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인생은 도박이다.
내가 유학을 간지 2년째 되던해, 나는 중고차를 샀고, 알게된 대학생 형들과 친하게 지냈다. 차를 사게 되자, 형,누나들과 같이 노래방도 가고, 식사도 하며, 운동도 할 기회가 더욱 많이 생겼다. 버스라는 대중교통이 아주 발달하지 못한 미국은 시골일수록 차가 없으면 발이 묶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린 나와 내동생을 많이들 귀여워 해주셨지만, 날 다르게 본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도박꾼형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보낸 유타주는 몰몬교도들의 성지로써, 술, 담배, 마약, 커피, 홍차등을 마시지 않는 아주 독실한 종교인들이고, 도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심한 경우 초등학생들이 트럼프카드를 한번도 본적이 없을 정도였다.
허나, 바로 서쪽에 있는 주는 타락의 중심인 네바다주였다. 미국전역 중 유일하게 주 전체가 도박이 가능한 네바다주는 유타주 바로 옆에 위치해 가깝게는 4시간, 많게는 7시간이면 도박을 할 수 있었다. 네바다, 아리조나, 유타, 이 세주는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미국 중서부의 깡 시골일 뿐더러 로키산맥위에 위치한 사막이다.
이들 세 주는 수시간을 운전해봤자,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사막이다. 이런 허무한 곳에 이들은 오아시스 같은 도시들을 많이도 지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가본 라스베가스는 어마어마 했다. 전세상사람들이 도박에 얼마나 빠져있으면, 유리로 된 초대형 피라미드 형 카지노인 럭스를 지을 수 있으며, 주차장에 파킹만 해도 오히려 돈을 $5씩 내 주는가? 라스베가스, 또, 영화 Sister Act로 유명한 Reno가 아니더라도 네바다 주는 편의점, 식당, 주유소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곳에서 상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도박이 가능했다.
특히 내가 아는 이 도박꾼 형은 한국에서 자동차 정비쪽 일을 하다고 온 걸로 아는데, 한번은 내가 그 형에 대해서 "도박사"라고 불렀더니, 그형 룸메이트가 "도박사" 가 아니라 "도박꾼"이라고 고쳐주었다. 드라마, "올인"처럼 도박을 전문으로하는 그나마 기술있는 사람을 도박사라 하고, 그냥 거기에 미쳐서 마구해대는 쪽이 "도박꾼"이란다. 정말 홍콩영화나 할리웃 영화의 도박사들은 멋진 옷을 입고 나오지만, 이 형은 정말 꾀죄죄했다. 한겨울에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얇은 잠바하나 달랑 걸친게 다였다.
이 도박꾼형이 자주 가던 곳은 유타주북서경계선에 위치한 Wendover였다. 이 형은 어느 정도로 도박에 미쳤냐하면, 학교는 아예 가질 않고, 저녁6시면 겨우 일어나, 도박의 도시면 어는 곳이든 운전을 해서 갔다. 7시간을 차로 운전해서 도착하면, 한밤중에야 카지노에 도착했으며, 그때부터 밤새 도박을 했다. 돈을 따면 호텔에서 자고 (보통 도박을 많이 하면, 호텔에서 아주 싼 가격 또는 아예 공짜로 방을 내준다), 돈을 잃으면 차에서 잔다고 했다. 그런 삶에 찌든 이가 어느날 나에게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어느 겨울날, 영훈이 형이랑 내가 차를 가지고 이 대학교 형들이 사는 방에 갔더니, 원래 두대가 서있어야 할 곳에 차가 한대도 없었다. 그래서 어찌된거냐고 물으니, 도박꾼형이 웬도버라는 곳에 도박을 하러 갔는데, 거기서 차가 펑크가 나서 그냥 두고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형 룸메이트가 연락을 받고, 여자친구랑 같이 운전을 해서 가다가 폭설이 내린 고속도로에서 미끄러져 길옆으로 차가 굴렀단다. 차는 옆으로 누워버렸고, 찌그러진 차문을 열고 여자친구를 구해내었단다. 간신히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다시 집으로 왔고, 차가 없어서 다시 갈 수가 없었단다. 그러다가, 차가 있는 나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당시 어린나머지, 나와, 영훈형, 도박꾼형이랑 그 룸메이트형, 네사람은 다 같이 내차로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윈도버로 4시간을 운전해갔다. 다행이 오후에 출발했기에 저녁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들 도착하자마자 도박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몸무게가 90kg를 넘었던 나는 별명이 "애아버지"였다. 난 16살이었더도, 30살이상으로 쉽게 넘겨본나머지, 내 ID를 절대 체크하지 않았다. 그 도박꾼형은 나에게 다가와 쉽게 돈버는 것을 가르쳐준다며, 나에게 $20를 먼저 꿔갔다. 다른 대학생형들이 많은데 왜 나에게 제일 먼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뭐 아는 사인데 싶어 그냥 빌려줬다. 그리고, 그 형은 블랙잭 테이블로 가서 열심히 도박을 했다. 나는 25센트짜리 슬롯머신을 당기고 있었는데, 얼마지 않아, 그형이 다시 내 옆으로 와있었다.
"얌마. 돈을 벌려면 이걸로 해선 안돼. 블랙잭을 해야지."라며 내가 슬롯머신 하는 것에 참견했다.
"야. $30만 빌려줘." 그 형은 말했다. 내가 이번에도 주위를 둘러보았고, 나랑 같이 온 대학생형들은 아무말 없이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었다. 도박꾼형이 나이가 제일 많아서 였을까, 아님 자기들도 이미 많이 당해서였을까, 도박꾼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내버려두는 형들에게 약간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하도 보채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나는 또 $30불을 더 빌려줬다.
그리고, 나는 250개짜리 777이 터졌다. 그리고, 또 터졌다. 30분도 채 안되어, 777이 4번 터지자, 약 250달러정도의 돈을 순식간에 벌었다. 난 흥분을 감춘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정도는 별일 아닌듯이 사람들은 자기 일에만 빠져있었다. 내동전통에 쿼터가 수북히 싸이자, 그 도박꾼은 어느샌가 내 옆에 와있었다.
"야. 돈 많이 벌었네. 근데, 큰 돈을 벌려면, 테이블에서 블랙잭이나 포커를 해야돼. 나한테 $100만 꿔주라. 이젠 20대후반인 형이 청소년인 나에게 꿔간 돈은 $50를 넘어, 이젠 $150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형은 내 동전통의 돈을 가져간 후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서너시간쯤 했을까, 배가 고파진 나머지 형들과 나는 식당에 갔고, 도박꾼은 결국 끝까지 식당에 오지 않았다.
장거리여행과 세시간 가량 앉아만 있어서 그랬는지 식사후 우리는 피곤해졌다. 벌써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우리는 방을 잡기로 했다. 내가 당시 같이 살던 최동설 교수님과 교수님의 사모님은 걱정이 되셨는지, 안달이셨다. 아들인 영훈이형에게 큰 소리를 한참을 지르셨다. 그리고, 눈폭풍이 오는데 자고 오는 게 더 나을것이라는 생각이 드셨는지, 결국 외박을 허락하셨다. 한참을 잤을까...나를 흔들어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야, 희달아. 일어나봐. 빨리 일어나봐."
"으..음?" 반쯤 잠이 들깬 채 나는 뒤로 돌아보았다.
"나 $400달러만 꿔주라. 이제 조금만하면 되는 데. 좀 도와주라."
"형, 지금이 몇신데요?" 방안의 시계는 새벽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이젠 현금 없어요. 여기 올 때 $300 기계에서 뺴서 기름넣고, 식사하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나머진 형 다 빌려줬잖아요. 오늘은 더 이상 돈을 못 빼요."
"야, 빨리 줘. 달란 말이야." 더 이상 이사람은 내가 알던 형의 눈빛이 아니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멀고 먼 산꼭대기까지 끌고와 마지막 위기의 순간 반지를 빼았으려는 탐욕스러운 골룸이었다.
"형, 그만해요. 애한테 왜그래요?" 나머지 두형들이 말리기 시작했지만, 골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나를 흔들어댔다.
"야. 빨리 빌려줘. 빌려줘. 빌려달란 말이야!" 아이의 모습도 아닌 어른의 모습도 아닌 이상한 몰골의 이 동물은 나를 30분쯤은 괴롭혔다.
"야. 그냥 좀 빌려줘라." 나 땜에 잠도 못자는 형들에게 미안했고, 이젠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골치덩어리 골룸에게 포기를 한 나는 결국 $400 수표를 끊어줬다. 그리고는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한참을 억울하고 짜증이 났지만, 어느새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 일찍 5시에 일어났다. 대학생인 도박꾼룸메이트형, 영훈이형, 그리고 고등학생인 나도 학교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박꾼을 데리러 갔다. 밤새 왜 나에게 돈 뜯으러 안왔는 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박꾼은 세시간만에 $3.000를 벌었다. 그리고, 원래 우리랑 같이 간대놓고는 결국 내 돈은 갚질 않고, 내차에 기름만 달랑 $15어치만 넣어주고는 다시 카지노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한번도 도로를 달린 적이 없는 솜털이 뽀송뽀송한 새 스페어타이어까지 빌려주고는 운전대를 잡았다.
밤새 내린 눈의 양이 엄청났지만, 새벽에도 폭설을 계속되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운전해 갔다. 오는 길에 10미터 앞은 계속 안 보였고, 심할때는 바로 앞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고, 강풍도 동반해 2톤이 넘는 내 혼다아코드는 세사람을 싣고도 흔들렸다. Salt Lake City 쯤을 지나자 사고차량이 많이 보였다. 그날 내가 본 사고건수만 13건이 넘었고, 내차도 수십번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우선 Provo에 도착한 후 나는 형을 내려주고, 학교에 갔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1시였다. 오후수업은 빼먹을 수 없어 나는 미술실로 들어갔다. 다들 씻지도 않은, 새벽부터 7시간을 운전을 해 초췌한 나의 모습에 친구들과 선생님은 놀랐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는 당연히 야단을 맞았다. 내가 어린나머지 크게 야단을 맞지는 않았고, 영훈이형이랑, 아무 죄없는 도박꾼룸메이트형이 도박꾼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도 카지노에 있었다) 엄청 혼이 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사모님은 내가 빌려준 돈도 빨리 돌려주라고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으며, 착한 도박꾼룸메이트형은 너무 한마저 흘렸다. 자기는 그 놈의 골룸때문에 차도 박살이 나고, 여자친구도 다쳤는데 말이다. 그 다음날 도박꾼은 돈을 벌어서 돌아왔고, 사모님께서는 직접 엄청 괴롭혀서 내돈을 돌려받게 해주셨다. 사모님과 절친하게 지내시는 마기따 엄마의 조카(도박꾼의 룸메이트인, 자가용이 박살난 착한형)에게 까지 흥분을 하시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전부 도박이다. 언제 태어날 지, 언제 불치의 병에 걸릴지, 언제 회사에서 짤릴 지, 또 언제 죽을 지 모른채 먹고, 마시며, 일하고 살아간다. 허나 그 누구도, 공부, 직업, 또는 사업을 도박이라 간주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일이나 공부에는 상호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사제간/사업간)라는 것이 반드시 있고, 진심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남을 돕고, 남이 행복해지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며, 돈은 그에 대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힘들게 벌기때문에 돈이 큰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힘들게 공부하거나 일하면 반드시 보답이 있지만, 도박은 근면의 대가라든지, 점점 쌓이는 돈독한 신뢰보다는 우연, 또는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하기때문이다. 이런사람들에게는 오직 어떻게든 돈을 따고 보겠다는, 크게 잃은만큼 다음번엔 더 많이 한번에 뽑아버리겠다는 오직 강한 복수의 욕망만 남아있는 것이다. 성공을 향해 불살라야 할 욕망(burning desire)을 엉뚱한 데서 주체 못하는 예였다.
열여섯이란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한 나는 도박에 빠질래야 빠질 수 없다. 14년전의 그 골룸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뜻밖의 행운처럼 다가온 제왕반지(나의 잭팟)는 무한한 힘을 주는 듯하지만, 사실 자신을 크나큰 위험에 빠뜨린다. 게다가, 그 욕망에 휩쓸려 순식간에 폐인으로 만든다. 더러운 욕망과 쉽게 힘을 얻기를 거부하는 프로도도 여행도중 어두운 욕망에 잠깐 잠깐 빠져들지만, 결국 용기있게 반지를 없애버리는 진정한 영웅이다.
도박에 빠져 골룸처럼 탐욕스럽게 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보다, 아무리 어렵고 힘에 부쳐도 친구들과 함께 남을 돕고, 세상을 구하는 삶에 빠져 살고 싶다. 학교까지 빼먹으면서 겪은 이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도박꾼에게 감사하며, 그 형도 어두운 구석에 숨어있는 골룸을 떨쳐버리고, 좋은 미래를 건설하기 바란다.
-뒷이야기-
당시 내 차번호는 777GDW(777 Golden Wood) 였다. 차량등록을 위해 DNV에 가니, 공무원 아줌마가 "Boy, aren't you lucky! Here you are."라며 이 행운의 번호판을 내어주었다. 이차를 6년간 탔으며, 한차례의 작은 사고도 난적이 없다. 난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