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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한 단상) 나이 마흔에 엄마가 생각났다.. .

김상민 |2006.04.06 10:51
조회 29 |추천 0

나의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다.



내가 10살때니까 지금도 어머니보다 엄마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마흔이 되도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죽도록 사무친 적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오면서 아내가 아이에게


쏟아붇는 헌신적 사랑을 보면서.....어느날 문득 나의 엄마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그날이 생각났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1년전 국민(초등)학교2학년때 봄소풍!


바로 그날 말이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시골학교는


넓은 잔디가 있는 들이나 산으로 소풍을 갔다.



그러면 옥수수장사, 뻥튀기장사, 알사탕과자장사, 풍선장사,


고구마장사가 소풍행렬의 뒤를 따랐고.....



배고프던 그 시절 아이들은 그 날만큼은 1년에 한번 받은


용돈으로 계란도 사먹고, 풍선도 사서 불어보고 했다.



삶에 억척이셨던 나의 엄마는 밭에서 옥수수를 따다 삶아서


소쿠리에 이고 그 소풍행렬을 따라 나섰다.


돈푼이나 버시겠다고......



나는 친구들에게 엄마라는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그날내내 엄마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멀찌감치에서 놀았는데....


갑자가 누가 내 등뒤를 치는 것이었다.



엄마였다!!



꿰쩨쩨한 행색에 장사치인 창피한 엄마!!!!!



'이제 친구들이 다 알게 생겼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마가 옥수수를 건네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옥수수5개에 십원인데 3개만 가져가면 어떻게 하니?


돈도 안 거슬려가고.....옥수수2개하고 거스름돈 40원 여기있다."



나는 그냥 모른척하고 옥수수와 돈을 받아들고


친구들과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흘끗 뒤를보니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놈이 무슨 자존심이 필요하겠는가 만은 엄마는


아들의 그 작은 자존심을 위해 그렇게 하셨으리라.



그때 옥수수를 받아들고 도망치듯 멀어지던 철없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무너져 내리셨을까!



천추의 한이되고 후회로 남아있는 기억이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우리 강아지 커서 엄마 쌀밥에 소고기 사줄거야?


아니면 보리밥에 돼지고기 사줄거야?"하고 물으셨다.



그러면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쌀밥에 소고기 사줄께"대답하였고


엄마는 뭐가 좋으신지 마냥 웃기만 하셨다.



소풍때 옥수수판 돈푼으로 소고기나 쌀밥은 언감생시였을 것이고


지금은 먹고 사는 것만큼은 풍족한 시절이 돌아왔건만 그렇게


드시고 싶어하셨던 소고기국과 쌀밥을 맘껏 먹여드리지 못해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난다.



30년 전 일들 이라...


엄마에 대한 기억도 많지 않고


그나마 있던 기억들도 차츰 희미해져 가는 요즘이다.



먹고 살기 힘든 그시절 시골 깡촌의 삶에서 사진은


차라리 사치였으므로 기억을 도와줄 사진한장도 없다.



온전히 내 뇌속에 남아있는 기억만으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 하니 이 또한 슬프다.



엄마가 계신분들은 더 빨리 엄마의 사랑을 깨닫게 되겠지만,


아내에게 투정부리고 떼만쓰는 아들을 보면서 나이 마흔에야


엄마의 사랑을 깨달은 나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엄마가 계신분들은 엄마가 살아계신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은 오늘 엄마에게 전화라도 한통하시길.......


 


 


 


 


                    《출처 : 다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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