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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보기 너무 아까워서 올립니다..ㅋㅋㅋ

친절한예지씨 |2006.04.01 13:42
조회 569 |추천 0

저희 과에 저보다 나이많은 오빠가 쓴 경험담입니다.

혼자보기 너무 아까워서 올립니다..ㅋㅋ

실제로 오빠 머리에 아직도 바늘꼬맨 땜빵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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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웬만한 일들은 모두 내게 일어났다.

아니 웬만해선 일어나기 힘든 일조차 내게 일어났다.지갑과 핸드폰을 동시에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지갑이 없다는걸 먼저 알아차렸다.

에이 씨발. 한두번 있었던 일도 아닌데 관두자... 하고는 집에 택시비좀 가지고 나오라고 전화를 하려 휴대폰을 찾는데...

웬걸 휴대폰도 없었다.

그 두 물건이 동시에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도무지 생각나질 않았다.그럴 가능성이 있었던 계기나 장소조차...없었다. 감쪽 같았다.

동전 한닢 없고... 홀로 길에서 멀뚱 거리자니 비참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덜렁 덜렁 거리는 내 정신이 너무 너무 미웠다.

노숙자 아저씨의 바구니에 동전이 보였다. 그날따라 반짝이던 500원짜리 동전이 몹시 탐났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3학년때는...공사장에서 놀다 넘어졌는데 이마에 못이 박혔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니 웃을수 있는 일이지...실제로 못은 1센치미터가량이나 내 이마에 들어가 있었다.

난 고독한 프랑켄슈타인이 될뻔 했던 것이다. 물론 기절해도 아깝지 않을만큼 이마가 아팠다.

하지만 난 기절하지 않았고 지구가 떠내려가라 소리치며 울었다. 정말 절규했다. 그리곤 내발로 걸어 집으로 갔다.

오히려 기절할뻔했던건 집에서 파를 다듬고 있던 누나였다.

이마에 못을 박은 체, 피를 줄줄 흘리며 누군가 문을 연다면...그건 누가 누구든지간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넘어진 얘기를 하자면... 고등학교때도 그랬다. 에이 그래도 이마에 못이 박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땐 상처가 가벼웠다.

앞이빨의 3분의 2가 날라갔을 뿐이었으니까.고등학교 2학년때였는데... 철이 없었던 건지 너무나도 순수했던건지 난 친구 3명과 함께 얼음 땡을 했던 것이다.

아마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안할지 싶다.

실제로 요즘은 지나다니며 초등학생에게서 얼음 과 땡이란 말이 나오는걸 들은 적이 없다.신발이라고 나보다 더 능숙하게 말하는 건 오히려 몇 번 들어 본것 같다. 그럴땐 정말... 쥐어 박고 싶다.

뭐 하여튼 난 고등학교때도 얼음땡을 했고... 저기 전라도 어딘가에서 올라오신 교감선생님이 손수 가꾸시는 텃밭 경계선에 발이 걸렸다. 동시에 앞 이빨은 산산 조각 났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께 위로는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텃 밭을 넘어다녔다는 것이 이유였다. 난 그때도 산산조각난 이빨을 고이 모아 오른손에 쥐고는...정말 서럽게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누나한테도 위로는 들을수 없었고...그 후로 2년동안 내겐 앞이빨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는 정말 최고였다.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 일 베스트5안에 들만했다.이나이에 새내기가 되어...문학을 배운다 하니... 정말 놀랍도록 세상은 아름다웠다.

 어쨌든 절망을 접고 꿈을 향해 나아가니... 지나간 허무의 시간을 돌이켜 본다면... 나 어찌 행복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맥주 9000cc를 여섯이 나눠마시고는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말 뿌듯했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것이다. 진지하기도 했고 문학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일행중 여자는 없었지만 호프집 아르바이트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 과에서 왔는지 소주를 먹고는 저쪽에서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우리도 질세라 흥청 문청을 외쳤던 것이다.

버스에 내려 집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그리 해도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다. 하늘은 이제 막 어둑어둑 해지고있었다.

호프집을 나오며 웬만큼 해결을 봤다 싶었는데 아직도 몸에 맥주가 남았는지 소변기운이 강력하게 느껴졌다.그러니까 난 단지... 그 소변을 보려했던것 뿐이었다.

그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난 커다란 짱돌에 대략 6번내지 7번정도 머리를 찍혔다.

어찌 어찌 사력을 다해 막아보려 했지만... 정말 머리에 충격을 받으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날 찍은놈은 이제 15살된 중학생 아이였는데... 난 그 아이가 정말 날 죽이는 줄만 알았다. 에고 에고 이놈이 날 죽이는 구나.그래도 살겠다고 욱욱대며 녀석의 손을 부여잡으려 했다.

이 몸이 죽더라도 그손을 놓지 않으 했다. 대략 6번내지 7번 내 머리를 강타한 녀석은 놀랄만치 빠른속도로 비틀거리는 나를 밀치고 도망치고야 말았다.

도망치는 녀석은 이렇게 외쳤다. "넌 날 못잡아"....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살아있으니 아무렇지않게 말하고 있지만,머리에선 내o형의 피가 쉴새없이 흘러내려 얼굴을 흐르고 몸을 흐르고 신발에도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마치 친구에서 장동건의 마지막 모습같았다.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할것처럼 생각됬지만 난 피가 줄줄새는 머리통을 부여잡고도... 녀석을 잡아냈다.

그건 대단한 의지였다.

부상 투혼 김태영 못지 않게 난 쉴새없이 발을 굴렸다.

 

아...난 정말 남자인가 보다.

그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나의 머리통보다는 얼굴에 애티가 줄줄 흐르는 녀석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였으니 말이다.

난 경찰도 부르지 않았고 119도 부르지 않았다.

왼손에 머리통 오른손에 녀석의 어깨를 부여잡고 또 역시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 발로 병원을 찾아갔다.

결과는 5바늘 이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녀석의 아버지는 연신 꾸벅이며 내게 사과를 하셨고, 그런 내 의식은 멀쩡한 반면 일하다 말고 달려온 누나는 지금 쓰러져도 좋겠다 싶을만큼 파랗게 질려 몸을 덜덜 떨었다.

짱돌을 이겨낸 내 머리는 기특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난 정말 죽을 뻔 했던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는 사건이었다.

중학생에게 돌로 찍힐줄이야...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나다. 내가 누구냐는 질문이라면 지금까지 말한것과 같다.난 정말 정말 재수가 없는 것이다.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군대에선 뒤로 넘어졌는데 앞무릎인대가 늘어난 적도 있었다. 실화다. 분명 앞무릎이었다.

무엇이든 잘 잃어 버리는 덜렁이인데... 어찌 어찌 운이좋아 물건을 되찾은 적은 극히 드물었다.

어딜가도 항상 한 발자국씩 늦던가 아님 너무 빨리가서 외로워 하곤 했다.

흔히들 3가 끼면 조심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난 고스란히 25제를 겪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정말 절로 한숨이 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25년을 살다보니 이제 모든것을 체념할수 있게 된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건 긍정적인 체념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나에게 닥쳤을때... 에구... 또 이런식이구나..하고 금새 체념 하면서도 한편으론 놀라우리만치 전에 없던 침착함과 의지가 내 안에서 마구 솟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겐 곧잘 가장 나은 비상구를 잘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이 생겨난 것 같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문학 이었다.단지, 살아간다는것의 고단함에 체념하고 절망했던 만큼...지금 내게 솟아난 의지는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산전 수전 다 겪은 운 없는 문청인 것이다.나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만은 않은 바로 그게 나고 또 앞으로의 나다. 어제 내 머리를 돌로 찍은 녀석에게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그때 친구랑 싸워서 너무 너무 화가 나있는데... 어리버리한늠이 껄렁껄렁 지 앞을 지나가더라는 것이었다.

난 맹세코 소변생각뿐이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나는 절대 로또는 사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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