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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미소만이어른의도리는아니다

김철희 |2006.05.19 00:16
조회 106 |추천 0

침묵과 미소만이 어른의 도리는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는 남의 일에 무시하는 듯한 침묵내지 용인하는 듯한 미소풍조가 만연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요즘 세대에 대한 나이든 세대인 어른들의 너그러운 이해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할 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종의 어른으로서의 책임방기라고 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이런 어른들의 일탈행동들은 어쩌면 그들이 겪어온 사회현상과 맞물려 성장해왔다고 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오늘 왜 이런 얘기를 시작하는가 하면 근간에 대중교통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면서 겪고 체험한 사항들이 우리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어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라나는 유아부터 젊은 층에 이르기까지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한 가정교육, 즉 전인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비젼과 국민성을 보려면 대중교통과 공공의 장소를 보란 말이 있습니다.

 

<1>사례

 

어제는 오후시간에 일을 보기 위해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시간이라 대부분의 버스안은 자리가 듬성듬성 남아 있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참이나 이용하려는 버스를 기다리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다양하게 이런 저런 모습을 대비시켜가며 분석하는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용하려는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에 올라섰을 때, 갑자기 버스에 오르는 순간,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소리인 “악~~~~악”하며 외마디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버스 안에서 버릇없게 소리를 지르는 것인가,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다가 버스 뒷문이 열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선을 보면 어느 누가 소리를 질렀는지 짐작할 수 있어서 입니다. 그래서 앞에 앉아있던 50대 이상의 남녀들의 표정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습니다. 해당버스를 운행하는 30대초반의 젊은 기사는 검은 선글라스가 온 얼굴을 가릴 정도의 큰 것을 착용하고 있어 표정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그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제 할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 외 여닐 곱 정도의 60대 정도의 남녀들은 남의 일에 전혀 신경 안쓰겠다는 듯 앞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탐색해 가던 중 50대 이상의 여성 두 사람의 시선이 나를 고정시키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그들이 탑승한 이후부터 이와 비슷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어느 곳에 시선을 집중한 채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코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버스안에서의 들리는 그런 소리에 대해 제재를 가해야 될텐데 말입니다. 오히려 웃음을 띄고 있거나, 남의 일인냥 침묵과 방기로 일관하고 있는 50~60대 이상의 어른들의 표정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띄는 그 여인들의 시선을 따라 버스 맨 뒤쪽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초등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해 보이는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의 아이 4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시선은 유독 표정이 뾰룩툭해 보이는 아이에게 시선이 꽂혔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 아이가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장본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아이들은 히죽 히죽 뭐가 그리 즐거운 듯 웃음을 띄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괴성을 지른 진범을 확인한 나는 이내 시선을 아까 그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웃음으로 화답해준 여인네 둘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기사와 여타의 남녀들에게 시선을 꽂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자신들의 손자뻘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의 일탈된 행동에 대해 따끔한 충고 등을 할 줄 아는 어른들일 텐데 오히려 그들의 일탈행동에 대해 다정한 웃음과 침묵으로 대해주는 이시대의 어른들의 뭐 같은 행동에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어른들의 행동에 대해 분개하던 중, 잠시 후 다시 앞서 들린 것과 동일한 성향의 목소리가 “악~~~악”하고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앞서 침묵내지 웃음으로 화답하던 사람들의 행동반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침묵내지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야 이곳이 너희들만 있는 곳이냐”라고 뒷좌석의 어린아이들을 보며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내 움찔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웃음과 침묵으로 일관한 어른들을 향해 일갈을 하였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의 일탈행동에 대해 따끔하게 얘기를 해주어야 진정한 어른이지,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무슨 어른의 자격이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내지 모르쇠였습니다. 나의 이런 소리에 반응한 사람은 유일하게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젊은 기사였습니다. 그는 백미러로 몇 차례나 힐끔 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나의 행동에 반응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좀 더 승객들의 안전하게 모시려는 봉사차원에서라도 앞으로 적극적인 개입을 하여 안락한 버스가 되도록 힘써 줄 것을 바랍니다.

 

또한 이시대의 어른이라는 가면을 쓴 모든사람들이 정말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길 희망합니다. 흐르는 세월에 편승하여 나이만 먹고, 사회에 나와 월급받는 사회인 생활을 하다,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를 만나 애를 낳고 키우고, 그 자녀들이 그와 동일한 사회생활을 하며 결혼하여 손자 손녀를 낳고 하는 것으로 어른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입니다.

 

<2>사례

 

전주에는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안면이 있는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식사 시간이 파장한 관계로 인해 식당안은 매우 한적하였습니다. 잠시 후 한 무리를 이룬 일가로 보이는 집단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구성은 갖난 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 1인과 유치원정도의 어린아이 2명과 50대로 여성 2명과 남성 1명으로 구성된 평범하게 구성된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후의 햇살이 내 비치는 창가의 좌석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내가 앉은 좌석 옆으로 앉았기에 그들의 대화소리를 거의 다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자가 오늘 유치원에서 졸업을 한 기념파티 삼아 삼겹살을 먹기로 한 친가와 외가 사람들로 사돈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 던 중 갖난아기를 안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어 그에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그녀는 “요즘 누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려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속에는 아이들을 때리는 사람(선생)들을 마치 미개인 취급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도출된 언행이 되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아이들의 행동은 그녀와 할머니.할아버지로 구성된 어른들의 자격을 상실하게 해주었으니깐 말입니다. 이번에 유치원을 졸업했다는 아이의 행동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습니다. 한곳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드넓어 보이는 식당을 마치 자기 집이나 운동장처럼 생각하고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일탈행동에 대해 누구하나 따끔하게 충고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분명 자신들의 가족이 아닌 사람이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아이와 손자들이 행동을 제어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

 

3>사례

 

오후가 되어가는 시간에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여느 고등학교 앞에 도착하자 4명 정도의 남자학생들이 버스를 승차하였습니다. 그 중에 한아이의 일탈된 행동이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 나의 신경을 자극하였습니다. 그 학생은 버스에 오르면서 나를 보더니 개의치 않고 입으로 중얼중얼 일종의 노래인지 래퍼인지 모를 소리를 그치지 않고 중얼중얼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리에 앉아 옆의 동행 학생들과 대화에서도 쉬지않고, 중얼중얼 거렸습니다. 그의 행동은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이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자극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남의 시선과 생각이야 어떻든 자기만 좋으면 그뿐이란 듯 계속하여 중단하지 않고 중얼중얼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음악인지 말인지 도체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에 나의 속은 메스꺼웠습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함께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을 일삼는 요즘의 유치원생들과 젊은 학생들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듯한 어른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일부의 연륜이 든 사람들은 입으로만 말합니다. “요즘 젊은세대들 버릇없어 큰일이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뿌린 씨앗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내놓은 창조물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다할줄 아는 어른이 없는 사회에 대해 어른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들의 일탈된 행동을 누가 가르쳤습니까. 젖먹이를 두고 유치원 아이를 둔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유치원선생과 초.중.고등학교의 공교육과 가정교육의 책임을 나누어지고 있는 선생과 어른들이 책임을 나누어져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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