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대학조교 성희롱사건
- 남녀는 공동적 화합관계인가 대립,투쟁의 관계인가?(최영호변호사)
서울고등법원 1995. 7. 25. 94나15358호 판결 손해배상 상고기각(대법원 1999. 11. 15. 99다43554)
대학조교인 여성에게 소속교수인 남성이 기술교육을 빙자하여 교육과 무관한 신체접촉을 반복하고, 산책데이트를 하자고 요구하면서 옷을 자신의 연구실에서 갈아입으면 된다고 말하거나 조교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시골처녀같다고 하거나 단둘이서 입방식을 하자고 말하거나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아래위를 훑어보는 등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이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던 사건 소위 "대학교수의 연구실조교 성희롱사건"으로 법원은 "성적 괴롭힘"이라는 새로운 불법행위의 태양을 인정하면서도 남녀를 대립,투쟁의 관계에서 볼 것이 아니라 공동적 화합관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대법원은 이 판결이 상고되었으나 4년 후에야 기각하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성대법관도 생겼고, 소위 "진보적 인사"라는 분들도 대법관이 되는 등 대법원의 구성도 많이 달라졌는데 지금 같으면 어떤 판결이 선고될까 잠깐 상상해본다. 물론, 그동안 새로운 법률도 생겨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그야말로 언어의 선택과 문장구성에 흠잡을 수 없는 훌륭한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이른바 개방적 구성요건의 형태를 취하는 우리 민법 제750조의 체제하에서 법원은 변화하는 현실에 부응하여 새로운 유형의 불법행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과거에는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불법행위를 인정함에는 신중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경우에도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라고 하는 법치주의의 법원리를 담보하기 위하여 불법행위로서 법의 제재를 받는 행위의 유형과 범위가 그 수범자로 하여금 쉽게 인식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됨을 요한다.
[2] 이른바 '성적 괴롭힘'은 헌법상 보장되는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으로부터 연역되는 일반적 인격권의 내용의 하나로서 이른바 성적 자주결정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로서는 성적인 차별을 당함이 없는 근로환경 하에서 성적 불쾌감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근로자로서의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의 권리는 타인과 더불어 공동사회생활을 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제한받게 될 뿐 아니라 이러한 개인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와 충돌하는 때에는 상호간의 권리 이익이 조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타협과 양보를 양해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러한 조화적 해결을 위하여는 이익형량의 법리가 적용된다.
특히 하나의 공동목적을 위하여 직장이라고 하는 공동의 장에 자신을 입장시킨 개개인은 그 구체적 고용관계 내에서 스스로 개인적 자주결정권이 제한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타인의 행동의 자유가 반대이익으로 등장하게 됨을 인식하여야 한다. 한 직장에서 근로자의 인격권에 대한 침해가 그 침해하는 자 측에서 보아 업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거나 불가피한 것인 때에는 그 근로자는 그 직장을 떠나지 않으려면 또는 그가 그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면 그 침해를 수인할 의무가 있는 경우도 있다.
[3] 성적 괴롭힘은 직장 내에서 여성의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공격행위를 모두 포괄한다고 할 수 있고 그 위법성의 여부를 판단함에는 당해 성적 언동의 성질이나 그것이 행해진 배경적 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지만 새로이 성적 괴롭힘으로서 법적인 보호를 베풀어야 하는 행위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적 괴롭힘'은 고용관계와 관련하여 행해진 행위이어야 한다.
둘째로 '성적 괴롭힘'은 성적 행위, 즉 불쾌한 성적 접근에 응하기를 요구하는 행위 기타 성적인 성격을 가지는 일체의 언동을 포함하지만, 그 성적인 성격이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도가 분명히 간취될 수 있어야 하며(교육상 또는 직업수행상의 필요에 의하여 행해지는 신체적 접촉 또는 친밀감의 표시나 사회관습상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언동은 이에 해당될 수 없다), 그 행위의 태양은 중대하고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로 '성적 괴롭힘'은 그 행위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 행위이며 그 판단에는 피해자가 실제로 가진 심리적 태도뿐 아니라 행위를 둘러싼 객관적인 정황을 고려하되 현존하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게 될 심리적·
사회적 피해를 고려하여야 한다. 따라서 진지한 목적을 가진 호소나 권유는 이에 해당하지 않으며, 또 동의를 하였다고 하여 모두 원해진 행위라고 단정될 수 없다.
넷째로 '성적 괴롭힘'에는 고용조건이나 근로환경에 관하여 성을 이유로 한 차별적 취급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위와 같은 성적 행위에 대한 수용 여부에 따라 피해자의 고용관계에 대한 이익이나 불이익이 주어지는 경우(이른바 조건적 성적 괴롭힘)과 성적 행위 자체가 피해자로 하여금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갖게 하여 그의 업무수행이나 근로환경에 부당하고 심각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경우(이른바 환경형 성적 괴롭힘)가 있을 수 있다. 성적 행위가 단순한 발언이나 일회적인 거동에 그치는 것으로서 피해자의 고용상의 지위 기타 노동조건에 구체적인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부인된다.
[4] 성적 괴롭힘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현재 피해자의 시각보다 가해자의 시각이 우세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행이 만연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 사정을 고려하여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남녀의 관계를 공동적 화합관계로 이해하는 건전한 품위와 예의를 지닌 일반 평균인의 입장에서 이를 판단하여야 하며 남녀간의 관계를 투쟁적·대립적 관계로 평가하는 여성주의적 관점만을 표준으로 하는 입장은 배척된다.
[5] 성적 괴롭힘을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함에는 불법행위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주장·입증하여야 한다. 조건적 성적 괴롭힘에 있어서 해고되었다거나 또는 사직하지 않을 수 없었음이 보복에 기인한 것임을 주장·입증하는 경우에는 손해의 발생이 입증되는 것이지만 이른바 환경형의 성적 괴롭힘에 있어서는 그 자체가 피해자의 업무수행에 부당히 간섭하고 적대적·굴욕적 근로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실제상 피해자가 업무능력을 저해당하였다거나 정신적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점을 주장·입증하여야 한다.
[6] 대학교 화학과 실험기기 담당 조교가 담당 교수로부터 환경형 또는 조건적 성적 괴롭힘을 당하였음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