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가을.
어느 야심한 밤이었다.
2001년 당시 집에 컴퓨터도 없었고,
VTR도 고장나서
영화 좋아하는 난
당시에 비디오방을 많이 애용했었다.
하도 자주 가니까 쿠폰이 금세 많이 모였고...
사건의 그날 밤은
쿠폰 10장을 모아서 무료로 비디오 감상을 하는 뜻깊은 날이었다.
영화매니아인 난 영화를 볼때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봐야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고 하니....
나처럼 정말 순수하게 영화감상만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디오방을 정말 "방"으로 쓰는
일부 몇몇의 불꽃같은 정열의 소유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날 바로...
내 방 바로 옆의 방에서 한 남녀가
비디오방을 "방"으로 쓰고 있었다.
써도 엄청 쓰고 있었다!
벽이 부셔져서 한 방이 되는 줄-_-
영화에 집중을 하려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변태같이 엿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음.-_-
그때 새삼 알았다.
내가 다니던 비디오방 벽이 얼마나 얇은 지...
도무지 방음이 되지 않았다.
어찌나 생생한 지...
그들이 마치 내 바로 옆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남자가 하도 헉헉대길래 금방 끝나겠지 하고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자 하고 이해를 해주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는 내 예상을 뒤엎고 끈질기게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달랑달랑 위태위태~
마치 다 죽어가는 불씨에
간절하게 후우~후우~ 하고 바람을 불며 불꽃을 살리듯
계속 살리는 것이었다.
끈기와 열정이 대단한 놈이었다.
의미가 깊은 쿠폰10장 기념 내 무료영화는
이미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인공들이 서로 열심히 진지한 대화들을 나누고 있었지만
뭔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뭔 내용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아... 내 쿠폰기념 영화!'
난 점점 초조해졌다!
내가 한번 무료영화 보겠다고 그렇게 피땀을 흘리며
한 비디오방만을 파며 열심히 모은 쿠폰이 아니던가!
나의 쿠폰기념 무료영화를 이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낼 순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료쿠폰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쿠폰열개 모으면 치킨 한마리 준대서
한 치킨집만 열심히 팠고
드디어 열개를 다 모은 나.
벅찬 가슴에 주문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제길... 저번주에 사장이 바뀌었다며
내 쿠폰 10개를 무참히 쌩을 깠던 것이다.
그래서 난 이날의 상처때문에 쿠폰에 집착을 하게 된 것이었다...
무언가 성취하고픈 그 심정!
생애 처음으로 쿠폰으로 무료해택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이 날밤 비디오방의 무료영화였던 것이다.
이렇게 짐승같은 옆방 남녀때문에 허무하게
내 기념비적인 영화를 버릴 순 없었다.
봐야만 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라 봐야만 했다!
그때였다!
하늘도 이 내 심정을 아시고 도와주셨는 지,
옆방 남의 "흑...!!" 소리와 함께 옆방에 간만에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들의 영화속 대사가 모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대사를 들어보니
오!수정 이었다.
하긴 뭐 그거 하는데 영화가 중요하겠는가.-_-
잠시 후 옆방 남이 벗었던 바지를 다시 입고
짐승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지
혁띠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서야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소파에 편히 몸을 눕혔다.
그리고 내 사랑스러운 무료쿠폰 영화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내 영화는 지금 봐도 꽤 야한 *-_-*
'미인' 이었다.
마침 오지호랑 이지현이 상의를 훌러덩 훌러덩 벗고
바닥에 발라당 쓰러지고 있었다.
분명 침이 넘어가는 장면이었지만,
그런데...중요한 건
이지현이랑 오지호랑 언제 저렇게 진도가 나갔는지..
무슨 연유로 저렇게 마루바닥에 뒹구는 지
도무지 앞 장면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제길...
난 옆방 남녀때문에
내 귀중한 영화 미인의 초반부를 다 날려버린 것이었다.
휴우...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
비록 초반부를 다 날려버렸지만...
그래도 난 정신을 가다듬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중반부부터라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평온하게 영화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난 원래 영화보면서 내가 그 영화 주인공이 되어본다.
감정이입을 해서 심취해서 보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난 그렇게 뒤늦게나마 영화 미인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그러던 그때!
불길한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
이런 젠장!
옆방 남의 혁띠 다시 푸는 소리였다!
난 너무 놀라 설마설마! 설마 아닐거야! 라고 외쳐보았지만,
그것은 분명 옆방 남의 혁띠 다시 푸는 소리였다!
"이러지마아아~ 하지마아아아~"
라고 하는 옆방 녀의 저항소리도 들려왔다.
난 이 와중에 옆방녀가 이기길 바라며
절실하게 그녀를 응원하고 또 기원했다!
'계속 저항해! 제발! 넌 할 수 있어!'
하지만...
내 응원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녀의 저항은 저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극이었다.
-_-
옆방 남의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소리가 들렸다.
놈은 은근히 터프가이였다.
소파 쿵쾅거리는 소리.
비비적대는 소리가 한참 어우러지더니...
잠시 후...
다시 그 빌어먹을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_-
난 차라리 소리 포기하고 영상이라도 건지자는 마음에
귀를 막고 내 영화 미인에 집중하려고 발버둥쳐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마치 날 엿보기라도 하듯
손으로 귀를 세게 막으면 막을수록
옆방 여자의 신음소리가 더욱 더 커지는 것이었다.-_-
그래도 뭐... 두번째니까 금방 지쳐서 끝내겠지 했다.
하지만...
옆방 남녀는 오히려 몸이 풀렸는 지...
첫번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못하진 않았다.
그들이 내지르는 사랑의 하모니도
첫판보다 한 옥타브 더 올라가 있었다.
여자...
판소리 계승자인 줄...-_-
그러던 그때
설상가상으로
그때 내 영화 미인에서도
이지현이랑 오지호가 불이 붙고 있던 찰나였다!
"이...이런 제기랄!
왜 니네까지 그래?!!"
영화 속 커플과 옆방 커플
이 두 커플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옥타브를 높여나갔다.
미인에서 오지호랑 이지현의 사랑의 플레이는 금새 끝났지만...
옆방 남은 마치 나한테 반항이라도 하듯,
꺼져가는 장작을 끈질가게 살려나갔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옆방 남
엄청난 열정과 끈기의 소유자였다.
내 영화 미인은
그렇게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작작 좀 해, 제발...
여긴 모텔이 아니야, 이 잡것들아!'
난 옆방남녀에게 할수만 있다면
두 무릎 꿇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속을 태우던 그때.
내 간절함이 하늘에 한번 더 닿았는 지,
갑자기 옆방이 조용해졌다.
그저 그들의 영화 오!수정의 대사만이 들려올 뿐.
후우... 드디어 끝난 것인가!
참 징한 것들이었다.
계속 시달려서 그런 것인지,
영화 날린 건 더이상 화는 나지 않았고
조용해진 것만으로도 기쁨이 밀려왔다.
난 그제서야 해방감을 맛보며
영화 미인 남은 부분이라도 집중하려 애썼다.
"아... 조용해지니 참 좋......"
그...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옆방에서 옆방남녀의 그 빌어먹을 사랑의 하모니가
또 다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잠시 자세를 바꾼 것이었다.-_-
게다가 둘이서 정말 잘 맞는 자세로 바꾼 것인 지,
전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온 것이었다.
옆방 남녀는 이제 대놓고 괴성까지 질러댔다.
락커인줄...-_-;;;
장소와 때를 전혀 신경 쓰지않는
아주 패기 넘치는 당당한 젊은이들이었다.
하도 계속 듣다보니 노래로 들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비트박스를 넣어주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다.
지네들도 인간인데...
언젠가는 끝나겠지하며....
이제는 어느정도 마음을 비우며
쬐끔 남았지만 영화에 집중하는 그 순간을 참고 기다려보았다.
그러던 중...
너무나도 반가운 남자의 게임오버 소리!
옆방 남의 "흑..!!!" 과 함께....-_-
두 남녀의 플레이가 재생을 멈추었다.
미인은 종반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결말이라도 제대로 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이 빌어먹을 옆방 남녀는
소박한 나의 행복마저 허락치 않았다.
탁탁탁탁탁탁...!!!!
두번의 격렬한 사랑을 나눈 옆방남녀는 서로 땀을 닦아주는 지,
살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난타 같았다.
소리로 봐선 등짝 두들기는 소리였다.
오!수정은 다 끝났는지,
아무 대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가 다 끝난 것 같은데 그들은 나가지 않고
사뭇 진지한 어조로 둘이서 한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엄창' 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니
그리 나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붕가붕가의 선입견이었을까?
대화가 정말 알차고 진지한 것이었다.
정말 의외로 옆방 남녀는 서로에게
미래설계에 대해 조언도 해주고,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서로의 소견도 나눴으며,
부모님과 가정에 대해 고민까지 나눴다.
속이 꽉 찬 젊은이들이었다.
스폰지에 물 스며들 듯...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렇지." "맞아." 하며
그들의 대화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내 영화 미인은
내 시야에서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_-
그러던 중...
그들의 대화는 한참을 오가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끊겼버렸다!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더 이상 옆방 남녀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응? 뭐지? 갑자기..."
미인도 다 끝나서 자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난 보상심리였을까...?
그들의 대화라도 들어야만 했다.
옆방의 알 수 없는 침묵.
갑자기 왜 저러는 지 궁금했다.
그 다정한 연인이 왜 갑자기 아무말도 하지 않는 지...
문 열고 나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그러던 그때!
오! 지져쓰...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
옆방남의 또 다시 혁띠 푸는 소리...
그렇다.
그들은 또 다시 불이 붙은 것이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진지한 모습에 색다른 매력을 느낀 것이었다...
-_-
옆방남의 3번째 혁띠 푸는소리...
이제는 그 소리가 위대하게 들려왔다.
옆방남.
정말 무서운 놈이었다...
영화가 끝난 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나올 생각을 않했다.
아예 비디오방 F호실에 살림을 차릴 기세였다.
집들이 가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잠시나마 그들을 속이 꽉 찬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저주스러워졌다.
그냥 그들은 속이 꽉 찬 짐승들이었다...
무료 비디오 한번 보겠다고
그토록 한곳의 비디오방만 죽어라 파서 열심히 쿠폰을 모았건만....
내 귀중한 영화 미인은
그렇게 옆방 짐승들의 지긋지긋한 애정행각에 잔인하게 묻혀버려야 했다.
난 옆방 남녀의 격렬한 사운드를 들으며 방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카운터에 대머리 남자사장님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깊은 수면중.
'으이그... 사장이 이러고 있으니
저것들이 영화 다 끝났는데도 한번 더 하지...'
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다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변기에 앉아 오열하면서
옆방 남녀를 저주했다.
"아... 영화는 영화대로 못보고... 외로움은 더 깊어져만 가고...
빌어먹을 것들... 비디오방에서 도대체 몇번을 하는 거야..."
한 10분 정도 흘렀을까...
응가를 다 하고 화장실을 나와 엘레베이터 앞으로 갔는데,
한 젊은 남녀가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서있었다.
근데 지네끼리 나누는 대화들을 옆에서 들어보니
오오옷! 그 빌어먹을 옆방 남녀가 아니던가!
남자가 등빨이 쩔고 거칠게 생겼을 거라 상상했었는데...
의외로 호리호리하니 마른 체격이었다.
'호오... 역시 마른 장작인가!'
난 잠시 후 그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안에 온통 진득한 땀냄새가 풍겨왔다.
그것은 분명 옆방남의 땀냄새였다!
'새끼! 땀 꽤나 흘렸니? 훗.'
그,그런데
옆방녀가 킁킁대며
"여기 땀냄새 장난 아니다..." 라고 말하더니
잔뜩 찌푸려진 미간으로 뒤에 서 있는 날 슬쩍 흘기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솔로인 게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_-
잠시후.
두 남녀는 엘레베이터에 내리자마자
상가 1층에 있는 실내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난 술집으로 태연히 들어가는 옆방 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엄청난 체력에 감탄해야만 했다.
그렇게 사랑을 격렬히 나누고 바로 또 술자리를 갖다니...
분명 그날 밤.
옆방남의 혁띠는 또 다시 풀어졌을 것이다......
이야기 끝.
글쓴이- 활화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