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를 보면 무섭다. 특히 여자들이 무섭다. ‘여인천하’의 맥을 잇듯 복수와 음모와 독설로 가득차 있다. 또한 드라마의 기본 얼개는 ‘여자의 적은 여자’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여성은 약간 빗나가거나 완전히 돌아버려 비정상적이다. 언니의 애인을 빼앗고 이복동생의 약혼자도 쟁취한다. 다들 독하게 이기적으로 복수의 칼을 가는 무시무시한 여자들이다.
그런데 KBS 2TV ‘고독’은 그렇지 않다. 오랜만에 선량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PD가 함께 만드는 이 드라마에서는 뒤에서 음모를 꾸미고 복수를 다짐하고 독기를 품은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 사랑을 잃어도, 삶의 무심함에 상처 입어도 잘 매만지고 추스리며 사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나온다. 극적 설정 역시 그 누가 특별히 나쁘거나 음모를 꾸며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의 굴레’란 점도 괜찮다.
류승범과 이미숙의 맑고 매끄러운 연기도 좋다. 류승범은 보기 드물게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지닌 기대주이다. 이미숙은 20년 넘은 시간 동안 외모와 연기면에서 자신을 잘 관리한 여배우란 점에서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 감칠맛 있게 받쳐주는 조연들의 연기도 맛깔스럽다. TV사이즈에 맞게 잡은 아름다운 부감샷이나 세련된 조명도 드라마에 깃든 내공을 짐작케 한다.
굳이 흠을 잡자면 광고회사 이사인 이미숙이 ‘고독’한 모습에만 너무 치우쳐 “저렇게 힘도 의욕도 없는 여자가 어떻게 이사까지 됐을까? 그것도 광고회사의…” 하는 의구심을 주는 정도이다. 또 “나, 사십인데, 여자가 아니에요”라는 이미숙의 대사는 작가가 마흔을 넘기지 않은 데서 오는 경험부족이 낳은 말이 아닌가 싶다. 나이와 더불어 대개 여자는 비로소 남자 보는 눈도 생기고 더 많이 느끼고, 제대로 알아듣고, 슬기롭게 사랑할 실력(?)이 생기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는 외롭다. 외로운 중년 여성들에게 “사십 넘은 여자가 사랑에 빠질 확률은 원자폭탄 맞을 확률보다 낮다”느니, “‘아줌마는 외로워’라는 트로트나 들으라”느니 하는 씁쓸한 말을 농담이라고 던지는 세상이다. 바라건대, 드라마 ‘고독’이 통곡할 만한 사랑의 아픔과 기쁨을 가을단풍처럼 곱게 그려냈으면 한다. 많은 것을 가슴에 묻고 ‘상식대로 사는 아줌마’들의 외로움을 그래도 위로해주는 친구가 TV이니까 말이다.
(전여옥/방송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