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제도라는게 이상은 좋다. 국민에 의한 재판, 나도 처음엔 그래서 배심원이나 참심원 제도에 굉장히 찬성했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우리가 배심원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하면 왜 도입하려하는지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 일단 지금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작용을 두가지 들어주겠다.
우선, 배심원에 A라는 유망한 증시애널리스트가 배심원으로 선정되었다. 이 사람이 하루에 움직이는 돈이 수십억에 이른다. 배심원으로 나갈 수 있을까? 절대 못나간다. 배심원 한번 나가면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것이 일주일이 될 지 한달 후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그 기간 동안 이 사람의 손실은? 회사의 손실은? 당연히 배심원에 나갈 수 없다. 팔을 부러뜨리더라도 안나갈 것이다.
B라는 애플사의 종업원이 배심원으로 선정되었다. 이 사람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배심원으로 나갈 수 있을까? 역시 못나간다. 왜냐하면, 배심원 갔다오면 집에는 어느새 해고장이 와있고 회사내의 자신의 책상이 이미 없어져있다.
C라는 대학생은? 역시 수업을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째야 한다. 유급당하기 싫으면 어떻게든 배심원에 선정되지 않아야 한다.
D라는 청년실업자는? 이 사람도 어떻게든 열심히 취업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상태라면 배심원에 갈 수 없다. 물론, 배심원에게 지급되는 몇푼의 여비와 공짜로 제공되는 삼시세끼 식사가 절실한 백수라면 기쁜 맘에 나갈 것이다.
E라는 가정주부는? 자식을 돌봐야 되고, 집안을 정리해야 한다. 한달동안 주부가 없는 집은 개판되고 남편과 아이들은 영양실조 직전이 될 수도 있다.
F 라는 정년퇴직한 노인은? 손자들을 돌봐야되지만 않는다면 기쁜마음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G 라는 자영업자는? 당연히 하루라도 장사를 쉴 수 없을 것이다. 재판에 나올 수 없다.
자... 그럼 배심원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충 어떤 재판이 될 것일지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이상적인 재판과는 거리가 멀고, 차라리 지금처럼 직업법관이 그냥 재판하는게 낫지 않을까?
두번째, 미국 형사재판의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가 바로 빈익빈, 부익부의 판결이라는 거다. 다들 왠만한 사람은 아는 O.J.심슨 사건, 결과는 무죄였다. 한편 억만장자였던 그는 이 재판의 변호사 비용으로 거의 파산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왜 배심원제도는 이상과는 달리 더 부패가 심한 걸까? 왜 직업법관제도 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걸까? 배심원제도는 일단 무작위로 배심원이 선정된다. 선정되어 출석한 배심원들이 모두가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배심원 중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예를 들겠다. 여기 강간사건의 배심원으로 a라는 사람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 a라는 사람은 평소에 자신의 지인들에게 "강간이란게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여자가 끝까지 저항했으면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 다들 즐겨놓고는 돈뜯을라고 하는 얘기지"라는 식의 얘기를 해왔다. 그렇다면, 검찰측은 이 사람을 배심원으로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이사람은 재판 경과와는 상관없이 무죄의 예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간범들은 다 죽여야되"라고 외치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피고인측은 그를 배심원에서 배척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똑같은 강간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a와 b가 있다. a는 수억원의 돈을 들여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의 밑에 수십명의 스탭을 보유하고 있다. 이 스탭들이 하는 일은 배심원들으로 선정된 자의 뒷조사를 하는 일이다. 이제 이 변호사와 스텝들은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들의 사생활을 캐내고 다닌다. 그리하여 그들은 배심원들을 전부 강간에 대하여 관대한 사람들로만 선정되게 만들었다. 이제 이 재판은 하나마나인 것이 된다. 당연히 무죄다. 이와 반대로 b는 500만원을 들여 그저 그런 변호사를 고용했다. 앞의 변호사와 같은 스텝이 있을리 없는 이 변호사는 결국 배심원 선정에 실패하여 b는 실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 그리 드문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 중 아마 o.j.심슨 사건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일 것이다.
생각보다 긴글이 되었는데, 이렇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과연 배심원제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그 폐해가 너무나 커서 배심원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려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