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개념도 잘 모르고, 아인슈타인의 'E=mc²'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맛있는 사과나 싱싱한 생선을 고르는 법도 모르고,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따는 법도 모른다. 나는 고장난 시계를 버려야할지 고쳐야할지 그냥 갖고 있어야할지도 모르고, 옷에 묻은 얼룩을 어떻게 지워야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고, 정든 사람과 이별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는 방법도 모르고, 미래에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방법도 모른다. 이미 어른이 된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만 열아홉 살이 지나면, 우리는 법적으로 어른이 된다고 한다. 난 어릴 때부터,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른이 돼서 좋은 점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은연 중에 믿어왔을 것이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언제나 좋은 만큼 나쁘고 나쁜 만큼 좋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 같은 건 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되고 싶다고 해서 빨리 어른이 되거나, 되기 싫다고 해서 어른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 나쁜 점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가장 나쁜 것은 책임에 관한 문제이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지극히 좁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의사들은 환자와 대화할 때, '선택의 기회를 주되 그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결정은 의사가 하고 환자는 사소하고 세부적인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환자는 '치료를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치료법을 취할 것이냐.'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도 그와 별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선택에 관한 책임은 우리 스스로 져야한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울어도 소용없는 것이다. 어릴 때는 울지 않으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이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칭찬 받을 일도 없고 꾸중 들을 일도 없는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점점 힘들어진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은 그래도 어른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하니까 어른의 좋은 점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충분하니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더불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이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번 어른이 되면, 외로워도 슬퍼도 울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고래가 코끼리보다 크다는 건, 정말 나만 빼놓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일까?
ㅡ 황경신「Paper. 8월. Editor'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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