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이렇게 말투에 신경을 써본 적이 있었던가? 얼굴 생김생김부터 드라마 속의 공손한 말투까지 김성택은 ‘저, 곧게 자랐습니다’라고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런 만큼 준비가 필요했다. 언제 어디서나 차가 막히는 곳이 서울이건만, 그는 용케도 제시간에, 그것도 하얀 와이셔츠와 잘 다려진 검정 양복 바지를 입고 도착해 있었다. 남자로서는 특이하게도 양쪽 무릎을 다 붙이고 두 손도 가지런히 무릎에 내려놓은 채로….
.얼마 전 드라마 속에서 약혼녀를 버린 그에게 어떤 심정으로 연기를 했냐고 묻자, 얼굴 가득 난처함을 표현하는 주름을 만들었다. 2주에 걸쳐 그 장면을 찍었는데, 마음이 정말 너무 무거워서 속병까지 걸릴 지경이었단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랑한 여자와 이별할 때는 어땠냐는 질문에 슬그머니 웃음을 흘리는 남자, 어쩐지 긴장됐다.
.“이 나이가 되도록(참고로 그는 29세다) 어떻게 사람을 안 만났겠어요? 한 두세 명 만난 것 같은데… ,한 사람을 오래 사귀는 편입니다. 적어도 2~3년씩 갔죠. 한 번은 길을 지나가다가 옛날 여자 친구를 봤어요. 웬 놈(!)이랑 서 있더군요. 순간적으로 놀라서 건물에 숨어 지켜봤죠. 그리고 한마디했습니다. 흥, 나보다 못난 놈이랑 다니는군.”
.이럴 수가. ‘난 언제나 여기서 기다릴 테니 이 넓은 품이 그리우면, 그대 돌아와주오’ 같은 칸초네를 부를 것 같은 얼굴의 남자가 지금 극히 이미지에 손상을 줄지도 모를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왜 드라마나 매체에서는 늘 다듬어진 모습만 비추는 걸까? 그가 인정하는 것은 아직까진 그 이미지가 보여질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가 섰던 연극 무대에서 김성택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도망 다니는 배역을 했었다. 그때 느꼈던 무대의 스릴과 긴장감을 그는 기억한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필름이 돌아가는 ‘츠르르륵’ 소리의 에너지에 매료되고, 35mm 광고 필름의 찰칵대는 셔터 소리에 신이 나는 김성택은 지금 숨겨진 다른 얼굴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다.
.“내년 3월까지 연장 방송이 결정된 만큼 그때까지는 드라마 속 이주왕일 겁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에도 저의 원래 모습들이 많이 묻어 있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화보 촬영을 할 때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입니다. 악마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 속에 쌓인 답답함을 털어내는 것 같거든요.”
.비의 ‘나쁜 남자’를 틀어놓은 촬영장에서 그는 섬뜩한, 하지만 매력적인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마치 필름에 어떻게 찍히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맘껏 나빠진 그에게 이러저러한 포즈를 해달라는 부탁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대신 취미가 뭐냐고 던진 질문에서 건진 재미있는 대답. “낙서요.”
.대본 연습 중에도 그는 대본 속 이야기를 낙서로 그려낸다. 예를 들어 ‘깜짝 놀라다’라는 지문이 있으면 머리카락이 온통 쭈뼛쭈뼛 선 남자애가 입을 헤벌쭉 벌리고 놀라는 모습을 대본 한 귀퉁이에 그린다.
.그래 놓고선 아무 일 없었다는 식으로 연기 선배인 장서희와 우희진 앞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대본을 외우고 있는 착실한 후배의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물론 이런 것이 그저 액션이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극 중에서 약혼녀에게 미안함을 담은 메일을 보내는 신에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로, 팬 페이지의 팬들에게 ‘오늘도 참 덥죠? 땀돌이 김성택입니다’로 시작되는 답장을 남기는 장난꾸러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김성택이 싫어하는 것은 ‘부담감’. 대신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 없이 하는 일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거둔다. 직업적인 골프 선수를 그만둔 후 가끔 치는 골프의 스코어가 훨씬 좋아졌고, 어렸을 적 어머니를 피해 다니며 안 배웠던 피아노도 가수 윤도현에게 졸라 배울 정도다. 지금 하고 있는 연기도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밖에 못 쉬는 강행군이 이어져도 전혀 힘들지 않다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그가 느끼는 행복감을 표현한다면?
.“한 편의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기분이랄까요? 팬들이 만든 펜 페이지, 사인회, 인터뷰 등등은 가끔씩 ‘이거 드라마 찍고 있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들게 합니다. 얼마 전에는 은행에 갔는데 직원 분이 슬쩍 웃으면서 신분증이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도 쑥스러운 게 왠지… 하하하.”
.아마 김성택은 모를 것이다. 또 다른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는 저녁 7시의 인터뷰에서 앞에서는 웃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매니저에게 찡그린 눈으로 ‘나, 지금 힘들다구’라는 조금 과격한 메시지를 전하다가 에디터에게 들켰다는 걸.
.담배는 못 피우지만 시가는 입담배니까 피운다는 말을 하면서 의외로 경험성 짙은 담배 연기를 만들어서 담배 경력을 의심케 했다는 걸. 마지막으로 잘 다듬어진 얼굴과는 다른, 선을 넘지 않는 야비한 표정들과 막내임을 알게 하는 몇몇 단어로 야누스 같은 남자가 왜 매력 있는지를 완벽하게 증거했다는 사실을. 자료제공:더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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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