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는 이름이 따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에다 갖가지 이름을 붙이고는, 그 ‘이름’의 노예가 되어서, ‘공돈’이라는 이름의 돈은 다른 이름의 돈보다 쉽게 써버리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던 돈이라고?
세상을 살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일까? 물론 대학에 합격했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원하던 직장에 취직했을 때,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등등..생각해보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았던 횡재를 했을 때의 짜릿함 역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책 속에서 우연히 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발견했을 때, 작년에 입었던 옷에서 10만권 수표 한 장을 발견했을 때, 오랜만에 나타난 친구가 예전에 빌린 돈이라며 기억도 가물가물한 돈을 갚았을 때, 하늘에서 공돈이 떨어진 것처럼 감격스럽다. 그리고 그 감격은 공돈을 다 써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런 돈에다 사람들은 ‘주운 돈(found money)’ 혹은 ‘공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반면 한 달 내내 일해서 번 돈은 ‘월급’, ‘애써서 벌어들인 피 같은 돈’ 등의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붙인다.
사람들은 이렇듯 돈에다 출신 성분을 매기고는 서로 다른 돈인 것처럼 차별적으로 사용한다. 즉, 공돈이라는 이름의 돈은 쉽게 써버리고, 월급이라는 이름의 돈은 눈물겨울 정도로 이리저리 쪼개고 아껴 쓰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는 자신이 매우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합리적이다.
시장원리에서 보자면 돈에는 이름이 없다. 부자의 돈이든, 가난한 사람의 돈이든, 공돈이든, 보너스든 다 같은 돈이다.
가게에 가서 만 원짜리 지폐를 주고 선물용 주스 세트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가게 주인이 무슨 신통력이 있어서, 아니면 바코드를 입력하는 기계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당신이 낸 돈이 ‘공돈’인줄 알고, “이 돈은 공돈이니까 원래 액수의 반의 가치밖에 안 돼요. 그러니 5천원 더 내세요”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은 그 돈이 월급 통장에서 나온 돈이든, 책갈피에서 찾은 돈이든, 고스톱 판에서 딴 돈이든 구분하지 않는다. 돈에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돈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의 노예가 돼서, 마치 서로 다른 돈인 것처럼 쓰고 있을 뿐이다.
도박의 메카인 라스베가스에서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신혼부부가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기로 하고 1,000달러를 들고 호텔 카지노에 들어갔다. 몇 시간 즐기다보니 애초에 정한 1,000달러를 모두 잃고 말았다. 신혼부부는 게임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왔다. 물론 자신들의 절제력에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신부가 샤워를 하는 동안 신랑은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때 화장대 위에 놓인 5달러짜리 카지노 칩 하나가 신랑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기념품으로 하나 남겨놓았던 칩이었다. 그런데 그 칩 위에 ‘17’이라는 숫자가 마치 홀로그램처럼 비치는 것이 아닌가? 신랑은 좋은 징조라고 여기고 신부 몰래 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룰렛 게임에서 숫자 ‘17’에다 가지고 온 5달러를 모두 걸었다. 놀랍게도 공은 17에 들어갔고, 신랑은 35배 배당을 받아서 한번에 175달러를 챙겼다. 신랑은 또다시 ‘17’에 걸었고, 이번에는 6,125달러를 따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신랑은 7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따게 되었다.
신랑은 한 번 더 17에다 모든 돈을 올인 했다. 그때 카지노 매니저가 신랑에게 “현재 카지노에 현금이 부족하니 그만 두셨으면 합니다.”라고 정중히 말했다. 신랑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순간 신랑은 행운의 여신이 자기편인지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더 큰 카지노로 향했다. 거기서 다시 17에 모든 돈을 걸었다. 놀랍게도 룰렛 공은 다시 17을 향했고, 신랑은 2억 6천 2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더 시도했다. 그러나 신의 장난이었는지 볼은 ‘18’에 떨어졌고, 그는 지금껏 벌었던 천문학적인 돈을 한순간에 다 잃고 말았다.
이 일화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 과도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부인 몰래 도박하다가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훈은 신랑의 마지막 말에 담겨 있다.
한꺼번에 2억 6천2백만 달러를 잃고 호텔로 돌아온 신랑에게 신부는 어딜 다녀왔는지 물었고, 신랑은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했노라고 답했다. 결과를 묻는 신부의 질문에 신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 괜찮았어. 겨우 5달러밖에 잃지 않았어.” 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경제심리다. 신랑은 자신이 한때 땄던 2억 6천2백만 달러는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던 돈’이라고 단정하고, 자신이 잃은 것은 처음에 있었던 5달러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신랑은 분명 2억 6천2백만 달러를 잃었다는 점이다. 결코 5달러만 잃은 것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돈이라는 이름의 돈은 너무나도 쉽게 써버린다. 그리고는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던 돈인데 뭘…”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런 논리로 따진다면 결국 모든 돈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월급이든, 길에서 주운 돈이든, 책갈피에서 찾은 돈이든 처음 출발로 돌아가 보면 애당초 없었던 돈이니까.
어차피 쓸려고 했던 돈?
구정이 다가온다. 구정을 쇠기 위한 비용을 나름대로 책정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조심할 것은 구정이 끝나고 혹시 남는 돈이 있으면 쉽게 써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어차피 쓸려고 했던 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이고서는 쉽게 써버린다. 여행 기간에 남는 돈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여행에서 어차피 쓸려고 했던 돈이니까 하면서 헤프게 써버린다. 돈에다 절대로 이름을 붙여서는 안된다!
공돈으로 한 턱 쏘고 싶으면 2주일만 기다려라
공돈도 마음대로 쓰지 않고 산다면 그게 무슨 사람 사는 재미냐고 불평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한다. 당신이 소위 공돈이라는 돈을 팍팍 쓰고 나서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공돈으로 기분 내고 나서 조금이라도 아쉬워한 적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공돈으로 한턱 쏘고 싶을 때는 그 공돈을 일단 은행에 저축한 후 2주일 뒤에 쏘시라. 공돈이 2주간 은행에 들어가 있는 사이 그 돈의 이름은 ‘공돈’에서 ‘예금 잔액’으로 이름이 바뀔 것이다. 그때쯤이면 심리적인 돈세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더 이상 ‘공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심리’에 현혹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돈에 붙은 이름에 상관없이 모든 돈을 같이 취급하라.
:: 최인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