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라.”
아빠는 앉으라고 하면서도 영 못마땅 한 듯…
“이런…!!”
다짜고짜 엄마가 지후의 뺨을 날린다. 지후… 휘청.
“여보!!”
아빠가 잡는데도 엄만 지후에게 달려들며…
“나쁜놈!! 어딜 들어와, 어딜?!! 당장 나가…!!”
“…그만해. 밖에서 나한테 혼날 만큼 났어.”
그러고 보니… 녀석 양 볼이 벌겋다^^ 아빤 간신히 엄말 떼어 놓는다.
“앉아라.”
“여보!!”
“나두 돌려보낼려구 했어. 근데 꼭 할말이 있다잖아… 들어보자구.”
아빤 어느정도 화가 사그러 든 듯 하다. 아마도 밖에서 낼만큼 내셨을 테지…
“넌 들어가 있어.”
아빤 방 앞에 뻘쭘히 서 있는 날 못마땅하게 보고는 명을 내린다.![]()
![]()
난 할 수 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그래, 날 만나려구 대문앞에서 기다렸어?”
“…실은, 형주가 하루종일 전활 안받아서… 혹시 나올까 하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맞다… 핸드폰을 꺼 놨었지. 그럼… 그때부터 쭉…?
“형주가 전활 안받아?”
“네.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어제 찾아뵌다는게…”
“죄송 그런거 필요 없어. 우리 형주 맘 잡았으니까 그만 가.”
엄마 목소린… 완전 냉랭이다.
“어머니…”
“누가 어머니야? 내가 왜 니 어머니야??”
“……”
“그래, 꼭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저희들… 물론 어린나이에 그래선 안되는데… 잘못했습니다. 그치만 저희는…”
“낳아서 기른다…? 사랑하니까? 그리구 결혼도 하자… 그렇게 꼬셨니, 우리 형주?”
“……”
엄마 말에 지후는 더 이상 말을 못한다.
“형주가… 많이 좋아 했다고 들었다.”
아빠는 가라 앉은 목소리로 얘길 꺼내신다.
“좋다하는 여자가 술까지 마셨으니… 남자 입장에서 …어떻게 된건지 내 알만해.”
“아닙니다, 아버님… 그게…”
“우리 형주는 내가 알아듣게 혼 낼꺼니까 쓸데없는 책임감 느끼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버님…!!”
“엎질러진 물인데 혼 낸다고 뭘하겠나… 돌아가.”
“아버님, 그치만…”
“아이 지웠어. 그러니까 돌아가.”
??!!! 엄마의 한마디에 녀석도, 아빠도 놀라는 눈치다.
“…네?”
“오늘 내가 데리구 가서 수술했어. 더 이상 할 말 없지? 그러니까… 속 긁지 말고 이만 좀 가줘.”
엄마가 일어나 들어가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안방 문 닫는 소리도…
녀석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발생에 뭐라 할 말이 없는 듯 하다.
“… 그만 가는게 좋겠다.”
아빠도 수술이란 말에 충격인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하다.
“아버님…”
“…?”
“그치만… 아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지웠든… 아니, 애초부터 생기지 않은거라 해도… 저는… 형주가 좋습니다.”
…!! 저녀석… 왜 저런말을 하는거야? 윤서영이 있으면서…
“…그만 가.”
아빤 아무 대꾸 없이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거실에 혼자 남았을 지후…
빼꼼히 열린 틈으로 보니… 녀석, 축 쳐진 어깨로 한참을 앉아있더니… 할 수 없이 일어나 나간다. 창으로 자리를 옮겨 밖을 본다. 녀석… 대문을 나와서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간다.
‘전화… 분명 나한테 전화 할 텐데… 켜 놓을까…?’
분명, 녀석은 믿고있을 게 뻔하다. 엄마의 수술이란 말은… 기막히게도 아까 내가 했던 말과 딱 맞아떨어지니까…
그렇게 알고 있는게 좋을 수도 있어… 그러다… 잊혀지겠지…
눈물이 났다… 이렇게 오늘이 지나면 아이도 없어질테고… 잠시나마 계획했던… 사랑이라 믿었던 그런 것 들도 다 잊혀지겠지…
아마도…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창생들보다 더 보기가 힘들겠지…
나이가 먹어서… 동창회에 녀석이 나온데면 난 안나갈 테고…
내가 나온데면 녀석이 안나올 테고… 우리 그러겠지…
긴 밤이다.
집은 절간만큼 조용했고…
다들 서로 다친 맘을 끌어안고는 잠을 못이루는 밤…
나도 그렇게… 새벽을 맞는다.
……
조용히 핸드폰을 켜본다. 지금쯤 녀석은 뭘하고 있을까…?
‘지잉~~~’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있다. 그치만…
모두 어젯밤 우리집에 들어오기 전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돌아가고서는 한통도… 전화가 없었단 거다.
한통의 전화도… 한통의 메시지도…
허…!!
맥이 탁 풀린다. 나혼자 억지로 이별을 고집하는거라 생각했는데…
녀석도 그랬나보다…
이젠 정말 끝인가 보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아빠가 출근하자마자 혜린이 찾아왔다.
“너… 괜찮아?”
“…궁금해서 온거야? …미안. 어제 전화 하려구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서영 선배… 만났어?”
“……”
“뭐래…?”
“혜린아, 나… 지후랑 끝났어.”
“…뭐?”
“우리… 끝났어. 애도… 지울꺼야.”
“…왜? 그 언니가 그래? 헤어지래?”
“그여자 말따윈 필요없어… 이건 우리 문제야.”
“……민지후랑 얘긴 해 봤어?? 그러제?”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서로 보는 것 자체가 괴로울텐데…”
“니가 그애맘을 알아…??”
혜린인 은근슬쩍 녀석을 감싸는 눈치다. 기지배 어제만해도 펄펄 뛰더니…
“어제… 명재 만났어.”
“…??”
“우리 같은 학교 원서냈거든. 논술 준비땜에 잠깐 보자고 해서 나갔는데…”
“…?”
“민지후 말야. 널 정말 좋아하는게 아닐까…?”
“…?”
“명재말이… 걔 널 좋아한지 꽤 됐다고 하던데…”
“…뭐?”
“이 상황에서 어떻게 들릴진 모르지만… 니가 서영선밸 닮았다고…”
“…뭐??”
“그 언니 졸업한 후로… 그자식 많이 힘들어 했었는데… 왜 여름에 우리 학교 운동장에 텐트치고 캠프했을 때… 그때 널 보고는 부쩍 니얘길 많이 하더란다…”
생각난다. 여름 캠프…
고등학교의 마지막 추억이라며 여름휴가를 못가는 고3의 설움을 학교에서 달랬던…
그래… 우리 마주친 적이 있다.
쌀을 씻으러 수돗가에 갔을 때… 녀석은 워낙 유명한 넘여서 난 녀석을 단번에 알아봤었다.녀석은 나를 모를텐데도 괜시리 얼굴이 빨개지고, 행동도 부자연 스럽고… 그러면서도 애써 담담한척 외면 했었지…
“명재가 우릴 껴서 자리를 만든 것 도 그래서였데. 비록 몇 번 만나진 못했지만…”
“……”
“그러니까…”
“그렇다면 더 확실하네.”
“…뭐가…?”
“우리가 끝나야 하는 이유.”
“……”
“…누굴 닮아서 였다니…”
“그치만…”
“…?”
“그치만, 적어도 애 때문에… 책임감 땜에 억지로 그런건 아니잖어. 민지후, 어떻게보면 너보다 먼저 널 좋아한거라구.”
“……”
지금와서 누가 먼저를 따진다는건 웃기는 일이겠지만…
그애가 여름 캠프때 부터라면… 아마 내가 먼저일꺼다.
내가 그녀석을 처음본건 녀석이 전학을 왔던 2학년 초다.
주번이었던 난, 아침 조회 전 교무실에 들렀었다. 수업 준비에 분주한 선생님들 사이에 웬 남자아이가 서있었다. 키가 큰데다 우리학교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아서 녀석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게다가… 흘끗만 봐도 아주 잘생겼지 않은가…![]()
우리 옆반이었던 4반 담임과 뭔가 얘기하고 있던 녀석의 옆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날 점심시간. 우리반 뿐만 아니라 학교의 웬만한 여자애들이 4반 앞을 기웃거렸다.
녀석을 ‘구경’하기 위해서…
내 단짝 친구들도 나에게 가자고 졸라댔었지만 난 관심이 없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에게 말이라도 붙이는 여자애들을 보면 괜시리 심통이 났다. 내심 내가 먼저 찍었는데…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학교에서 녀석을 맨 처음 본건 난데…
그리고 약 한달 후. 녀석에 관한 루머는 끊임없이 여자들 입에 오르내렸다. 극찬론자들도 있는 반면 안티팬들도… 녀석이 전 학교에서 짤릴뻔 해서 우리학교로 왔다는 둥, 인물값하느라 여자관계가 장난아니게 복잡하다는 둥… 난 양쪽 소문 모두에 관심 없는 듯 했었지만 그냥 궁금했었다. 그냥, 녀석의 실체가…
녀석의 존재가 거의 연예인 만큼이나 커졌을 즈음. 난 좀 늦은 하교를 하고 있었다. 저만치 멀리 녀석의 일행이 보였다. 녀석 만큼이나 키가 큰 놈들만 뭉쳐서인지 위압감이랄까…? 혼자 그 옆을 지나기가 뻘쭘해 조용히 저만치에서 뒤따르고 있었다.
“…야, 너 왜그래…?”
우리학교와 인접해 있는 초등학교 앞을 지날때였다. 녀석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키가 큰 녀석들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쯤 되 보이는 남자아이가 인도에 걸터앉아 울고있었다.
“…너 왜울어?”
그냥 지나가도 될 것을 녀석은 허리굽혀 아이에게 물었다.
“……”
“야~ 말하기 싫어? 얼굴은 또 왜이러냐? 너 싸웠구나?”
“…네.”
“누구하고 싸웠어?”
“…친구랑요…”
“친구랑? …왜싸웠는데?”
이쯤에서 그의 친구들은 그냥 가자며 녀석을 잡아끌었다.
“가만 있어봐~”
녀석은 아예 무릎을 굽혀 아이와 키를 맞췄다.
“형한테 말해봐. 친구랑 왜싸웠어?”
“…그냥요.”
“야~ 그냥 싸우는 사람이 어딨냐? 뭔가 서로 미운맘이 있으니까 싸운거지. 안그래…?”
“그자식이 먼저 덤볐어요. 난 그냥 갈려구 했는데…”
“…넌 가만 있는데 그놈이 갑자기 덤볐어…?”
“…네.”
내가 들어도 말도 안돼는 소리였다.
“… 야~ 그친구 니가 너무 잘생겨서 질투했나부다~”
“…? 네?”
“임마, 니가 너무 잘생긴데다 키두 크구… 너 여자애들한테 인기두 많지?”
“……”
아이는 피식 웃고 있다.
“남자는 원래 자기보다 잘난 남자를 보면 덤비고 싶거든. 원래그래. 그래서 형두 옛날에 우리반 반장한테 맨날 시비걸구 그랬어. 그새끼 너무 얄밉구, 부럽구 그래서.”
“…진짜요?”
“그래, 임마. 너 형이 봐두 패 주구 싶을 만큼 잘생겼다, 야.”
“…ㅎㅎ”
“임마 그렇다구 다큰 녀석이 이렇게 길에 앉아서 울고 있냐? 여자애들이 보면 어쩔려구.”
아이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다.
“너 몇살이야?”
“열두살요.”
“열두살? … 얌마, 남자는 자고로 열살이 넘으면 다 큰거야~. 너 그것두 모르냐?”
“……”
“쪽팔리게 열살두 넘은게 바닥에 앉아서 울고있구… 남자가 열살이 넘으면 해야될게 얼마나 많은데. 너보다 동생들두 잘 돌봐야 돼구, 또 연약한 여자애들도 보호해줘야 하구. 그래, 안그래?”
“…그런것 같아요…”
“근데 넌… 아직도 이렇게 질질짜면서 어떻게 여자를 보호하냐? 안그래?”
“……”
“담부턴 친구가 시비걸면 그냥 픽 웃어줘. ‘짜식 그렇게 내가 부럽냐’…?”
“…ㅎㅎ”
“열살 넘었으니까 동생들이랑 여자애들도 잘 돌봐주구. 알았어?”
“네-.”
“얼른 집에가. 엄마 기다리시겠다. 야, 코피자국 닦구~ 엄마가 너 열살두 넘어서 맞구 다니면 좋아하시겠냐?”
아이는 쓱- 코피를 닦고는 씩 웃는다. 녀석이 찡긋 해 보이자 피식 웃으며 집으로 뛰어간다.
“야~ 민지후… 뭐냐? 무슨 바른생활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냐…?”
친구들은 녀석을 보고 킥킥대며 놀렸다. 지후는 그냥 피식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야, 근데 그거 니얘기지? 너 저만할 때 많이 맞고 다녔냐? 인기 많아서?? ㅋㅋㅋ”
“어, 진짜~ 너 널 보는 것 같애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지!!!”
다시 장난을 치면서 걸어가는 녀석들…
난 뒤에서서 아이가 뛰어가는 쪽을 다시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녀석의 뒷모습을 본다.
잘은 모르겠지만 필시 나쁜 녀석는 아닐거라고… 난 스스로에게 다짐해버렸다.
아마… 그때부터일꺼다. 그냥 늘 이슈가 되던 ‘스타를 동경하는 맘’에서 뭔가 다른 감정이 싹튼건. 그러니까… 시작은 내가 훨씬 먼저인거다.
“안그래? 여름캠프라면 벌써 5개월도 더 지났는데…”
혜린인 못내 아쉬운 듯 날 바라본다. 어쩌라구 기지배야…
“가. 나 엄마랑 병원가야해.”
“정말… 지울꺼야?”
“……”
“그래. 지금 나이에 아일 낳는건 나도 반대다만… 적어도 애 아빠는 알아야 하는거 아니냐?”
기지배… 언젠 알리지도 말고 해결하라더니…
“벌써 지운줄 알아, 민지후는. 내가… 그랬거든.”
“…!!!”
“그러니까 가. 나 빨리 정리하고 맘 잡고 싶어.”
혜린인 찜찜해 하며 돌아갔다.
맘이 착잡하다. 윤서영을 닮아서 였다구…?
그렇담 그애가 이러는거… 충분히 이해가 간다.
첫사랑을 못잊다가 첫사랑과 비슷한 애를 만났다. 비슷한 느낌에 취해 좋아져 버렸는데… 첫사랑이 나타나 사랑을 원한다.
그래. 나라도 첫사랑에게 가지… 그애가 나쁜게 아니다.
그날 놀이터에서 본 광경은… 분명 서영이 지후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녀석은 갈등하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일텐데… 천치 같은 나 때문에… 자기 몸 간수도 못해서 애나 베버린 등신 머저리 기지배 때문에…
이젠 명확하다. 미안하지만 둘 다를 위해 이 아인 지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