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사장님
비록 낡은 시설의 동네목욕탕이지만 한산해서 좋다. 요즈음의 찜질방처럼 휴게실이나 수면실도 없지만, 굳이 찜질방에서 쉬어야 할 이유도 없으니 나는 조그만 동네목욕탕을 잘 이용한다. 집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자주 다니다보니 그 목욕탕을 자주 이용하는 손님과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안면은 익숙하다. 배가 쑥 나온 저 사람은 집 위에 있는 갈비집 사장님이고, 재담꾼인 누구는 카센타 사장님이고, 대머리가 반들반들한 사람은 구멍가게 사장님인데, 하다못해 세탁소하는 사람도 사장님이라고 부르니, 이것은 다 목욕탕주인이 아무나 보고 그저 사장님, 사장님, 하고 부른 덕택이다. 그곳에서는 나도 사장님이다. 무슨 사장님이냐면 그냥 사장님이다. ‘사장님 어서오세요,’ 하면 나도 꾸뻑 고개 숙이며 ‘사장님 잘 지냈어요?’ 하니 그 목욕탕주인도 역시 사장님이다. 그래서 원래의 목욕탕이름 대신에 사람들은 그 곳을 사장님목욕탕이라고 곧잘 부른다.
목욕탕에 들어서니 그 날도 역시 얼굴이 익은 사장님들이 옹기종기 평상위에 모여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바로 WBC 한국대 일본의 경기였다. 목욕탕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사장님에게는 그냥 목례만 끄떡하고 탕에 들어서니, 경기가 무척 궁금했다. 목욕을 하면서도 귀는 밖으로 쏠려 있었다. “오케이, 안타다, 쳐라, 확 홈런을 넘기라고,” 귀가 솔깃, ‘스트라익, 역시 잘 던져, 멋쟁이다.’ 또 귀가 솔깃, 목욕탕사장님도 합세하여 카운터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아휴, 아깝다. 그냥 확 넘어가는 건데, 파울볼이네.’ 경기는 삼 회전을 지나 사 회전에 돌입한 모양인데, 마음은 급하다. 대충 씻고 빨리 나가서 야구를 봐야지.
밖에 나와서 나도 엉거주춤 평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이렇게 발가벗고 야구구경하는 것도 별미였다. 평소에는 서로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장님들도 역시 모두 발가벗은 채 슬쩍슬쩍 옆의 사장님에게 말도 던지고 또 받아주기도 한다. ‘아휴, 저 자식은 괴상하게 생겨가지고 엄청 이빨에 힘주네,’하고 일본선수를 흉보는 농담이 누구의 입에서 떨어지면, ‘지 애미가 낳을 때에 이빨을 부드득 갈았던 모양이지,’하는 농담이 맞받아쳐진다. ‘아하, 아깝다. 이 때는 그냥 한 방 날려야 되는데,’하고 카센타 사장님이 맨살의 허벅지를 탁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한다.
영대영의 무점수로 지루하게 펼쳐지던 경기가 팔 회전에 접어들었는데, 한국선수가 4사구로 출루하고 그 다음 선수가 안타를 때리자, 사장님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목을 일제히 쭉 빼고 높이 달려있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 방의 안타면 한국이 2점을 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 조마조마하던 사장님들이었는데, 정말 기적 같이 한국선수가 외야를 빠지는 안타를 때린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와 해설자, 그리고 관중의 환호소리가 넘쳐흘렀다. 사실 모든 사장님들은 자기 자신이 벌떡 일어서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나도 벌떡 일어서서 높이 달린 텔레비전을 쳐다보며, ‘히야, 기가 막히다. 역시 이종범선수야. 완전히 적시타네,’하고 소리쳤다. 사장님들 중에서 제일 말이 없던 내가 이랬으니, 다른 사장님들이야 오죽 했겠는가, 배가 쑥 나온 사장님도 몸을 흔들고, 그 옆의 사장님은 펄쩍펄쩍 뛰고, 또 그 앞의 사장님은 두 팔을 번쩍 쳐들었으며, ‘와, 우리가 이긴다. 이제 한 번만 잘 막아내면 우리가 이긴 거야.’하며 목욕탕사장님은 카운터를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그러나 마지막 9회에 홈런을 일본에게 얻어맞아 2대1의 점수가 되자 사장님들은 모두 긴장했다. ‘야야, 잘 던져,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하며 구멍가게 사장님이 갈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상대방에게 홈런을 또 한 방 얻어맞으면 출루했던 일본선수가 들어오고, 홈런 친 선수까지 들어오면 우리가 지는 게임이다. 사장님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투아웃에 일본의 마지막타자와 한국투수가 맞붙었다. 퍽~ 소리가 나면서 주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스트라익, 히야, 이제 투 스트라익이야. 한번만 더 팍 물 먹여.’하는 세탁소 사장님의 간절한 소원이다. 한국투수가 볼을 휙 던지자 일본타자의 방망이가 힘껏 휘둘러졌는데, ‘스윙, 아웃이다. 으아, 드디어 한국이 이겼어.’하는 환호성이 목욕탕 안에서 일제히 터졌다. ‘아, 정말 잘 했어. 나는 한국이 이길 줄 알았다니깐,’하는 소리, ‘일본 녀석들이 삼십년 넘게 자기들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주접을 싸더니...... 자식들,’하는 소리, ‘까불면 다 맛이 가게 만드는 거지, 안 그래?’하는 소리가 사장님들 입에서 일제히 터져 나왔는데, 너무 흥분했는지 모두 몸을 흔들고 난리들이었다.
이때 재치 있는 농담을 잘 던지던 카센타 사장님이 왈, ‘아니, 왜 모두 일어서서 가운데 방망이를 흔들며 난리야?’하자 모두 상대방과 자기의 거시기를 한 번씩 둘러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방망이 밑에 야구알 두개도 흔들리네,’하는 카센타 사장님의 말에 또 배꼽을 쥐었는데, ‘아이고, 우리 목욕탕이 야구장이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사장님들이 모두 아홉 명이잖아. 딱 야구선수 숫자네,’하는 목욕탕사장님의 말이었다. 저 쪽의 의자에 앉았던 젊은 사람 두 명을 합하니깐, 정말 야구경기 선수 숫자와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러면 목욕탕사장님은 뭐야?“하자 옆에 있던 구멍가게 사장님 왈, ’심판이잖아.‘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미적미적하며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장님들이 단번에 친해진 느낌이었으니, 응원의 묘미란 바로 이것이다. 갈비집 사장님이 옷을 입고 나가며 ’오늘 밤에는 마누라한테 안타를 쳐야겠다.‘하니깐, 카센타 사장님이 또 한 마디, ’일본선수처럼 헛스윙하지 마슈, 아웃이요.‘한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