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제 50을 넘긴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전전긍긍하다가.
우연히 회사직원이 이 곳의 글에 답변을 다는 것을 보고.
저의 딸 또래의 젊은 학생들이 많은것같아서 도움을 얻고자 이렇게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지금 제가 이야기 하려는 저의 딸아이는 빠른 87년생으로 이제 갓 사회 초년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저의 전 부인의 딸이지요.
지금은 재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린지도 어느덧 1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큰딸은 이제 15살. 작은 아들은 이제 13살입니다.
물론, 현재 처와 함께 낳은 아이들입니다.
옛날의 시대가 그렇듯이 전 처와는 선을 봐서 두번째 만남을 가진 뒤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5년을 채 못넘긴 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길로 전처는 딸아이를 데리고 미국이란 땅으로 훌쩍 떠나 버렸지요.
그때도, 제가 딸아이를 맏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아직 어린나이이고,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싶어 그대로 딸려 보낸뒤에.
매달 일정 수입의 이상을 미국으로 송금해 왔습니다.
지금의 저의 처도 그 사실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았고,
저희 부부는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10여년이 흐른지금.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저에게 전해 졌습니다.
한달전쯤. 회사로 전화 한통이 걸려 왔습니다.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는데, 미국의 한 병원에서 전 처가 사망했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동안, 알코올 증독과, 간암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는데,
결국 숨졌다는 전처막내의 동생의 전화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묻더군요.
" Jenny[전처사의 딸의 영어이름]랑 같이 지내신지도 꽤 되셨겠네요, Jenny는 잘 지내죠? 그동안 형부가 부쳐주신 돈으로 치료 잘 받았어요. 남은돈은 장례치르고 난 뒤에 다시 송금해 드릴게요."라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의 딸아이가 미국땅에서 열린 교육을 받으며, 잘 지내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슨소리냐며 점점 흥분해서 전처의 처제에게 물었죠.
Jenny가 미국에 간 이후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무슨소리냐며 회사 직원들이 쳐다보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나이든 양반이 얼굴까지 시뻘개 지며 흥분했습니다.
결론은,
전처가 알코올 증독과 간암판정을 받고, 저의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길로 곧장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답니다. 그리고, 약 한달정도 미국에서 일을 한 뒤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거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몇년 전 까지는 가끔 사진도 보내오고, 학교에서 상 받으면 상장도 보내오고 했었는데, 고등학교를 마쳤을 시기부터는 일체 연락이 없었던 거였습니다. 그시기에 저도 집안에 경조사가 겹쳐서 미처 신경쓸 겨를 이 없었지만, 그래도 저의 딸아이에 대한 소식을 미처 신경 못쓴제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길로 딸아이의 소식을 수소문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람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딸아이가 지금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까 혹시 전화올지도 모르니 받아달라 말을 했습니다. 다만.... 지금 저와 함께 살고있는 둘째딸과 막내 아들에게만 말을 하지 못했지요. 그 아이들도 저와 지금의 아이 엄마가 재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 제게 녀석들 보다 두어살 많은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도 같았고,, 아버지로써의 치부이기에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집사람과 저만의 비밀이 되어 전처의 딸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딸아이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진지 10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딸아이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핏줄이란 원래 그런것인지, 어색한 첫 만남을 가진 뒤에는 점점 친숙해져만 갔고,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자식 없다는 소리처럼 Jenny도 저의 소중한 자식이었습니다.
두어번 정도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먹고 싶다는 것도 사주고, 영화도 보고, 옷도 사주면서 그렇게 그동안 못했던 시간들을 함께 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만남에서는 현재 집사람과 딸아이를 만났고, 딸아이도 집사람을 아주머니라 부르며 잘 따라고 집사람 역시 아버지 없이 낮선 땅에서 자랐는데도 참 반듯하고 예쁘게 컷다며 흐뭇해 했습니다.
하지만, 산넘어 산이라 했던가요. 그렇게 부부의 외출이 잦아지는 사이, 15살의 어린 딸아이는 점점 삐뚤어져만 갔습니다. 신경쓴다고 큰 딸아이 만나면 작은 아이들 선물도 큰딸이 골라준 걸로 사다주고 했었는데,,,, 아이들은 점점 어긋나만 갔습니다.
점점 귀가 시간도 늦어만 갔고, 막내 아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에, 사고를 몰고 다녔지요...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혼자사는 큰딸의 집을 찾았습니다. 작은 건물의 원룸에 장판 밑에는 곰팡이가 가득했고, 제대로된 살림살이 하나 없이. 여느의 20살과 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직 연락 받지 못한듯, 전처의 죽음 조차 모르고 있었지요.........
그렇게 큰딸의 방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사람을 불러냈습니다. 큰딸의 형편이 이러하니 함꼐 사는건 어떻겠냐고, 마침 남는 방이 하나 있으니 그곳에 Jenny와 함께 살자고 염치없지만, 용기내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집사람이 싫다 하면, 좀더 깨끗한 집을 구해주면 어떨까 상의 하고 싶었습니다...........
착한 심성의 집사람은, 화사하게 웃더군요.....
주름진 얼굴이고, 젊었을때와는 사뭇다른 웃음으로, 아이들이 어려서 모르는것도 많고 마침 힘들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며, 만일 Jenny가 싫다거든,, 설득 해 보자고까지 말하는 집사람이 참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제 반평생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것이 있다면, 아이들보다 집사람이란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며칠후, 집에서 조그만 삼겹살 파티를 한다며 큰딸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작은 아이들도 처음엔 잘 별 탈없이 받아들여 주는가 싶더니... 결국, 둘째 딸이 큰딸에게 우리집에서 나가라며 소리를 질렀지요. 작은 아이들에게 좋은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집사람과 제가 Jenny가 참 착하고, 예쁘다라며 칭찬을 늘어놓아서 작은 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물컵을 Jenny에게 집어던지며 고래고래.... 정말 참담했습니다.
그래도 참 반듯 한 큰딸, 작은 딸에게 언니 괜찮아라며,,, 다음에 또 보자 하고 저희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옷 갈아입고 쉬었다 가라는 저희에게 죄송하다며 집으로 돌아갔고,,, 작은 딸은 저의 집사람에게 호되게 혼이 났지요.
하지만, 그 뒤로 작은 딸은 저와 말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막내 아들이 자기는 큰 누나 좋다면서 베실베실 웃어주니.... 또 막둥이에게 고마울 따름이구요....
다음날, 큰딸에게 연락하니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더군요.......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은뒤,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큰딸은 그동안 감사했다며 전화가 왔고,
앞으로 한달 후에 떠날 거라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뒤로, 집사람도 큰 딸아이의 집에 들르며 괜찮아 졌으니 함께 살자고 설득을 하고 있고, 작은 딸도 많이 수그러 든 상태인데,
저의 세아이. 집사람 다음으로 제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저의 세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 행복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큰딸아이가 떠나는 것 뿐인지....
지금껏 살아온 인생중에 가장 힘겨운 선택의 순간인것 같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젊은 지성인 학생분들....
저의 큰딸 작은딸. 막둥이 아들... 사랑하는 집사람모두 소중한 제 가족입니다.............
어떻게 해야 현명한 아버지, 현명한 가장, 남편이 될 수 있는지...........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내용이 좀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