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자주 호산나넷에 들어가서 칼럼을 읽는데요. 그 중 양승훈 님의 글입니다. 늘 적용이 가득한 글을 써주셔서 저에겐 읽을 때마다 도전이 되곤 해요..^^
===================================================
10년 전, 학교를 휴직하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 때
나는 단순히 과학사를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과학교육 분야에
과학사를 도입하는 연구를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위스칸신대학에서 1년간 공부한 후 전세금을 받아 가져갔던
2000여만 원의 돈은 바닥이 났고 따라서 나는 석사논문만 남겨둔
채 장학금을 주는 위튼대학으로 학교를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튼대학에서는 위스칸신대학에서 마치지 못했던
과학사 석사논문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빌리 그래함 센터 장학금을
받아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전에 우리 가족이 미국에 있을 때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의 강권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올 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신학 공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과학사와 신학 분야의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내가 미국에서 공부한 것의 의미를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그래도 과학사를 공부한 것은 경북대에서 교양 과학사 강좌를
개설하고 이 강좌의 주임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리고 애초에 계획
했던 것과 같이 과학사를 과학교육에 도입하는 연구를 하면서
몇 권의 책과 논문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의 경우는 달랐다.
그 때 사정으로는 위튼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것이 돈이 없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
해 보면 천지의 주재이시며 "재벌 중의 재벌"이신 하나님의 관점
에서는 돈 때문에 위튼으로 학교를 옮긴 것이 아님이 확실했다.
물론 그렇다고 목회를 하기 위해 신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에도 나는 하나님께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하신
좀 더 실제적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지 신학이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신학 수업을 감사드렸을
뿐이다.
신학 공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1997년, 우리 가족이
기독학술교육동역회(DEW)의 파송을 받아 기독교세계관대학원
(VIEW) 설립을 위해 밴쿠버로 떠나면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캐나다연합신학대학원(ACTS) 내에 VIEW 기독교세계관 석사과정
을 개설하기 위한 실무적인 협상 파트너는 ACTS의 퍼어킨스
(Dr. Larry Perkins) 학장님이었다. 학장님은 학교 교직원들이나
학생들과 만나는 공사석에서 나를 소개할 때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데 적임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물리학과 더불어 위튼에서
신학을 공부한 것을 언급하셨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보니
만일 내가 위튼에서 조금이나마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VIEW
사역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사를 공부한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VIEW에서는 물리학과 같은 개별 학문을 강의하지 않고
과학 전반에 걸친 기독교적 조망과 평가를 가르치는데 이렇게 하는
데 있어서 과학사는 신학과 더불어 매우 적절한 준비였다.
십여 년 전, 위스칸신대학과 위튼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그러한
공부가 장래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될 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든 공부들이 하나님의
퍼즐 조각들이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그림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 그림은 결국은 완성될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진보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믿음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믿음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확신하므로 현재의 어려움과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며,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미래를 모른다는 면에서는
일반이다. 똑같이 암에 걸릴 수도 있고 교통사고와 실직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더라
도 그것들을 우연과 재수에 의해 일어난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사건
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그 일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기까지 자기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그 분의 그림을 만드는 하나의 퍼즐
조각일 뿐임을 확신한다. 처음에는 그러한 것들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커다란 하나님의 그림의 일부를 구성할 것임을 믿는다.
믿음이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더라도
어떤 다른 신이나 우주적인 존재, 자연계의 인과율 등에 의해
인간만사가 얽혀져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인격적인 하나님,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 자기를 향한
놀라운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신
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롬8:28) 확신이 없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불안하게
된다. 이렇게 하다가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이 아닐까, 괜히 나 혼자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게 된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불안에 떠는 것은 비단 불신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면 그런 두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1997년 11월, 처음 VIEW 사역을 위해 학교를
박차고 나왔을 때 내가 겪었던 마음 고생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IMF 사태라는 미증유(未曾有)의 거대한 풍랑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보다도, 그 분의 계획보다도 더 크게 보이게 되자
내 마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았다(약1:6-8).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창파에 배를 띄웠지만 곧 이어 일어난
큰 풍파에 나의 연약한 믿음의 배는 맥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큰 풍랑이 다소 잠잠하게 되자
하나님의 퍼즐 그림의 일부가 수면 위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위스칸신에서의 과학사 공부도, 위튼에서의
신학 공부도, 대학을 사직한 것도, IMF 사태도, 갑상선 조직검사도
모두 하나님이 만들고 계시는 큰 그림의 퍼즐 조각들임을 보게 된다.
과거의 바다로 흘려보낸 퍼즐 조각들만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현재와 미래의 바다에서 요동치는 퍼즐 조각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퍼즐 그림의 일부인 것이다. 내가 아니라 바로 그 분이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를 항해하는 "인생호"의 선장인 것이다.
지나온 인생의 여정에서 경험했던 크고 작은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님의 큰 그림의 일부임을 수없이 보았으면서도,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눈앞에 닥쳐온 몇몇 퍼즐 조각들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안달할 때가 많다. 아마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고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러 하나님의 퍼즐 그림의 전체를 보게 되면
세상에서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퍼즐 조각들의 의미도
온전히 드러나는 날 것이다.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처럼 모든 일들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쯤에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 20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