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부함과 패러디가 가져오는 해박함 속의 통쾌함..
말장난이라는 것은 본래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살짝 뒤틀어
알맞은 상황에 재치있게 뱉어냄으로써 그 맛을 느끼게 한다.
패러디라는 것은 이 말장난이라는 것과 그 성질이 같다.
이미 알고 있던 것, 하지만 새로운 제시를 통해 다양한 사고의
접근을 유추해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 말이다.
물론 동일한 감독의 작품은 아니었으나 스캔들을 보았을때
우리가 즐거워했던 부분도 이러했다. (작가는 동일인)
과거의 유물 정도로만 생각해왔던 작업의 정석(?)들을
시대만 살짝 바꿔놓자 실소를 쏟아내는 아주 훌륭한 영화적
장치가 되었다는 걸 우리는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익숙하지만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진정 패러디의 일미일 것이다.
처음에는 스캔들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이라는 기분으로
만난 이 영화는 아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사랑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 땔래야 땔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한 고뇌는 계속되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시대, 사대부가 가지는 출신에 대한 명예와 속박감
그에 따른 위선. 반면 천출이기에 가진 것은 없어도 쓰잘떼기 없는
격식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솔직할 수 있는 이 모순된
사회의 두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면서 우리에게는 지루하다 못해
유치한 이야기라도 충분히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실 음란하다는 것의 뉘앙스 역시 그렇지 않던가??)
솔직하다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세상.
그 억눌린 세상에서 감추어도 감추어도 누룰수 없이 터져 나오는
사랑에 대한 갈망. 덕분에 무디다 못해 답답한 그들의 애정표현은
그것마저도 충분하고 느껴질 정도로 아주 꽉차게 담겨있다.
이것은 절제에 대한 우리민족의 애틋한 심리를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갈증은 해를 입게 하듯이 결핍이 갈망이 되는
단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아래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고 있다.
초반부 영화는 두 가지 욕구에 대해(창작과 애정)어느 정도
동일선상에서 저울질 하며 그 긴장감을 유지하다 후반부에와서
균형을 유지하던 갈등을 폭발시킨다. 물론 요즘 영화에서 볼만한
그런 과격한 폭발은 아니지만 영화적인 장치들을 감안해본다면
집채만한 포유동물이 새끼 손가락만한 금발미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 만큼이나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완전히 끝까지 달려 평정을 되찾으려한 스캔들의 결말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어느 정도의 절충점을 찾아보려 한 것 같다.
덕분에 영화적인 재미는 감수하면서까지 포기한 절정의 갈등은
예상외의 인물이 대신 짊어지면서 관객들은 다시 마지막에서
소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나치게 설명과 이해에 급급하기 보다는 기분좋게
볼 수 있는 그런 부담스럽지 않은 영화이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음란서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록 조선의 시대를
빌어왔으나 지금까지도 변하지 못하는 연애방정식에 대한 형식적인
모냥새를 비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품은 감정이 사랑하기에 그런 것인지, 그저 단순한
음란한 생각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에 비해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지나치도록 감정적으로만 대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06.05.16 -고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