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니강(Swanee.River)/{작사가:미상 작곡:포스터}
머나먼 저곳 스와니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정처도 없이 헤매이는 이내신세 언제나 나의 옛 고향을 찾아나 가볼까 이세상에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 아~~~그리워라 나 살던 곳 멀고먼 옛 고향 요즘은 다음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1970년대~1980년대의 박정희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시절 까까머리에 시커먼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을 보낸 40대~60대 까지의 사람들은 합창시간이나 자신이 다니던 교정에서 또는 그 당시 미션스쿨에 다니던 학생이나 그렇치 못했던 학생들도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자발적인 교회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을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추억의 한토막을 정리하여 2001년~2003년까지 CBS-FM 매주 일요일 16:00~18:00 (2시간방송) 이양일의 골든뮤직을 열렬하게 애청을 하면서 때로는 CBS-FM 이양일의 골든뮤직 게시판에 수많은 글을 올리면서 당시 방송을 청취하였거나 방송 게시판에서 매주 만났던 동년배 및 선.후배님들과의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스와니강이란 곡이 어느순간 문뜩 떠올라 그에 대한 추억어린 장면을 간추려 사연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진행자이신 이양일님에게 스와니강이 미국의 어느주에 속해 있는지에 대해 묻기도 하며 스와니강을 신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인터넷을 능숙하게 할줄 알면서도 검색창에 대해 그다지 높은 관심을 두지 않던 때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얘기일수 있을 것입니다.
스와니강하면 1970년대 서울의 작은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혹시나 모르겠습니다. 이글을 읽을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이시라면 개인적으로 게재한 CBS-FM 이양일의 골든뮤직(1편~33편)을 추억하며 내용물중 일부분 재간추리고 보완된 글을 완성하여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눈팅족들은 에둘러 휘~익 한바퀴 순회차원에서 방문하는 눈팅족들이 99%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초에서 중반에 서울의 작은 교회에는 목사님을 비롯한 그분의 자녀들 4남2녀가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말이면 교회를 다녔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부모님의 영향이 컷 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교계에선 모태신앙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나는 청년이 되면서도 교회생활에 충실하게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참 열심히 하였습니다. 당시 목사님의 큰 아드님이셨던 조아무개라는 형님이 계셨습니다. 그 형님은 여러모로 재주가 참 많으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 형님은 연극.악극.음악.영어 등에 능통하며 또한 성격도 좋아 평소 따르는 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형님은 어느날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복무에 임하게 되면서 우리들과 잠깐의 이별을 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형님은 외국어대학을 나와 영어에 능통하여 이른바 카츄샤로 군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카츄샤 복무 특성상 미국본토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부대에 미국에서 유명인사가 파견되어 부대를 방문하면서 한국인들과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통역하던 사람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 대타로 형님이 나서게 되었습니다. 평소 갉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형님은 그날로 해당부대장의 전속 통역관으로 발탁되어 군 생활을 순조롭게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마감한 형님은 군 생활도중 만난 한나 박사란 분의 추천으로 미국유학을 권유받으면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님은 군에 입대하기 전이나 군에서 제대한 후나 교회에 다니던 나이어린 후배들을 모아놓고 아코디언연주로 미국민요 및 한국동요와 가곡 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형님은 교회의 합창단을 조직하여 미8군부대를 방문하는 행사도 여러 번 주선하여 우리들은 미8군을 방문하여 합창연주도 하면서 미8군들과 자주 어울리는 시간도 갖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이나 연말 연초가 되면 우리는 미8군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영내에 들어가 성탄 캐롤송을 합창하기도 하며 즐거운시절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미8군에서 의장대들이 직접 교회를 방문하여 의장대시범을 보여주기도 하여 당시 동네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와 좋은 시간을 보내던 형님은 미국유학 수속이 마무리되면서 우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해에 형님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재미있고 유쾌한 2인 연극을 선보여 슬픔으로 얼룩질 수있는 시간을 유쾌한 시간으로 전환시키며 공연을 마무리하였고 형님은 우리들과 이별을 고하면서 몇년만 기다리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여러분들과 함께 생활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다짐하던 형님과 이를 기다리던 동생들은 서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돌아오겠다던 형님은 그곳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하여 미국사회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때에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하여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형님으로 모시던 우리들과의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당신의 아들과 오빠와 형을 기다리던 형님의 가족들은 이젠 한국 땅에서 남아있지 않고 모두들 유명을 달리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들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형님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서울의 서교동에 있던 작은 교회의 동생들은 모두들 40대 중반을 넘은 중년의 사내와 여성들이 되었습니다. 이젠 그들 역시 뿔뿔이 훝어져서 서로간의 간략한 안부조차도 듣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얼마 전까지도 CBS-FM 이양일의 골든뮤직의 게시판에서 만났던 동년배 및 선.후배님 들과도 헤어 진지 불과 2년여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젠 까마득한 옛날로서 모두의 마음속에 담겨진 추억으로만 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1970년대에 헤어진 조아무개형님과 그해에 교회에 다녔던 동료들과 또한 2001년~2003년까지 CBS-FM 이양일의 골든뮤직 시간을 함께하였던 청취자분들이 아련하게 생각이나 포스터의 명곡 스와니강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스와니강:요약}
미국 플로리다반도와 닿아 있는 지역을 흐르는 강. 길이 약 390㎞. {스와니강:설명} 미국 플로리다반도와 닿아 있는 지역을 흐르는 강. 길이 약 390㎞. 조지아주 남동부의 오커퍼노키습지에서 발원하여, 크게 사행(蛇行)하면서 남서쪽으로 흘러 플로리다반도 북부를 지나 멕시코만으로 흘러든다. 이 강의 연안에는 큰 도시도 없으며 하천교통로로서도 중요하지는 않으나, S.C. 포스터가 작곡한 《스와니강(Old Folks at Home)》로 유명해졌으며, 이 곡은 플로리다주의 주가(州歌)가 되었다.{스와니강:탄생배경}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와니강(Swanee River)의 원곡은 고형의 옛 친구들 (Old Folks At Home)이다.
이노래는 미국 남부출신의 한 흑인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나 전 미국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생활을 하다. 해는 저물어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 어느 도시의 강가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곳은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스와니 강 이었다. 어느덧 어두운 밤이 깊어져서 몸속으로 파고드는 밤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스와니강가의 걸터앉은 방랑객인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도는 자신의 신세와 함께 언제든지 달려가면 반갑게 맞이해줄 고향사람들이 넉넉한 인심이 너무나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 미국 펜실베니아 로렌스빌 출생 1
826~1864) 스와니강은 포스터가 25세인 1851년에 작곡한것이다.그후 이노래가 담긴 악보는 13만장이나 판매되었다. 스와니강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영국에서 유행되기 시작한 스와니강은 그후 전 세계로 널리 보급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크리미아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기 시작했고 다음으론 남.북전쟁때에는 남군.북군 가릴것 없이 모두가 떠나온 고향.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면서 때로는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잠깐의 휴식시간에 한마음 한뜻으로 합창하던 노래였다.
그렇게 시작된 스와니강의 탄생배경은 다음과 같다. 포스터형제(포스터/모리슨)중 포스터가 곡을 먼저 만들어놓고 가사를 붙이려고 하던 때의 일화이다. 그들은 처음에 페디강을 생각하였다. 다음으론 형 모리슨이 야주강을 추천했으나 동생 포스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두 형제는 좀더 좋은 지명을 찾기 위하여 전미국주가 담겨있는 지도를 책상에 펼쳐놓고서 서정성이 담기면서 발음하기가 부드러운 2음절에 해당될만한 강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중 형 모리슨이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스와니강을 발견하고 동생 포스터에게 의견을 물었다. 스와니강 이름을 들은 포스터는 단숨에 옳다 이것이다 라고 하며 감격하며 두 형제는 포옹을 하며 좋아하였다.
그러나 스와니강을 지명하고 작곡한 포스터형제는 정작 플로리다주의 스와니강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스와니강은 플로리다주의 주가(州歌)가 되었다고 한다. 플로리다 주에서 멕시코만으로 흐르는 작은강이었던 스와니강은 노래와 함께 전세계에 널리 전달되어 현재는 세계 여러나라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유명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사항: {남북전쟁} 1861∼1865년간에 미국의 남·북 양 지역 사이에 노예제도의 존폐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내전. 노예문제가 발단이긴 했으나, 이 전쟁은 남부 여러 주의 탈퇴를 막아 연방제를 유지함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크리미아전쟁} 모든 검색창에서 “크리미아전쟁”을 치시면 방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백의천사로 불리는 “나이팅게일”이 크리미아 전쟁에서 등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