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퍼온 글)
임수정
|2001.10.19 13:58
조회 1,707 |추천 0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잊지못하는 자신이 싫어지기만 합니다. 삶이 피폐해질 정도로 괴로운 눈에 우연히 전단지가 보입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으십니까? 원치 않는 기억만을 지워주는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오세요. butterfly tour〉아버지의 나라라는 점 빼고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선뜻 길을 나선 것은 오로지 망각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분실한 안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여행 가이드 유키와 택시 운전사 K. 시작부터 삐거덕거리는 여행은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게 하기는커녕 기억을 더욱 되살아나게 합니다. 자꾸만 내리는 산성비, 어디선가 들리는 구슬소리 그리고 임신한 유키.. [나비].... 소문대로 좀 버거운 영화더군요. 보고나서 하루를 꼬박 이 영화 생각만 했거든요. 기억을 버리고자 하는 안나와 남이 버린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유키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자하는 K의 조합은 참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SF가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막상 그런 영화를 만나니 더욱 새로운 느낌이었죠. 감독은 현실 그대로를 활용하면서도 낯선 느낌의 이질적인 공간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좋은 배우들의 공도 크겠죠. 김호정의 연기는 정말 탁월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근접하여 찍은 그녀의 얼굴은 진짜 안나인 것처럼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져있는 눈동자를 강조시키고 있습니다. [나비]는 재미를 바라고 볼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를 조금 명확하게 풀어나갔다면 관객에게 훨씬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을텐데. 흔히들 말하죠. 세월이 약이라고.....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을 다 지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하지만 지워진 기억으로 새로이 시작하면 고통이 없을까요? 오히려 그런 빈공간은 더 무너지기 쉬운 법이죠. 마치 산성비에 스러지던 나비들처럼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나비]를 찾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