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가 9월 8일 밤(현지 시간) 폐막한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 등 5개 부문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써 올해 한국 영화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세계 3대 메이저영화제의 주요 부문에서 잇따라 인정받는 경사를 맞았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영화의 산실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이 감독이 국제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이번 베니스 경쟁 부문에는 21편 작품이 진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뇌성마비 장애인과 사회부적응자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는 영화제 진출 당시부터 높은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베니스측은 〈오아시스〉의 촬영 일정에 맞춰 이례적으로 공식 출품 마감일을 1개월 이상 연기시켜주었다. 〈오아시스〉는 감독-신인여우상 외에 '국제비평가협회상' '가톨릭 비평가상'과 젊은 이탈리아 영화인들이 뽑은 최고작품상인 '젊은 영화비평가상' 등을 휩쓸어 영화제 주최측의 기대에 부응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건 이 감독이 처음이다. 장애인 연기를 인상적으로 펼친 배우 문소리의 신인상 수상 역시 처음이지만 강수연이 1987년 〈씨받이〉(감독 임권택)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한국 영화에 영예를 안겨준 베니스는 한국 영화와 인연이 각별하다. 1999년부터 〈거짓말〉(감독 장선우) 〈섬〉(감독 김기덕) 〈수취인 불명〉(감독 김기덕) 〈꽃섬〉(감독 송일곤)을 3년 연속 본선 경쟁부문에 초청해 한국 예술영화를 국제무대에 알려왔다.
이 감독 "'베니스' 출품 원치 않았다 "
그러나 이 감독은 〈오아시스〉(제작 이스트필름)의 베니스국제영화제 출품을 원치 않았다. 〈오아시스〉를 만들면서 국제영화제를 염두에 두지 않았고 국내 관객과의 소통에 더욱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문소리는 이 영화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여우주연 출연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문소리를 설득하지 못하면 〈오아시스〉를 묻으려고 했다. 스타급 배우를 포함해 중증 장애인 역을 하겠다고 나설 연기력이 있는 여배우를 찾아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문소리가 출연 포기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면, 이 감독이 출품 거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면 감독-신인여우상 등 5개상을 수상, 〈오아시스〉가 독무대를 차지하다시피 한 이번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남의 잔치가 되었을 것이다.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감독은 80년 경북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소설 〈전리〉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운명에 관하여〉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각각 이상문학상 우수상과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1993년 영화계로 진출한 그는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고, 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받았다. 1996년 주인공 막동이(한석규)를 통해 한국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초록물고기〉(제작 이스트필름)로 데뷔, 국내 주요 영화제를 휩쓸었고, 메이저국제영화제로 손꼽히는 밴쿠버에서 용호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20여 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1999년 두번째 영화 〈박하사탕〉(제작 이스트필름)은 영호(설경구)의 삶을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역행하는 기법으로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치열하게 조명한 작품이다. 이 영화로 이 국내는 물론 감독은 카를로비 바리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또 처음으로 '박사모'(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자발적 영화 팬클럽도 탄생시켰다.
〈오아시스〉는 지난 8월 15일 개봉, 약 80만 명이 관람하는 등 흥행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각본도 직접 쓴 그는 국제영화제나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조감독이 '감동의 두더지가 나올 만하면 망치로 때렸다'고 할 만큼 그는 관객들이 주인공에 동화되거나 그들의 삶과 사랑에 연민을 느끼도록 작위적인 조미료를 치는 걸 최대한 배제했다. 감옥에서 나온 종두(설경구)가 구멍가게에서 두부를 사먹는 장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가게 천막이 감정이 없다고 재촬영하는 등 그는 '변태감독'으로 불릴 만큼 자신의 연출 의도에 철저했다.
뇌성마비 연기 위해 장애인과 함께 생활
최근 장안의 화제를 낳은 TV드라마 〈고백〉의 작가 이란씨와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이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이기도 하다.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은 "국내 관객에게 이해되지 못한다면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이 무슨 의미가 그리 있겠느냐는 게 평소의 생각"이라며 "외국에서도 많은 관객이 작품의 내심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이 많은 상을 들고 집에 가면 집사람이 트로피만 가져오지 말고 돈을 가져달라고 할 것 같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문소리는 1974년 1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1993년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한 문소리는 최민식이 주연한 연극 〈에쿠우스〉를 보고 연극에 빠졌다. 대학 시절 연극 〈노랑꽃〉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을 키웠다. 연기에 도움이 되는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1년 정도 지방에 내려가 있기도 했으며 연극활동을 위해 1년 동안 휴학하기도 했다.
영화 데뷔작 〈박하사탕〉에서 영호의 첫사랑 순임 역을 맡았던 그는 병원 입원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5㎏을 감량했으며 〈오아시스〉에서는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를 위해 2개월여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했다. 5개월여 촬영 기간 내내 장애인으로 살았다는 표현이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문소리는 "지금 모습이 연기이고 영화 속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이어 "한국으로 돌아가면 상을 받은 사실은 다 잊고 〈오아시스〉를 만들었던 자세로 임하겠다"며 "이번 수상이 앞으로 더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도록 만들어줄 것이라는 바람도 있다"고 밝혔다.
뉴스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