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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네 자신을 알라.

김희달 |2006.05.06 11:12
조회 81 |추천 1
 

12. 네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하면 "네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을 누구나 떠올리게 된다.  근데,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먼저 소크라테스의 깨달음부터 이야기해보자.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신전(Delphi)에서 예언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네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이니라"라는 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이 정말 현명한지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정말 현자인 것을 깨닫게 된다.

     "네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가?  보통 "겸손하라"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말은 단지 겸손만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색결과, 자신이 무한한 능력을 가진 보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스스로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발견하게 한 것이다.  그는 공화국에서 "동굴에서의 우화"(The Allegory of Cave)의 이야기를 예로 들으면서, 겨우 빛을 찾은 현자가 왜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나머지 어둠속에서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더 낳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인도한 것처럼 그는 젊은이들을 빛과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이다.

     부처님의 이야기 중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하루는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은 돌아가시면, 천당에 가십니까, 아니면 지옥에 가십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나는 아마 지옥에 갈 걸세."  "아니, 귀하신 부처님께서 어찌 지옥에 가십니까?" 라고 다시 제자가 묻자, 부처님은 "내가 지옥에 가야 너 같은 중생을 천당으로 인도할 것이 아니냐." 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공자님께서도 "재주는 졸렬함의 종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재주 있는 자는 반드시 남을 도우지 않으면 졸렬하게 된다는 말이다(잔재주가 많은 나는 특히 겸손한 경우보다 졸렬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수영선수가 이를 못 본채 지나칠 수 없듯이 우리 모두가 현재의 일을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그가 죽은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Cartesian Linguist (데카르트언어학파)이자 촘스키의 제자인 NYU 언어학과 교수인 Ray Dougherty 교수님의 해석에다가 내가 좀 더 설명을 붙인 것이다.

     첫째, 소크라테스의 처형의 이유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가 처형된 이유중 하나는 그리스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고, 또 하나는 젊은이들의 정신을 어지럽힌다였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훌륭히 반박하나 그는 사형을 언도받는다.  자신이 단순히 그리스인인 것보다는 세계인(Cosmopolitan)인걸 강조한 것을 고려하면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함으로써 그의 처형자들이 수세대에 걸쳐 비난받고, 비난받게 만드는 대신, 자신은 칭송 받도록 했다.

     둘째, 소크라테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암살했다.  당시는 스탈린 집권당시와 비슷하게 전쟁에서 죽은 자들보다 침대에서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암살을 당했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과 함께 많은 이들을 암살했으며, 특히 플라톤의 "공화국"(The Republic)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들은 스파르타식 삶과 정치를 지향했으며,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공작을 벌였던 것이다.  그는 그의 죄값도 치를 뿐더러, 우매한 민주주의자들이 그를 사형에 처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약점을 지적하려 했다.

     셋째, 소크라테스는 이미 나이가 많았다.  이 이유가 가장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80세를 넘긴 소크라테스는 당시 평균 남성수명이 40대인 걸 가만하면 엄청 많이 산 것이었다.  40대가 노인으로 취급받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다른 사람의 수명 2배를 산 그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산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는 우매한 자들에게 자비를 구해 몇 년 더 생명을 유지하기보다 그의 고귀한 정신이 짓밟히는 것을 도저히 용서 할 수 없었다.

     그는 훌륭한 스승으로서 본보기를 보여야 했고, 그들의 학생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죽음으로써 그의 마지막 수업, 육체는 굴복할 수 있으나, 정신만은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가르쳤던 것이다.  현대 예술인 중에는 피카소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나치군에게 희생된 모국 스페인의 마을 게르니카의 학살을 그린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에 대해 나치군이 그에게 "이거 니가 했지?"라고 물었을 때, "아니 니가 했지."라고 말한 그는 용감하고도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재능"을 선물(gift)로 주셨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찾아서 잘 계발할 "인생"이라는 시간을(time) 또한 주셨다.  우리에게 사명감을 발견하게 될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도 (the moment of Truth) 주셨으며, 때로는 소수의 인원들에게만 아주 뛰어난 재능을 내려주심으로써, 많은 백성들을 도울 기회도 주셨다.  그리고, 선을 행할 자유의지(free will)를 내려주시어 불공평한 세상을 우리 스스로 공평하게 나눠 가져 행복하고 살도록 하셨으며, 마지막으로는 선행의 대가로 무한한 보람을 느낄 기다림(delayed satisfaction)도 주셨다.

     Noblesse Oblige.  나는 부모님께서 내가 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허나 그 자부심은 반드시 그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당시 앤드류왕자가 최전방에서 헬기를 조종했던 것과 같이 나에게도 큰 사명을 어깨에 올려두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원래부터 현명한 사람이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범했던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가장 세상에서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인생은 물론, 가족, 제자들의 인생에,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사명을 다했다.

     비록 나는 16세가 되어서야 겨우 인생의 목적을 찾았고, 20세가 되어서야 인생을 계획했으며, 30세가 되어서야 겨우 이를 조금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겨우 내속의 보물을 찾은 지금, 그 보물을 캐내어 성공과 가정을 이루며, 궁극적으로는 남을 도울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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