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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 폭력병

송민영 |2006.04.05 14:26
조회 183 |추천 0

뉴스 기사 위치:
http://www.yonhapnews.co.kr/news/20060311/060100000020060311091341K1.html

 

길에서 19세 남자친구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있던 18세 여성의
뺨을 때려 불구속입건된 48세 아저씨에 관한 기사.
이 남자는 "길거리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어른으로서 교육 차원에서 손찌검했다" 라고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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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시작: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정작 해당 당사자들은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이만 처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다"라는 거다.

이 젊은 연인들보다 30년이나 일찍 태어나서 한 일이라고는
30년 동안 똥 더 싼거 밖에 없는 인간이 바로 저 뉴스 속의 

아저씨이다. 길에서 이마에 뽀뽀하는게 그렇게 보기 싫으면 말로

하면 될 것을 도대체 왜 때리는가?

공공장소에서 이마에 뽀뽀하는 건 따귀맞을 짓이고,
공공장소에서 아무나 맘대로 때리는 건 상장받을 일인가??

 

그런데 사실 이 아저씨, 생각해보면 참 가여운 사람이다.
손찌검 행위 하나만으로 아저씨가 겪어왔을 법한 폭력의 역사가
훤히 보이는거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환경이 훤히 보이는 거다.

 

자, 소설 한번 써보자.
제목은 "폭력으로 점철된 김씨의 인생."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김씨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맞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고,

자신도 아버지의 절대적 권위와 매질로 길러졌다.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성적이 낮다고 선생들로 부터 종아리를 맞고

나이가 어리거나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선배/깡패들로부터 맞으며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어느덧 청년이 된 김씨는 군에 입대하게 되고, 여기서 급기야

계급간 폭력의 문화에 대한 정당화/강화 세뇌를 받은 뒤 사회로

돌아오게 된다. 김씨가 택한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직업은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사람들로부터 날마다 날아드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선사해줄 뿐이고, 김씨는 그 울분을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인간들 (아내, 자식, 부하직원, 어린 여자)에게 다

풀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내가 너무 과잉상상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라.
길을 걷다가 자신의 도덕적 가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물리적/사회적 약자를 보자마자 바로 손찌검을 날리고
또 그 행위에 대해 당당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얼마나 대단한 "폭력에 대한 면역력"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이 정도 수위의 "폭력에 대한 면역력"을 갖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횟수와 다양한 강도의 폭력에 노출되어야하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김모 아저씨가 2006년 3월 11일 오전 0시 10분께 화곡1동

횡단보도에서 Y씨의 뺨을 때리게 된 건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자 아픔이라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가정에서 많은 폭력을 경험하는 아동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공격적이라고 한다.
이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사회적 학습모델이 되기 때문인데,
즉, 아동과 가장 교류가 빈번한 부모나 근접 보호자가
분노를 성숙한 태도로 해결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면
아동은 그런 행동을 배우고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부모가 서로 치고박으면서 싸운다거나,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어머니를 때린다거나, 부모가 동시에 아이를 때리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 또는 보호자가 아이와 갈등이 생겼을 때
즉, 아이가 명령에 안 따른다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상황을 폭력으로 다스리게되면
아이는 다음의 세 가지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

(6년 전 읽은 내용이라 출처 전혀 기억 안 남 -_-)

 

1. 권위와 폭력의 행사는 갈등과 스트레스 상황의 적절한

   해결방법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도

    "이게 왜 잘못된 건데?" 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폭력이 문제상황의 해결방안으로 여겨지게 되면
    이제 그 아이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으로
    자신 외면과 내면의 모든 갈등을 해소하려 한다.

    그래서 폭력에 노출된 사람일 수록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할 확률도 훨씬 더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된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데,
    경미한 예로 남자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표시하는 것이

    애매한 상황을 폭력적 행동으로 대체하는 행위가 있다. 

    호감이 있는데 다가가기 어려운 여자아이의 치마를

    들춘다거나, 이유없이 때리고 울리는 행동들 말이다.

 

    청소년이나 어른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문제해결을 위한 폭력'

    의 행태는 널리고 널렸다. 참여하는 인원 수로 따지자면 적게는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 부터 많게는 전쟁까지.

    종류로 따지자면 욕설부터 대량학살까지.

    뭐, 구체적 사례 같은 거 나열할 필요도 없다.

 

2. 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약자에게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


    이거, 그야말로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간 만드는

    거 되겠다. 사회전체에 조직폭력배의 서열문화를 적용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리고 이에 더 가중되는 문제는 바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이다. 폭력을 가하는 권위적 존재에 대한 적개심은
    아이의 무의식의 저편으로 억압되어 있다가 다른 대상

    (특히 대부분의 경우 자신보다 약한 위치의 사람들)에 대한

    공격성과 폭력으로 표출된다.
   

    쉽게 말하자면,
    평소에 자신이 감히 대들지 못했던 억눌린 상황과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다 쏟아부어 해결함으로써 한꺼번에 자신의 자아

    존중감을 위로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약하고 작은

    동물을 찾아 헤메이는 육식 동물과 같다.

 

    따라서, 저 뉴스 속의 피해여성은 불행히도 어느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오후에 재수없게도 저 짐승을 맞닥뜨린거다.

    아저씨에겐 자신보다 물리적 힘이 약하고 나이도 어려니

    이거 최상의 먹잇감아닌가.

 

3. 내가 폭력을 당하는 것은 나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난 맞아도 싸다' 논리)

 

    부모나 보호자, 교사와 같은 절대적 권위자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의 파괴력 앞에서 신체와 정신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인격과 존엄성을 둘러싸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라, 이 최후의 경계까지 마구 침범당하는 아이는 

    자아존중감을 잃게 된다. 자신의 마음과 신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된다는 거다. 실제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동들 중 많은 수가 "내가 맞을 짓을 했다"라고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한다. 가해자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위안하는

    하나의 방어기재인 셈이다.   


    심한 경우는 여러가지 주변 정황과 맞물려 자신의 몸을

    의도적/비의도적으로 학대하는 경향으로 발전되는데

    과도한 음주나 본드나 마약 등 향정신정물질에 빠지게 되는 게

    그런 경우이다. 그리고 다른 이에 대한 공격성 표출로도

    이어지게 되는데, 즉 자신의 몸이 소중한 줄 모르니 다른 이의

    신체도 소중한 줄 모르는 것이며, 공격의 과정에서 자신의 몸도

    다치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 아저씨는 그 손찌검 한방으로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신의 짐승같은 자아를 대중 앞에서 공표함과

동시에, 자신이 평생 당해온 그 피곤하고 애처로운 폭력의

역사까지도 만인에게 공개하는 셈이다. 

길바닥에 서서 "난 참 비참하고 불쌍한 짐승이오~~"라고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저 아저씨 참 불쌍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폭력이 너무 많다.
학교에 가면 교사나 동료학생들에 의한 학원폭력,
집에 오면 부모에 의한, 또는 부모간 가정폭력,
티비를 틀면 각종 다양한 영상폭력.
그리고 이런 "길에서 봉변을 가하는 폭력"까지.

 

우리가 활동의 사회적 반경을 넓혀나가면서
학습하고 되풀이하는 폭력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따라서 우리가 전염되고 되전염시키는 반경도 덩달아 확장된다.

우리 모두가 의도적/비의도적으로 가해자가 되고, 또 그에 따른

피해자가 된다는 말이다.이런식으로 우리 사회는 전염성 폭력병을

앓고 있다. 

 

일례로, 조폭 코미디의 붐은 폭력에 무감각한 우리의 문화 패턴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함부로 때리고 비굴하게 맞는게 

웃긴가? 이 병은 그 기간을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온국민이 앓아온 탓에 폭력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심지어는 질병으로 잘 인식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뉴스 속의 저 불쌍한 아저씨도 이런 전염병의 희생자이고,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치유해야할 아픔이다

 

더 나아가, 전쟁은 갈등 해결을 목적으로한 폭력의 가장 집단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은

나쁜거라고 가르쳐봐야 사회의 지도자라는 인간들이 대량살상을

선도하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많은 이들에 의해 누누히

언급되었듯이 폭력은 계속 순환하며 전염되고 나날이 그 강도를

키워나가다가 언젠가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라, 주먹으로 흥한자

결국 주먹으로 멸하기 마련이다. 이는 국가나 큰 사회집단 뿐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역사의 수 많은

사건들이 이 명제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사회 전반에 걸친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우선 나

자신부터 어떤 경우이건 간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처럼 말이다. 그들을 보라. 그들은 거대한

권력집단을 상대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폭력조차 행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를 천명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폭력은 절대로 옳은 의사표현 방법이 아니며,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며,

자신이 더 강한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방법은 더욱더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와르르 무너져버린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대방의 존엄성마저

잔인하게 허물어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홧김에 던진 돌맹이가 개구리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되어 

훗날 제2, 제3의 짐승 아저씨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저 짐승 아저씨의 에피소드가 가볍게 보일 정도로

진짜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이며 비참하고 심각하여 사람의 몸과

마음이 맞아죽을 정도의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이 아직도

만연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변화의 시작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 우리의 주변이다.

우리는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1.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2. 폭력적인 환경을 접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3.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사회의 발전은 수퍼맨 같은 영웅이 나타나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과) 9년전 드디어 가정폭력방지법이 만들어진 것도 

수 많은 "개인"들이 목소리와 노력, 그리고 눈물을 쏟은 결과이다.

그 사람들 한명 한명 모두가 우리 사회의 영웅이다.

 

따라서, 나 한사람 잘 한다고해서 세상에 무슨 큰 변화가 오겠냐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선 나 자신이 변하는 것 자체가 일단

세상에서 제일 크고 소중한 변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정말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면, 정말 진심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 변화의 크기가 크냐 작냐의 문제를 따지는 것은 매우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자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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