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군 휘 성좌(聖佐)의 묘소 (7대(8세) 선조임. 합천군 봉산면 권빈리 석가산 230-2번지 연자혈) ♡나의 7대 선조이신 대장군公 휘 성좌께서는 무신년(戊申年)인 1728년 3월 합천 묘산에서 기병(起兵)을 했음. 소위 이인좌란, 무신란(戊申亂)임. 이 때 청주의 이인좌 신천영, 호남의 박필현 나숭곤 김단 정팔용, 평안도감사 이사성, 함경도감사 권익관, 부사 황부(黃簿), 서울의 금군별장 남태징, 병조참판 김중기, 상주의 김홍수, 문경의 조세추(曺世樞), 거창의 정희량, 하동의 이명근, 연곡사 승려 대유 등과, 조광조 후손 조문보, 이덕형 후손 이지인, 정인지 후손 정세윤, 황희 후손 황익재 등도 참여함. 17일여만에 진압됨. 무신의거는 정치체제 및 권력구조의 내부 모순의 결과로 나타난 민중 동원을 통한 마지막이자 가장 대규모의 권력투쟁이면서 의리명분론쟁(義理名分論爭)의 표출인 동시에, 소외계층의 변혁운동임. 무신의거의 영향으로 1730년에 공사(公私) 노비 중 양처(良妻) 소생은 어머니를 따르게 하는 종모법(從母法)의 시행이라는 제도 개선책의 마련과, 1750년(영조26)에 양인(良人)들의 부담을 경감하는 균역법(均役法)의 도입, 1764년에는 노비 문서를 관리하던 기관인 장례원(掌隷院)이 혁파되는데 기여함. 또한, 1811년(순조11) 홍경래의 평안도농민전쟁과 1862년(철종13) 단성 진주 함양 거창 상주 청주 회인 부안 순천 등 임술농민항쟁, 그리고 1894년(고종31) 동학혁명(갑오농민전쟁) 등 조선후기 민중운동이 비약적으로 촉발하게 되는 단초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