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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달콤, 살벌한 연인

김범식 |2006.04.23 11:57
조회 55 |추천 0

아, 이 감동을 잃어버리기 전에 감상문을 미리미리

써야겠다^^

 

달콤, 살벌한 연인.

 

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스릴러성이 숨어있다기엔 너무 비밀이 없고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숨기는게 많고

연애물이라기엔.... 아니 딱 연애물이다.

 

이제, 슬슬 당신도 연애해야지? 라고 말하는 듯한 영화다.

 

그래, 해야지. 라고 대다수 대답하겠지.-_-;

물론 그 여자가 살인마라도

그 정도라면 사랑해줘야지.

 

사랑하니까 신고하지 않는다란 말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해하기 힘든 말인지도 모르지만(착실히 신고해야지!)

사랑하니까... 란 말이 얼마나 큰 설득력을 가지고

모든 불합리를 덮어주는지 보여준다.

 

지구의 축이 23.5도(-_-;;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기울어져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불합리와 부조리는

인류의 속성이다. 물론 조화라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는

것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며, 한가지 가치에 집중하는

조화는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우린 조화라는 말에 노스텔지어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니까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

솔직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가릴 수 있는 최소한의

가림판은 유지해야 하고, 또 그것이 예절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존중이란 이름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니까.

조화가 얼마나 어이없는 말인가.

르네상스가 조화를 파괴하는 운동이었다면,

틀린 말일까? 그냥 지겨워서, 아님 체제에 반하는 반동이

멋져보여서 조화를 파괴하자는 게 르네상스였다면

농담일까...-_-; 아니겠지.

종교가 제시하는 한가지 길은 다양한 삶을 담을 수 없고

그러므로 구원역시 천편일률을 벗어날 수 없다.

죽음과 삶에 대한 시각이나 인간관도 답답할 정도로

꽉 막혔다. 그러니 반발하고 욱! 하는 거겠지.

그게 르네상스겠지.

벗어나고는 싶은데 뭘로 가야 할지 모르니, 과거로

돌아가는 움직임. 뭐 그딴거.

 

어쨌든간에... 이 부조리한 지구를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아.. 나 바보냐고? -_-;; 글쎄;

왜 사람이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자신의 이해보다 다른 사람의 이해를 먼저 생각해야하나.

그럴 필요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 사랑하니까." 라면 해결된다.

남의 인생에 대한 주제넘은 딴지도, 조언도 다 된다.

우정도 같은 범주아닐까.

그 사람의 간격을 파괴하는 일. 어쩌면 소우주의 파괴다.

근데 자유의 침해를 그토록 싫어하는 우리는

`사랑`에 목말라 하고 그게 자신의 자유를 옥죄고 있더라도

좋아라 받아들인다. 사랑의 속성은 그거다.

"어거지".

 

사랑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잖아!!!!

라고 말해봐야, 할 수 없다.

긴 시간이 흘러도 그 어거지는 합리화가 되어 버리니까.

"사랑하니까"가 아니라 "사랑했으니까"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라는 운명론자의 헛소리에

가까운 이유때문에가 아니라 사랑을 바라는 마음은

인간이 자신의 소우주적인 간격을 파괴당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게 만든다.

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조화는 이루어진다.

독단과 조화는 같은 말이니까. 그걸 깨는게 사랑이고

그래서 사랑은 마음을 흔든다. 부조리를 합리화시킨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사랑하고 싶게 한다.

 

여주인공의 예쁜 눈웃음도, 착착 감기는 대사도,

-_-;; 와우~! 란 마음이 절로 드는 키스 실력도(심의에 안걸리나;)

다 마음에 든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때

사랑은 가능하고,

상대방에 대해 다 알면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되게 되어 버린다.

 

사람에 대해 "안다" 라는 개념이 얼마나 지나친 헛소리일까.

안다라는 개념은 주관적이면 안 된다.

왜냐면 주관적인 앎은 그 사람의 소우주에 들어간

알게된 사람의 영역이지, 보편타당한 앎은 아니니까.

객관적인 앎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되는 건 없다.

결단코 없다.

사랑하면, 하면 된다.

여기서 하나..

사랑이 그 사람을 옆에 두고 자기의 잣대로 재단하고

길들이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래, 그렇게 착각하지만 않으면 사랑하면, 하면된다.

 

태권도장에 있는 `하면 된다`는 심오한 소리다.

안될때까지 하면, 그리고 무조건 된다라는 확신을 가지면

하면 되겠지!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헤어지지만,

사랑은 한다.

 

 

 

 

 

"내가 죽이면 돼" 가 오랫동안 남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언젠가, 네 안으로 네 범위, 네 영역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니까.

파괴하겠다는 거다.

사랑은 곧 파괴다. 성숙 여부를 떠나서 하나의 틀로서 존재하는

소우주적인 개인의 영역을 침해하는 거니까.

그래서 사랑하면 간섭하고 그 사람 인생에 끼여들고 싶어진다.

 

흠...

이런 말이 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해야하며 바꾸려하면 안된다.

라는 허울좋은 소리.

말은 좋다, 흥!! 그게 될턱이 있나!!

아무튼 `어린왕자`가 불가능한걸 가능하게 하라고 우릴 다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어린왕자`를 필독서에서 제외하라!!

파괴가 속성인데, 바꾸려 하지 말라니.

관상이 아니라 사랑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편이 좋다.

대신 인정해야 하는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둘의 기준이 모두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파괴가 사랑이면 사랑은 나쁜거 아니냐고?

흠... 언제부터 조화가 그렇게 좋은 거라고..-_-;

선악의 기준이 이미지로 결정되면 이미 이성은 모두 마비된거다.

아니면 아직 동화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달콤, 살벌한 연인"은

사랑하고 싶게 한다.

사랑은 파괴 뿐만 아니라 착각도 일으킨다.

이리저리 쑤시고, 자르는 여주인공이

거친 내면(?)을 숨기고 고상한 척 한다.

그리고 결국 들켜서 본 모습을 보여줘도 여전히 남주인공을

그녀를 사랑한다.

 

주로 콩깍지라고 하는 그게,

주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착각을 양산하며

확대재생산한다.

 

역시 사랑은 불합리하다.

그런데 사랑은 역시 "좋다!"

국가의지에 반하여 살인자를 숨겨주고 싶을만큼

사랑은 좋은거다.

 

왜 이런걸 쓰고 있냐면...

틀을 깨자는거다.

조화는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며

선과 악은 영원불멸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파괴와 착각의 속성을 가지며

불합리성을 드러낸다.

 

정답을 미리 상정하지 말자는 거다.

아직 배워야 하니까. 정답을 정해두고 고민하는 척 하지말자는거다.

 

 

 

움.. 달콤 살벌한 연인은 나에게,

사랑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줬다.

웃음도 줬다.

5,000원...캬! 아깝지 않다!

 

사랑하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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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제 이런걸 쓰려나..-_-;;

하하;; 의지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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