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린이날.
금토일 쭉~ 연휴네요.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배치입니까.
석가탄신일이 날아간 건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 푹 쉽시다 ====================================
싱글싱글 웃고 있는 한나와 나 사이에
묘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녀는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지금 찾기엔
민아가 잠에서 깨버릴 가능성이 컸기에
난 일단 거실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한나 - 응? 그냥 가려고요?
기억 - 일단 나와. 공주 자잖아.
막차시간까지는 아슬아슬한 정도....
여기서 크게 지체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난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한나를 향해 물었다.
기억 - 신환회 갔다더니?
한나
- 재미없어서 그냥 왔어요.
다들 변태마냥 헤벌죽 해서는
술만 계속 먹이려고 하고....
기억 - 집에 있으면서 불은 왜 다 꺼놨어?
한나 - 자고 있었으니까 그렇죠.
기억
- ....... 후, 그래, 그건 다 그렇다 치고
사진 찍은 건 또 뭐야?
한나 - 증거자료요.
기억 - .... 어디다 쓸?
한나 - 음..... 굳이 말하자면 협박용?
기억
- ...... 난 양심에 찔리는 거 없어.
어떻게 쓸 건진 몰라도 마음대로 해.
이미 막차를 타려면 뛰어가도 빠듯한 시간.
더 이상 그녀의 장단에 맞춰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한나가 민아에게 뭐라 하건
난 내 자신에게 떳떳했고 (100%는 아니지만)
그동안 쌓아온 신뢰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강행돌파를 용납할 만큼
그녀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나서는 순간
한나는 숨겨뒀던 첫번째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나 - 피카츄! 이리 와!!
피카츄 - 뷁뷁뷁!!
=소환. 민아캐슬의 파수꾼. 피카츄 Lv3=
광견병 예방접종은 했는지 의심스러운 기세로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피카츄를 본 난
서둘러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피했다.
피카츄 - 즈르르르를......
이미 한나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현관 너머에서 살짝 풀린 눈으로
군침을 흘리고 있는 피카츄.
기억 - 뭐...... 뭐하는 거야, 지금.
한나 - 사람 이야기도 안 끝났는데 그냥 가려고 하니까 그렇죠.
기억 - 난 더 할 말 없다고 했잖아.
한나 - 전 아직 남았는데요.
기억 - 나 전철타고 가야 돼. 다음에 해.
한나 - 그래요 그럼.
기억 - ....... 개는 치워줘야 가지.
한나 - 그건 싫은데요.
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가?
이렇게 그녀의 공세에 밀리고 있다 보니
그녀와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에 비하면 어느 정도 구도가 완화되긴 했지만.....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밀리면
그 다음은 안 봐도 3D 입체영상이다.
한나 - ....뭐하는 거예요?
기억 - 됐어, 신경 쓰지 마.
다시 그녀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건 강행돌파를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팔에 감기 시작했다.
피카츄의 크기와 성격을 생각할 때
이걸로 한 번의 공격만 막으면
대문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곳을 물렸을 때의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한나 - ...... 정말 그럴 거예요?
기억 - 너야말로 이러기야?
한나 - 흥.
내가 언제까지 저런 똥개 한 마리 때문에
쩔쩔 맬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민아네 개만 아니었어도
진작 깨갱소리 나게 패주었을 것을.....
그렇게 태세를 정비하고 문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한나의 크리티컬 공격이 직격했다.
한나
- 방금 그 사진 다른 사람한테 보여줘도 상관없어요?
예를 들면.... 안군씨라거나....
기억 - ........!!
그 사진을 퍼트리겠다니.....
나야 그렇다 쳐도 민아와 그녀는 자매 지간인데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오는 거지?
아니, 일단 그걸 떠나서
왜 하필 안군의 이름이 나오는 거야?
한나
- 표정 보니까 제대로 짚었나 보네.
지난번에 말했었죠? 나 눈치 빠르다고..
MT때 보니까 뭔가 있다 싶더라고요.
기억 - ..... 너...... 너......
얼마나 기가 차는지 말이 안나올 지경이었다.
대체 그녀가 나로부터 뭘 얻고 싶은지는 몰라도
이건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올 행동이 아니었다.
전생에 무슨 원수라도 진 건가?
한나 - 3,2,1 땡. 막차 시간 지났습니다.
기억 - ........허....참 나.....
잠시 후.
집에 외박을 알리는 전화를 마친 난
거실에 있는 소파에 한나와 마주 앉았다.
기억
- 대체 뭣 때문에 이러는 거야?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
한나
- 별 거 아니니까 그렇게 무서운 얼굴하지 말아요.
저 원래 한 번 깨면 좀체 다시 못 자거든요?
그러니까 저 졸릴 때까지 좀 놀아줘요.
기억 - ....... 나 지금 취한 데에다 엄청 피곤하거든.
한나 -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협박이라고.
대체 그녀의 머릿속은
어떤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있는 걸까.
단지 졸릴 때까지 놀아달라고 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서 사람을 협박해?
기억
- 후.... 그래, 알았다 치고
이제 전철도 끊겼으니까 필름부터 내놔.
한나 - 싫어요. 인질 풀어주고 협상하자는 테러범 본 적 있어요?
기억 - 하아아아......
이거 진짜 한 대 쥐어박고 뺏어 버릴 수도 없고.....
기억 - 그래, 뭐하고 놀아주리.
한나
- 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라면 하나 끓여줄래요?
같이 먹을 거면 두개 끓이고....
기억 - ..... 라면 먹고 자면 얼굴 붓는다.
한나 - 라면 먹고 우유 한 잔 마시면 안 부어요. 몰랐어요?
기억 - .............
내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준다.
=보글보글=
한나
- 국물 너무 짜지 않게 하고
계란은 안 퍼지게 마지막에 넣어줘요~.
기억 - 네, 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네...
대체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나
- 음. 평소에 라면 많이 끓여 먹나 봐요?
면도 딱 적당히 익은 게 솜씨가 제법이시네.
기억 - 어이구 그렇게 말씀해주니 영광입니다 그려....
한나
- ........ 계속 그렇게 비비꼬여 있기에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도 몰라요?
..... 너도 내 입장 돼봐라.
한나 - 아... 배부르다.
기억 - ......
한나 - ... 어디가요?
기억 - 설거지하러.
한나
- 에이, 그런 건 이따 하고 어깨나 좀 주물러 줘요.
자다가 깼더니 영 뻐근하네.
.....이게 놀아주는 거냐? 부려먹는 거지.
투덜투덜 졸린 눈을 부비며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간 난
곧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여성.
게다가 나이스 바디.
게다가 나시티.
...... 지금 나보고 이걸(?) 주무르라는 거냐.
한나 - 뭐해요?
기억 - 심신의 안전을 생각할 때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한나 - 어머? 지금 언니가 바로 위층에 있는데 그런 말이 나와요?
기억 -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쓰러질 것 같아서....
한나
- 그래서야 어디 쓰겠어요?
일단 한 번 해봐요. 기절하면 깨워줄게요.
기억 - .......
한나
- 평생 그렇게 살 거예요?
단련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단련을.
결국 그녀 좋을 대로 시켜먹는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지만
묘하게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그녀의 화술.
이걸 해?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