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아닌 소비자, 미술관이 아닌 상점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이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시장의 가격과 판매량으로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 쿠션으로 감상하는 동양화
섬유공예가 한복희씨는 직접 꽃을 그려넣은 옷과 가방, 쿠션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작품을 상품화한 이유는 “액자 안에 갇혀 있는 작품이 아니라 생활에서 감흥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다. 가격대는 최저 2만원에서 최고 100만원까지 다양하다.
이 곳 상품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봉유미(26)씨는 “동양화 하면 화선지에 먹물 묻혀 조용한 곳에서 참선하듯 완성되는 정적인 작품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상품화 해 내놓고 보니 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멋이 제품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차츰차츰 단골 고객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편. 인사동 쌈지길로 입점한 이유는 특이한 것을 찾는 젊은 층의 관심도 유도할 수 있을거란 예상에서다. 실제로 최근 중장년층 여성 고객에서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로 구매층을 확대해 가고 있다.
◇ 300만원짜리 옹기 보셨나요?
투박해 보이는 옹기 제품도 작가의 이름을 걸고 나온다. 접시나 쟁반은 물론 가정 내의 소품으로 쓰일 수 있는 화병이나 어항 등이 ‘장인정신’을 앞세워 시장에 나오고 있다.
‘옹기장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이현배씨는 전라도 지방에서 가마를 운영하다 상품화에 착안해 2년 전부터 쌈지길에서 '손내옹기'라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장독이 어항용으로 300만원이 넘게 팔리기도 하고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는 1만 5000원짜리 질그릇도 있다. 외국인을 가이드 하고 온 이현주(32)씨는 ‘한국적인 멋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상 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실용적인 생활용품들이기 때문에 인사동에 관광 온 외국인들의 반응이 특히 이 곳에서 좋다’고 말했다.
◇ 내손으로 작품을 만든다
가나 아트 센터에 입점한 ‘수 디자인’은 목걸이나 귀거리, 열쇠고리 같은 제품으로 여성층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목판화 작가 김상구씨의 제품은 핸드폰 줄, 열쇠고리, 헤어핀 등으로 상품화 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사동 상점에 안착한 지 5년째가 되는 ‘수 디자인’이 요즘 골몰하고 있는 것은 연령대별 차별화. 기존의 외국인이나 2~30대의 주고객층을 넘어서 젊은 층을 겨냥한 제품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수 디자인의 차장 백순희 씨는 “요즘은 비즈 공예 등 자신의 힘으로 제품을 만들어 쓰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 곳에서 공급하는 재료로 제작할 수 있는 원재료를 상품화 하려고 기획 중이다”고 말했다.
독특한 브랜드 가치를 잃지 않되 'DIY'(스스로 만들어 쓰는 상품) 트렌드에 맞추기 위함이다. 이런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쌈지길에 다른 브랜드 명으로 입점해 있다. 수 디자인 대표 정을화씨는 “비슷한 성격의 매장이 모여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사동 만의 프리미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고흐도 만난다
고흐(Gogh)의 그림은 달력과 우산, 머그컵, 티포트(Tea pot)등에 프린?되어 팔린다. 고흐 그림 대부분의 저작권을 가진 네덜란드 고흐 미술관이 상품화에 대한 일체의 사업을 관리한다.
고흐 미술관과 독점 계약을 맺은 (주)ISBC가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대는 최저 1000원 짜리 연필에서 최고 250만원에 이르는 포스터까지 다양하다. 유명한 작품 ‘해바라기’는 어떤 상품으로 내놔도 가장 반응이 좋은 편이다.
(주) ISBC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윤여원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작한 고흐 관련 제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인사동에 오프라인 매장을 이벤트성으로 운영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동을 전진기지로 삼은 이유는 한 가지. 예술품과 상품을 결합하는 현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천경자 전시회 감동을 그대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천경자의 작품도 가방, 손수건, 타일 액자 등으로 나와 팔리고 있다. 지난 3월 8일 ‘천경자 -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展’을 맞아 가나 아트 센터에서 기획한 이 제품들은 시장의 반응이 좋아 전시 기간이 끝난 후 다시 공정 작업에 들어가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가나 아트 사업 본부 측은 인사동은 “‘문화의 거리’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개성과 자신만의 멋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에 예술작품과 상품의 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인사동에서 주로 쇼핑을 한다는 대학생 정해영(26)씨는 “인사동의 작가들 제품들은 백화점이나 소매점에서 구입한 상품보다 독특해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데 좋을 뿐 아니라 작가들의 프라이드가 내게로 옮겨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문화적인 감수성, 예술적인 감성을 상품으로도 소비할 수 있음으로 해서 이들 제품들의 소비자 층은 점점 두터워 지고 있다. 인사동은 이제 ‘전통의 거리’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상품으로 소비하고 구매하는 새로운 느낌의 소비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머니투데이 오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