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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부르는 클레멘타인의 노래

정지희 |2006.05.02 13:44
조회 55 |추천 1
넓고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눈먼 어부와 그 곁을 지키는 `미련한` 아들

 

 

 

 

 

 

 

 

아버지는 어부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물고기를 보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어부다. 10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으셨다. 암흑 속에 갇힌 아버지에게 바다는 유일한 빛이었다.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면, 10리나 떨어진 갯벌검색하기 밖 어장까지 더듬더듬 아버지는 걷는다. 개펄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밀물이 들어오는 줄 모르고 어장을 돌보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여러 번. 이제는 안 나가시겠지, 이제는 못 나가시게 해야지. 그래도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장화를 신고, 망태기를 둘러메신다. 그런 아버지를 이만치 떨어져서 나는 바라본다. 숭어구나, 놀래기구나 냄새로 구분하며 미소짓는 모습을. 수십 번 헛손질을 하며 겨우 뜯겨진 그물을 기워내는 모습을. 나는 카메라에 담는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셔터로 꾸욱 누른다. 그렇게 담아온 아버지 얼굴이 벌써 수만 장이 넘는다.



 

 

 

 

 

 

 

 

 

 

 

 

 

 

아들의 렌즈에 담긴 아버지의 모습은 더없이 평온하고 꿋꿋하다(사진 01~04). 연용씨는 오는 6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사진전을 연다. 6월 14~20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환. 02-735-7047.

 

 

 

 

 

 

 

 

 

 

 

 

 

 

 

 

아들은 사진을 찍는다.

밀물에 휩쓸려왔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을 거두는 동안,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연방 들려온다. 아들이 찍는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게 항상 미안하다. 못난 아비 탓에 다니던 대학도 포기하고 섬으로 내려왔다. 고집을 부리며 바다로 향하는 아비를 말리는 대신, 아들은 어장까지 나일론 줄을 엮어 길을 내줬다. 나는 그 줄을 '생명줄'이라 부른다. 갈고리 달린 지팡이로 줄을 더듬으며 걷는 내 뒤를, 아들이 따라온다. 연장 하나 찾는데 30분 걸리는 내 모습에 조용히 눈물 삼킨다는 걸 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의 바다가 나도 두렵다. 하지만, 오늘도 갯벌로 나선다. 뺨으로 바람을 확인하고, 이마 위 햇살로 방향을 가늠한다. 파도가 센 날이면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이 어장이 내 남은 인생 전부라는 걸, 아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목수이자 대장장이던 아버지가 시력을 잃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열흘 동안 곡기를 끊고 있으시단 편지를, 아들은 군복무 중에 받았습니다. 세상을 뒤로 하고 아들은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직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개펄 한복판에 말뚝을 박고 정치망 어장을 만드셨습니다. 물에 젖은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말뚝을 박고 그물을 치셨겠지요. 허옇게 튼 아버지의 손을 말없이 바라보던 아들은 어장이 잘 보이는 자리에 집을 지었습니다. 작은 음식점이자 민박집으로 꾸몄습니다. 아버지가 잡아오는 물고기를 손질해 손님 상에 내어갑니다. 틈틈이 아들은 쌍안경으로 갯벌을 내려다봅니다. 행여 바다 한가운데 쓰러져 있지는 않으실까 몇 번이고 확인을 하다, 결국 경운기를 몰고 갯벌로 나갑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아버지 곁을 맴돌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서는 장님 어부와 그런 아버지를 카메라에 담는 아들. 인천 옹진군 선재도의 김선호(64).연용(30)씨 부자 이야깁니다.


*** 아버지 선택을 존중하고옆에서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 사랑의 방식

◆ 아들 "이대로 살게 해 드리는 게 옳은 건가 "

 

 

애비 팔아 돈 번다는 비아냥
그쯤이야 무시하면 되지만
못된 놈의 당뇨는 어찌하나

어스름 동이 터온다. 팔목을 걷어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5시40분. 상갓집에서 밤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눈두덩을 손등으로 문지르다 말고 바다로 눈을 돌린다. 저 멀리 열린 갯벌 위로 작은 점처럼 움직이는 사람 그림자. 아버지가 벌써 그물을 살피러 나가셨구나. 요 며칠 바람이 매서워 그물이 많이 상했다고 어젯밤 걱정스레 말씀하셨었지. 경운기를 몰고 나가 아버지를 모셔올까. 팔다리가 늘어지고 피로검색하기가 몰려온다. 그래, 잠시만 누웠다 나가자. 아버지 방에 몸을 누였다. 깜빡 잠이 들었나 싶었더니 어느새 훤히 날이 밝은 뒤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홀로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옆자리에 잠들어 있다. 내가 이렇다. 한 번은 아버지 혼자 어장에서 돌아오시다가, 현기증에 주저앉으신 적이 있다. 저혈당 증세와 극도의 허기에 꼼짝을 못하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잡은 물고기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으며 버티셨단다.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짐했었다. 가능하면 꼭 아버지를 모시러 갯벌로 나가자고. 잠든 아버지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곱이 낀 눈가, 움푹 팬 두 뺨. 몸 한번 눕힐 생각 말고 그때 바로 모시러 나가는 거였는데. 후회가 된다.

◆ 아버지 "젊디젊은 놈이 얼마나 갑갑할까 "

 

 

 

이제 놓아줘야지 하다가도
너 없이 살 수 있을지
애비는 영 자신이 없구나

 

 

갯벌에서 돌아와 보니 방 한구석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온다. 아들이 웅크리고 누워 곤히 잠들었다. 더듬어 만져본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상갓집에 다녀온다더니 어지간히 피곤검색하기했나보다. 이따 깨어나면 분명 한소리 참견을 할 게다. 황사검색하기도 있고, 공기도 차가운데 하루 쉬면 좀 어떠냐고 투덜거리겠지. 그럴 때마다 나는 못 들은 체 돌아앉는다. 바다는 정해진 시간에 길을 내준다. 그물에 걸려 있을 고기들 생각에 새벽에도 몇 번씩 잠을 깬다. 제때 나가지 않으면 물 빠진 어장은 고기들의 무덤이 된다. 운이 좋아 고기가 많이 걸린 날에도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부지런히 움직여도 워낙에 느린 일손이다 보니 금세 뭍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된다. 한번은 한 마리라도 더 담아가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고 버티다 낭패를 당했다. 순식간에 무릎까지 들어차던 차가운 바닷물. '눈만 보였으면 열 배는 빨리 해냈을 일인데' 싶었지만, 소리 내어 한탄하지는 않았다. 아들 녀석도 분명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이후로 아들은 밀물 때가 가까워 올 무렵, 바다를 향해 크게 음악을 튼다. 집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나는 욕심을 접고 돌아올 채비를 할 수 있다.

◆ 아들, 생명줄을 엮어드리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만류했었다. 제가 왔으니 이제 아버지는 쉬셔야죠. 위험한 바다일 그만두시고 편히 있으세요. 하루는 혼자 어장에 나갈 준비를 하다, 고개를 숙이고 앉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다. 구부정한 허리와 하얗게 흘러내린 백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행복하지 않으시구나. 당신이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저 세상에 내 '효심'을 인정받으려 한 거였다. 효성스러운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거친 바다에 내보낼 리 없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맞춰 생각했다. 바보같으니라고. 끝 부분에 갈고리를 단 지팡이와 튼튼한 나일론 끈을 사왔다. 어장까지 4km, 갯벌로 걸어나가는 30여 분 동안 아버지 얼굴엔 내내 미소가 감돌았다. 반찬을 집어 밥 위에 올려드리는 식사 시중을 그만둔 것도 그때부터다. 대신 아버지 옆에 앉아 반찬의 대열을 설명한다. 아버지, 밥그릇 옆에 미역국, 그 옆에 무절임, 그 앞에 감자가 있어요. 아버지 이야기가 전파를 타고, 내 사진들이 책으로 나오자 '아버지 팔아 돈 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에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내 사랑의 방식이다.


◆ 아버지, 남몰래 한숨 쉬다

 

 

저 젊디젊은 놈이 이 섬 구석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나들이 채비를 할 때, 아들은 한껏 부풀어 있다. 미술을 전공하고, 혼자서 공부했다는 사진도 제법 잘 찍는단 소리를 듣는 재주 많은 녀석이다. 넓은 바다로 내보내야 할 물고기인데 싶다가도, 아들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눈앞의 암흑이 두 배로 두터워진다. 한번은 녀석이 슬쩍 물었다. 아버지, 저 밤에 하는 야간대학에 나가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새벽이랑 저녁에는 지금처럼 아버지 돕고, 낮에는 가게일 돕고. 밤에만 잠깐 가서 공부하는 거예요. 그물을 다듬다 말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제 내가 이 짓을 그만둬야지, 괜히 너만 힘들게 하는구나. 아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야간대학 이야길 꺼내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나 역시 가슴 깊이 묻어만 뒀다. 끝없는 어둠을 향해 팔을 휘젓다가도,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입 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난다. 연용아, 부르면 '네에' 믿음직하게 대답하는 목소리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네가 서울로 나간 날이면 밤새 기도를 하고, 네가 돌아오는 소리를 들어야 잠이 든다. 이런 못난 아비 마음을 아들은 알고 있을까.

◆ 아들.아버지 "우리의 하루가 또 저문다"

오후 3시. 아직 물때까지 한 시간은 족히 남았는데, 아버지는 벌써 장화를 신고 모자를 눌러 쓰셨다. 기다리시라고 소리를 치고 나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예전보다 아버지 걸음이 느려졌다. 숨도 금방 차오른다. 3년 전만 해도 갯벌에 말뚝을 박는 힘이 나보다 셌다. 당뇨 때문이다. 한사코 병원 가기를 싫어하셔서 식이요법 말고 다른 수가 없다. 부작용으로 이가 많이 빠지신 게 가장 안타깝다. 무절임이나 묵처럼 연한 음식만 드시는 아버지 곁에서 아작아작 깍두기를 씹어 먹기가 죄송스럽다. 얼굴에 풍이 오면서 그 잘 부르시던 노래도 못하게 됐다. 이렇게 함께 바다로 나갈 때면 '홍도야 우지 마라'를 멋드러지게 부르곤 하셨는데. 찬 바닷물에 맨손을 넣고 아버지는 뜯겨나간 그물을 깁는다. 장갑을 내밀어도 도리질을 치신다. 손가락 끝이 눈 대신이라는 말씀이다.

"아버지, 요새는 의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봐주기도 한데요. 멀리 가는 건 싫으셔도, 그건 괜찮잖아요. 집에서 진찰도 받고, 약도 받고."

"일 없다. 멀쩡한 사람 괜히 의사한테 보였다가 탈나는 꼴 많이 봤다. 내 몸은 내가 알아."

"아버지 혈당 좀 떨어지면 이도 새로 해 넣고. 그럼 좋아하시는 회도 실컷 드실 수 있잖아요."

"글쎄, 귀찮다니까 그런다."

버럭 목소리를 높이신다. 의료시설로 아버지를 옮겨야 하나, 이대로 사시도록 두어야 하나. 내게는 가장 어려운 고민이다. 갚아야 할 빚도 남았는데 돈 드는 일 만들기 싫어 그러시는 건지, 아버지 삶의 터전인 이 바다를 끝까지 지키시고 싶어 그러시는 건지.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카메라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본다. 내 시선을 느끼신 걸까, 아버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너 그저께 서울 다녀오면서 말이다. 낚시는 잘 됐냐? 참한 아가씨 좀 만났냔 말이다. 빨리 장가를 들어야지. 그러다 총각 귀신 된다."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 그만 돌아가요. 아버지 손을 잡았다. 차갑고 거친 손마디가 내 손 안을 가득 채운다. 이렇게, 우리 부자의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

■연용씨가 부모님과 함께 꾸려가는 음식점 이름은 '바다향기'. 바다를 '눈'이 아닌 '코'로 느끼시는 아버지를 위해 지은 이름이란다. 서해안 고속도로검색하기 월곶IC에서 시화방조제 도로, 대부도(경기도 안산시)를 지나 선재대교와 영흥대교를 건너는 길이 가장 일반적이다. 032-889-8300. (www.bdh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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