 대표팀의 전력은 서서히 약화되어 가고 94년 월드컵에 이르러서는 붉
은악마로서의 위용을 거의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시포는 프랑스의 AS모나코로 이적해
계속해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영위해 간다. 94년과 98년 월드컵에도 잇따라 모습을 드
러내지만, 더이상 벨기에 대표팀은 그의 지휘가 빛날만큼 탄탄한 전력이 아니었다. 따라
서 시포의 명성도 서서히 팬들의 뇌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98년 월드컵을 끝으로 시포는 대표팀을 은퇴한다. 그리고 99-00시즌을 끝으로 자신의 친
정과 같은 앤더헤르트와 작별하고 작은 클럽팀 샤를루와로 이적해 36세의 나이로 선수
행활을 마감한다. 선수생활동안 유럽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서 4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던
그는 이제 팬들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게 됐다. 만약 벨기에가 지금도 여전히 유럽의 붉은
악마답게 강호로서 군림하고 있다면 시포의 퇴장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졌을지도 모
른다. 하지만 그가 10년넘게 지휘해왔던 붉은악마 벨기에의 몰락을 지켜봐야 하는 영웅
시포의 모습에 왠지모를 서글픔이 묻어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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