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동경과 뉴욕, 런던을 떠돌며 보헤미안처럼 살아온 가수 이상은(32)이 이젠 좀 정착할 모양이다. 그녀가 이 달 21일부터 KBS 2FM ‘사랑해요 FM’의 DJ로 팬들 앞에 서게 된다. 매일 저녁 6시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한편 의외이기도 하다.
.아이돌 스타라는 화려한 자리를 자진해서 버리고, 극소수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공중파 방송을 거부하다시피 하면서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을 선택한 그녀였다. 가수가 아닌 DJ로서의 복귀지만,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인터뷰 장소는 예상대로 홍익대 앞이었다. 이 동네는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합정동과도 가까우며, 그녀의 동지들인 인디 아티스트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178cm의 껑충한 키에 오이처럼 마른 그녀는, 방송국에서 막 사진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6집 ‘공무도하가’부터 독보적인 음악 선보여
.“방송하기로 결정하고 살이 더 내렸어요. 어떻게 진행해야 될지 고민이 돼서요.” 담당 PD는 ‘2시간 방송 중에 40분간은 본인이 알아서 해보라’고 말했단다.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그녀가 진행할 프로그램은 댄스나 발라드 등 10대 위주의 가요와 농담 따먹기식 토크로 채워지는 방송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런 프로그램의 선곡권과 게스트 섭외권 등 구성 자체를 재량대로 할 수 있는 아티스트 출신 DJ는 배철수나 한영애 정도. 그 대열에 30대 초반의 이상은이 진입한 것이다.
.“미국 빌보드 팝 차트 위주의 선곡은 하고 싶지 않아요.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차트의 음악이나 한국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싶어요. 유럽의 작은 레코드 가게들을 돌며 직접 사 모은 음반들도 끄집어낼 작정이구요. ”
.12년 전인 1990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녀는 왜 모든 기득권을 탈탈 털어버리고 이 땅을 떠난 것일까. 일본으로, 다시 1년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학이었지만, 그녀에겐 탈출이나 마찬가지였다.
.88년 강변 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두 장의 앨범을 거푸 내면서 거머쥔 인기는, 자신을 독립된 아티스트의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획사가 원하는 인형으로 만들어버렸다.
.내면의 갈등이 조용히 폭발하면서 그녀는 이 땅을 벗어난다. 이방인이 되자 비로소 그녀만의 음악이 ‘고름 터지듯’ 흘러나왔다.
.91년에 3집 ‘더딘 하루’를 시작으로 1년 단위로 4, 5집을 발표한 그녀는 다시 2년 후인 95년 일본에서 레코딩한 6집 ‘공무도하가’를 발표한다. 1번 트랙 ‘보헤미안’에서부터 마지막 트랙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까지 정체성을 묻는 질문들로 가득한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어느덧 자신만의 세계를 독특하게 구축해낸 아티스트 이상은의 면모를 확연히 드러낸다.
.“혼자 있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겪었던 마음 고생, 공부하고 여행 다니면서 얻은 자극들, 그런 것들이 용량이 커지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표출된 거죠. 편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제대로 된 곡 나오기 힘들어요. 내면의 상처, 즉 트라우마가 필요해요.”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고통스럽게 꺼내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걸 조용히 기다려준 사람이 6집부터 프로듀서를 담당한 일본인 다케다 하지무다. 프로듀서란 아티스트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산파 역할을 하는 사람이란 걸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다.
.일본 영화 음악으로도 삽입된 절창 ‘어기야 디어라’가 수록된 7집 ‘외롭고 웃긴 가게’를 거쳐 8집 앨범부터, 그녀는 이상은 대신 ‘리채’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가 제안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하면서 어머니의 성인 ‘채’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이후로 작년에 발표한 10집 ‘ENDLESS LAY’에 이르기까지, 이상은은 유목민처럼 부유하는 삶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음악을 생산한다.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 중에서도 평론가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길이 남을 명곡으로 꼽는 ‘새’나 ‘어기여 디어라’ 같은 곡들은 마치 운명처럼 그녀를 찾아왔다.
.아무리 좋은 곡을 쓰려 해도 쓰지 못할 때가 있고, 어떤 곡들은 뒤에서 누가 불러준 걸 받아쓴 것 같다. 완성하고 보면 도무지 자신이 쓴 것 같지 않다.
.“알 수 없는 자연의 힘, 신의 힘을 믿어요. 실제로 제 삶이 그런 힘에 의해 흘러왔어요. 계산된 논리가 아닌 인간미, 사랑, 자연의 힘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올해만 해도 미국, 태국, 영국 등 다섯 나라를 여행한 이상은은 월드컵 때 한국에 왔다가 지금 뜻밖의 장기체류를 하고 있는 중이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 곁에 있어 드리고 싶고, 30대로 접어드니까 매사에 신중해지는 면도 작용했다고.
.“그래도 여행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영국으로 돌아가 미술 공부를 더 할 계획도 있구요.”
.뉴욕이 문화의 중심을 움직이는 거대한 로봇이라면, 영국은 그 로봇을 타고 있는 조종사 같다는 걸 느낀다. 그녀는 전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고루 흡수하면서, 변방에서 만족하지 않고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음악적 보편성을 추구하고 싶다.
.떠도는 삶이 이젠 너무 외롭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가끔은 내가 이거 바람 타고 다니는 풍각쟁이지” 싶은 때가 있단다. 하지만 한국에서 더 외롭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홍대 앞을 거점으로 자그마한 예술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아티스트들만이 그녀의 유일한 말벗이다. 그녀는 되려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DJ를 맡기로 결심했다.
.상업성과 구별되는 대중성 추구“우리나라의 획일화된 문화 수요는 문화를 여가 시간의 소모품 정도로만 여기는 마인드에서 비롯된 거예요. 공중파 방송에서 제 퍼스낼리티를 가지고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제 메시지를 전달해보려구요. 외롭다고 느끼는 걸 뛰어넘어서요. ”
.절친한 사이인 ‘황신혜 밴드’의 리더 김형태와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 백현진은 “와, 그럼 우리 음악도 방송 타겠네”라면서 깔깔거렸다고. 하지만 이들이 그녀의 공중파 방송 복귀를 반기는 진짜 이유는 이상은이 보다 확장된 공간에서 ‘다양한 메뉴’의 문화 체험들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오버 그라운드는 여기가 일단 자본주의라는 걸 인정하자는 거고, 인디는 그것 말고 뭐 다른 거 없을까? 하는 거죠. 체제를 망가뜨리자는 게 아니라 인간성과 자연성을 회복하자는 것이고, 그걸 방해하는 요소들을 거부하는 거예요. 그런데 외국에선 오버, 인디가 맞물려서 상생하거든요. 한국에선 인디 쪽이 너무 소외돼 있어요. 햇볕정책이 필요해요.”
.그녀는 자신의 방송 복귀를 ‘햇볕정책’으로 여긴다. 이를 통해 오버와 인디가 서로 유기적으로 정보 전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보고 싶다.
.요즘 그녀가 골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대중성’이다. 이제껏 “평론가들이 더 즐겨 듣는 음악이었다”고 본인 입으로 털어놓을 정도로 난해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었다. 존 레논의 음악처럼 상업성과 구별되는 대중성을 실현해보고 싶다고. 그녀의 음악이 너무 ‘노블리스’하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다.
.“프로듀서 다케다가 콘템포러리적 성향이 강해서 노블리스해진 면도 있을 거예요. 저도 이젠 콘템포러리한 게 좀 지겨워요. 새 앨범에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씨를 공동 프로듀서로 영입한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의도예요.”
.음악적 노블리스, 도도함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는 지금 내년 2월 목표로 11집 ‘신비 체험(가제)’을 작업 중이다.
.‘도시 속에서 신화의 힘, 자연의 영기를 발견하는 순간’을 컨셉으로 하는 이 앨범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과 매니어성 음악으로 반반씩 채워질 예정이다. 대중성을 염두에 둔 곡들은 이미 완성했다. 나머지 곡들은 마음 가는 대로 만들면 되니까 무거운 짐은 벗은 셈이라고.
.키 큰 사람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로 ‘리채’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 등돌린 그녀를 불러 물어보고 싶었다. ‘담다디’의 선머슴에서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던(언젠가는) 20대 중후반을 거쳐, 우연과 운명에 이끌리는 생의 상처를 자가치유하듯 노래하고 있는 그녀의 변천사가 동년배 모두의 성장사였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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