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작가 협회.
2006년 봄철 TV드라마 공개특강. '김운경' 선생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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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경.
<서울뚝배기> <도둑의 딸> <서울의 달> <파랑새는있다>
<옥이 이모> <황금사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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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해보기는 처음입니다.
굉장히 떨리네요.
실은 강의를 안 하려고 했었습니다. 이런 게 강의를 한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교육원장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것도 있고 또 이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분명히 제가 존경하는 후배가 나올 것이라는 예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수락하고 나왔습니다.
몇 명이나 오느냐고 물었더니 얼마 안 온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까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떨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를 키워주신 저희 어머니께 고마운 생각도 들고.(웃음)
제가 개인적인 술자리에선 얘기도 잘하고 합니다만
이렇게 사람을 많이 앉혀놓고 얘기하는 것에는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횡설수설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저에 대한 소개를 하셨습니다만, 저에 대해 소개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 작가협회에서 ‘금산산악회’라는 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회장입니다.(웃음)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에서도 아마 금산산악회 멤버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지은 ‘금산’의 의미를 잘 모르실 겁니다.
이건 제가 그 동안 밝히지 않았던 저 나름대로의 비밀이었는데,
오늘 밝히자면 이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금산이라고 하니까 ‘금요일에 산에 가는 산악회다.’ 또는 작가협회가 ‘금산빌딩에 있어서 금산산악회다.’ 흔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선학의 황금시대>라는 책에서 제가 ‘금산’이라는 선사의 짤막한 일화를 읽었는데, 그 스님에게는 아주 질문이 많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스님, 물은 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가요?’라든가 ‘꽃은 왜 피나요?’라든가... 쓸데없이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자가 나중에는 물어볼 게 없으니까 금산 스님에게 묻기를 ‘스님 법명은 왜 금산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너는 알 줄만 알았지 왜 모를 줄 모르느냐.’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제 인생의 화두처럼 갖고 있습니다.
안다는 것이 불교에서는 ‘알음알이’라는 거죠. 앎으로써 아프다는 거죠.
작가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작가라는 것이 우리가 이렇게 말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지식으로 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저는 작가라는 것을 그야말로 ‘직관’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물이나 인생의 볼 때의 직관.
직관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보여집니다. 그런데 직관이 없는 사람들은 그걸 못 봅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 쓰는 법을 배운다고 해서 그것이 배워지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너무 많은 질문들을 하는 사람에게 굉장히 피곤함을 느낍니다.
‘어떻게 쓰나요?’... 그거 뭐 살다 보니까 작가가 되는 거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드라마도 쓰게 되는 것이지, 그건 설명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질문보다는 가서 행하고 자기 나름대로 많은 것을 체험하고 그런 다음에 작가가 되는 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작가분들에게 ‘제발 노력하지 마라.’고 간곡하게 얘기합니다. 배우들에게도 그럽니다. 연습하지 말라고. 연습 너무 많이 한 사람들은 징그러워서 드라마 하다가 빼버릴 때도 있습니다.(웃음)
전날 밤 9시에 대본이 나오고 새벽 6시에 연습인데도
대본이 너덜너덜해서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자기 것만 보면 됐지 남의 것도 다 봅니다.(웃음) 저는 그걸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한테는 공포감을 느끼고(웃음) 또 그런 사람들은 너무 연구를 하다보니까 엉뚱하게 꼭 오버합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드라마가 끝나면 쫑파티도 안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냥 도망갑니다. 일단 제가 그동안 썼던 것을 비우고 싶습니다.
그동안은 너무 드라마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서울에 있으면 그 잔재가 계속됩니다.
이번에도 여기 작가협회 사무국장과 같이 네 사람이 히말라야에 도전하자 해서 에베레스트의 사이드에 있는 촐라패스라는 5,400고지의 산을 넘었습니다.
저는 50대고 나머지 세 사람은 40대였는데,
촐라패스를 넘고 나서 제가 굉장히 슬픔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체력이 일단 안 되니까.
마지막 고개를 50m 앞뒀을 때 저 혼자 너무 탈진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앞서가던 셀파가 돌아와서 배낭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정말 배낭을 주기 싫었습니다.
꼭 배낭을 지고서 넘고 싶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 배낭을 주면 고개를 넘지 않은 걸로 포기하는 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결국 포기하고 싶어서 배낭을 줬습니다.(웃음)
그리고 30m 정도를 넘었는데 넘고 나서, 배낭을 줬다는 게 너무 후회가 되는 겁니다.
저 자신과의 약속을 깼다는 것에
그리고 제 양심에 ‘너는 진정으로 이 고개를 넘었느냐?’ 물어봤을 때 ‘No’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서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촐라패스를 넘어서 고개를 내려가는데 이 친구가 너무 빨리 내려가는 겁니다. 사실은 빨리 내려간 게 전혀 아닌데 힘이 없는 제가 보기에 빠른 겁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화를 냈습니다.
‘너는 쉬지도 않냐, 이 나쁜 놈아.’
그랬더니 이 셀파가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까 제가 정말 미안한 겁니다.
자기 체력이 없는 건 생각 안하고 치사하게 남에게 돌린 겁니다.
치사한 내 자신이 정말 눈물 났습니다.
선글라스를 썼기에 망정이지, 내려오면서 정말 울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해서 다시 불러서
‘내가 너한테 화를 내서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길래
신경질 내면서 ‘내가 잘못했다면 잘못한 줄 알어!’(웃음)
그렇게 진정으로 그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내 양심에 비췄을 때 ‘나는 진정으로 촐라패스를 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산을 다니면서 제가 제일 크게 배우고 느낀 것은 ‘등로주의’입니다. 크게 나누면 ‘등로주의’와 ‘등정주의’가 있습니다.
등로주의는 ‘어떤 길을 가느냐.’ ‘어떤 불확실한 길을 가느냐.’ ‘남보다 얼마나 힘든 길을 가느냐.’입니다.
남이 한 번도 밟지 않았던 산을 길을 내서 가는 것이 등로주의입니다.
등정주의는 어떤 길을 가는가는 상관없습니다.
남들 가는 길 따라서 그냥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면 그 자체가 등정으로 취급되는 것이 등정주의입니다.
사실 이번에 저희가 히말라야에 간 것도 ‘끈’이라는 책을 쓴 박정헌씨가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어섭니다.
박정헌이라는 사람은 작년에 종합일간지에도 많이 났지만,
촐라체 북벽을 등정하고 내려오다가 후배가 크레바스에 빠져서
두 다리가 부러지고 자기는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그 후배를 대여섯 시간에 걸쳐서 끌어당기고,
둘이 2박 3일 동안 기어서 아무도 없는 야크하우스에 도착해
생존기를 전했던 주인공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번에 그런 박정헌씨로부터 그 때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여자에게 브래지어를 좀 사서 전달해주고 오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웃음)
그래서 동네에서 브래지어를 샀고, 어쨌든 그 여자에게 브래지어를 전해주는 여행이었습니다.(웃음)
전해줬더니 그 여자가 굉장히 좋아하더라구요.
‘한국인의 목숨을 살려줘서 굉장히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브래지어를 전달하는 장면을 기념 촬영도 하고(웃음)
그리고는 저희 갈 길을 갔습니다.
얘기가 잠깐 다른 길로 빠졌습니다.(웃음)
등로주의의 길이라는 것은 단 한명의 셀파도 없이,
산에 단 한 개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연을 보호하면서,
포터도 없이 자기의 짐을 자기가 지고,
아무도 가지 않은 고독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등로주의를 모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숨을 쉬고,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에
단 한 번의 각색도 하지 않고, 단 한 명의 보조작가도 쓰지 않겠다. 단 한 번의 비겁한 어떤 것을 하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체험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을 쓰면서
불확실한 세계로 나아가겠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감히 맹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심각합니다.
등정주의라는 것은 ‘시청률 지상주의’입니다.
남이 갔던 길 그대로 가는 겁니다.
야크에 식량이고 뭐고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베이스캠프에서 냉면, 돼지고기 수육도 해서 먹고 거기에 간고등어도 갖고 옵니다.
먹을 것 다 먹고는 셀파에게 짐 다 지우고... 양심도 없습니다.
그러고는 에베레스트 올라가고 정상 등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등로주의의 진정한 산악인에게만 주는
‘황금피켈상’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등로주의에 굉장히 유명한 토모 체슨이라는 스위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벽 중에서 가장 난공불락의 벽이라는
‘로체남벽’이 있습니다.
난공불락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예전에 제가 드라마를 썼는데
대본에 띄어쓰기가 좀 다르게 인쇄가 됐더니
어떤 여배우가 ‘응. 난, 공불락이야.’ 이렇게 읽더라구요.(박장대소) 그게 갑자기 생각나네요.(웃음)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벽이 거긴데
그 사람이 거길 5박 6일에 걸쳐 벽에 매달려 자면서 올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정상 사진이 없어요.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서
아직도 이 사람이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모든 사람들은
‘토모 체슨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는 올랐다.’고 얘기합니다.
이 사람은 남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올랐다고 하건 말건 나는 올랐다.’는 겁니다.
저도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등로주의는 그런 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등로주의라는 것은 세속에서 조금 손해 보는 길입니다. 자기 양심하고 싸우는 거죠.
저는 ‘각색하지 말아야겠다.’ 항상 생각합니다.
문학의 시녀, 그나마 문학의 시녀는 조금 괜찮습니다.
만화의 시녀, 일본 드라마의 시녀... 창피하지 않습니까?
자존심도 없습니까?
창작을 하고 싶어서 연필을 든 작가인데, 정말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그러고는 자기네들이 부끄러운 걸 모릅니다.
박정헌씨가 비디오로 찍어 온 길을 보면 시샤팡마에 최초로 길을 냈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고 불확실성의 미래를 탐험하고 모험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가는 겁니다.
같이 간 강연룡이라는 친구가 앞에서 지친 얼굴로 묻습니다.
‘형, 어디로 가요?’
대답하기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거기로 가봐!’
저는 거기서 눈물이 났습니다. 길이 없는 겁니다.
그 길을 개척해서 ‘코리안 하이웨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런 등로주의는 인생의 철저한 상업주의에서 외면당합니다.
외면당해도 좋은 겁니다. 어차피 외로워도 괴로워도 좋은 겁니다. 무슨 여기 돈 벌려고 들어왔습니까?
작가가 두 명, 세 명 무슨 공장 차렸습니까?
한 사람 재봉질하면 한 사람은 재단하고, 봉제공장입니까?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거기서 어떻게 ‘작가정신’이 나옵니까!
어떻게 자료수집을 대신 시킬 수가 있습니까.
저는 공포에 가까운 전율이 일어납니다.
내가 쓸 자료를 내가 챙겨야지 어떻게 남을 대신 시킵니까.
정말 코미디입니다.
그래놓고는 무슨 제대로 된, 살아 있는 작품이 나온다고!
그건 나와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권하겠습니다.
등로주의의 길을 걸으라고.
그리고 남들이 가는 길 똑같이 답습하면서 재벌 2세, 3세 나오고,
항상 백혈병 나오고, 맨날 출생의 비밀... 이건 좀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라도 정말 반성하고 깨야 됩니다.
솔직히 오늘 제 강연를 듣고
여러분들이 제발 좀 작가를 그만 뒀으면 좋겠습니다.
그만 두고 좀 멋있는 시청자로 남아주시는 것도(웃음)
방송을 위해서 정말 해야 할 일부분이거든요.
아니, 제가 경쟁자가 두려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웃음)
한국방송의 미래를 위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좀 그만둬주세요.
남이 쓴 만화나 각색하려고 하고,
말도 안 되는 인터넷 소설이나 각색하려면
한국방송을 위해서 분신하는 기분으로 그만 두세요.
제가 1981년도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좀 쓴 지가 오래됐습니다.
그 때는 드라마가 말도 안 되는 시대입니다.
무술의 시대, 깡패시대니까.
방송에 청와대에서 한 명, 안기부에서 한 명 나와 있습니다.
어떤 정도냐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각하하고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TV에 못나오게 하잖아요.
심지어는 다음 주에 대통령 순방하는데
TV문학관에서 상여가 나가는 장면이 있어서 되겠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PD가 불려갔습니다.
무식과 무술의 시대에서 뭘 쓸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아무 것도 모르고 방송에 들어왔지만
<포도대장>이라는 무협만화 같은 거 쓰면서 연명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구요.
‘내가 이런 거 쓰려고 여기 들어왔는가. 이런 치사한 거 쓰는 데에 내 젊음을 바치려고 드라마를 시작했던가.’
예전에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을 번역하던 어떤 분이 그랬답니다. ‘내가 그래도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는데, 내가 겨우 이걸 번역하려고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던가.’
그런 겁니다.
세상에 각색할 게 따로 있지.
일본 드라마, 일본 만화, 한국의 저질만화, 이런 걸 각색합니까!
남편 보기, 자식 보기 부끄럽죠.
그런 것을 하지 말라고 저는 얘기하려고 나왔습니다.
등로주의의 길.
지나는 길이 조금 외롭더라도 우리 같이 걸어보는 게 어떻겠느냐 권유하고 싶어서 나온 겁니다.
그 5공의 시대, 작가로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했던 암흑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걸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래하지 않는 겁니다.
그 때는 군부독재에 발목이 잡혀 있었는데, 이제는 거대한 상업주의에 발목이 딱 잡혀 버린 겁니다.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제 프로덕션 사장도 드라마 끝나고 나서 ‘사업 손해봤다.’고 합니다. 저는 사업에 손해를 끼친 사람입니다.(웃음)
이 친구들은 방송 장사꾼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장사꾼과의 타협도 해야 됩니다.
시청률? 방송의 본능이죠. 어느 정도 기본은 올려야 됩니다.
드라마를 어느 특정 계층만 상대해서 쓰는 거 아니잖아요.
시청률도 올려야 되고 작품성도 올려야 되는 겁니다.
점점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시청률도 정말 멋있게 올리되 작품성도 있는 작가가 되라.’고 선배로써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질문하신 게 많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로 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말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박수)
<진행자 : 김운경선생님께서 시작 전부터 떨고 계셨거든요. 지금도 계속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시네요. 슈퍼마켓에서 만날까봐 조금 겁나신답니다.(웃음) 지금부터는 질문을 찬찬히 풀어가겠습니다.>
작가의 개인 경험이 작품에 차지하는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요?
한 30%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그 작품이죠.
남들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갈 때 작가는 구경꾼이고 관찰자죠.
어릴 때부터 그런 관찰이 체질화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 것이 30% 정도 되고, 나머지는 거기에 살을 붙이고, 또 픽션입니다.
선생님 작품에는 시대적이거나 시골이 배경이 되거나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데 도시적인 색깔의 글을 써보실 생각은 없는지 아니면 써봤더니 안 맞으셔서 안 쓰시는 건지?
써봐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데 다만 상류층 얘기는 제가 좀 자신이 없어요.
제가 살아온 과정이 농촌이었고, 어린 시절에 인천이라는 중소도시에서 도시빈민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쪽은 자신이 있는데, 화려한 부분에 대한 쪽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쪽은 또 제가 아니더라도 다루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굳이 제가 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작가로서의 고충? 드라마작가는 대부분 여자들인데, 어린 나이에 남자도 도전해 볼만한 분야로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남자작가들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니까
남자분들이 많이 도전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나이는 조금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경험이나 통찰력이 아직은 설익었기 때문에.
물론 시같은 것은 어릴 때 써도 괜찮습니다.
랭보는 17살에 쓰고 아프리카로 떠났다잖습니까.
그러나 드라마나 소설 쪽은 어렵지 않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27이나 28 정도부터라면 가능하겠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선생님께서 남자작가로서의 고충을 느끼신 적은 없으세요?>
없습니다, 저는.
<진행자 : 그럼 ‘황금사과’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쓰시고 나서 아쉬운 점이 있으셨는지?>
그렇죠 뭐. 뜻대로 잘 안됐어요.
제가 하도 오래간만에 써서 그런지 어린 시절은 좀 잘 풀었는데,
솔직하게 어른 되고나서는 잘 안 써지더라구요.
좀 많이 헤맸고 아쉽습니다.
그런데 뭐... 지나간 거니까 다음에 잘 쓰면 되죠.(웃음)
‘황금사과’의 광팬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청자들보다는 중년층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으신데, 일부러 시청자의 연령을 조금 높게 잡으시는 편인지 아니면 시대극의 한계라 생각하시는지요?
일부러 시청자층을 맞추고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아마 다른 작가들도 거의 그럴 겁니다.
제가 그리고자 했던 게 산같이 우뚝한 아버지와 누나, 가족애입니다.
요즘 시대에서 한번 그런 것들을 그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한 것이지 시청대를 잡거나 한 것을 아닙니다.
‘황금사과’가 후반부에서 실패한 감이 있는데 원인이 뭐라 생각하시는지요?
실패했다고는 생각 안하는데.(웃음)
거 기분 나쁘네, 누가 물어본 건지.(박장대소)
손 한번 들어보세요, 누가 그랬는지.(웃음)
<진행자 : 이 질문을 쓰신 분이 뒤에 괄호를 치고 ‘선생님의 팬입니다.’ 이렇게 써놓았네요.>
그런 팬 필요 없습니다.(웃음)
대사가 너무 서민적이고 맛깔스러운데 그 서민적인 대사를 위해 따로 공부나 조사를 많이 하시나요?
저는 정말 공부 안합니다. 그냥 나오는 대로 쓰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신 것들, 또 돌아가신 할머니라든가
얘기했던 말투들이 뇌리 속에 있다가 나옵니다.
‘서울의 달’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서울의 달’을 쓰게 되신 계기, 모티브가 뭔가요?
피카레스크라는 것. 악당 문학, 불한당 문학이죠.
예를 들어, 프랑스 문학 중에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든가
솔벨로우의 <오기 마치의 모험>,
데이비드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데에
삐딱한 주인공이 나오고 그런 주인공들의 악행에 이유가 있죠.
거기에 모티브를 가졌습니다.
‘아, 나도 저런 것 좀 드라마로 써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네팔을 여행하다가 아주 철지난 영자신문을 보게 됐어요. 신문도 못 보는 주제에 그림이라도 보는 거죠.
텔레비전을 광고하는 부분에 ‘미드나잇 카우보이’가 나왔더라구요. 그 스토리는 제가 대충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에 계속 구상을 했죠.
‘나도 저런 것을 한 번 써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기획안을 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드라마의 캐릭터는 항상 개성 있고 매력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다양한 캐릭터를 쓰실 때 어디서 모티브를 따오시나요? 인물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한 선생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지식에 오염된 인간들을 좀 싫어합니다. 지식에 먹물 든 사람들은 싫어하고 조금 무식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또한 그런 무식한 사람들, 진실된 사람들한테 많이 매료당하구요. 그런 사람들이 그리기도 만만하고 해서 주로 그런 쪽 캐릭터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모티브나 첫발상은 어디서, 어떻게 찾으십니까?
여러 가지죠.
그야말로 ‘선데이 서울’ 같은 데서 찾기도 하고,
어떤 시를 읽었을 때 발상이 오기도 하고,
그리고 라디오 ‘여성시대’ 같은 거 많이 듣습니다.
잡다하게 여기저기서 드라마틱한 소재가 있다하면
머릿속에 메모했다가 적어놓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소재를 선정해서 대본작업을 할 때, 어느 정도의 공부를 해야 하나요? 즉 내가 모르는 부분들, 현실적으로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불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찾아보고, 취재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부하지 말라고 정말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웃음)
이건 ‘직관’의 세계이지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진행자 : 선생님께서는 ‘체험’을 굉장히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공부는 안하더라도 직접 체험은 필요합니까?>
직관이 없는데 체험을 한들 무슨 소용이겠어요.
가장 중요한 건 직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체험이죠.
통속적인 소재(조폭, 술집여자 등)들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또는 그런 소재는 피하는 게 좋은지?
그건 작가가 다루기 나름인데요,
사회통념적인 기준에서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조폭을 잔혹하게 그린다거나
여자가 너무 음란하게 나온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종래에 보여주지 않았던 조폭, 그렇다고 해서 박사학위 가진 조폭은 좀 그렇고(웃음),
하여튼 좀 다른 사람들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그렇게 쓸 자신이 없지만
여러분들이 그렇게 좀 보여줬으면 합니다.
역사적인 작품을 쓸 때 연산군이나 광해군 등을 위대한 또는 훌륭한 왕으로 묘사해도 될까요?
그건 말이 안 되죠.
연산군은 연산군이지, 연산군을 세종같이 그린다면 그건 역사왜곡이죠.
취재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혹시 과잉취재로 인한 역효과도 있나요?
역효과는 없어요.
그런데 병원 같은 곳을 취재할 때는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밝혀도 될 겁니다.
그러나 노숙자라든지 다른 부분을 취재할 때에는 감춰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로부터 무언가가 나옵니다.
노름판에 가서 ‘내가 작가인데 취재 좀 하겠다.’고 하면
상대가 긴장을 하고 점잖은 말만 나오잖아요.
원하는 것을 유도하려면 자기가 작가라는 것을 감추는 게 취재하는 데 더욱 유리할 겁니다.
작가가 되기 전 가장 힘들었던 고비나 ‘내가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던 때는 언제이셨는지, 그리고 극복하고 이겨냈던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지금은 제 재능에 대한 회의는 없습니다. 자타가 공인합니다.(웃음) 그런데, 그 전에 ‘전설의 고향’ 몇 편 쓰고 할 때는 재능에 대한 회의 때문에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또 PD들이 쓰라고 하지 않으니까 몇 개월씩 놀게 되고... 힘들었습니다.
당시에 어머니께서 제가 재능이 없다고 많이 생각하셨어요.
차라리 매형이 다니는 전자대리점에 들어가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저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그래서 목포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술을 한 잔 하면서
저의 진로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 때 제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해줬습니다.
‘넌 방송을 떠나서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너는 평생 방송작가의 향수에 사무칠 것이다. 향수에 사무쳐도 좋다고 생각되면 방송작가를 포기하고, 방송작가를 선택했을 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을 때는 하는 거고. 두 개 중에 니가 알아서 선택해라.’
그래서 작가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모두 재능에 대한 회의에 시달릴 겁니다.
그건 제가 뭐라고 얘기를 못하겠어요.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만 ‘감’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하는 드라마 중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드라마를 봤을 때, ‘나도 저 정도는 쓰겠어. 김운경 정도는 쓸 수 있겠어. 김수현 선생님, 박정란 선생님 정도는 쓰겠어.’하면 시작하시면 되고(웃음),
‘난 저렇게는 못 쓰겠어.’하면 포기하시면 됩니다.(웃음)
작가생활 중 ‘이럴 때 작가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지? 무엇이 선생님을 힘들게 했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그리고 슬럼프는 얼마나 자주 찾아오나요?
거의 매번 찾아옵니다.
무엇이 가장 슬프게 만드냐면요,
멍청한 PD가 저를 제일 슬프게 만듭니다.(웃음)
저 자신은 저를 슬프게 하지 않습니다.
‘PD와 나는 정말 다른 존재구나.’ 이런 거 느낄 때
삶의 비극, 생존의 비극을 많이 느낍니다.
<진행자 : 작가와 연출가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럼 지금까지 호흡이 잘 맞았던 감독은 어떤 작품의 어떤 분이셨는지?>
단 한 번도 없습니다.(웃음)
단막극까지 포함하면 50명 정도의 PD와 일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실 PD의 입장에서는 일본만화를 베끼든
인터넷 소설을 각색하든 자기는 그냥 영상을 잡아내면 되는 거니까 상관이 없죠.
그러나 작가는 안 그렇죠.
<진행자 : 작가와 연출가의 관계가 왜 안 좋은 걸까요?>
그건 머리가 좋은 사람과 머리가 나쁜 사람이 어울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웃음)
직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그런데 그 쪽에서는 제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대본을 쓰실 때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나요? 일단 덮어두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쓰시는지 아니면 계속 대본을 보면서 고민하시는지요?
덮어 놓습니다, 일단.
그런데 시간에 쫓길 때는 저도 사람이니까.
아, 여기 이사장님께서 계시지만, 이사장님은 정말 힘들게 쓰세요. 저보다 유일하게 더 힘들게 쓰시는 분 같아요.
저도 생각의 낭떠러지에 떨어집니다. 정말 길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그냥 쓰면 마음에 안 드는 걸 어떻게 합니까.
시간이 남을 때는 덮어 놓고,
시간이 없을 때는 그냥 붙들고 늘어지면서
‘한 회 재미없을 각오하자. 다음에 재미있으면 되지.’ 이러고 넘어갑니다.
<진행자 : 이 질문은 질문지에 없고 제가 개인적으로 여쭙는 겁니다. 선생님은 컴퓨터를 굉장히 늦게 쓰신 작가로 유명하신데요,
‘황금사과’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셨다구요.
쓰시면서 좋았던 점이라든지 컴퓨터에 대한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컴퓨터를 다루는 것은 저한테는 개인적인 혁명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생각은 있었는데 이래저래 미루다가,
쓰고 메일 보내고 이런 정도는 마스터한 거죠. 굉장히 편합니다.
그런데 편하면서도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있어요.
만년필을 무기로 해서 원고지를 밑으로 쓰던 낭만의 시대가
이젠 추억이죠.
만년필도 컴퓨터보다 더 비싼 굉장히 좋은 걸 썼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쓸 데가 없어졌죠.
한 번 자판의 세계에 들어가니까 못 돌아오겠더라구요.
편하고 좋습니다.
<진행자 : 그럼 쓰시다가 한 씬에서 막히면 다음 씬부터 쓰시는지요?>
아니요. 막히면 그 씬을 써야 다음 씬으로 나가지, 절대 그 씬을 놔두고 건너뛰지 못합니다. 연결되는 건데 그걸 어떻게 건너뜁니까.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소재 채택 후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시나요?
작품에 따라서 달라지는데요.
특집극이나 ‘사과 하나 별 둘’ 이런 것들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보통 60분물은 글쎄요, 한 달이면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달 전에 쓴다는 건 완성도면에서 좀 곤란할 것 같고.
최소한 한 달 동안 꼬박 써야 완성도 있는 걸 쓸 수 있습니다.
소재만 채택이 되면 금방 쓰죠.
물론 소재가 채택되면 발효기간을 두죠.
‘머리로 자꾸 굴려라.’는 말이 있잖아요.
일주일이든 계속 머릿속에서 굴리고 발효기간을 거치면서 메모하고 그렇게 써나갑니다.
자신이 창조해 낸 극중 인물 중 작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는 어떤 드라마의 누구였나요?
다 사랑하죠. 제가 만든 인물이니까 다 사랑스럽죠.
악인도 그렇고, 한 캐릭터도 사랑스럽지 않은 건 없습니다.
선생님도 피해가고 싶은, 어려운 캐릭터가 있나요?
피해가고 싶은 캐릭터라면 안 그리죠. 자신 있는 캐릭터를 그리죠.
캐릭터가 로봇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인간 같은 캐릭터를 그려내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좀 난감한데요... 그건 재능이 없다는 얘기죠.(웃음)
드라마 말고 다른 거 하시는 게 낫죠. 드라마는 캐릭터인데.
인생도 그렇잖아요, 캐릭터가 끌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수필을 쓰시거나
그것도 안 되면 그냥 일기를 쓰시거나 하세요.(웃음)
캐릭터 설정을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하시는지요?
일단 대충 그려놔요.
악인이라면 이 사람의 악 속에 어떤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든지
이런 걸 그려놨다가,
캐스팅하는 것을 보고 배우를 보면서 캐릭터를 살려 나가는 쪽입니다.
보고 쓰는 편이지, 제가 쓰는 캐릭터대로 따라오라고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캐릭터를 잡을 때 기존 인물을 바탕으로 덧붙이는 건지, 실존 인물이 아닌 캐릭터를 완전히 새로 잡아 키우시는 건지?
두 개 다죠.
제 주변에서 재미있는 인물을 보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어떤 얘기를 듣는다거나 그런 쪽입니다.
드라마 구상 또는 영감은 주로 어디서 출발하시는지. 예를 들면 주제를 먼저 정하나요, 사건을 떠올리고 인물을 만드나요, 캐릭터를 먼저 정하고 사건을 만드시나요?
이야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 다음에 캐릭터를 집어넣고 구상합니다.
드라마 극본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첫씬부터 차근차근 진행이 되어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속극이나 미니시리즈에는 그 진행과정이 힘이 들 수도 있고 적지 않은 타격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진행을 하시는지?
‘타격’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제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미니시리즈든 뭐든 작품을 할 때 PD를 설득하는 일부터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프로덕션 사장을 설득하는 일도 있죠.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힘들어요.
작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PD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과정이 힘듭니다.
PD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교육원이나 아카데미와 같은 기관을 통하지 않고 작가 공부를 하는 것은 어떤가요? 혼자 공부하는 것은 많이 어렵나요?
혼자 공부하라고는 못하겠구요, 여기 모두 우리 협회 수강생들이니까.(웃음)
여기를 다니면서 어느 정도 메커니즘 등을 배우신 다음부터는
혼자 해야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모임을 즐기면 해탈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너무 모임에 심취하지는 마시고, 혼자 하셔야죠.
저는 사실 이런 작가가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파출부를 해서 가정에 보탬도 되고, 자기 영역도 넓힐 수 있는 여자 작가분들.
도배를 좀 하러 다닌다거나, 노가다라도. 그렇다고 커피 배달은 아니고.(웃음)
할 수 있는 경험은 젊었을 때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살아 있는 직장 생활을 좀 그렸으면 좋겠어요.
작가 중에는 직장 생활을 안 해본 사람들이 많으니까
맨날 기획실 같은 것만 나오고 그러잖아요.
지금까지 쓰신 드라마나 앞으로 쓰실 드라마에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 인간관이 있으신가요?
다 있죠. 저도 모르게 맹탕으로 쓰지는 않죠.
‘아름다운 인간. 인생은 성공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
업이라는 것. 남의 아픈 마음에 절대 못 박으면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저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선생님의 작가관에 영향을 미친 책이나 드라마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요즘 관심 있게 보신 책이나 영화는 무엇인가요?
영화는 요즘 별로 본 게 없습니다.
저도 요즘 들어 책을 잘 안 읽고 놀기만 했는데,
작가는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서부터 해서 많이 읽어야겠죠.
잡다한 것까지 많이 읽어서 잡학에 능해야 많은 인물을 다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많이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드라마가 사회를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사회 변화를 따라가며 그 현상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이것은 문학에 있어서 ‘순수’냐 ‘참여’냐 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인데, 될 수 있으면 사회를 선도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다운 길인가’를 보여주는 것일수록 좋죠.
어떤 면에서는 우리 드라마가
국민 정서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권신장이라던가 하는 발전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왕 드라마 쓰는 거,
일회용 컵같은 것 좀 덜 쓰게 하고, 세재를 줄인다든가 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효과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작은 부분에서부터 사회성을 갖는 게 옳은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행자 : 개인적인 질문 또 하나 드릴까 하는데요. 선생님 드라마에는 여주인공들이 싸움을 잘하거든요. 그런 여성을 좋아하세요?>
(웃음) 스칼렛 오하라와 테스의 성격 구도에서
저는 스칼렛 오하라를 선택하는 편입니다.
운명을 개척하는 인물, 어떤 폭력에도 과감하게 대응하는 그런 모습을 그림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어요.
대사를 잘 쓸 수 있는 훈련법에는 뭐가 있나요? 아버지의 말도, 딸의 말도, 어머니의 말도 모두 한 사람의 말이라는 평가를 자주 듣습니다. 개선 방법이나 특별한 대사 연습법 좀 알려주세요.
(웃음) 대사 잘 쓸 수 있는 훈련법 없어요.
부모님, 할머니, 이웃, 고향사람 잘 만나야 해요.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대사 그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아버지, 엄마, 딸이 다 비슷해?
이건 그만 둬야지.(웃음)
이렇게 해서 무슨 드라마를 써요. 이건 노력해도 안 돼요.
그만 두는 게 나아요.
드라마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결말을 구체적으로 정해 두시나요? 만일 부득이하게 결말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나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결말을 정하지 않고 씁니다.
연속극을 쓸 때는 열어놓고 쓰죠.
그런데 ‘서울의 달’ 같은 경우는 끝을 설정해놓고 썼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티븐 포스터라는 작곡가가 있습니다.
어떤 음악 잡지에서 읽었는데,
이 사람이 30대에 알코올중독으로 죽었어요.
뉴욕의 쓰레기통 옆에서 죽었대요.
발견되고 나서 이 사람의 호주머니를 뒤져보니까 2실링인가가 나왔고, 유명한 스티븐 포스터라는 것은 몰랐대요.
이 얘기를 읽고
‘내가 드라마를 쓰면 서울의 쓰레기통 옆에서 죽는, 호주머니 속의 토큰 몇 개와 사랑하는 여자에게 줄 편지를 그려야겠다.’
이런 비극적인 최후를 설정해 놓고 썼어요.
중간에 의도했던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이 주목을 받아 주인공이 묻혀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럴 경우 그 주변 인물을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의도했던 대로 밀고 나가야 할지 궁금합니다.
이것도 저의 한 약점인데요,
저는 쓰다가 주인공을 잘 잊어버려요.
저는 그냥 조연이고 뭐고 관계없이 재미있는 쪽으로 갑니다.
사실 주인공 없으면 어때요? 다 주인공이면 어때요.
여러분들도 주인공 없는 드라마를 한 번 써보세요.
<진행자 : 그럼 연출가나 주인공과의 마찰은 없으셨어요?>
네, 그런 것 없었어요. 이젠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인기 배우들을 캐스팅하려면...
주인공을 위주로 쓰지 않으면 안하겠다고 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기발한 아이디어와 대본을 잘 절충한다는 건 자질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술적인 면을 배우면서 간혹 너무 허황된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방송되는 걸 보면 작가의 기준에 대한 혼돈이 오기도 합니다. 선생님만의 대본을 쓰는 철칙이 있으시다면?
저도 허황된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보통 다섯 가지의 생각이 떠오른다면 네 가지는 허황된 이야기라고 봐야 됩니다.
그래서 허황된 얘기에 집착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보면 ‘아 이건 허황된 얘기구나.’하는 것을 압니다. 그걸 알아야 작가하는 겁니다.
그게 허황된 줄도 모르고 그냥 막 나가면,
그건 작가적인 능력이 없다고 봐야죠.
허황된 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작가 감각이죠. 그래서 저도 허황된 생각은 많이 합니다만
그걸 많이 버려야 하는 겁니다.
쭉정이를 버리고 알곡을 거둬야죠.
우리 지망생에게 있어 지금의 제일 소원은 첫 작품이 방송에서 보여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점, 프로의 입장에서 ‘이런 점은 작가지망생들이 가장 실수를 많이 하고 있다’ 혹은 ‘실제 방송될 작품이라면 이래야 한다’ 하는 점을 알려주세요.
저는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를 최초로 작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럴 듯한 작품을 쓰고 싶어서 헌책방도 굉장히 많이 뒤져보고,
전설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선배작가들이 너무하더라구요.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쓰셨어요.
그래서 완전히 하나 그럴 듯하게 지어냈습니다, ‘쌍불암’이라고,
거짓말 전설의 고향.
그렇게 지어 놓고는 겁나니까 이북 황해도 어디에서 내려오는 얘기라고 거짓말을 했어요.(웃음)
그랬더니 믿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제 것이 채택되고, 방송된다고 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구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거울을 봤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서.(웃음)
거울 보면서 ‘니가 어떻게 전설의 고향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단 말이냐. 너 왜 이렇게 멋있냐.’ 미친놈처럼 그랬습니다.
많이 설렜고, 사돈의 팔촌까지 다 연락했죠.
그런데 막상 방송이 나가는데, 제가 쓴 게 아닌 것처럼 나가는 거예요. 정말 형편없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저는 PD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품을 훼손시키는 존재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웃음)
무슨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갔나?(웃음)
직장을 그만둘까 말까 항상 고민 중입니다. 물론 올인하고 싶어서죠. 될성부른 나무는 그런 거 상관없다는 대답이라도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직장, 절대 그만 두지 마세요. 계속 다니세요.(웃음)
정말 충고합니다. 간곡히 권해드립니다.
올인하지 마시고 양다리 걸치고 있다가 주변으로부터 상당히 인정받게 되면 그 때 하세요.
올인했다가 굉장히 후회하는 후배들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뭐 작가가 직장보다 좋은 줄 알아요?(웃음)
시청자들에게 한 번의 눈물을 흘리게 하려면 작가 스스로가 대본을 쓰면서 100번은 울 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작 제 대본을 쓰면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봐도 눈물이 나지 않아요.(웃음) 그것은 작가의 감정 문제인가요, 대사와 지문을 표현하는 방법의 문제인가요? 선생님이 처음 대본을 쓰실 때의 경험담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저는 사실 글을 쓸 때 좀 오두방정을 떨면서 씁니다.
저는 연기를 막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제가 막 중얼중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까
어머니께서 제가 미친 줄 아셨대요. 몰입되면 그래요.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도록 슬프게 썼는데
그 다음날 보니까 하나도 안 슬프더라구요.(웃음)
그런 경우 많아요. 제 감정에 사기 당하는 경우 많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정확한 감각을 가진 작가라면,
내가 눈물 날 때 시청자들이 같이 웁니다.
제가 운 장면에서는 확실히 웁니다.
제대로 연출이 됐다는 가정 하에서!(웃음)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드라마화할 때 작가의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나요? 결론을 지을 때 명심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에는 공평해야죠.
좌냐 우냐 어느 편에도 서지 말아야 하고,
단지 작가는 ‘진실과 작가적 양심’편에 서야 되겠죠.
그런데 능력 없는 작가가 진실의 편에 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진실을 호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적 능력은 여러 가지 함수 관계고 있고 하니까,
너무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은 사실 작가로서는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진행자 : 미리 받은 질문 중 앞으로 두 개를 더 다루고 나서 여러분들의 질문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는 후배, 라이벌이 나타났으면 좋겠는지... 후배들에게 개척해야 할 장르나 내용을 추천바랍니다.
라이벌보다도 제가 존경할 수 있는 후배가 분명히 나올 겁니다.
라이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럴 자격도 없는 사람이고,
제가 지는 달이라면 여러분들은 떠오르는 해니까 그 자리를 언제든지 물려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라이벌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남이 어떻게 쓰는가’에는 관심을 별로 두지 마세요.
자기 내면의 자신이 가장 큰 적입니다.
그리고 개척해야 할 부분은 많죠. 전부 다 개척해야죠.
우리의 진지한 기상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역사의식이 있는 드라마를 여러분들이 개척하셔야 하고,
이 시대의 진정한 민중 사극,
어느 외국 시추에이션에도 뒤지지 않는 그야말로 리얼한 의학드라마, 수사드라마 같은 부분들은 정말 개척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런 분들에게 항상 박수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무조건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각도는 다 다를 수 있겠죠. 영화도 마찬가지죠.
저는 그래서 영화 감독도 ‘데이비드 린’이라던가
‘리차드 어텐보로’라던가,
휴머니즘이 있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저는 공포영화 보기 싫어요.
우주에서 괴물 나타나거나 바다에서 상어 나타나면 물에도 들어가기 싫잖아요.
사람을 그렇게 만들 필요가 뭐 있어요. 너무 잔인한 거 싫습니다.
그건 저의 개인적인 취향이죠.
어쨌든 휴머니즘에 의한 감동이 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고,
보고 나서 잠 못 이루고 싶고, 그런 순간들이 자주 왔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 이렇게 많은 질문들 중에도 정작 내가 묻고 싶은 게 없었다 해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 분은 손 들어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앞서 이사장님께서 저희에게 ‘오늘 운이 좋은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지붕 세가족’을 하시면서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씀하셨는데, 실력이 느신 건 아닌가요?
아, 그건 제가 잠깐 얘기를 해야겠네요.
제가 ‘한지붕 세가족’을 1년 6개월 썼습니다.
그 전에는 윤대성 선생님께서 1년 동안 참 잘 쓰셨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학교 교수 일도 있고 공백기간이 생겨서
제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 선생님의 대본을 보니까 굉장히 잘 쓰셨더라구요.
저는 그 전까지 유머가 있는 드라마는 한 번도 안 써봤습니다.
그런데 ‘한지붕 세가족’을 쓰면서
사람들이 저에게 굉장히 유머가 있다고 인정해 주었고 용기를 가졌어요.
그 전에는 항상 심각한 글만 썼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릴렉스해지고 유머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작가라는 직업은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출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할 때는 이렇게 했다. 할 때는 정말 이렇게 한다. 쓸 때는 이 정도로 쓴다.’하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왜 여러분들에게
‘직관을 가져라. 열심히 하지 마라’하는 얘기를 드리냐면,
여러분들은 글 쓰는 걸 굉장히 쉽게 생각하시더라구요.
제가 창작반도 한 번 맡아 봤는데 글 쓰는 게 너무 쉬운 줄 아시더라구요. 그 한 학기 맡으면서 굉장히 놀랐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