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을 지나 낼모레면 12월을 보냅니다.
몸부림치듯 시간은 무심코 흐르지만 사는 게 바쁜 우리들은 그 흐르는 세월조차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리 춥지 않아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여느 때 같으면 한파를 견디느라 무진 애를 먹으며 치솟는 기름 값과 난방비에 주눅이 들어있었을 텐데 그나마 큰 한파는 아직 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물오리 떼는 잠자듯 떠있습니다.
그들이 한곳에 떠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물 속에 그들의 발이 쉴새없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하고 봉사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마음을 덜어내어 단돈 1000원을 내려고 전화기를 듭니다.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중에서 그래도 더욱 진귀한 것은 보여지지 않고 전해지는 가슴속 따스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내 이웃과 내 곁을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누군가에게라도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을 하신 겁니다.
아침 일찍 초인종소리를 듣고 무심코 문을 열었습니다.
시골에서야 동네 누군가가 아니면 곁에 사는 친척이 왔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불쑥 들어온 낯 설은 사람들...
"누구시지요..?
내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우린 장애인인데요. 집집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열어주지 않아..먹고살려고..."
라며 검은 비닐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냅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른 아침에는 초인종을 누르면 모두 놀랍니다.
물건을 사는 대신 이것 값을 드릴 테니 그냥 가지고 가세요."
그들 장애인 부부는 문전박대를 받고는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른 듯 합니다.
문을 걸어 닫고 사는 세상이라 해도 마음의 문까지 닫고 살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세상에 같이 휩싸여 살다보면 어느새 나 역시 속물처럼 변해서 어느 덧 마음의 문까지 닫고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풍진 세상 참 잘 견디며 사셨습니다.
더구나 정권 말기라는 혼탁한 세상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내 한 몸 내 가족을 안온히 살게 하는, 가족을 지키려는 울타리가 되어주려고 무던히 애쓰셨습니다.
세상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제 가족을 보듬으며 살고 있다가도 문득 돌아보고 싶어서 눈을 돌려보면 내가 안고 있는 내 식구들보다 더 가여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가는 불안하고 사회는 혼탁해지고, 이웃 간에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참 잘 견디셨습니다.
일년은 순간 지나가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아련한 슬픔이 가슴으로 밀려옵니다.
작년에 맹세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올해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편함이 얼마나 사치인가를 알게 될 때 이미 세월은 저만치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골목에서, 어느 지하철 바닥에서 가장의 체면은 간데 온데 없고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는 슬픈 사람들의 넋두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피땀으로 이 세상을 짊어지고 일어선 사람들도 어느새 세월의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줄서서 체면을 죽이고 한끼의 점심을 해결하려 합니다.
공원 벤치를 지키다 해질 녘 갈곳이 없어 흐느적거리며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좀더 보살핌을 주어야했습니다.
해가 집니다.
한해를 환히 밝히던 해는 넉넉한 모습으로 노을 빛을 만들고 그 노을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사라집니다.
우리들 인생도 열심히 살다 돌아가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노을이 되길 바라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노을은 온종일 열심히 세상을 비추고 지는 그 빛이 만든 것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으로 세상의 하루는 짧습니다.
더구나 나이 들어감에 오는 시간의 속도는 생각하기도 싫도록 빨리 지나 갑니다.
그러나 우리세대는 살아온 삶의 경험을 말하며 다음세대가 후회하고 살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습니까?
후회를 하더라도 아주 조금만 하며 사람다운 삶을 살아 손을 내밀면 서로잡고,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넉넉함으로 지금 한해를 보내며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열심히 일할 자리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일하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믿음을 주며 함께 사는 세상 환한 아침을 보고 흐뭇하게 일하러 가는 세상에서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같이 잘 사는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을 구가하며 사는 그 세상에서 만나길 바라고, 40방의 모든 님들도 새해에는 꼭 소원성취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