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왕실양명술"과 ''바위암차"'' 문화

이원섭 |2006.05.12 12:57
조회 159 |추천 0
rock tea story--2-
가락국시대 김수로왕의 허황후가 인도천축국에서 우리나라에 시집올때 그쪽 차씨를 갖고왔다는설
신라고승이 화개 쌍계사에 당나라에서 차씨를 갖고와 차나무를 처음  기르기 시작했다는설들이 차의 우리나라 정착과관련한 멋진 전설이 있거니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차의 매력에 흠뻑 빠졋던 시대는 송나라와 긴밀했던 고려시데 였다.

고려가 찬란한 차문화의 단편, 편린을 고려청자기 다완 까지 만들어 내어- 고려차-보다 차를 담아마셨던 그릇인 고려청차-상감청자다완, 꽃병,다기들이 소더비 경매에 수억원을 주어도 물건이 없을 정도이다.

고려의 차문화가 성행하지않았다면 화려한 고려차를 담아 마시기위해 고안한 청자 다완은 생겨나지도 아니했을것이다.

이때  고려가 송나라와의 차문화 교류가 활발했을때 고려에는 <뇌원차> <각차>가 있엇다. 자금은 사라졌다.

고려의 개국공신 ,원로대신에게 내리는 왕의 하사품으로는 녹차가 최고 엿다.
그당시에는 송나라와같이 다기문화 음차문화가 자웅을 다투었으며

불교의 삼매경이 ,차에 홀딱 빠져= 차삼매=까지 들었던 고려 고승들의  선삼매에 들었던 심사를 누가 짐작이나 하랴.

또 그때 송나라왕이 즐겻던 차의 형태는 <"가루차>엿다고 전해온다.(가루 말차)

송,당 시대 나이든 차나무를 복건성 무이산에서 캐다가 왕도로 옮겨 심을 때 엄중한 군대의 경비까지 행해졋다한다.

100그램에 3천만원을 호가한 복건선 무이산 차나무가 수령 300년 이상이라 하는데 몇일전 우리나라에 수령1천년 추정 차나무의 희귀한 차가 한근에 1000만원간다는 방송 미 디어 에 나타나기도 햇다. 그 차나무감정에 나섰던 사단법인 양명회 2대회장 안학수박사는
딱이 1000년이라고는 말을 아끼고 5백년부근이라고 말햇다.
 우리나라 농학계의원로 안학수박사는 10여년의 땀흘린 역작,<한국농식물자원연감>이라는 저서를 남긴바 있다 일조각 출판사에서 1981년 발행본이다,. 이춘령, 박수현 공동집필본이다.

중국의 국보급 바위차로 <대홍포차>.< 백학관. > <천심암차>등이 맛도 진미려니와 생산량이 1키로그램 내외인 희귀성마저 작용하여 1백그램에 3천만원에도 봄철에 순식간에 최고가격에 낙찰되어 절품 이란다.

그런 암차는 옛부터 죽을병에 걸린 중환자들이 마셔서 병을 고쳐냈다는 신비까지 겼드렸다 전한다.

 대홍포차의 경우

그중300그램은 등소평, 조자양, 호금도 수석 같은 최고 통치자의 건강을 가꾸고 또

국빈 대접용으로 사용되고 300그램은  홍만십자회라는 도교지도자들이자 세계화교경제권의 상위자들이 무이산 암차 관광나들이 행차시 귀빈 접대용으로 보관되고 남어지

약 4백 그램만 경매에 부쳐 진다니 돈갖고도 사지못할 "풀잎다이야몬드"라 할수 있다.

다이야몬드는 돈만 갖이면 살수 있으나 이런  국보급 최고 명차는 돈 주고도 못사는 휘귀 성이 깔려 있는것이 ,100그램에 최고 입찰자가 1억!아라고 하면 그가격에 낙찰을 할만큼의 고귀한 차종이다. 

이런 희귀한 무이산 암차나무들을  회교도들이 성지순례하듯 전세계 화교재벌들이 매년1회씩 무이산  대홍포차 나무순례행을 수행하고는 300년이상된 차나무(열구루도 안된단다)를 참배하고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는것이다.
 조선조왕실의 왕의차를 다루던 정3품직 내관가에서 전해오는 말로는 고려때부터 전해오는 명차의 향기와맛이 그윽한 꽃의 향기가 풍겻다는것이다.

필자가 선물받은 보성군 벌교 천치고개(옛 고려진굉사절터옆) 특산 우전차  <은미륵> 차의 향취는 그윽하여 꽈리맛과 내음이 풍겼는데 필설로는 표현할수가 없다. 앞서 말한 고 한상훈씨는 전문화일보 김대성편집위원과 함께 진광사지 차밭을 탐사갔던 필자에게 쪽 물감과 그 물감을 바탕으로 그의 옹기가마 터에서  고려청자까지 재현해보겠다고 열정을 보였었다. 그부인(한상훈씨) 차여사는
진굉잎차로 최고 품질의 발효 홍차를 개발하고 있는중이다.  완성되면 세계 왕가들의 입맛을 독차지할것만 같다

600여년전 조선조 초기 대명나라 사대외교의 핵심물질이 "고려산삼"과 "고려명차" 그리고 숭어알젓, 곤쟁이젓,문어포같은  해산물들이었다..  고려차는 태조,정종, 태종3대에 매년 동지사와 수시 사신편에 수백근씩 명황제에게 선물로 보내졋다.

그정도로 차의나라 명황제가 고려 암차를 선망했다니 당시고려 암차를 지금 재현 재생시킨다면,
또 300년이상된 차나무에서옛 왕실의 차관리 고위 직(정3품)들이 무슨 약수로 차를 달여 냈는지의 숙제를 풀면 우리 약수와 함께 대 화교 ,화상을 겨냥한 최고급차의 생산 수출도 불가능하지않다.

이방자 마마 생존시 호놀루루 소재 하와이대학 전 경영학교수 이상억 씨의 소개로 알게된 이방자여사의 낙선재를  필자가 예방 했을때 귀한손님이라며 "곤포차'"-다시마차 -를 권하시는것이었다.
 일본의 명사들이 낙선재의 칠보 작품도 사가고   최고 명차도 선물 했으련만 왜 그랬을까?(일본 녹차  이야기 를 지전 서두에 꺼냈을때-비료, 농약 이야기-를 한 직후의 벌어진 일 이였다.)

하도 이상해서 일본 명차가 없으신가 고  여쭈엇더니 모나리자의 웃음같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저 좋은차(곤포차)인줄알고 마셔 보라 했다.

당신의 모국 명 차(일본 우지차등)를 조선왕실 의 <왕의차>다루던 이낭청내관의 독 제자 (필자)에게 내 놓앗다가 흉 떨릴것이 두려워 그리 했을 것이라는 추축 뿐이다.
=계속=
2006.5.10.
joins.com/블로거,sungfi,이원섭,Lee won sop 
사단법인 한국양명회 창설 1대회장 rock tea story--2-
가락국시대 김수로왕의 허황후가 인도천축국에서 우리나라에 시집올때 그쪽 차씨를 갖고왔다는설
신라고승이 화개 쌍계사에 당나라에서 차씨를 갖고와 차나무를 처음  기르기 시작했다는설들이 차의 우리나라 정착과관련한 멋진 전설이 있거니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차의 매력에 흠뻑 빠졋던 시대는 송나라와 긴밀했던 고려시데 였다.

고려가 찬란한 차문화의 단편, 편린을 고려청자기 다완 까지 만들어 내어- 고려차-보다 차를 담아마셨던 그릇인 고려청차-상감청자다완, 꽃병,다기들이 소더비 경매에 수억원을 주어도 물건이 없을 정도이다.

고려의 차문화가 성행하지않았다면 화려한 고려차를 담아 마시기위해 고안한 청자 다완은 생겨나지도 아니했을것이다.

이때  고려가 송나라와의 차문화 교류가 활발했을때 고려에는 <뇌원차> <각차>가 있엇다. 자금은 사라졌다.

고려의 개국공신 ,원로대신에게 내리는 왕의 하사품으로는 녹차가 최고 엿다.
그당시에는 송나라와같이 다기문화 음차문화가 자웅을 다투었으며

불교의 삼매경이 ,차에 홀딱 빠져= 차삼매=까지 들었던 고려 고승들의  선삼매에 들었던 심사를 누가 짐작이나 하랴.

또 그때 송나라왕이 즐겻던 차의 형태는 <"가루차>엿다고 전해온다.(가루 말차)

송,당 시대 나이든 차나무를 복건성 무이산에서 캐다가 왕도로 옮겨 심을 때 엄중한 군대의 경비까지 행해졋다한다.

100그램에 3천만원을 호가한 복건선 무이산 차나무가 수령 300년 이상이라 하는데 몇일전 우리나라에 수령1천년 추정 차나무의 희귀한 차가 한근에 1000만원간다는 방송 미 디어 에 나타나기도 햇다. 그 차나무감정에 나섰던 사단법인 양명회 2대회장 안학수박사는
딱이 1000년이라고는 말을 아끼고 5백년부근이라고 말햇다.
 우리나라 농학계의원로 안학수박사는 10여년의 땀흘린 역작,<한국농식물자원연감>이라는 저서를 남긴바 있다 일조각 출판사에서 1981년 발행본이다,. 이춘령, 박수현 공동집필본이다.

중국의 국보급 바위차로 <대홍포차>.< 백학관. > <천심암차>등이 맛도 진미려니와 생산량이 1키로그램 내외인 희귀성마저 작용하여 1백그램에 3천만원에도 봄철에 순식간에 최고가격에 낙찰되어 절품 이란다.

그런 암차는 옛부터 죽을병에 걸린 중환자들이 마셔서 병을 고쳐냈다는 신비까지 겼드렸다 전한다.

 대홍포차의 경우

그중300그램은 등소평, 조자양, 호금도 수석 같은 최고 통치자의 건강을 가꾸고 또

국빈 대접용으로 사용되고 300그램은  홍만십자회라는 도교지도자들이자 세계화교경제권의 상위자들이 무이산 암차 관광나들이 행차시 귀빈 접대용으로 보관되고 남어지

약 4백 그램만 경매에 부쳐 진다니 돈갖고도 사지못할 "풀잎다이야몬드"라 할수 있다.

다이야몬드는 돈만 갖이면 살수 있으나 이런  국보급 최고 명차는 돈 주고도 못사는 휘귀 성이 깔려 있는것이 ,100그램에 최고 입찰자가 1억!아라고 하면 그가격에 낙찰을 할만큼의 고귀한 차종이다. 

이런 희귀한 무이산 암차나무들을  회교도들이 성지순례하듯 전세계 화교재벌들이 매년1회씩 무이산  대홍포차 나무순례행을 수행하고는 300년이상된 차나무(열구루도 안된단다)를 참배하고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는것이다.
 조선조왕실의 왕의차를 다루던 정3품직 내관가에서 전해오는 말로는 고려때부터 전해오는 명차의 향기와맛이 그윽한 꽃의 향기가 풍겻다는것이다.

필자가 선물받은 보성군 벌교 천치고개(옛 고려진굉사절터옆) 특산 우전차  <은미륵> 차의 향취는 그윽하여 꽈리맛과 내음이 풍겼는데 필설로는 표현할수가 없다. 앞서 말한 고 한상훈씨는 전문화일보 김대성편집위원과 함께 진광사지 차밭을 탐사갔던 필자에게 쪽 물감과 그 물감을 바탕으로 그의 옹기가마 터에서  고려청자까지 재현해보겠다고 열정을 보였었다. 그부인(한상훈씨) 차여사는
진굉잎차로 최고 품질의 발효 홍차를 개발하고 있는중이다.  완성되면 세계 왕가들의 입맛을 독차지할것만 같다

600여년전 조선조 초기 대명나라 사대외교의 핵심물질이 "고려산삼"과 "고려명차" 그리고 숭어알젓, 곤쟁이젓,문어포같은  해산물들이었다..  고려차는 태조,정종, 태종3대에 매년 동지사와 수시 사신편에 수백근씩 명황제에게 선물로 보내졋다.

그정도로 차의나라 명황제가 고려 암차를 선망했다니 당시고려 암차를 지금 재현 재생시킨다면,
또 300년이상된 차나무에서옛 왕실의 차관리 고위 직(정3품)들이 무슨 약수로 차를 달여 냈는지의 숙제를 풀면 우리 약수와 함께 대 화교 ,화상을 겨냥한 최고급차의 생산 수출도 불가능하지않다.

이방자 마마 생존시 호놀루루 소재 하와이대학 전 경영학교수 이상억 씨의 소개로 알게된 이방자여사의 낙선재를  필자가 예방 했을때 귀한손님이라며 "곤포차'"-다시마차 -를 권하시는것이었다.
 일본의 명사들이 낙선재의 칠보 작품도 사가고   최고 명차도 선물 했으련만 왜 그랬을까?(일본 녹차  이야기 를 지전 서두에 꺼냈을때-비료, 농약 이야기-를 한 직후의 벌어진 일 이였다.)

하도 이상해서 일본 명차가 없으신가 고  여쭈엇더니 모나리자의 웃음같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저 좋은차(곤포차)인줄알고 마셔 보라 했다.

당신의 모국 명 차(일본 우지차등)를 조선왕실 의 <왕의차>다루던 이낭청내관의 독 제자 (필자)에게 내 놓앗다가 흉 떨릴것이 두려워 그리 했을 것이라는 추축 뿐이다.
=계속=
2006.5.12.
싸이월드/블로거 ,이원섭,Lee won sop =미니홈피
사단법인 한국양명회 창설 1대회장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