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道 기타 브로그 참조 : http://myblog.moneta.co.kr/yj5288
도선국사는 풍수지리를 잘 알면서 “왜!”자기인생의 운명을 바꾸지 않았을까?
아마도 전국을 다니면서 풍수비기를 만들었으니 모르지는 않았으리니!
그리고 미래의 살 수 있는 명당인지 죽을 명당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풍수지리로 대통령 3명을 만들었다는 유명한 국지사인 고 손석우 선생은 왜 자기 집안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였을까?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궁금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 자신의 운명이다.
또한 빈 자리에도 주인이 있기 때문에 명당 주변에 가서도 혈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인생사가 왜 이런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 뛰어 넘고자 풍수지리를 독학하였다.
알면서도 못하고 때로는 너무 힘들어 한때는 寅場卯發地로 쓰고자 부모님과 언쟁을 높이기도 하였지만 숨어있는 북진(풍수에서 사)들을 확인하고 인간사가 내 마음대로 않되더라는 것을 !
왕이 나오는 산의 명당과 집터는 풍수에서 말하는 왕사와 북진이 구비되어야 한다.
이제는 주역도 풍수지리도 마무리가 된 시기라는 것을 !
우주순환으로 다시 태어나는 지구를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내 자신이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도 하늘의 뜻일 것이다.
대권과 風水
출처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010/nd2000100160.html
暗葬으로 대권쟁취한 윤보선 전두환,
移葬으로 출세한 노태우 김대중
윤보선·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생가와 선영묘지를 수년간 풍수 답사한 결과 드러난 비밀은 역대 대통령 모두 산 능선의 끝 집에서 태어났고, 일족 중에 명당 풍수에 밝은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역대 권력자들이 추구한 권력지향적 땅이란 어떤 것일까?
●김두규·풍수지리학자·우석대교수 ●안영배·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신 은 죽었다”며 신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철학자 니체는 ‘나는 왜 이렇게 똑똑한가’라는 글에서 그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장소와 풍토, 즉 우리 식으로 말하면 풍수(風水)적 조건을 언급하였다.
“어느 누구도 아무 곳에서나 살 수는 없다. 자기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큰 과업을 이뤄야 할 사람은 누구나 이 점에 있어 선택이 제한되지 않을 수 없다. 풍토가 신진대사에 끼치는 영향, 즉 그 부정적 및 긍정적인 영향은 지대하다.
장소와 풍토 선택에 한번 실수하면 자기가 지향하는 목적을 완수할 수 없으며, 아예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니체는 좋은 땅에서 나올 인물로,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천재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니체는 천재가 나올 수 있는 땅의 조건으로 ‘맑은 공기, 청명한 하늘, 즉 거대하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을 언급하였다.
그러니 니체가 말한 천재가 나올 수 있는 지리 조건을 염두에 두고 역대 대통령들의 땅을 보면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은 니체와 같은 천재 사상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란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한 자들이다. 니체의 논리에 따르자면 그들의 생가 터는 ‘권력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땅이어야 할 것이다.
과연 집터의 기운은 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무릇 땅에 집을 짓고, 뼈를 묻을 때 받게 되는 것은 그 땅의 기운이다. 땅의 기운에는 좋고 나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즉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날 때 맑고 탁하고, 현명하고 어리석고, 착하고 악하고, 귀하고 천하고,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되고, 오래 살고 일찍 죽고 등의 차이가 어찌 없겠는가?”
이는 조선조 지관을 선발하는 데 필수 시험과목이었던 ‘지리신법’의 한 대목이다. 특정한 땅의 기(地氣)가 특정한 인체의 기(人氣)와 만나 상생(相生) 관계를 가질 때 발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이다.
따라서 특정한 땅의 기를 받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한 명씩 독특한 인물이 나올 수 있다. 반면에 특정 지기(地氣)와 인기(人氣)가 만나 상극 관계를 가질 때 재앙이 일어나기도 한다.
권력과 궁합이 맞는 땅
다시 니체에게로 돌아가보자. 그의 말을 따르면 자기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땅을 선택할 때 한 번 실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재기 불능 상태가 될 수 있으며 반대로 땅의 선정에 성공하면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성공한 대통령이다. 김대중은 97년 대통령 선거 전에 오랜 세월 자신의 정치무대였던 동교동에서 일산으로 이사하였다.
동교동 저택에서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풍수 술사(術士)의 말을 따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 집을 팔았다. 퇴임 후에는 다시 동교동 옛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로 보아 김대중의 일산 집은 거주하려는 실질적 목적보다는 풍수 도참설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의 이러한 선거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800년 전 중국에서 조조(曹操)가 활용한 수법이었다.
후한이 몰락할 즈음 조조, 유비, 손권, 원소, 제갈공명, 주유 등 쟁쟁한 시대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때 후한의 신하 왕립(王立)은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에게 천문과 오행의 이치로 볼 때 새로운 천자가 나타날 조짐이 있는데, 오행상 ‘흙의 덕(土德)’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흙(土)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천자가 될 것이니 대비하라는 글을 올린다.
바로 토(土)의 덕성을 갖고 있었던 군벌 가운데 하나가 조조였다. 자기가 풀어놓은 정보원을 통해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왕립을 협박하여 더 이상 그런 말을 떠벌리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측근과 상의하여 오행상 토(土)의 방위에 해당하는 땅을 찾는데, 그곳이 바로 허창(許昌)이었다. 결국 그는 이곳으로 한나라 도읍지를 옮기게 하고 자신의 세력 기반을 다져 마침내 위왕(魏王)이 되었고 그 아들대에 이르러 천자가 나왔다.
고려 때 묘청과 신돈의 서경 천도설, 조선 광해군의 교하(파주군 교하면) 천도 계획 역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풍수도참 사상이다.
김대중이 일산으로 이사하게 된 풍수도참적 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일산 집터는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읽게 해준다. 그의 일산 집터는 일산의 유일한 야산인 정발산 기슭에 있다.
정발산은 평지돌출의 야산으로 한강을 만나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춘 곳이다. 갈 곳까지 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산이자, 드러낼 것을 다 드러낸 산이다. 따라서 절박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개방적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에 몇 번이나 떨어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일산 집터는 그런 의미에서 성격이 맞아떨어진다.
사람마다 성격과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듯, 땅도 그 성격이 다르다. 특정한 땅과 특정한 사람이 만나 궁합이 맞으면 성공하지만, 서로 궁합이 맞지 않으면 실패한다.
역대 대통령 집터의 공통점
실제 역대 대통령들과 몇몇 대권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의 생가와 선영 묘소를 살펴보면 독특한 보편성을 보여준다.
먼저 이들의 집터, 즉 생가에 대해 언급해 보기로 하자. 역대 대통령들의 집터를 따지는 데 우선 언급되어야 할 것은 그 출생 성분에 따라 집터 입지가 두 가지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출생 성분이라 함은 신분이 아니라 태어날 때의 집안의 빈부 정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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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노태우 생가의 경우도 집 주변에 보이는 자연 암반이 좋은 돌로 강력한 기운을 소응(昭應)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기가 살기(殺氣)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점도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그는 아버지의 교통사고 사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불행을 야기했던 5·18 전후의 노태우 행적도 어느 정도 이 살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해기(海氣)가 넘보는 김대중 생가
목포에서 두 시간 뱃길 거리에 있는 김대중 생가는 하의도 맨 끝으로 알려져 있다. 하의도 선착장이 있는 웅곡리 면소재지에서 ‘김대중 대통령 생가’ 안내판을 따라가면 후광리가 나온다. 후광 2구와 후광 1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 마을을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김대중 생가가 있는 곳은 거북이 머리 부분이다. 금거북이 진흙 밭으로 들어가는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이다.
이곳은 하의도 북동쪽 끝으로 후광마을에서도 끝 집이자 왼쪽 외딴집이다. 이 역시 다른 대통령들의 집터처럼 동네의 좌청룡 끝 지점에 있다. 집터는 마을 뒷산에서 내려온 산 능선의 끝부분에서 반달 모양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1999년에 복원한 생가는 반달 모양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집 뒤로 이어지는 산 능선은 후덕하여 그곳 특산인 마늘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집 뒤 수백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산(主山)은 높지 않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곳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데, 썰물 때는 섬의 북동쪽에 있는 장병도와 갯벌로 이어진다. 따라서 김대중 생가터는 하의도의 맨 끝집이 아니라 장병도에서 이어지는 지맥의 원줄기이자 맨 처음 갈라져 나온 왼쪽 능선 끝이다. 하의도 전체의 산들은 이곳 김대중 생가 우측 능선에서 이어져 나가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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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지향적인 땅과 사람들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를 살펴볼 때 단지 땅만이 그렇게 권력 지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살았던 사람들 역시 권력 지향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권력 지향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방법은 다양한데, 그들 집안의 묘지를 살피는 것이 그들의 권력관을 엿볼 수 있는 유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1846년 훗날 고종의 아버지로서 흥선대원군으로 불린 이하응은 지관(地官) 정만인(鄭萬仁)의 도움을 얻어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묘를 이장한다. ‘천자가 나올 자리’를 택해서 이장한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853년에 둘째 아들 명복(命福)이 태어나고, 명복은 나이 12살 되던 해인 1863년에 고종 임금이 된다. 그 후 그는 임금에서 황제로 즉위한다. 결국 고종 황제와 그 아들이 뒤를 이어 순종 황제가 되었으니 예언된 풍수설이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그로부터 150년 후인 1995년에도 아주 비슷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에 ‘남북통일을 주도할 지도자가 나올 자리’에다가 아버지와 어머니 묘를 이장했다.2년 후인 1997년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그는 최근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등 남북통일에 기여할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김대중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부모의 산소 아래 자신이 죽어 묻힐 자리, 즉 신후지지(身後之地)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1846년과 1995년 사이 150년 세월에 왕조가 바뀌고, 사회경제체제가 바뀌었지만 풍수지리에 관한 것은 바뀐 것이 없었다. 흥선군도 아버지 묘를 ‘천자가 나올 자리’에 이장해서 아들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였고, 김대중도 아버지 묘를 ‘대통령이 될 자리’에 이장하고 대통령이 되었다.김대중뿐만 아니라 이전 역대 대통령들의 풍수관련 사안들을 챙겨보면 모두 풍수지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개 권력을 장악하는 이들은 풍수를 활용하여 권력장악의 필연성을 정당화시켜 나간다. 대개 ‘천명이 바뀌었다!’느니, ‘구국을 위한 역사적 결단!’이니 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동시에 ‘용비어천가’를 창작하는데, 이때 풍수지리가 요긴하게 활용된다. 그 조상의 무덤 혹은 생가가 ‘제왕이 나올 땅’이었다고 이야기하면 일단 그 조작된 ‘왕권신수설’은 백성과 국민에게 먹혀 들어간다.
이것은 단지 권력을 획득한 이들에게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부정과 불의로 엄청난 부를 획득한 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석숭과 같은 거부가 나올 자리에 그 조상의 무덤이 있거나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심리적으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점만으로 권력과 풍수의 오랜 야합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풍수지리가 갖는 또 다른 내적 이유가 있다. 풍수지리의 핵심이론인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 갖는 선동성과 신비성 및 혁명성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인간과 자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아우르는 천지간에는 일정한 기가 충만하다. 그 기를 매개로 하여 인간과 자연이 감응하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감응한다는 것이 동기감응론이다. 이때 발생하는 감응은 서로 유사성이 강할 때, 즉 동기에 가까울수록 더욱 쉽게 또는 빨리 발생한다.
이러한 풍수지리의 동기감응론은 ‘신이 하는 일을 빼앗을 수 있으며,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고칠 수 있다’는 소위 ‘신공가탈 천명가개(神工可奪 天命可改)’적 사고를 동아시아 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심어놓았다. 즉 스스로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집단의 운명을 고칠 수 있다는 ‘탈신공개천명(奪神工改天命)’ 사상을 풍수지리가 대변해온 것이다.
풍수지리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한 가문을 흥하게 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한 나라를 빼앗을 수 있다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중성, 전통성 그리고 신비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운명을 거부하는 적극적 사고 방식은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 고유의 사고 관념으로 이야기되는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者興 逆天者亡)’이라는 운명론이 줄 수 있는 절망감에 한 줄기 희망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순천(順天) 사상과 역천(逆天) 사상은 지금까지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공존을 하고 있다.
암장으로 권력을 잡은 대통령들
실제로 탈신공개천명의 논리로 정권에 도착한 역대 권력자가 엄연히 존재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고향은 북한에 있기 때문에 답사가 불가능하지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승만의 아버지가 그 부모, 즉 이승만의 조부모 묘를 제왕이 날 자리에 암장(暗葬)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 묘가 실전되었다고 한다.
2대 대통령인 윤보선의 경우도 그러하다. 윤보선의 조상은 고향과 서울에 교회를 세웠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풍수지리의 은총’을 가득 받은 집안이다.
윤보선 대통령 조상 묘가 명당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다음은 윤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의 자서전 내용이다.
“흉년이 들었던 어느 해 이야기다. 하루는 5대조 할아버지가 굶주림에 쓰러진 스님 한 분을 구해주었다. 생명의 은인인 윤대통령 5대조 할아버지에게 스님은 보은으로 산소 자리를 하나 물색해 주었다.
현재 윤대통령 선영이자, 윤대통령 무덤이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그러나 그 땅은 원래 사패지지(賜牌之地)로 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하사한 곳이었다. 이순신 장군 가문의 땅이었다. 그리하여 윤보선 4대조는 그 아버지, 즉 윤보선 5대조 할아버지가 죽자 이순신 장군의 땅에 암장하였다.”
역시 기독교도이며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공덕귀 여사조차 그 땅이 좋아 보인다고 칭찬하는 자리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윤보선은 풍수설을 맹신하였다. 윤보선이 1990년 서거했을 때,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충남 아산군 음봉면 동천 선영에 안장되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죽어 묻힐 자리, 즉 신후지지(身後之地)를 만들어놓고 즐겨 찾았다. 공덕귀 여사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해위(윤보선 대통령 호)를 모신 곳은 생전의 해위가 5대조 할아버지 산소에서 별로 높지 않은 뒷산을 사서 그곳에 별장을 조성해 놓은 곳이다. 해위는 한식과 추석 외에도 이곳에 일하러 오면 자신의 신위지까지 올라 그곳의 풀도 뽑고 멀리 서해바다 쪽을 바라보며 그림같이 아니 병풍같이 둘러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아, 우리 별장 참 좋다!’며 좋아라 했다.”
윤보선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선영으로 간 까닭을 시인 김소월의 노래처럼 “조상님 뼈 가서 묻힌 곳”이기 때문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보건대 그것보다는 명당에 묻히고 싶은 소망에서였다. 윤보선은 자신이 명당에 묻힌 이후 윤씨 가문에서 “다시는 그 누구든지 (선영에) 묘를 쓰지 못한다”라고 유서에 못박아 놓을 정도였다. 이유는 선영의 아름다움이 손상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현재 윤보선 대통령 산소와 그 아래 5대조 윤득실의 무덤 사이에 아늑한 자리가 빈 공간으로 남아 있고 그곳에는 조경수가 십자가 형태로 심어져 있다. 누구든지 묻히고자 탐낼 자리인데, 일부러 나무를 심어 아무도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선영의 아름다움이 망가지는 것을 꺼려서일까?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관점에서 보면 지기(地氣)의 손실을 막자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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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의 윤리
문제는 땅이 인간의 윤리를 무시하고 자체의 논리를 가져 악한 사람에게도 부귀를 주는가 하는 문제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는 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야망과 부귀를 탐해 정권을 찬탈하고, 인권을 유린하였고, 국정을 파탄시켜 수많은 국민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풍수지리가 이러한 불의한 자와 무능한 자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준다면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풍수지리의 윤리 역시 인간의 윤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과 풍수지리가 서로 상정하는 시간 개념이 틀릴 뿐이다.
역대 정치인들에게 좋은 땅이 주어진 것은 하나의 기회 부여이며 시작일 뿐이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었다가 물러난 후 그들의 잘잘못에 대해 사법적 심판이 있었고, 더러는 역사적 심판으로 미뤄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풍수적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심판은 인간의 심판과 다르다. 더욱더 잔인하다.
당나라 때 복응천(卜應天)이 지은 ‘설심부(雪心賦)’에는 “나쁜 짓을 하면 좋은 땅도 도리어 재앙을 부른다”고 하였는데, 원나라 때의 학자 조방은 ‘장서문대(葬書問對)’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무릇 집안이 장차 흥성하려면 반드시 그 조상이 음덕과 선행을 두텁게 베풀되 그 보답을 당대에서 누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비록 땅을 골라 일부러 장사지내지 않더라도 명당을 차지하며 그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늘의 묵계, 이것은 하늘이 주는 것이다. 후손들이 그 조상의 번창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모르고, 이에 묘하게 탐하고 교묘하게 취하고 농락하고 비정한 짓을 하는 것이 누구의 계략인지 모르고(즉 돈을 탐하는 지관들의 행위인지 모르고) 땅을 고르는 데 급급한 것은 역시 사사로움을 심고 이익을 엿보는 일단일 뿐이다. 마음을 이와 같이 쓰면 하늘에 죄를 얻어 스스로 그 운명을 재촉함이 허다하다.
대통령을 지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비록 그가 조상의 음덕과 하늘의 묵계로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혹은 대통령 신분으로 행한 악행이 있다면 그 후손이 재앙을 당하는 것 또한 필연이다.
이것은 역대 대통령의 후손들에서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하늘의 묵계는 완성이 아니고 진행되고 있다. 그리하여 지나친 악행에 대해서는 그 후손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하늘은 자신의 일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풍수지리의 논리다.
”송나라 유학자 채원정(蔡元定)은 주자(朱子)의 친구이자 제자로서 주자에게 풍수지리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의 ‘발미론(發微論)’은 풍수의 윤리를 정의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나쁜 업보가 가득하면 하늘은 반드시 나쁜 땅으로 대응하는데, 그 자손이 화를 입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1. 姓 名 : 격암유록에서 발췌!
가. 姓
* 尹 : 二加一橫二人立(隱秘歌), 二人橫三 (十二月綠:世論視, 多會仙中:賽四三, 有一人:無用出世智將)
나. 名 :
* 鍾 : 불亞宗佛(生初之樂, 弄弓歌, 勝運論, 末中運)
* 述 : 十八卜術出世知(弄弓歌, 桃符神人, 甲乙歌 )
다.기타 : 격암유록 원문 참조나 역사학자들께 문의?
주 소 : 전북 정읍시 시기3동 138
桃下地 奄宅曲阜 正 성명: 윤종술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